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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38대 원성왕릉 (괘릉) - 사적 26호(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경주 왕릉/38대 원성왕릉(괘릉) 2015. 5. 12. 14:48

    신라  38대 원성왕릉 (괘릉)  

      

     

     

     

    2015.   5.   11.

     

     

     

     

     

     

    2015.  5. 11.   나 혼자만의 신라 왕릉 순례길에 오른다.........08:45 포항을 출발....

     

     

    맑은 아침의 공기가 향내음 처럼 싱그럽다....

    룰루랄라 CD음악 크게 틀고 경주 왕릉길 순례 나서는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다.

     

    오늘 순례할 왕릉은  외동쪽 방향의 왕릉으로 원성왕릉,   원성왕릉 부근의 수봉정.  감산사지 삼층석탑. 감산사와 효소왕릉,  성덕왕릉,  신무왕릉,  효공왕릉,  신문왕릉,  선덕왕릉 등 왕릉 7군데와 문화재 2곳,  사찰 1곳을 돌아 볼 예정이다.. 

     

     

     

    첫번째 왕릉으로 원성왕릉 순례다...

     

     

     

     

     

     

     

     

     

     

     

    원성왕릉 가는 길이  참으로 고즈녁하니 좋다..

     

     

     

     

     

     

     

     

    괘릉 가는 길, 경주에서 울산 가는 국도에서 10여분 거리로 산모랑지를 돌아 가면 나오는데,  산이라기 보다는 나즈막한 둔덕의 느낌이다.

     

     

     

     

     

     

     

     

     

     

     

     

     

     

    원성왕릉, 괘릉 (사적 26호)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무덤. 통일신라시대 원성왕릉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연못의 원형을 변형하지 않고 왕의 유해를 수면 위에 걸어 안장했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란 이름이 붙었다.

     

    무덤의 형태 및 구조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완비된 능묘제도를 보여준다.

     

    봉분은 원형의 토분으로 봉분아래 봉토(封土)를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호석(護石))이 설치되고 12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봉분 앞에는 사각형 석상과 돌사자 두 쌍, 문인석 한 쌍, 무인석 한 쌍, 화표석( 화표 : 묘 앞에 세운 문) 한 쌍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차례로 늘어서 있는데,이러한 석조물의 조각과 십이지신상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무덤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이 능은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재위 785 ~ 798,김경신)을 모신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괘릉은 소나무로 우거진 솔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앞으로는 농사 짓는 너른 평지이다

     

     

     

     

     

     

     

     

     

     

     

     

     

     

    석주와 석상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봉분에서 약간 떨어져 좌우에 화표석,  문인석,  무인석과 돌사자를 마주보게 세웠으며,  무인석은 서역인(西域人)의 얼굴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괘릉 앞에는 네 명의 문·무인석상과 네 마리의 돌사자상이 놓여 있다

    이곳에 놓인 석상은 그 생김새로 볼 때 신라인이 아닌 외국의 인물들인데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왜 평범한 신라의 인물이 아닌 외국인을 능묘 앞에 배치한 것일까...

    아마도 원성왕은 이러한 신라의 활발한 대외교류와 성세의식을 후세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입구에서 좌측에 있는 뒤쪽의 사자상이 고개를 돌려 남쪽을 지키고 있다.  사자상 뒤로 왕릉 제초작업 하시는 분들이 쉬고 계신다.  휴식시간인가 보다  ^^

     

     

     

     

     

     

     

     

     

     

     

     

     

    문인석이다

     

     

     

     

     

     

     

    괘릉은 입구에서 부터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석, 문인석, 돌사자상이 마주하고 있고 그 끝에 릉이 있다.

     

    괘릉 석상(掛陵石像) 및 석주 일괄(石柱一括)

    보물 제1427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이 무인상은 눈두덩이가 깊고 코가 우뚝하며 수염을 기른 모양새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력과 활발한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중에 무인석은 괴량감(塊量感)과 아울러 박진감 넘치는 석조물로 그 얼굴에 서역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통일신라가 서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괘릉은 너른 벌판에 위치해 다소 황량한 느낌을 주는데 그나마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아늑함을 갖는다.

    괘릉이 유명한 것은 릉 앞에 서 있는 석상 과 봉분 주위 석주 때문이다.

     

    걷어올린 윗옷 아래로 굵은 팔뚝의 근육까지 생생한 무인의 모습은 깊숙하게 골이 파인 눈자위와 커다란 코, 곱실거리는 수염의 모습이 여느 동양인과는 다른 서역인의 모습이다.

    당나라 등 당시 중국과의 교역에서 벗어나 아라비아반도의 서역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신라 왕실에서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이방인의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중심지로 자리하였을 신라와 경주의 위상을 느끼게 한다.

     

     

     

     

     

     

     

     

    이 곳 괘릉은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가운데 가장 발달한 능묘양식을 갖추고 있으며,주변의 石物 배치나 조성기법도 훌륭하다.

     

    왕릉 입구에서 남쪽으로 부터 화표석,  무인석,  문인석 각 1쌍 과 돌사자 4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석물들은 동서로 약 28m 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2마리씩 나누어 마주보고 있는 돌사자는 동남쪽과 서북쪽의 것이 정면을 지키고,  서남쪽과 동북쪽의 것은 각각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과 북쪽을 지키게 하는 기발한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4마리의 사자는 모두 자신김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특히 북쪽을 지키는 사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들의 석조물들은 괘릉 봉토 주위의 12지신상과 더불어 8세기 말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적과 예술적 감각을 웅변하여 주는 걸작이다.

     

     

     

     

     

     

     

    1쌍의 문인석도 그 늠름한 모습이 다른 능묘의 문인석에서 느껴지는 나약함과는 다르게 강건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문인상도 국내의 인물은 아니고 당의 인물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대  아마도 당과 서역 가운데 위치했던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인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신라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마리가 서로 나란히 앉아있고 또 다른 두마리와 서로 마주 앉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봉분의 사방을 지키는 돌사자들의 두 눈 부릅 뜬 당당한 모습과 웃음 가득한 얼굴은 신라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괘릉을 지키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 또한 명작이다.

    그 얼굴은 무섭다기보다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하고 장난기가 어려 있다.

     

     

     

     

     

     

     

     

     

    입구에서 우측에 있는 앞쪽의 사자상이 고개를 돌려 북쪽을 지키고 있다

    2마리씩 나누어 마주보고 있는 돌사자는 동남쪽과 서북쪽의 것이 정면을 지키고,  서남쪽과 동북쪽의 것은 각각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과 북쪽을 지키게 하는 기발한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4마리의 사자는 모두 자신김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특히 북쪽을 지키는 사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들의 석조물들은 괘릉 봉토 주위의 12지신상과 더불어 8세기 말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적과 예술적 감각을 웅변하여 주는 걸작이다.

     

     

     

     

     

     

     

    웃고 있는 사자상

     

     

     

     

     

     

     

     

     

     

     

     

     

     

     

     

     

     

     

     

     

     

     

     

     

     

     

     

     

     

     

     

     

     

     

     

     

     

     

     

     

     

     

     

     

     

     

     

     

     

     

     

     

     

     

     

     

     

     

     

     

     

     

     

     

     

     

     

     

     

     

     

     

     

     

     

     

     

     

     

     

     

     

     

     

     

     

     

     

     

     

     

     

     

     

    밑둘레 70m,   지름 21.9m,   높이 7.7m로   능의 둘레에 있는 호석(護石)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그 주위로 돌난간이 에워싸고 있다.

     

     

     

     

     

    이 무덤은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본 받았으나 둘레돌,  십이지신상,  난간,  석물 등 모든 면에서 신라 능묘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괘릉'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덤의 구덩이를 팔 때 물이 괴어 널(棺)을 걸어(掛) 묻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왕은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라는 제도를 두어 인재를 뽑았으며 벽골제(碧骨堤)를 고치기도 하였다.

     

     

     

     

     

     

     

     

     

     

     

     

     

     

     

     제단

     

     

     

     

     

     

     

    통일 이후 비로소 호석을 두르고 십이지 신상을 조성한 봉분이 조성되기에 이르는데 남겨진 사례도 그리 많지는 않다

     

     

    김유신 장군묘.  진덕여왕릉.  성덕왕릉.  헌덕왕릉.  경덕왕릉. 괘릉 정도가 고작이다.  그 중에서도 괘릉은 그 조각수법이나 조성방식으로 볼 때 가장 아름다운 능으로 손꼽힌다.

     

     

     

     

     

     

     

    제단의 측면부

     

     

     

     

     

     

     

     

    봉분 주위의 石柱 와 12지신상은 보물로 지정될 만큼 예술성이 뛰어 나다.

     

     

     

     

     

     

     

     

     

     

     

     호석(護石)에는  십이지신상이  일정간격으로 세겨져 있다..

     

     

     

     

     

     

     

    호석에 배치한 십이지신상의 조각은 당시 신라인의 문화적 역량과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유신장군묘에 배치된 십이지신상이 평범한 문인의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면 괘릉의 십이지신상은 중무장을 하고 있는데 마치 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이 든다.

     

     

     

     

     

     

     

     

     

     

     

     후면부에는 석축을 쌓고 하단에는 무덤 안으로 물이 유입되 않도록 배수구가 설치 되어 있다.

     

     

     

     

     

     

     

     

     

     

     

     

     

     

     

     

     

     

     

     

     

     

     

     

     

     

     

     

     

     

     

    괘릉의 소나무들...   봉분 주위를 아늑히 둘러 싸고 있다.

     

     

     

     

     

     

     

     

     

     

     

     

     

     

     

     

     

     

     

     

     

     

    봉분에서 본 입구 모습

     

     

    그저 일반인들이 농사 짓는 평지에 봉분이다 보니 차라리 서민풍의 소박함이 묻어 난다.

     

     

     

     

     

     

     

     왕릉에서 바라본 석상의 배열이다.  똑 같은 조각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괘릉의 소나무는 꼭 미인들의 행렬을 보는 듯 하다.   키는 높고 몸매는 날씬한게 쭉쭉빵빵이다.  여느 왕릉 주변의 오래된 덩치 큰 老松과는 다른다.

     

     

     

     

     

     

     

     

     

     

     

     

    궁금하여 자세히 보니 돌밑에는 배수구 같았다..

     

     

     

     

     

     

     

     

     

     

     

     

     

     

     

     

     

     

     

     

     

     

     

     

     

     

     

     

     

     

     

     

     

     

     

     

     

     

     

     

     

     

     

     

     

     

    여느 왕릉과 같이 산 언저리가 아닌 평지에 둔덕 같은 곳에 자리해서 시원함을 갖게 하는 원성왕릉을 보고 원성왕릉에 붙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 가까운 곳에 있을것 같은 감산사지 삽층석탑을 보러 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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