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 16. 한마음 테마여행에서 41명이 함께했던 수원 화성 둘레길을 걸어보고 즐긴 힐링여행이다......
어제 지인들과 수원의 큰 자랑인수원화성 둘레길을 걷고 행궁도 다녀 왔다. 도심 속에 있는 역사의 흔적과 자연을 한껏 누린 즐거운 하루였다.
06:20 포항에서 출발해 두번의 휴게소를 들러서 10:30 수원 화성의 연무대 주차장에 도착한다...
연무대 주차장 부근에는 카페와 매점. 식당 등이 있다.
연무대 매표소이다... 종전 1,000원을 받던 수원화성 입장료는 2022. 4.8 폐지 되었다.
정조의 친위대였던 장용영 병사들의 위용을 지금도 엿볼 수 있는데 화성 신풍루에서는 상설공연으로 화~일요일 오전11시, 정조가 박제가·이덕무·백동수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훈련교범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 공연이 열린다. 토요일 오후2시에는 궁중무용과 탈춤공연이, 일요일 오후2시에는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사훈련 모습이 재현된다.
화성의 복원이 가능했던 것은 축성하면서 공사기록을 ‘화성성역의궤’라는 9권의 책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기록 덕분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고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써 화성은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유네스코 유산이 됐다.
이렇듯 찬연한 역사를 가진 화성 서쪽은 산성이고 나머지는 평지로 이뤄져 평산성으로 불리며 동쪽의 창룡문, 서문 격인 화서문, 남쪽의 팔달문, 북쪽의 장안문을 출입구로 두고 있었다. 이 중 정조가 드나들던 장안문이 정문의 역할을 했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을 수백 년간 수원도호부가 있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개명(改名)하고 수원 도읍을 새 장소인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원부로 부르던 고을 명칭을 화성(華城)으로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줄곧 수원은 화성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 지방 관제개편 과정에서 다시 수원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수원시로 불리고 있다.
수원부를 옮기고 정조 17년(1793)부터 화성 축조가 본격적으로 준비되어 이듬해 정월부터 시작해 2년 반 만인 1796년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성벽 전체 길이는 당초 정약용이 생각했던 4㎞보다 늘어난 5.4㎞ 정도이다. 성곽 시설에서도 적대나 누조, 공심돈, 포루 등과 같이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설이 많이 도입되었다.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높이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4∼6m 정도이고 성벽 위에는 1m 정도 높이의 여장을 두고 여장에는 총안을 뚫었다. 성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배가 안으로 들어가는 규형(圭形) 쌓기를 기본으로 했다. 성벽에는 4개의 성문을 두었고 암문 5개를 설치해 통행토록 하였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앙에는 행궁이 자리 잡았다. 화성이 위치한 지세는 서쪽에 팔달산이 있고 그 반대쪽인 동쪽에도 나지막한 구릉이 있으며 이 동서 경사지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에 약간의 평지가 펼쳐진다. 화성을 비롯해 우리나라 성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불규칙한 형태로 쌓아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 반대 남쪽이 팔달문이다.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남북문은 중층문루로서 도성문루에 버금가는 규모와 형태를 갖고 있다.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서 사람이나 가축이 통행하고 양식을 나르는 통로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대개 벽돌을 많이 사용했고 원여장 등의 특수한 장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암문에는 보통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암문에만 예외적으로 포사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수문 2곳, 적대 4곳, 노대 2곳, 공심돈 3곳, 봉돈 1곳, 치성 8곳, 포루 10곳,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3곳 등의 시설이 있다.
연무대에서 수원 방화수류정 방향으로 수원화성 둘레길을 걸어간다.
화성 축성은 정조의 개혁적 정치노선과 당시 실학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사상 및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만들어낸 근대적 생산방식에 의한 건축공사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화성 축성을 계기로 한국 근대건축이 시작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군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던 동장대
연무대는 화성을 지키는 정조의 친위대였던 장용영 병사 5,000명이 무예를 훈련하던 현장이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마련하게 위해 신도시 화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수원 화성은 당시의 최첨단 과학과 건축술이 빗어낸 역작으로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화성 건설에 관한 모든 과정은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한국의 세계적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수원 화성의 그 방대한 공사를 2년 9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라는 젊은 실학자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성의 설계를 맡아 전통적인 방법을 기초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여러 서양의 건축을 참고하였다.
정약용의 설계를 바탕으로 채제공을 비롯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와 같은 유능한 실학자들의젊은 패기와기중기, 녹로와 같은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만들어졌다.
당시 건설된 주요시설물로는문루와 옹성을 갖춘 4대문과 행궁, 암문, 수문, 연못, 장대, 공심돈, 각루, 포루, 봉돈, 궁대, 치성, 용도, 적대 등 48개소이다.
연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동북 공심돈이 눈길을 빼앗는다. 공심돈은 일종의 망루로 1· 2층에는 서양식 화포인 불랑기를 배치해 뚫린 구멍으로 적을 공격하도록 했고 꼭대기에서는 적을 관측할 수 있었다. 공심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특히 서북 공심돈(보물 1710호)은 축조 당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데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성 안과 성 밖의 풍경이 모두 멋지다...
수원 화성 성곽길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아름다운지 새삼 느껴 본다...
성곽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풍경 ~
'포루'는 돌출시킨 성벽의 내부에서 대포 등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막강한 시설로 북동포루, 북서포루,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가 있다. '치(雉)'는 성벽을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전면과 좌우 양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 시설로 10곳에 있다.
옛날에도 각종 군사 시설과 성벽이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 안과 밖으로 분리된 수원화성은 성곽으로 인하여 군사적인 경계 측면에서 보호되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건너편으로 우리가 가야 할 팔달산 정상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화성 서장대가 보인다...
동남쪽의 성곽은 경사가 없는 편안한 산책길 같다.
동남 각루를 지나면 '종돈'이 있다.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되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봉돈 전체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화두 다섯 개가 있다. 위급 상황에 따라 다르며 전쟁 때에는 다섯 개를 피웠고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이용했다.
성곽 주변에는 편이시설이 많다...
종돈(봉수대) 전경
성밖으로 보이는 수원 제일교회
수원화성 성곽에는 여러 종류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각루(角樓)'는 성곽 가운데 밖을 조망하는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시설물로 서북각루,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동남각루, 서남각루(화양루)가 있다.
동남각루에서 수원천을 지나 팔달문 방향으로 향하며 바리본 전경이다...
수원천 앞에서 바라본 동남각루
수원천을 지나...
팔달문 시장도 지난다...
팔달문 시장을 지나 팔달문 로타리를 지난다...
수원화성 성곽도 서쪽 성벽이 미복원 되었다. 팔달문을 기준으로 좌우 성벽이 단절되어 있다. 120m의 성벽에 '남서적대'와 '남은구'는 복원되지 않았다. 성벽이 없는 구간을 시내를 통해 서남각루 가는 성벽으로 다시 올라갔다.
정조가 꿈꾼 새로운 조선, 화성은 팔달산과 그 동쪽의 낮은 구릉과 평지를 감싸며 쌓은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서 쌓은 성)으로 타원형태를 이루고 있다. 성의 전체둘레는 5.74 km이고 높이는 4.9 ~ 6.2m이다.
성곽 둘레길에 만난 3.1운동 기념비와 대한민국 돌립기념비
팔달산 중턱에 있는 '서포루'는 화포를 쏘는 시설이다. 여기서 '화성장대'로 가는 성 안쪽 길도 좋고 성 밖의 길도 좋다. 성안 길은 당시 군사들이 숱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걸었던 순찰로다. 수원화성의 산성 구간이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산성의 구조와 특징을 알 수 있다.
정상의 평평한 곳에 다다르면 웅장한 '효원의 종'을 만날 수 있다. 종은 모든 이에게 효성 심을 심어 줌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종이다.
제1타종(부모님 은혜), 제2타종(가족의 건강, 화목), 제3타종(자신의 발전과 소원성취)을 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18시까지 칠 수 있다.
화성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여 1시간 만에 서암문 앞에 도착하여 서암문 앞 고목 아래서 간식을 먹으며 서장대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어 간다..
서암문을 지나면 '화성장대'가 웅장하고 늠름하게 서 있다. 장대(將臺)는 전쟁 시 군사들을 지휘하기 좋은 곳에 지은 장군의 지휘소다. 규모가 크고 중요한 곳에 있다. 수원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2곳이 있다.
오르면 팔달산 정상부
팔달산에서 본 광교산, 팔달산 정상에서 멀리 광교산과 가까이 화성행궁, 수원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잠시 쉼을 가진 뒤 화서문을 거쳐 행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팔달산 정상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화성 서장대. 장대는 군사 총지휘부이다...
뒤편장대 천장에 '어제시(御製詩. 왕이 직접 지은 시)'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정조가 1795년 수원행차 넷째 날 '화성장대'에 올라 군사들의 군사훈련을 지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는 장대 현판에 고풍을 풍기며 새겨져 있다.
'현륭원 호위 중요하지만, 세금과 노역 쓰지 않았네성곽은 평지 따라 둘러 있고, 먼 하늘 기댄 장대는 높다랐구나많은 성가퀴 구조 굳건하고,군사들 의기 호기롭네대풍가 한 곡조 연주함에, 붉은 햇살이 갑옷을 비추는구나.'
'화성장대'를 지나면 '서노대'가 있다.
관측과 적의 위치를 깃발을 통해 알리며 기계식으로 활을 쏘아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보니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측소로서는 최상의 위치다. 여기서 광교산을 바라보니 시루봉 정상, 통신대, 형제봉이 웅장하게 선명하게 보인다.
서노대에서 바라본 서장대
서노대에서 화서문 방향으로 향한다...
성 밖의 길은 적송 소나무 향기가 은은한 팔달산의 정취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다. 이곳의 성벽은 장안문 주변의 성벽만큼 정교하게 쌓지는 않았지만 투박하고 견고하게 보이며 아름다움도 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평행사변형, 사다리꼴 등 다양한 형태의 돌이 성벽을 쌓았다.
서장대를 지나면서포루가 있다. 포루는 화포를 갖춘 시설로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등 총 5곳에 있다.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포 또는 총을 쏘는 용도로, 3층은 적을 감시하는 초소로 사용되었다. 성 밖 면에는 짐승얼굴을 그린 판문을 만들었고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뚫어져 있다.
서장대를 지나 좁고 긴(폭 20여m) 성벽 통로인 '용도'가 나온다. 용도 끝 서남쪽의 요충지에는 '서남각류(화양루)'가 세워져 있다. 실내에서도 주변을 관측할 수 있는 구조다. 정조 21년 정월 화양루에서 시작하여 성곽 일대를 두고 살폈다는 기록이 있다.
곧 화서문이 도착이다...
화서문 뒤로 서북공심돈의 전경도 보인다...
서북 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워진 망루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유일하게 국내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시 3층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는 단층으로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외벽에는 구멍이 있어 화포를 쏠 수 있다. 화성 성곽에는 동북 공심돈, 서북 공심돈 두 곳이 있다.
화서문 앞에서 바라본 서북 공심돈
화서문 처마 끝에 기와장식인 용두와 치수가 보인다.
동장대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1/3바퀴 돌아 화서문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서서 행궁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수원 화서공원에 있는 (좌)서북 공심돈과 (우)화서문 이다.
화서문에서 행궁으로 향하는 길에는 고운 목조한옥 집들을 지난다...
화성행궁을 보고 영화 '극한직업'에 나와서 유명해진 수원행궁쪽에 있는 수원 통닭거리 중심부에 있는 남문 통닭 본점 근처 식당에서 수원 왐갈비 먹고 다시 천천히 수원천을 오은쪽에 끼고 화홍문 방향으로 이동한다...
화홍문의 아름다운 전경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북수문(화홍문)'이 있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에 돌다리를 놓고 누각을 세웠다.군사적 목적과 더불어 평시에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정자로 쓰였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으로 '화홍관창'이라고 불렸다 한다.
화홍문을 보고 나와 수원화성 둘레길로 장안문이나 방화수류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수원천을 건너 성밖으로 화홍문 뒤로해서 수원 방화수류정이 바라 보이는 용연으로 간다.
이곳은 성밖으로 화홍문 뒤 용연으로 향하다가 징검다리를 건너며...
징검다리에서 바라 본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북수문이라고도 부르는 화홍문.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 건물로 수문 북쪽의 경계와 감시를 할 수 있도록 사방을 개방하였다. 사다리꼴의 높은 주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높이 세우고 밑에서 한길 되는 높이에 마루를 깔았고 아래층은 남측의 중앙간을 개방하고좌우 협간은 벽돌로 막았으며, 좌우 측면에 2층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두었다.
문이 있다 없어졌고 다시 문이 생겼는데 화홍문 공사를 끝낸 후 정조는 화홍문에 누각을 설치하고 “수원의 모든 누각은 양반, 평민, 천민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곳에서는 평등하니 백성들은 마음 놓고 사용하라.”라고 대대적인 선언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용연에서 북암문을 통해 우리가 갈 보물 제 1709호인 방화수류정
석각이두(石刻螭頭), 돌로 새긴 이무기 머리라는 뜻으로 용연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나와 수원천으로 합류한다. 자세히 보면 이무기의 코가 많이 깨졌는데 옛날에 자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깨서 가져간 것 같다고...
용연으로 이동 하며 바라본 동북각루인 방류수류정
수원 피크닉 장소로 유명한 용연이다...
성밖 용연에서 북암문으로 향하며 바라 본 수원 화성 성벽 모습이다...
북암문을 통해서 다시 성안으로 들어간다...
북암문을 통해 성 밖에서 다시 성안으로 들어와서 수원화성 둘레길을 걸어 출발지였던 연무대 방향으로 향할것이다.
화홍문 언덕 위에 우뚝 선 정자는 화성 축조물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이다.
화성 축성 시 정조는 신하들이 ‘성을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왜 이렇게 아름답게 쌓습니까’ 하고 물으니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길 수 있느니라’ 하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수원화성 시설물로 군사적 공식 명칭은 동북각루로 보물 제1709호이다.
1794년(정조 18년) 건립된 화성 부속 군사시설과 휴식시설을 겸한 곳으로 18세기 정자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수원화성의 가장 빼어난 건축물로 손꼽히며 석재와 목재, 벽돌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수원 방화수류정 상층은 사방이 트인 누각으로 동서 세 칸 중 가운데에 군사들의 숙직 시 춥지 말라고 온돌방을 두었고 북쪽에 한 칸, 남쪽에 반 칸의 마루를 물려 마치 오래전 중국집에 가면 넓은 방이 손님이 많이 오면 칸막이를 치면 각자의 방이 되듯 이곳도 구역을 나눠 칸마다 앉을 수 있다.
아직도 무더위로 땀을 흠뻑 흘리며 수원화성 둘레길을 걸었는데 이곳에 와서 두 다리 쭉 뻗고 쉬고 있으니 자연 바람이 어찌나 고맙게 부는지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그늘이 없어 답사가 힘들다는데 이렇게 성곽 시설물이 개방되어 있으니 시원한 곳에서 잠시 쉬다 갈 수 있다.
방화수류정에 앉아 동북각루(각건대)를 바라본다. 봄에는 철쭉과 함께 일몰 명소로 사진가들이 넘쳐나는 곳인데 낮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방화수류정 밖에는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연못과 정자의 조화야말로 수원화성의 백미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용연. 수원 피크닉 장소로도 유명하다.
지형에 따라 건축한 성곽으로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밤에도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아름다운 곡선이 아름다운 수원화성 성곽
수원화성 성곽을 답사할 때 성벽과 성곽 시설물을 세세히 보면서 걸어도 좋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철저한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수원화성 성곽길을 관찰하면서 느꼈다. 수원의 보배 '수원 화성 성곽'을 잘 관리하고 이용하면서 보호해야 할 것 같다.
한바퀴 돌아오니 처음 시작점 연무대인 동장대
연무대 주차장 부근의 카페에서 출발 시간 4시를 기다리며 한참을 쉬어 간다.
어제 지인들과 수원의 큰 자랑인 수원화성 둘레길을 걷고 행궁도 다녀 왔다. 정조의 발자취와 도심 속에 있는 역사의 흔적과 자연을 한껏 누린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