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을 위해 건립한 영축산 망해사(울산 울주군 청량읍 망해2길 102, 청량읍 율리 222-2)
    사찰여행/울산 2021. 12. 1. 10:06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을 위해 건립한 영축산 망해사

     

    2021 .  12 .   1.



    2021. 11 . 30 . 여전한 코로나 사태로 멀리는 못 움직이고 한국불교대학 목욕봉사팀 도반들 6명과  함께한 겨울비가 부슬부슬 와도 상관않고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지역 사찰인 망해사와 청송사지 사찰순례 힐링여행이다......

     

    울산시는 석유화학도시, 해양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알고 보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울주군과 합친 도시다.   

    이런 곳들을 찾아 스토리를 만들고, 울주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고자 오늘 울산 울주 청량지역의 사찰여행을 시작했다.

    그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곳이 망해사였다.

     

    09 차량 2대로 출발하여 남포항 - 부산 고속도로 첫번째  휴게소에서 미팅 후 울산을 지나 문수 IC를 빠져나가 오늘 여행의 첫번째는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을 위해 건립한 영축산 망해사를 만난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울주군청을 조금만 지나 도심 인근의 산사인  영축산 자락에 위치한 망해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고운 산속 숲길을 조금 달리면...    절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일주문은 없으나 소나무가 사방을 호위해 주고 있었다.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세운 망해사터에 자리한 조선말 폐사가 된 것을 근래 중창한 현재의 망해사는  영축산 자락에 위치해 초겨울의 앙상함과 함께 아늑한 느낌이다.

     

    망해사는 '영축사(영취사)' , '동축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로서 역사서(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울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망해사의 페찰 연대와 원인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나  순조31년(1831년)에 간행된 울산부읍지와 철종12년(1861년)에 간행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이 절이 있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광무3년(1899년)에 간행된 읍지에는 이미 페찰된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말 농민운동과 동학의 영향으로 동부 경남의 사찰이 일시에 폐찰 될때 사라진 것으로 보여지는데 건물들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절의 윤곽을 알 수 없고 근간에 조성된 망해사가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되어 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망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울산 앞 바다가 보이는 듯 그리고 처용의 춤과 담담한 그의 처용가가 들리는 듯 하다.  참 멋진 남자다 처용은....

     

     

     

     

    망해사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있는데, 권2 “처용랑망해사조”에 따르면, 헌강왕이 開雲浦,  현재 울산시 남구 황성동 세죽 해변으로 유람을 다녀오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덮여 길을 잃고 말았다.

     

    신하에게 물으니 동해의 용이 심술을 부린다며 좋은 일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름이 걷히더니 동해의 용이 아들 7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용은 왕의 덕을 칭송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용은 또한 아들 하나를 보내 왕을 돕도록 하였으니 그가 바로 處容이었다.

     

    동해용이 처용을 데리고 나타난 곳이 처용암으로 불리어 지금은 개운포 바다에 자리하고 있다.

    망해사는 신라 헌강왕때에 동해용을 위해 세운절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왕은 뒤에 영취산 동쪽에 절을 지어 망해사 또는 신방사라 불렀다고 한다.

     

     

     

     

    망해사 입구 언덕 한켠에 위치한 영암당대종사비와 부도탑

     

     

     

     

    경내에 들어서면 곧바로  만나는 종무소가 있는 요사가 있고...

     

     

     

     

     

     

     

     

    그 요사와 마주보고 1층은 공양간.  2층은 강당이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 사이로 대웅전이 바로 바라다보인다...

     

     

     

     

    영축산 망해사.   경내에 들어서면 곧바로 대웅전과 마주한다.

     

     

     

     

     

     

     

     

    감로차 물줄기 따라 단풍잎이 흐른다.

     

     

     

     

    감로수 뒷편 향 대웅전으로는 삼성각이 올려다보인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의하면 망해사는 헌강왕(875~886 재위) 때 창건했다고 한다.   즉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 : 지금의 울산)에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휩싸이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동해룡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하면 곧 풀릴 것이라고 하므로 왕은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룡이 7명의 아들과 함께 나타나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아들 1명을 보내 임금의 정사를 보좌하도록 했으니 그의 이름이 처용이다 .

     

    경주로 돌아온 왕은 처용을 빼어난 미인과 결혼을 하게 하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주었다

    이로 인하여 후새 사람들은 헌강왕이 용을 만난 이곳을 개운포 (開雲捕) 라 부르게 되고, 이때 왕의 명으로 지어진 절이 망해사 (望海寺)라는 창건설화가 전한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 페허화 되어 농지로 이용되던 것을 1962년 영암(影庵)대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대웅전 주변으로는 11월 마지막 날인 오늘,  아직도 이곳엔 가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향 대웅전 우측으로는 종각과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망해사 터에 현재 사찰이 들어서 있는 현 망해사는 멀리 동해 바다 울산 앞 바다를 향하고 있다.   망해사는 규모가 비교적 아담한 절로 1988년에 새로이 지어진 대웅전이다.

     

     

     

     

     

     

     

     

    대웅전 주불이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향 불단 좌측 부터 지장보살. 약사불. 주불이신 석가모니불과 우측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향 대웅전 불단 우측 방향 모습이다...

     

     

     

     

     

     

     

     

    향 불단 우측에 있는 자수 수월관음도 (119*105cm)

     

     

     

     

     

     

     

     

    향 대웅전 불단 좌측 방향 모습이다...

     

     

     

    불단 좌측에는 신중탱과 지장탱이 있고

     

     

     

     

    그 옆으로 영가단이 있다...

     

     

     

     

    향 불단  지장보살. 약사불. 주불이신 석가모니불과 우측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포항에서 찾아간 망해사에서 우리 도반들은 5명이서 아침 사시예불을 올린다...

     

     

     

     

     

     

     

     

    대웅전 뒷편의 외벽에는 신라 헌강왕과 처용에 얽힌 설화를 그린 벽화가 4점 있다.

     

    헌강왕이 갑자기 사방이 안개가 끼고 어두워진 지자 이를 괴이하게 생각하여 일관에게 연유를 물으니, 일관이 이르기를 이는 동해용왕의 소행이라 하였다.

     

     

     

     

    왕이 이곳(현 망해사) 용왕을 위하여 절을 세우라는 명 내리자 동해의 용왕과 일곱 아들이 바다 가운데로부터 떠 올라 왕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왕의 명령으로 절을 세우니 바로 망해사(望海寺)이다. (일명 신방사(新房寺)라 고도 한다.)

     

     

     

     

    절의 창건과 거의 동시(추정)에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사리탑(부도) 두 기가 세워졌다. (그러나 부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하늘과 지붕이 뚫리는 공간에 바람이 불고 풍경은 몸을 부데끼며 소리를 내고 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아름다워 추위에도 한참을 듣고 있었다..

    잔잔하던 곳인데 갑자기 이곳으로 바람이 몰려와 풍경을 흔들었다.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것인가? ㅎㅎ 웃음이 나왔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삼성각

     

     

     

     

    향 대웅전 우측의 삼성각은 고운 울타리를 지나야 만날수 있다.  잎이 지고 없어 확실하지 않는 칡넝쿨 ?

     

     

     

     

    삼성각 입구의 태고종 망해사 미륵불상

     

     

     

     

    그 옆의 풍경들...    삼성각 축대 옆에 동백과 철아닌 겹벚, 목단이 가득하다.

     

     

     

     

    삼성각에서 바라본 망해서 전경이다...

     

     

     

     

    삼성각

     

     

     

     

    삼성각 내부에는 산신과 칠성. 독성을 모시고 있다...

     

     

     

     

     

     

     

     

    불단 좌우 벽에는 위폐를 모셔 놓았다...

     

     

     

     

    삼성각 옆에는 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종각에서 바라본 망해사 전경

     

     

     

     

    대웅전 뒤 정원 첫단에 모신 지장보살

     

     

     

     

     

     

     

     

     

     

     

     

    이곳 망해사는 가을이 한창이다...   고요한 절집 마당엔 고운 갈색 낙엽들만 날뛰며 호들갑을 떤다...  그 속에서 우리도 깔깔거린다...

     

     

     

     

    대웅전 뒤편 화계의 두 번째 단에는 석가여래를 모셨고 그 옆으로 한때는 고왔을 온통 꽃세상 이다...

     

     

     

     

    화계 셋째단, 가장 높은자리 보물인 2기 승탑

     

    돌연 세찬 바람이 분다. 그러자 새들이 맑게 울고 갈색의 낙엽이 비와 함께 내려 뺨과 어깨를 스친다.  고개를 들어보니 돌로 쌓은 축대 위로 솟은 돌탑의 머릿돌과 꽃나무 우듬지가 짐짓 시선을 거둔다.   화계의 세 번째 단, 가장 높은 자리에는 보물이 있다.   보물 제173호인 망해사지승탑이다.

     

     

     

     

    높은 축대 위 널찍하고 양지바른 대지에 종형의 부도 하나와 2기의 승탑이 서 있다.

    두 승탑은 헌강왕의 재위 기간인 875년에서 88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승탑의 높이는 3.4m,   서쪽 승탑의 높이는 3.3m 정도다.   서쪽의 것은 거의 완전한 상태이지만 동쪽의 것은 탑신과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었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많다.

     

    왼쪽 대나무가 있는 곳이 금당지이다.   망해사의 금당터는 두 개의 부도탑 가운데의 북쪽 편에 있다.

     

     

     

     

     

     

     

     

    어느 존경을 받던 이의 부도탑일까?

    일제강점기 때 내부의 사리공이 도굴되면서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붕돌 최상부의 장식인 상륜(相輪)은 두 승탑 모두 사라졌지만 그 일부가 따로 보관되어 있고 1960년 이후 발견된 각종 기와와 그릇 조각 등도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것들 가운데 '가정(嘉靖) 23년 갑진(조선 중종 39년, 1544년)'이라 새겨진 기와가 있다.   명문기와는 망해사 창건 이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으로, 그때 중건 불사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승탑의 대지 가장자리에 한때는  화사했을 수국이 가득하다.   나무 아래에는 깨진 석재 부재들이 처연히 앉았다.   고운 단풍잎들이 그들 위로 쏟아진다.

     

     

     

     

    망해사지 승탑(보물 제173호)

     

    승탑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이 2기의 승탑은 망해사의 법당 북쪽에 동·서로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승탑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60년 11월 복원한 바 있다. 서로 규모와 양식이 같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구성하고, 그 위로 연꽃무늬를 조각한 돌을 올렸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높은 8각의 단 위에 다시 낮은 3단이 층을 이뤄 받치고 있다.  윗받침돌은 옆면에 16잎의 연꽃잎을 이중으로 조각하였는데 그 모양이 화사하다.

     

     

     

     

     

     

     

     

    탑신은 각 면마다 창의 형태를 새겼고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4면에는 문짝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처마와 추녀가 수평으로 넓으며, 각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 부분은 두 탑 모두 없어졌으나, 그 일부가 별도로 보관되고 있다.

     

     

     

     

    동쪽 탑신·옥개석 일부 파손 생채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다소 빈약하지만 각 부의 비례가 보기좋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하대석의 상단에는 팔엽의 연꽃과 고사리모양의 귀꽃이 있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면사이에 우주를 모각햐였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다. 

     

     

     

     

    승탑 옥개석에는 금속장식구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석조유물에는 이렇게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데 장식품도 장식품이지만 단단한 화강암에 저런 가는 구멍은 어떻게 뚫었는지도 의문이다.

     

     

     

     

    상대석의 연꽃문양

     

     

     

     

     옥개석에 뚫려있는 6개의 작은 구명은 풍탁 등 장식용 기물을 부착하기 위해 뚫었다.

     

     

     

     

    옥개석과 상륜부

     

     

     

     

     탑신석의 광창과 문비

     

     

     

     

    팔각으로 된 하대석의 하단에 안상무늬가 있다.

     

     

     

     

     

     

    부도(浮屠)란 고승(高僧)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妙塔)을 일컷는 말로서 즉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도는 부처를 뜻하는 부다(Budd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승탑(僧塔)을 모두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처럼 승탑(고승의 사리을 안치하는 탑)으로 한정된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망해사지 석조부도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승탑 중에서 비교적 덩치가 크고 상하 비율이 대단히 좋은 탑이나 안타깝게도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9세기(통일신라기) 망해사가 창건될 당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2기의 부도는 현재 옛 금당터로 추정되는 터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우중이라 망해사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가 저 멀리 있는데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된다.   

    높은 축대 위의 승탑 앞에서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저 먼 산 마루금 너머가 분명 바다일 것 같은데. 원래 망해사의 대웅전 터는 승탑의 위쪽에 있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소나무와 대나무로 우거진 숲속, 그곳에서는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절에서 100m쯤 올라가면 망해대 터가 있다고도 하고 그곳에 서면 울산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고도 했다.   어쩌면 나의 어두운 눈 탓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두고 바다를 보지 못하는.....

     

     

     

     

    소나무 숲 아래 동종 모양의 부도탑

     

    그 형태로 보아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석종형 부도 1기가 있는데 누구의 승탑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부도탑 양식으로  옆의 두 기보다 훨씬 더 오래된 부도탑이라 할 수 있겠다.

     

     

     

     

     

     

     

     

    부도탑 인근에 있는 석물들

     

    그 옆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보니 부도탑 석재가 아닌 전형적인 탑의 잔재물로 탑의 하대석과 탑신부 시작하는 부분의 갑석인 것으로 추증되어진다.

    만약 이 탑이 이곳에서 있었다면 망해사지는 바로 이곳 저 위 소나무 아래가 금당터가 되었을 것이다..

     

     

     

     

     남쪽 섬이나  바다 가까운 산에 난다는 팔손이가 넉넉한 손을 펴 부처님께 그늘을 공양한다.

     

     

     

     

    담소를 나누는 경내의 작은 쉼터 옆에 애기단풍이 고운 잎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올해의 마지막 가을을 남겨본다...

     

     

     

     

    다시 절로 내려와서

     

     

     

     

     

     

     

     

    절 주차장으로 향하며...

     

     

     

     

    고운 단풍과 이별하고...

     

     

     

     

     

     

     

     

    숲고운 산길을 내려가서...

     

     

     

     

     

     

     

     

     

     

     

     

    울주군청 근처 가까운 곳의  두현저수지 주변의 만만가마솥밥(울주군 청량읍 문죽리 962-2)집으로 이동하여...

     

     

     

     

     

     

     

     

    14,000원 짜리 곤드레 가마솥밥과 밀전병을 시켜서 맛나게 점심을 먹고 

     

     

     

     

     

    울주 두현저수지 주변의 맛집  만만가마솥밥에서 나와 울산 울주군 청량읍 지역의 오늘 두번째 사찰여행지 청송사지로 향해본다...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