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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 있는 사자산 쌍봉사(전남 화순군)사찰여행/전라도 2014. 8. 24. 11:37
화순에 있는 사자산 쌍봉사
2014. 8. 24.
2014. 8. 22. 06:00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에서 8월 108순례를 전남 보성의 대원사와 화순의 쌍봉사. 운주사를 가기 위하여 관광 버스를 타고 우리절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 예불을 올리며 보성으로 향해 대원사를 보고 점심 공양 후 쌍봉사로 향한다...
◯ 쌍봉사 가는길...
대원사에서 쌍봉사 들어가는 길도 참으로 멋있다. 주암호도 지나고...
도현 주지스님 추억속의 메타쉐퀘이어 길도 지나....
지금은 열차가 서지 않고 촬영에나 가끔 쓰인다는 무인역인 명봉역사도 지나 쌍봉사에 도착이다...
◯ 쌍봉사 일주문
일주문 현판에는 '쌍봉사자문'이라고 쓰여져 있다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39년 이전에 창건되어 혜철선사가 여름을 지냈고, 855 년경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종풍을 떨친 절로서, 지형이 절의 앞과 뒤에 산봉우리가 2개 즉, 쌍봉이되므로 이에 쌍봉사라 칭하였다 한다.
화순 쌍봉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증조산(일명, 사자산) 기슭에 자리잡은 아늑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경문왕8년(868년)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쌍봉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된 선종계열의 사찰이지만 당시 사세가 번창했던 9산 선문의 사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 승려 도윤이 사자산문의 기초를 닦아 영월의 법흥사가 이를 계승해서 9산 선문을 이루었다. 그러한 점에서 비교적 초기에 마련된 선종계열 사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 쌍봉사 연못
주차장 옆에는 제법 큰 규모의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는 수양버들과 연못 가운데는 자귀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이 연못은 최근에 중창불사를 하면서 만든 것인듯 하다
사천왕문 앞 옛 삼청각이 있던 자리에 만든 연못의 돌거북이가 쌍봉사를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 쌍봉사 부도전
쌍봉사 입구 서쪽에 있는 부도전에는 쌍봉사사적비, 관찰사윤공웅열중수영세불망비와 함께 조선시대의 부도 5기가 있다. 서암당, 계파당, 계월당 등 3기와 나머지 2기는 당호를 확인할 수 없다...
쌍봉사사적비는 1786년 (정조 10년) 에 쌍봉사의 성연스님이 김중수에게 부탁해 사적을 짓고 윤운조가 글씨를 써서 비를 세웠다..
◯ 쌍봉사 천왕문
쌍봉사 천왕문 건물 양식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에 맛배지붕의 건물이다.
천왕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두번째문으로 하늘의 왕인 천왕들이 모셔져 있는 문을 천왕문 또는 사천왕문이라고 한다. 즉 천왕문은 佛法을 수호하는 외호신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의 인도종교에서 숭앙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천왕문 안쪽의 해탈문 현판
천왕문 뒤편에는 1990년에 쓴 '해탈문(解脫門) 편액이 걸려 있다. 해탈문이란 온갖 번뇌와 괴로움을 여의고 윤회의 얽매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문이다.
◯ 쌍봉사 대웅전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절의 본 영역이다
절의 영역이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쌍봉사로 들어오는 길 자체가 바로 국도변이라 탈속과 속세의 경계를 지나 절 마당으로 진입하는 묘미는 약간 덜하다
쌍봉사 마당으로 들어오면 3층의 대웅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큰 편인데 날렵하고 호리호리한 느낌도 드는 쌍봉사 대웅전은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목탑 형식의 불전 건물이다.
그러나 1980년대 원인을 알지 못하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지금은 새롭게 복구해서 마련된 것이라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낮아져 보물 지정에서 해제 되었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목조탑파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한다
쌍봉사 대웅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인 3층 전각으로 사모지붕의 목조타파 형식을 지닌 희귀한 양식이다.
목조탑파 건축으로는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2동만이 현존하는데 1936년 5월3일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보존해오던중 1984년 4월3일 한 신도의 부주의로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 되었으며, 복원공사는 문화재 관리국이 그동안 자료를 수집하여 1985년 8월 5일 착공하여 1986년 12월30일 준공 원형대로 복구하였다.
지붕이 3층 처럼 올라가게 지은 것은 절을 창건한 철갑선사는 절 터가 돛단배의 형국이라 하여 대웅전을 마치 배의 돛 처럼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내부 1층에는 마루를 깔고 불단(佛壇)을 안치하였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2ㆍ3층은 하나로 튼 통층(通層)이며 중심에 심주(心柱)가 하나 있는데, 각층 지붕의 춘설(春舌, 합각지붕과 모임지붕의 귀에 대각선 방향으로 거는 경사진 부재)은 모두 그 뒤끝이 이 심주에 연결되어 있다.
쌍봉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51호)
대웅전 법당에 모셔진 목조삼존상은 조선 숙종20년(1694년)에 만들어진 앉아서 설법하고 계신 석가여래좌상( 높이 120cm) 을 중심으로 왼쪽의 아난존자(높이 140cm)와 오른쪽 가섭전자(높이 142cm)가 합장하고 서있는 전통적인 삼존상이다.
석가모니불의 상호는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선이지만, 원만하며 고개는 중생을 굽어 보시듯 약간 숙이고 있다.
두손 모양(수인)은 석가모니불께서 수행하실때 모든 악마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뜻이 항마촉지인이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을 오랫동안 옆에서 모신 제자답게 후덕한 얼굴이며 가섭존자는 수행을 잘하는 수행자의 얼굴답게 점점이 수염까지 그려져 있다.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제자들의 모습도 보는이들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해준다.이 삼존불을 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한 농부의 장한 마음과 용기가 크다.
대웅전이 화재를 만나 불길에 휩쌓엿을 때(1984년) 마을 농부가 달려와 삼존불을 한분씩 등에 업고 나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년 후 대웅전을 복원할 때 부처님과 제자들도 새옷을 입듯 개금과 채색을 하였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선이나 오른쪽 팔꿈치 까지만 걸친 법의, 규칙적인 치마 상단의 옷주름 등은 조성 당시의 특징을 잘보여주고 있으며 이 삼존상은 발원문과 극락전 아미타불 대좌의 묵서명에 조성시기와 동기, 참여자 등이 기록되어 있어 귀중한 가치를 불상 연구에 지니고 있다.
쌍봉사 시공 주지스님과 함께...
◯ 쌍봉사 대웅전 앞 괘불석주
대웅전 앞에는 짝을 잃은 괘불석주가 한 기 놓여져 있다. 괘불석주의 크기로 보아 이곳 쌍봉사가 큰 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부와 하부의 두께가 거의 일정하며 각각 상하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 쌍봉사 극락전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6.25로 대부분의 당우들이 소실될 때 대웅전과 함께 소실되지 않은 건물로, 쌍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형태는 높은 축대 위에 커다란 덤벙주초를 놓은 뒤 배흘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끼워 넣고 평방을 올린 다포식 건물이다.
천정은 우물천정에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창문은 2분합 띠살문이다. 앞쪽의 처마는 부연을 내달은 겹처마이고 뒤쪽 처마는 흩처마 이며, 처마 양측에 풍판을 달았다.
6.25 당시 쌍봉사를 덮쳤던 화마를 극락전 건물만이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극락전 앞에 놓인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화마를 막아냈다는 아련한 전설만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한 연유로 불법을 수호했다는 호법의 상징으로 극락전 앞에서 많은 불도들의 우러름을 받고 있다. 지금도 가을이면 불에 타오르듯 아름다운 단풍들을 떨구고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협시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은 1989년에 도난 당함)을 비롯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쌍봉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시대 목조 불상의 원형을 볼 수 있으며, 숙종20년(1694년)에 조성 되었다
산신탱과 칠성탱
신중단의 그림
◯ 쌍봉사 지장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3호)
쌍봉사 지장전에는 목조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이 보물제1726호 이다.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린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다.
쌍봉사 지장전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지장보살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삭발을 한 민머리 형태이며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부처님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도명존자는 민머리에 합장을 하고 있으며, 무독귀왕은 보관을 쓰고 있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색이 바래기는 했으나 그 조각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며, 여러 절집의 그 어느 목조상보다 정교하여 흡사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솜씨 좋은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가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죽은 이를 심판하는 시왕과 판관, 귀왕, 동자, 사자상등 모구 21구의 목조상이 모셔져 있다. 특이 이곳의 목조상들은 얼굴 표정과 옷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것들로서 우리나라의 목조 시왕들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들이다.
내부 중앙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로 목조도명존자입상과 무독귀왕입상 및 목조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한 목조시왕상 등은 기록에 따르면 1667년(현종 8)에 조성된 것으로, 빼어난 조각솜씨로 예술성이 뛰어나며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쌍봉사 지장전의 인왕상과 시왕들
굳고 힘쎈 모습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이 당당하게 서있고, 인왕상 옆으로는 죽은 이를 심판하는 시왕들이 융복과 곤룡포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왕들은 모두 관을 쓰고 있으며, 시왕들 사이에는 판관과 귀왕 동자, 사자(使者) 등이 배열되어 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칼을 들고 있는 인왕상이 무서운 기세로 서있다. 불법을 흐트리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느낄 정도로 그 조각이 생생하다. 인왕상 옆으로는 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시왕과 판관의 모습도 보인다. 목조시왕과 판관의 모습 등에서 솜씨 좋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죽은 이를 심판하는 지장전 외벽화들...
◯ 쌍봉사 나한전
최근에 지어진 나한전(羅漢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아난ㆍ가섭존자입상을 포함하여 16나한상이 봉안되었다. 또한 인왕상 2구, 사자상 2구, 동자상 4구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나한은 범어(梵語)의 아라한에서 온 말로 응공(應供), 응진(應眞) 등으로 의역되고 불러진다. 나한은 열반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다시 미혹의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섭, 아난 등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빈두로파라타 등 16명의 제자, 부처님 설법을 듣고 항상 따르는 1250명의 제자,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기록된 500명의 제자 등을 나한이라고 일컫는다.
◯ 쌍봉사 호성전
극락전 옆으로 독특하게 생긴 불전 한 채가 마련되었 있다. 2000년에 옛 모습을 고증하여 새롭게 복원한 건물이다.
호성전은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와 그의 사제 조주선사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
T자형의 아담한 건물인데 앞쪽의 누각과 뒤쪽의 맞배지붕이 결합된 어느 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전각이다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호성전은 T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전각이라고 한다.
원래는 세조의 위패를 봉안한 건물로 짐작되나 현재는 쌍봉사 창건주 '철감 동윤선사'와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절 가운데 최초로 조주선사 진영을 모시고 있는 까닭은 두 선사의 깊은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호성전에는 쌍봉사를 창건한 철갑선사와 법 형제인 소주선사의 존영을 모셨다
호성전 앞의 초의선사의 시
◯ 쌍봉사 범종
쌍봉사 경내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그리 오래된 건물로 보이지 않는다. 범종 역시 요즘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쌍봉사 요사 (범종각 옆의 요사)
◯ 쌍봉사 요사 ( 공양당과 템플스테이 공간)
좌측은 공양당, 우측은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요사다..
공양간의 굴뚝
종무소와 공양간이 있는 요사채
누군가 기왓장에 그려 넣은 그림이 한번 정도 발을 멈추게 하고, 한번 정도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건물에는 학생들이 그린듯한 불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템플스테이 명패
옛 가람은 사라지고 자그마한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무언가 친근감이 느끼는 돌담을 따라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요사채가 정겹다.
◯ 쌍봉사 육하당
육화당이라고 현판이 되어 있다..
쌍봉사 시공 주지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와 철감선사탑비 가는 길...
대나무가 있는 길 모퉁이를 지나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철감선사 부도탑(국보제57호)과 철감선사탑비(보물제170호)가 있다.
철감선사 승탑을 만나러 가는 길 좌측에서 만난 너와 지붕의 나무정자가 너무도 정겹다..
철감선사 승탑을 만나러 가는 길 우측에서 만난 대나무림 사이의 표고버섯 재배목이 신비롭다..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과 부도비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지장전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오르면 계단이 보인다. 100m 정도의 이 계단 끝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승탑이라 할 수 있는 철감선사 승탑이 있다.
국보를 보러 오르내리는 돌계단 주면에는 야생차가 지천이다.
차나무 열매가 잘 익어가고 있다
돌계단 위 돌담으로 보호된 평지에 화순군의 유일한 국보인 철감선사 부도와 철감선사탑비가 보인다.
비바람에 시달리며 천년을 한곳에 서있는 석조물 치고는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에 놀랐다.
부도는 스님들이 입적을 하면 화장을 하고 남은 재에서 사리를 모아 봉안하는 것으로 스님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옆의 탑은 탑신이 없어지고 위아래의 석물만 남은 것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현란한 조각미술에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 어쩌면 저리도 정교하게 만들었을까?....
그시절 석공들은 변변한 도구도 없었을텐데 그저 깊은 신심으로 저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남들이 이해도 못할 이상한 모양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현대의 조각가들은 이 작품을 뭐라고 평할지 궁금해진다.
철감선사는 28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법을 받게 되고 금강산에서 머물다가 46세에 이곳 쌍봉사에 와서 주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탑 (국보57호)
단단한 화강석에 어찌 저토록 아름다운 조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신라시대 장인들의 솜씨가 놀랍기만하다. 탑 지붕과 서까래는 마치 목재로 만든 것 같다.
철감선사 도윤은 김제 귀신사에서 화엄학을 공부하다가 보다 본질적인 종교의 근원을 찾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갔다가 남종선을 배워와 신라에 널리 퍼트렸던 승려다.
선종을 처음 들여온 도의보다는 시대가 조금 아래지만 범일과 더불어 신라에 활발하게 선종을 보급하였다는 점에서는 초기 선종의 보급에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감선사는 신라 경문왕 연간(868)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승탑이 조성된 연대도 그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철감선사 탑은 남아있는 신라 승탑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온전히 보존되어온 신라시대 승탑이 몇 있을까마는...
남아있는 승탑 중에서는 원주 흥법사의 염거화상탑이 시기적으로 제일 이르고
곡성 태안사의 적인선사탑과 화순 쌍봉사의 철감선사 탑이 그 다음 작품 즈음 된다고 할 수 있다
기단에 새겨진 사자의 모습, Lion이 아닌 상상의 동물 사자다.
1,200년밖에 안 됐단다.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돌을 쪼아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승탑의 화려함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정면에 문 고리가 떡 버티고 있다.(이게 뭐지, 한참이나 쳐다봤다. 팔각원당의 '당'이 집(堂)이니 그래 맞다, 들어가는 문도 있어야겠구나.), 문 옆으로 각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과 비천상(飛天像)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아래로 보이는 게 가릉빈가, 그 위로 비천상, 양 옆으로 사천왕상
철감선사 승탑의 백미는 단연 지붕돌이다. 하대 신라 문화적 최전성기의 난숙성이 지붕돌에 새겨져 있다.
깊게 패인 기왓골은 비 오는 날, 승탑에서 떨어질 낙숫물이 절로 그려진다. 또 각 기와의 끝에 보이는 막새기와의 표현은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세심함(세상에 지름 1cm도 안 되는 원 안에 들어찬 연꽃이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싶다.)이다. 그뿐인가? 팔각의 처마 아래에는 서까래까지 나란히 들어차 있다.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듬은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1,200년전 작품으로, 당시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란 수사가 결코 허구가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승탑을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이 승탑이 우리나라 최고의 승탑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성싶다.
도굴꾼의 소행으로 사라져버린 지붕 장식이 댕겅 잘려나간 상투마냥 짠하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시기적으로 이를 뿐 아니라 예술적인 조형의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승탑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
마치 화강암을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유연하게 조각해낸 석공의 솜씨는오늘날의 기계로도 이만큼의 수작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많은 사찰들을 다니면서 많은 부도들을 접해봤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범인의 눈으로 보아도 감히 누구나 신라 석조의 백미라는 표현에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석공은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부도를 완성하였다.
유연하게 내려오는 지붕의 기왓골. 기왓골 아래 만들어진 수막새 와당의 디테일한 표현까지...
각 부에 표현된 극락세계의 상징들까지...
승탑 기단부에 자리한 짐승들도 마치 살아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전해진다.
부분 부분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조성되고 천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풍상으로 인해 닳은 흔적이 없다.
무릇 돌보다 강한 돌은 정으로 다루기가 훨씬 어려웠을텐데
탑을 조성한 석공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순간의 어려움보다 먼 시간이 흐른 후에도 세월의 풍상에 닳지 않게 강건한 석재를 골라 정성을 쏟았음이 분명하다....
◯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보물 170호)
네모난 바닥 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다. 머릿돌은 용 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특히 격렬한 거북 받침돌의 조각들은 매우 훌륭한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감선사탑 옆에는 보물 170호인 철감선사탑비가 있는데 거북위의 탑비는 없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주민들이 떼어다가 빨래판으로 썼다고 한다. 탑비가 원형대로 있었다면 보물이 아닌 국보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탑비는 비신을 잃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탑비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스러져 없어진 탓에 비신이 완전히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져 남겨진 모든 탑비들은 국보로 지정될 정도니까...
철감선사 탑비의 이수와 귀두
승탑에 비해 탑비 조각은 그 화려함과 세밀함이 덜하지만 탑비 하나만을 두고 보면 또 매우 잘 만든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귀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운룡문 자체도 활기가 느껴지지만 그보다도 돌거북의 자태가 매우 역동적이다.
한발을 곧추세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자세가 느껴진다.....
탑비의 후면부
다시 쌍봉사 경내로 내려 간다..
◯ 쌍봉사 시공 주지스님 법문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법우님들께 귀한 법문의 말씀을 들려주신 시공 쌍봉사 주지스님 감사합니다...
◯ 쌍봉사 전경
다시 경내로 돌아와 철감선사의 향기를 못내 아쉬운듯... 쌍봉사를 다시 둘러 본다..
앞뜰에는 오래된 나무가 쌍봉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 아래의 정겨운 고인돌을 닮은 돌 의자들...
◯ 쌍봉사를 나서며...
쌍봉사를 나서 운주사로 향한다...
쌍봉사를 나서 운주사로 향하는 길....
오늘도 맑은 마음과 새들의 노래와 초록들의 향연을 보며 부처님의 사랑으로 삶에 향기가 만발하길 소망하면서 행복하길 바라는 작은 마음으로 꿈과 소망을 그려 본 하루였다....
구름이 일어나고 폭풍이 몰아쳐도 언제나 더 높은 곳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태양을 내 마음에 간직함으로 나의 삶을 희망이 빛나는 밝은 삶으로 가꾸어 나가야 겠다.
감사하는 마음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부처님 찾아 떠났다온 많이 행복한 날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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