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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박물관과 성덕대왕 신종 (경북 경주시)여행방/경상도 2011. 11. 9. 14:46
경주 국립박물관과 성덕대왕 신종
2011. 11. 6.
중학동기모임에서 함께한 경주 수학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신종 에밀레 가슴을 울리는 종소리는 타에 추종을 불어 한다~(지금 종 소리는 1964년에 녹음 한 소리임), 보호 차원에서 지금은 타종을 안한다 ....
'신과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종이어서 신종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글귀다.
신라 예술가들이 만든 이 종에 '신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굳이 적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종을 만드는 건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경외감의 표현이다.
마치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신이여 이 영화를 과연 제가 만든 것입니까?"라고 감탄했듯이.전문가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종들 중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을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는다.
이 종은 신라의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위엄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번번이 실패를 하다 경덕왕 생전에는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인 혜공왕 때인 771년에 완성했다.
제작하는 데 20년이 걸린 이 종의 양면에는1,000여 자의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문장들은 종을 만든 목적과 종제작에 참여한 후원자와 장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록인데, 글의첫머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 종을 만드는 첫째 목적은,
이 종을 쳐서 나는 소리는 이 우주에 절대적 진리의 소리여서 이를 듣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
이 종소리는 깨달음을 전하는 신의 음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그 연꽃을 침으로써 소리가울려 퍼진다.
연꽃은 불가에서 깨달음의 상징이기에, 종에 새겨진연꽃에서 소리가 퍼져나가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온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목적이었다.
이 신라의 종에는 절대적 진리를 향한 간절한 인간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은 과거에는 입장료를 받았으나 지금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실제로 이 신종 소리는 새벽 산속에서는 사방 백 리까지 종소리가 퍼져나간다고 한다.
어설픈 기술로는 흉내낼 수 없는 신묘한 소리가 난다. 신라인들이 이 종을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던 것은 인간의 혼을 흔드는 진정한 예술작품만이 영원성을 지닌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비천상똑 같은 비천상이 종 둘레에네개가 양각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올라 갈 것만 같은 인물이 중앙에 연화좌위에 앉아 염원을 드리는것 같다. 비천상은 범종에서 가끔 볼수 있는데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이 제일 우아하고 예술적인 가치가 훌륭하다고 한다.
연화 - 종을 이 연화부분에 친다...
용뉴와 음통 - 용뉴와 음통은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한다.
용의 허리춤의 둥근 쇠막대기(지름 8.5cm)
고작 지름 8.5cm 밖에 안되는 저 쇠막대기 하나로 18.5t이 넘는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현재의 기술로는 만들지 못해서 1300년전부터 써오던 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솨막대기가 아니라 속이 빈 쇠막대기를 여러번 두들겨서 겹겹히 하나의 쇠막대기로 만들엇다는 것인데 불가사이다.
종신구선대 - 아름다운 무늬에 곡선의 바닥을 가지고 있다.
명동- 명동의 역할은 타종소리가 은은하고 오래지속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771년 작. 국보 제29호. 높이 333cm, 입지름 227cm.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원래 경주 봉덕사(奉德寺)에 있던 것을 영묘사(靈妙寺)로 옮겼다가, 1915년 8월 경주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완전하게 한국종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종의 몸체에 새겨진 긴 명문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동(銅) 12만 근으로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자 아들인 혜공왕이 뜻을 받들어 771년(혜공왕 7)에 완성했다고 한다.
종의 꼭대기에 있는 용뉴(龍鈕)의 용은 사실적인 형태로 조각되었고 그 옆에 붙어 있는 음통(音筒)에는 화려한 보상화무늬가 3단으로 장식되어 있다.
어깨와 구연부에는 보상당초무늬가 장식된 문양대가 돌려졌고, 구연부의 끝부분이 모서리로 이루어졌는데 각 모서리마다 연꽃 한 송이씩을 배치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어깨 밑에는 보상당초문양대가 장식된 유곽(乳廓)이 4곳에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乳頭)가 9개씩 조각되어 있다.
유곽 아래로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4구의 비천상과 연화 당좌(幢座) 2개를 교대로 배치했다.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에 향로를 들고 있으며 천의 자락과 보상화가 구름무늬처럼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마치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종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동종(725)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동종을 대표하며 8세기경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알려주는 예이다.
국립 경주박물관을 구경한다.이 부처상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삐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보살은 뭔가 민망해하거나 미안해하는 듯하기도 하고..
네 기둥마다 근육형(?) 금강역사 한 쌍씩이 서서 불법을 지킨다.
마애불은 덤덤한 듯 자애롭다.
그러나 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최고의 전시품은 역시 7세기 삼국시대 신라 어느 절 처마 끝을 장식했을 얼굴무늬 수막새이다.
수막새엔 주로 연꽃이나 짐승 얼굴을 새겼는데 이렇게 사람 얼굴을 빚은 예는 거의 없을뿐더러 분방한 표현, 입 가장자리에 띄운 소탈한 미소까지 어떤 국보도 따르지 못할 푸근함을 지녔다
국보 28호 금동약사불 입상은 모든 것을 껴안는 미소를 짓고 있다.
뒷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형이 있다. 그리고 지금 동쪽 전시실에는 천마총의 유물들을 특별전시 하고 있다.
화려한 신라 금관, 누가 감히 1500여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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