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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이 좋아 (황악산 산행후기)기행문·수필, 그리고 다른 글들.. 2014. 1. 12. 23:00
山이 좋아
2014. 1. 12.
갑오년 1월 12일 산빛어울림산악회 김천 황악산 새해 첫 산행 날이다.
아침 문을 여니 맑은 공기가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항상 모이는 죽파파출소 앞에서 07시 출발 하였지만 날씨가 쌀쌀하다보니 기대만큼 버스안이 꽉 차지 않아 아쉽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김천에 있는 조계종 제 8교구 본사 직지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육중한 직지사 일주문 현판에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절은 신라 눌지왕 2년(서기 418년)에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 마음을 바르게 볼때,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임을 깨닫게 된다)' 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따왔다.
또 다른 설로는 아도 화상이 경북 구미시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한 손으로 가르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길지가 있다'고 해서 직지사라 불렀다고도 한다.
전설 하나를 더 보태면 고려 때 능여 화상이 절을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측지하였기에 직지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능여 화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을 도왔고, 임진왜란때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도 이 절에서 출가 했다. 제일가람으로 불리는 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산문을 지나 매표소 통과 후 직지사를 향하며 입구에서 멀리 황악산 정상을 바라보니 눈이 많아 보인다. 1천년 넘은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도 지나고 만세루를 지나니 대웅전과 양탑이 길손을 맞는다. 제일가람 직지사를 차근차근 돌아보고 도피안교에서 극락전 용마루 너머로 황악산을 바라보니 수묵화 그림 같다.
부도탑도 지나 내원교 못미쳐 조금은 한적한 곳에서 준비해간 제물을 차리고 올 일년동안 산빛어울림산악회의 무사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모든회원들의 간절함을 담아 시산제를 올린다.
시산제 지낸 후 12시 가까워 산행을 시작한다. 운수암 → 운수봉 → 백운봉 → 비로봉 정상 → 백운봉 → 운수봉 → 운수암 → 직지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코스로 해서 8km, 4시간이 소요 되었다.
등산코스를 둘러 보고 통제소를 지나면 큰길에 도로포장까지 된 황악산 3대 계곡인 능여계곡 길을 10여분 들어가면 운수계곡과 내원계곡이 합수되는 어간에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가 있으나 웬만한 산에는 흔히 볼수 있는 물줄기라 오른쪽으로 운수계곡을 따라 내원교도 지나 계속 운수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물이 마른 계곡을 벗어나 급경사의 능선을 반시간쯤 오르면 주능선 안부이다. 북으로 지척에 운수봉이 봉긋한데 운수봉 너머로 지릉을 따라 우측으로 황악산 가는 주능선은 백운봉을 만들고 다시 1시간쯤 가까이 정상으로 향하는 눈길은 육산 전형의 능선이라 무릎을 덮는 눈길을 헤치며 길을 여는 쾌감을 만끽할수 있다. 소나무가 전혀 없는 낙엽수림이라 옷 벗어 떨고 있는 신갈나무, 굴참나무, 철쭉 사이로 빼곡한 나무울타리로 능선을 이어간다. 소나무 하나 없는 낙엽수림이라 황악산의 겨울조망 중 옷 벗어 나무들 비탈에 서 있는 전경은 자신의 속내를 들춰보는 진실이 있어 좋다.
낙엽 마져 떨어진 겨울 산을 좋아하는 이유야 낙엽밟는 소리라 하지만 눈 덮힌 산길을 펑퍼짐한 육산 아닌 다음에야 늘 위험이 따르니 낭만적인 감상에 젖기에는 긴장된 길인지라 산정에서의 조망을 내세우기도 한다. 산릉에 기대어 옷 벗어 앙상한 나무들, 나무높이 만큼 낮아진 산들이 시원스레 머리를 빗어 나무들을 도열시키는 산릉은 나무들 휜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닮은 여유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꽃도 없이 잎도 없는 단풍까지도 떨어진 나무, 나무들의 음율이 저마다 소리 내는 산릉을 보노라면 쓸쓸하고 소슬함을 넘어선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보는 틈새가 하늘을 열어 준다. 이름도 없이 너와 내가 구별되지 않는 공동체의 평등 속에 나는 나대로의 객체가 나신(裸身)되어 투영되는 진실이 있기에 낙엽 진 겨울산릉을 좋아한다. 8부 능선의 사면에서 낙엽진 겨울 산의 능선을 보라, 막힘없이 들어오는 하늘이 희망이며, 틈새를 막아 찬란한 햇살이 기쁨이요, 알맞게 자리하여 산릉과 나란하게 선을 만드는 나무들 높이가 우리들 삶이 아닐까..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없이 고만고만한 높이로 서로를 통제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나무들의 하늘선이 우리들 사회의 공동의 모델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너무 크면 등 넘는 바람에 꺽일 것이고 너무 작으면 빛 가려 광합성을 저해 당하니...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레' 춤추는 군무가 산릉 따라 한없이 흐르는 인간세상의 모럴이 있기에 낙엽 진 겨울산을 좋아 한다.
싸리나무에 억새 깡마른 이삭들이 눈길위에 바람을 찾는 평탄지대를 일구더니 황악산 산정 비로봉이다. 짧은 햇살이 잠시 머무른 설화피어 현란한 산정으로 바람이 일때마다 하이얀 은빛 눈가루가 눈부시다. 첩첩 산들이 그윽한 산그리메를 빚어낸다. 산자태를 뽐내는 가야산과 덕유산의 산줄기가 남쪽을 긋고 있고 서쪽을 보면 발아래 직지사를 시작으로 김천들과 시내가 보이고, 그 뒤로 안개에 젖어 정수리만 드러낸 구미 금오산이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산정은 온통 은빛인데 조망은 찬란한 바람이다.
황악산은 조망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산이다. 또한 봉우리도 정상석이 있지 않다면 누구나 그냥 지나치고 말 정도로 봉오리 같지 않은 산이다. 형제봉, 신선봉을 바라만 보고 바람이 너무 불어 헬기장 아래 억새밭에서 점심을 먹으며 해바라기를 한다. 금새 30분을 보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다시 오던 길을 돌이 백운봉, 운수봉을 밟고 운수암으로 하산한다. 운수암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운수암까지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기는 하지만 길이가 짧아 금방 운수암에 내려선다.
운수암에서 내려 오다 중암 갈림길에서 잠시 일엽스님과 일당스님을 추억한다. 일제시대 한국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자 문필가였던 일엽스님의 외아들(김태신)이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일당'이라는 법명을 쓰고 구순의 나이에 현재 직지사 중암에 머물며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자서전을 출간 하였다 하니 연(緣)이라는 것에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가을철에는 단풍이 엄청 멋있었을 듯한 길을 한참 내려오다 오른쪽의 부도탑도 지나 직지사를 만나면서 황악산 산행을 마무리 했다...
왠지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그런 저 마다의 애잔하고 누추한 기억의 서랍 하나쯤은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법이다.
막상 열어보면 으레 하찮고 대수롭잖은 잡동사니들만 잔뜩 들어있는 것이지만, 그 서랍 주인에겐 하나 같이 소중하고 애틋한 세월의 흔적들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서랍속 먼지 낀 시간의 흔적들과 꿈, 사랑, 추억의 잡동사니들 까지를 함께 소중해 하고 또 이해애 주는 일이 아닐까?
추억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걸 지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든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내게 귀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산빛님들을 기억하며 내 생애 가장 큰 행운은 부처님을 만난 인연이다. 오늘도 감사의 마음 내려 놓으며 기억의 서랍에 이쁜 추억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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