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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 중로전 영역
    사찰여행/경상도 2021. 3. 1. 14:47

    통도사 중로전 영역

     

     

    2021.   3.   1.

     

    2021.  2.  22. 나 홀로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암자 순례로 통도사 산내암자 17암자를 두 번에 나누어 순례하기로 마음먹고 지난번  2021.  2.  8에 11암자 순례 후 이번에는 6암자를 순례 하고 늘 자주 가는 통도사 큰절을 새롭게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나누어 상세히 둘러본 부처님 법향 가득한 하루였다...

     

    통도사의 산내 암자는 현재 17개의 암자가 있는데, 통도사를 중심으로 서북 산과 남산 쪽 그리고 산문 밖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서북산 쪽 암자는 9개로 백운암. 비로암. 극락암. 반야암. 자장암. 금수암. 서축암. 안양암. 수도암이고 남산 쪽 암자는 보타암. 취운암. 서운암. 사명암. 옥련암. 백련암 등 6개 암자가 있으며 산문 밖 암자로는 관음암과 축서암 2개로 통도사 산내암자는 모두 17개 암자이다...

     

    영축산 자락 715m에 위치한 백운암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로가 잘 나 있고 암자마다 주차장이 딸려있어 차로 입구까지 쉽게 닿을 수 있다.

     

    통도사는 수시로 와보는 사찰이지만 늘 통도사에 속한 암자는 몇 군데만 다녀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17암자 중 지난번 둘러본 11암자를 제외한 6암자 중 남산 쪽 암자 가운데 백련암. 옥련암. 사명암. 서운암 등 4개 암자를 보고 내려오다가 통도사 큰절에 들러 통도사를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나누어 상세히 살펴 본 다음 통도사 산문 밖 암자 관음암과 축서암 2개를 둘러보는 걸로 하서 이번에 통도사 큰 절과 산내암자 6개를 포함하면 지난번 본 11암자와 함께 통도사 산내암자 17암자를 모두 보게 된다...

     

    약된장이 익어가는 서운암을 나오면 2월에 두 차례에 걸친 통도사 주변 암자 15개소 순례를 마치고 좌측 통도사 경내로 들어선다. 통도사 1주차장 도착이다....

    통도사 큰절에 도착하여 자주오는 통도사를 늘 대강 둘러보고 오곤 했기에 이번에는 차근 차근 통도사를 자세히 둘러 보고자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나누어 상세히 통도사를 살펴보기로 하고 ...

     

    통도사의 일주문. 천왕문. 가람각. 범종각. 만세루. 화엄전. 삼층석탑. 약사전. 극락보전. 영산전이 있는 하로전에 이어지는 통도사 중로전 영역의 불이문을 들어서 오층석탑. 관음전. 세존비각ㆍ개산조당ㆍ해장보각ㆍ용화전ㆍ장경각ㆍ전향각. 용화전. 대광명전. 황화각.영각. 감로당. 원통방, 공양간. 원주실이 있는 중로전 영역으로 향해본다..

     

    2월의 마지막 주 겨울을 맞아 멀리 떠나지 않고도 고운 빛깔의 단청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 경남 양산이다.

    점점 봄이 오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양산 통도사 암자 순례길에 만난 통도사 중로전을 소개한다.

     

     

     

     

     

     

    불이문(不二門) - 경남 유형문화재 제252호

     

    不二門 源宗第一大伽籃 (원종제일대가람)이란 편액이 붙은 중로전 영역으로 들어서는 불이문이다. 절에서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에 이어 마지막 산문이 불이문이다.

    '죽음과 삶, 있고 없음이 다르지 않듯 진리가 둘이 아니다' 라는 뜻으로 통도사 불이문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천왕문 못지않게 크고 이 불이문을 기준으로 하노전과 중노전을 나눈다.

    절이 얼마나 컸으면 3개(하노전, 중노전, 상노전)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했을까 싶다.

    통도사에는 불교에 등장하는 모든 불. 보살님이 총 망라하여 계신다. 자연스럽게 모시는 공간을 나누다 보니 서로 겹쳐지지 않도록 배려한 게 아닌가 생각든다.

     

    통도사 하로전에 이어지는 통도사 중로전 영역으로 향해본다...

     

     

     

     

     

     

    불이문(不二門)의 '불이(不二)'의 뜻은 '법계의 실상(實相)이 여여평등(如如平等)하여 피차(彼此)의 차별이 없는 것'을 ‘불이(不二)’라 하며 이 법계불이(法界不二)의 진리가 불법의 궤범(軌範)이므로 ‘불이법(不二法)’이라 하고 일체 성인이 모두 이 불이(不二)의 법에 의하여 진리에 취입(趣入)하므로 불이법문이라 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청정한 불법도량의 중심부가 되며 불이(不二)의 진리로써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난 다는 뜻에서 해탈문 이라고도 한다.

    불이는 둘이 아님, 즉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내세와 현세,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인연의 존재임을 상징한다.

     

     

     

     

     

     

    불이문은 중로전의 시작이다.

    편액 ‘불이문(不二門),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이라는 글씨는 송(宋)나라 미불(米連 : 號는 元章)의 필이다.   이것은 통도사가 한국불교의 근원으로서 불교의 근원이고 근본인 계율중심 도량이고,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최초에 설법하신 화엄 도량임을 모두 포함한 함축성 있는 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쪽엔 불교의 근본이 되는 큰 사찰이라는 뜻으로 '원종제일가람' 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원래 일주문에 붙었던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이 편액 글씨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불이문 편액 집자 글씨를 쓴 이불의 號가 원장이어서 일어난 혼동이 아닌가 전한다.   굳이 주원장 글씨를 집자할 이유가 없고 송나라 4대가에 꼽히는 이불의 글씨는  우리나라 문사들이 모범으로 삼던 것이어서 이불의 것일 가능성이 더 큰 듯하다.

     

     

     

     

     

     

    불이문 좌우 판벽에 태극무늬를 큼지막하게 그려 놓았다.  태극은 원래 성리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태극의 음양이 지닌 상반과 융합의 원리가절대 평등과 원융을 추구하는 불교 교의와 통하기 때문이라 한다.   무엇보다 불교가 토속신앙은 물론 유교 요소들까지 품을 만큼 포용력이 컸던 탓이라고 한다.

     

     

     

     

     

     

    불이문은 전면 세 칸에 모두 판문을 달아 드나들 수 있게 했다.

    불이문 안에 서서 들어온 입구를 돌아보니멀리 천왕문이 보이고 왼쪽에 극락전, 오른쪽에 범종각과 만세루가 서 있다.

     

    바깥 공포보다 안의 천장과 공포가 훨씬 더 볼만 하다.

    이 문은 1305년(충렬왕 31) 처음 지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 18세기 이후의 것으로 생각된다.

     

     

     

     

     

     

    통도사 전각 중에서 관람객이 오롯이 여유 가지며 내외벽화를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바깥에는 사계절의 풍경이, 내부 천장에는 화려한 꽃과 과일 그리고 풍경이 그려 있다.   천장에 호랑이와 코끼리가 대들보를 받치고 있음을 또한 볼 수 있다.

     

    내부는 매우 단조롭게 처리되어 종래 수법(手法)과는 달리 중앙의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써 받쳐 이고 있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 역시 코끼리와 호랑이가 건물의 하중(荷 重)이마에 서로 의지해 있는 것이 바로 불이(不二)의 도리(道理)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대들보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태를 삼각형으로 짜 그 부재 위에 장혀[長舌]를 걸 쳐 중도리(中道理), 하중도리(下重道理), 종도리(宗道理)를 얹어 서까래를 받도록 하였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통도사 불이문의 대들보에는 호랑이와 균형을 맞춰 하얀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다. 절에서 코끼리는 대개 금강문 금강역사 옆에 앉은 보현동자가가 타고 있는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데 코끼리는 보현보살 또는 보현동자의 자비와 덕을 상징한다.

     

     

     

     

     

     

    금강문 안의 문수동자는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는 푸른 사자를 타고 있다.그런데 코끼리와 마주보고서 도리를 떠받치는 짐승은사자가 아니라 호랑이다.사자 대신 우리 조상 정서와 가까운 호랑이를 조각했다고 한다.

     

     

     

     

     

     

    파련대공(波蓮臺工)이다.    두꺼운 판재에 덩굴이 물결처럼 뻗어가는 무늬와 연꽃을 새겨 그런 이름이 붙었다.   중도리를 든든하게 받치는 구실을 할 뿐 아니라 궁궐이나 대웅전, 사대부 집의 위세를 말해주는 장식품이기도 한다.   무늬와 채색이 아주 화려하다. 

     

     

     

     

     

     

    서까래를 양록 단청으로 칠하고 뒤에 댄 판재는 붉은 색으로 칠한 천장도 눈에 확 띈다. 

     

     

     

     

     

     

    합각 안쪽 벽과 창방을 빙 둘러 사군자를 비롯한 산수화도 그려 놓았다.  지금 불이문이 언제 지은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조선 중기 이후 건물일 것으로 짐작한다는데, 내부가 이렇게나 화사한 산문은 처음 본다.

     

     

     

     

     

     

    전면 세 칸에 모두 판문을 달아 드나들 수 있게 한 반면 뒷면엔 벽체도 문도 없이 툭 트여 있다.

    하로전 구역을 지나 불이문을 들어서면  중로전 영역의 마당으로 들어선다.  

     불이문을 들어서면 석탑을 지나 멀리 대웅전 건물과 중로전 구역의 일부인 관음전이 눈에 들어온다. 불이문에서 보면 관음전은 중로전 구역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다. 관음전 뒤로는 세존비각ㆍ개산조당ㆍ해장보각ㆍ용화전ㆍ장경각ㆍ전향각이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는데, 맨 뒤의 대광명전만 서쪽으로 약간 틀어 앉았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용화전 앞에는 장차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게 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세운 봉발탑이 특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또한 스님들이 경을 공부하는 강원건물인 황화각과 3동의 요사가 있고, 황화각 뒤로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이 있다. 그리고 관음전 앞에는 경을 공부하는 감로당과 원통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 두 건물 지하에 대중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양간이 있다. 이외에도 작은 객실과 원주실, 후원 등이 있다.

     

     

    석등과 석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관음전, 왼쪽에 원통방이 있다. 중로전과 상로전 사이엔 문이 없어  석탑 뒤로 통도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이자 주불전 적멸보궁이 보인다.

     

     

     

     

     

     

    불이문에서 바라본 중로전...  불이문 아래가 하로전이고 불이문 위가 중로전이다.

     

     

     

     

     

     

    중로전 구역

     

     

     

     

     

     

    오층석탑 뒤단  부터는 상로전 영역이다...

    통도사 가람 배치는 적멸보궁을 정점으로 각기 독립적인 세 영역으로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나뉘는데 노전(爐殿)이란 법당들을 관리하고 의식(儀式)을 맡는 스님이나 그 스님이 머무는 숙소를 가리키는데 통도사는 세 영역을 각기 관리하는 노전승이 있었다는 얘기다.

     

     

     

     

     

     

    중로전 마당에서 멀리 상로전의 대웅전을 바라본 모습이다.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 뒤 대웅전 계단 아래 까지가 중로전 영역이다.

     

     

     

     

     

     

    불이문 들어서자마자 마당 오른쪽에 황화각이 있다. 

    황화각은 현재 통도사의 학승들을 가르치는 강원(승가대학) 겸 기숙사 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한다.   '황화'란 원나라와 고려 조정의 최고 통치자가  통도사 금강계단에 있는 부처님 사리탑에 참배를 보낸 원나라의 고려조정의 사신을 가리킨다.

    1317년 고려 충숙왕 4년 때 처음 지었는데 원래는 강원이 아니라 사신(황화)가 묵던 일종의 영빈관이었다. 지금 건물은 1647년 조선 인조27년 때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06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화각(皇華閣)  주련 :  구하스님이 쓰셨다.

     

    敎融海嶽恩廓乾坤(교융해악은확건곤)   가르침은 산과 바다를 꾸리고 은혜는 하늘과 땅에 퍼지네.

    大護法不見僧過   (대호법불견승과)      크게법을 보호하는 사람은 승려의 허물을 보지않고

    善知識能調物情   (선지식능조물정)      선지식은 능히 세상 물정을 살필 줄 아네.

    百戰英雄知佛法   (백전영웅지불법)      백전영웅은 불법을 알고

    再來菩薩說家常   (재래보살설가상)      거듭 화현해서 보살은 일상 속에서 도리를 설해주네.

    永使蒼生離苦海   (영사창생이고해)      영원히 중생들로 하여금 고해를 여의게 하고

    恒敎赤子有慈航   (항교역자유자항)      항상 어린아이 같이 보살펴 자비의 배를 타게 하네.

     

     

     

     

     

     

    황화각 아래 편액 '교융해악 은확건곤(敎融海嶽恩廓乾坤)'은 '가르침은 산과 바다처럼 크고 은혜는 하늘과 땅처럼 넓다'는 뜻으로, 당나라 문종이 중국 화엄4조 징관대사의 진영에 붙인 글이다.   강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말로 인용한 듯하다.  두 편액 글씨는 구하스님이 쓰셨다.

     

     

     

     

     

     

     

     

     

     

     

    황화각(皇華閣)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ㄴ자 평면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큰방이다.  이곳은 강원과 학승(學僧)들이 거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앞에 나무 울타리를 둘러치고 쪽문을 달아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건물은 일반 신도와 격리되도록 북쪽과 서쪽에서 출입하게 되어 있어 경학을 공부하는 공간답게 처리하였다.

     

     

     

     

     

     

    영산전 뒤 고승의 초상을 모신 영각(影閣) 앞 오른편 처마 아래로 꽃이 핀 지장매를 만나러 간다....

    영각(影閣)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 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전(影子殿) 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각 주련

     

    偶尋樵者問山名 (우심초자문산명)   우연히 나무하는 아이를 만나 산 이름을 물으니

    上方月曉聞僧語 (상방월효문승어)   한밤중에 봉우리에 경쇠 소리가 있네.

    野鶴巢邊松最老 (야학소변송최노)   하늘에는 달이 밝고 스님들 말씀이 들리고

    願得遠公知姓字 (원득원공지성자)   아래로는 수풀이 성글고 지나가는 객이 보인다.

    半夜中峯有磬聲 (반야중봉유경성)   들의 학은 가장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下界林疎見客行 (하계임소견객행)   독룡이 숨은 곳에 물이 맑음에 치우치고

    毒龍潛處水便靑 (독룡잠처수편청)   원컨데 원공의 성자를 알고자해서

    焚香洗鉢過餘生 (분향세발과여생)   향 사르고 발우 씻고 남은 생을 보내리.

     

     

     

     

     

     

    영정을 모신다고 해서 영각인데 다른 절의 조사전에 해당하는 전각으로 예순 명 넘는 고승들의 진영과 옛 문신들의 초상도 걸려 있어 우리나라 절중에 가장 많은 영정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편액 글씨는 만세루 주련에서 봤던 축산(鷲山) 구하스님의 글이다.

     

     

     

     

     

     

    공포는 제공이 둘 내민 이출목 위에 봉황 보머리를 얹은 이출목 익공으로 단순한 편이다.

     

     

     

     

     

    그리 오래된 건물은 아닌 듯한데 단청 빛이 화려하다.

     

     

     

     

     

     

     특히 진초록 단청 빛깔이 인상적이다.

     

     

     

     

     

     

     단청 물감 중에 가장 많이 쓰는 양록이 흰색 섞여 하늘빛을 띠는 데 비해 영각 단청은 초록에 가깝다. 

     

     

     

     

     

     

    통도사의 오래된 법당들이 대개 단청이 다 바래 고풍스러운데 영각은 가뜩이나 튀는 단청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통도사 홍매화의 원조격인 자장매, 다른 매화는 보름 만에 피고 지지만 통도사 자장매화는 한 달간 꽃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경내 영각 앞 자리잡은 수령 370년 된 노거수 이 매화는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호를 따 일명 자장매(慈藏梅)로 불리는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금강계단 불보사찰 영축총림 통도사는 법보 해인사, 승보 송광사와 함께 한국의 삼보사찰로 꼽히는 천년고찰로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자장매는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매화나무로 율사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는 유래가 있으나, 자장매화 안내문에는 아래와 같은 얘기가 쓰여 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우운대사(友雲大師)는 먼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인조23년(1643년)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影閣)을 건립했다.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서 해마다 섣달 납월에 연분홍 꽃이 피어 사람들은 이를 자장스님의 이심전심이라 믿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 그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스님의 지계 정신을 표현한다 해서 이를 자장매화(慈藏梅花)라 하였다.”

     

     

     

     

     

     

     

     

     

     

     

     

    통도사 홍매화가 유명한 건 370년 된 나무의 수령 때문인데 우리나라홍매화 중에서는 최고로 연로하신 나무이다.

     

     

     

     

     

     

     

     

     

     

     

    한겨울에 꽃망을 터트린 통도사의 지장매

     

     

     

     

     

     

     

     

     

     

     

     

     

     

     

     

     

     

     

     

     

     

     

     

     

     

     

     

     

     

     

     

     

     

     

     

     

     

     

     

     

     

     

     

     

     

     

     

     

     

     

     

     

     

     

     

     

     

     

     

     

     

     

     

     

     

     

     

     

     

     

     

     

     

     

     

     

     

     

     

     

     

     

     

     

     

     

     

     

     

     

     

     

     

     

     

     

    패엽실 

     

     

    강주스님이 기거를 하던 곳으로 대선사 경봉스님의 어록을 적어본다.

    學語者가 되지말라 즉 말 배우는 사람이 되지말라... 경전 너무 많이 읽지말라.

     

    禪要 구절 중에 궁금한 부분을 물으니까 나한테 묻는 그놈이 뭐냐?  생각으로  따지면 십만팔천 리다 하셨다.  知見이 열려서 게송 몇 개 지어서 와서 보이니 아니다라 말하셨다.  그 당시는 섭섭하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내가 틀렸다 라는 것을 알았다.  패업실에 계실 때 책 많이 보지말라.  책을 자꾸 많이 보면 마지막에는 생활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사람이 동으로 갈려고 길을 나서서 한참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나중에 서로 가고 있더라.  어리석은 사람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서 보니 그 자리가 깨달음 자리더라 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라고 하셨다.

     

     

     

     

     

     

     

     

     

     

     

     

     영각 앞엔 백동백도 피었다.

     

     

     

     

     

     

    관음전이 있는 앞마당, 이곳이 통도사의 중심이다.   중로전에는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이 있다.  남북으로 조선, 고려, 신라시대 건축 순으로 서 있다.

     

     

     

     

     

     

    관음전(觀音殿) 경남 유형문화재 제251호

     

    중로전의  전각 중에 맨앞 남쪽에 있는 관음전이다. 동서로 길게 전각들이 늘어선 통도사에서 가장 중앙에 자리한 전각이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팔작지붕집이고  1725년 영조 원년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초창되었고 통도사 법당 중엔 늦게 생긴 편에 속한다. 지금 건물은 1780년 정조 때 새로 지었다고 하고 그 이후의 중수 사실은 알지 못하며 근래에 기와를 개수(改修)한 법당이다. 건물 형태는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법당 앞에는 높이 약 3m에 달하는 석등이 서 있으며 조성 시기와 조각양식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과 비슷한 점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빛바랜 단청이 처음엔 꽤 화려했을 듯하다.

     

     

     

     

     

     

     

     

     

     

     

    문짝 아랫부분 궁창에 태극 문양을 그린 것이 독특하다. 천-지-인 삼재가 맞물려 돌아가는 삼태극이다.

     

     

     

     

     

     

    이 문짝은 궁창에 널빤지를 둘댔는데 위쪽 좁은 궁창에 태극무늬를 그려 넣었다.  태극은 불교에서 평등과 융합을 상징한다.

     

     

     

     

     

     

    관음전 관세음보살과 후불탱 관세음보살도(觀世音菩薩圖)

     

    관음전(觀音殿) 내부 불단 옆 좌우 벽면에는 보타락가산에 계신 관세음보살에게 남순동자가 법을 묻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32응신을 상징하는 여려 모습의 관세음보살을 표현하였다.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할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하고 곧 해탈하게 하느니라.”라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에서 보이듯이 관세음보살은 시방 국토에 32응신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해 주는 대자대비하시고 원력이 바다와 같이 깊으신 보살이다.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신봉하고 있으며 다른 법당에 비교해서 발 디딜 틈 없이 불자들이 많이 찾는 전각이다.

     

     

     

     

     

     

    감실 사방 벽엔 한 면에 아미타여래 3구씩, 모두 12분을 그려 모셨다.   중생의 신앙심이나 성품의 깊이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구제한다는 의미의 구품인 손갖춤을 하고 계신다.

     

     

     

     

     

     

    주련 : 관음전(觀音殿)

     

    一葉紅蓮在海東 (일엽홍련재해동)   한떨기 홍련이 해동에 있으니

                              碧波深處現神通 (벽파심처현신통)   푸른 파도 속에 신통을 나투네.

                              昨夜寶陀觀自在 (작야보타관자재)   엊저녁 보타산의 관자재보살이

                              今朝降赴道場中 (금조강부도량중)    오늘아침 도량 중에 강림셨네

     

     

     

     

     

     

    관음전 앞의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

     

    관음전 정면에 있는 사각의 석등도 고풍스럽다.

    관음전 전방에는 석등(石燈) 높이는 약 300㎝로서 그 조성수법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石造奉鉢)과 비슷하여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부의 옥개(屋蓋)와 보주(寶珠)는 착실하게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며,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 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게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식뿐만 아니라 화문(花紋)의 조식(彫飾)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다.

     

     

     

     

     

     

     

     

     

     

     

    탑 뒤로 상로전의 중심영역이자 통도사를 대표하는 목조건물인 대웅전이 보인다. 탑 뒤 단 부터 상로전 영역이다...오층석탑을 만나러 간다...

     

     

     

     

     

     

    오층석탑(五層石塔)

     

    중로전 세존비각 앞에 선 석탑부터 본다.

    수백년 전부터 노출된 기단부와 부서진 석탑부재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복원되지 못하다가 월하종정스님의 교시에 따라 1991년에 지금과 같이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원형복원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결실된 4, 5층 옥개석 및 탑신석을 새로 만들었고, 특히 1층 탑신석은 발굴된 부재를 옛 그대로 써서 감실을 지닌 석탑으로 복원 하였다. 또한 본래의 사리공 안에는 경주 황룡사 목탑 심초석 사리공에서 출현한 불사리 2과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부터 이운하여 봉안하였다.

     

     

     

     

     

     

    이 사리는 자장율사께서 당나라로 부터 모셔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로 통도사 금강계단 불사리와 동시에 모셔온 것으로 1920년에 세운 탑이다.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이룬 일반형 석탑으로 기단면적은 탱주의 표현 없이 우주만을 모각하여 갑석과 동조하였다. 1층 탑신괴임은 원래의 부재를 사용 하였고, 1층 탑신 남면에 인왕상 2구, 2층 탑신 남면에는 안상을 조각하였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2개의 부재를 사용하였으며, 옥개받침은 모두 4단이다.이곳의 석탑은 그 유래가 자세하지 않으나 노출된 기단부의 사리공과 옥개석 등으로 보아 나말여초의 귀중한 석탑으로 추정된다.

     

     

     

     

     

     

    탑 옆으로 통도사 대웅전 일대  솟을 삼문 형식의 개산조당과 세존비각 및 개산조당이 보인다.

     

     

     

     

     

     

    석탑 뒤 오른쪽은 솟을 삼문이,  왼쪽 뒤로 비각이 서 있다.   왼쪽에 있는 작은 누각은 세존비각이고 오른쪽은 개산조당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아담한 전각이다.

     

     

     

     

     

     

    세존비각(世尊碑閣) -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

     

    적멸보궁 금강계단의 역사가 기록된 세존비각안에 모셔진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는 통도사 대웅전과 금강계단 앞 세존비각에 봉안돼 있으며, 1706년 계파대사가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금강계단에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기록한 비석이다.

    비석에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온 모신 날부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사리를 노리는 왜구로부터 지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겼던 일과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훔쳐간 사리를 사명대사와 서산대사가 되찾아 다시 금강계단에 봉안했다는 내용 까지 부처 진신사리의 내력을 비석에 새겨 모신 비각으로 1706년 숙종 때 계파대사가 금강계단을 다시 지은 뒤 비와 비각을 세웠다. 

     

     

     

     

     

     

    비각 편액 아래 화반이 화려하다.  창방과 뜬 장혀 사이를 받치는 화반엔 대개 연꽃과 덩굴 무늬를 새기는데 꽃바구니처럼 화려해서 花盤 또는 華盤이라고 쓴다.

     

     

     

     

     

     

     비각 안의 비석엔 '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라고 제목이 새겨져 있다.

     

     

     

     

     

     

    조선(1706년)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 ,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이곳에서는 석가모니의 행적(行蹟)과 함께 각지(各地)의 시주(施主)내용을 적고 있어 참고된다. 석비의 건립은 숙종(肅宗) 32년(1706)이며 높이는 2.5m, 폭 1m이다.

    밀양 홍제사에 있는 사명대사비, 표충비처럼 국난이 있을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개산조당과 그 앞 37조도품탑

     

     

     

     

     

     

    이 석물은 궁궐이나 서원, 향교 마당에 관솔불 밝히는 정료대처럼 생겼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37가지 방법을 새긴 37 조도품 (助道品)탑이다.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를 모두 합쳐 37가지가 되고 37 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부른다.

    중간돌 8면을 빙 둘러 8정도를 새겼는데 바른 행위 '정업', 바른 생활 '정명', 바른 노력 '정진'이 보인다.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합니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념처(四念處)

    사념처는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한다. 염(念)이라는 말은 대부분 망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청정한 마음에 의거해서 나타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정념(正念)을 의미한다. 사념처는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덕목이다.

    사념처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는 <우루벨라>촌 <나이란자라>강 곁에 있는 보리수 밑에 계셨는데, 부처되신지 오래지 않으셨다. 그 때 세존은 홀로 고요히 선정 속에 들어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셨다.일승(一乘)의 도가 있어서 능히 뭇 삶들을 깨끗이 하고 온갖 근심과 슬픔을 제도하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 진여(眞如)의 법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네 가지 곳을 생각함[四念處]이다. 네 가지 살필 곳이란 무엇일까. 몸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요, 느낌[受] ? 마음[心] ? 법[法] 등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태어남 ? 늙음 ? 병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 닦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으면 감로법을 즐겨 하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면 태어남 ? 늙음 ? 병 ?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사념처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념처(身念處)

    수행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하라는 뜻이다. 내 몸이 탐욕을 일으키는 근원처가 되기 때문에 몸을 잘 관찰하여 탐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탐욕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보는 것은 부정관(不淨觀)에 의한 수행법이다.

    ② 수념처(受念處)

    마음의 감수성에 해당하는 수심소(受心所)는 우리가 하나하나의 대상을 받아들일 때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苦受), 즐겁게(樂受 )또는 기쁘게(喜受), 근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憂受). 또 하나는 고락이나 희수가 아닌 평등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사수(捨受)가 있다. 우리의 우매한 마음은 진리를 망각하고 모든 것을 다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작용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관하여 괴로움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이다.

    ③ 심념처(心念處)

    내 마음이 물질을 집착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의 원인은 내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집착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되면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④ 법념처(法念處)

    대상과 자아의 실체가 없고 내 소유도 없다고 관하는 관법무아[觀法無我] 존재 자체를 실체화시키는 생각을 끊게 하는 것. 법(法)은 자주(自主)하거나 자재(自在)한 성품이 없으므로 무아라고 관하는 것. 제법의 실상이 공함을 자각할 때 제법실상의 체성을 보게 된다.

     

    사정단(四正斷)

    4정근이라고도 하며 모든 악을 끊고 선(善)을 키우기 위해서 정진하는 것입니다.

    사정단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수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가지 바른 끊음이 있으니 첫째는 끊을 것을 끊음[斷斷]이요, 둘째는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律儀斷]이요, 셋째는 생각을 지키어 끊음[隨護斷]이요, 넷째는 닦아 끊음[修斷]이다.끊을 것을 끊음이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이미 일어난 악한 법을 끊으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일어나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 닦아 익히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면 이것을 끊을 것을 끊음이라 한다.무엇이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눈을 잘 단속하여 은밀히 조복하고 나아가고,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을 은밀히 조복하여 나아가면 이것을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생각을 지키어 끊음인가. 수행자가 여러 진실한 삼매를 잘 지키는 것이니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파랗게 썩는다는 생각, 문드러진다는 생각 등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익히 물러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하면 이것을 생각을 지키어 끊음이라 한다.무엇이 닦아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네 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을 닦으면 이것을 닦아 끊음이라 한다.

    사정단 각 지분의 개념

    ①단 단(斷 斷)

    일어나는 악법을 끊고 또 끊는 것. 끊을 것을 끊음. 이미 생긴 악을 끊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②율의단(律儀斷)

    계율을 견지하고 위의를 신수(愼守)하여 악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을 끊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③수호단(隨護斷)

    무루(無漏)의 정도(正道)를 따라 수호하여 악법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생각을 지키어 끊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정도(正道)를 보호하여 악법(惡法)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선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④수 단(修 斷)

    능히 닦음으로 정도를 지으며 그것을 생장하도록 하여 모든 악을 단제(斷除)함 . 닦아 끊음. 사념처관을 하여 닦아 끊음. 이미 생긴 선을 잘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四如意足)

    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뜻과 같이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붇다는 <코삼비>국 <고시카라마> 동산에 계시었고 존자 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다에게 나아가 인사한 뒤 한쪽에 앉아 아난다에게 물었다.존자여 무엇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범행(梵行)을 닦습니까?탐욕과 애착을 끊기 위해서입니다.존자 아난다님, 무엇을 의지해서 탐욕과 애착을 끊을 수 있습니까?바라문이여, 하고자 함[欲]을 의지해 탐욕과 애착을 끊습니다.존자 아난다님, 그렇다면 그 하고자 함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바라문이여,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존자 아난다님, 어떻게 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비유로써 내가 물어볼 테니 마음 먹은 대로 대답해 보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떤 하고자 함이 있어서 이 정사(精舍)에 온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난다님.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미 정사에 왔으니 그 하고자 함은 쉬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다님.정사에 오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결국 이 정사에 이르렀으니까 그 계획 등을 쉰 것입니다. 존자 아난다는 그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바라문이여, 여래 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것도 이와 같으니 여래는 네 가지 여의족[四如意足]을 말씀하시어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이 하고 괴로움을 없애주며 근심과 슬픔을 끊어줍니다. 그 넷이란 하고자 함[欲]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과, 힘써 나아감[精進],마음[心]의 휴식, 사유[思惟]의 휴식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하고자 함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벗어남과 없어짐으로 그 하고자 함도 또한 쉽니다. 또한 힘써 나아감, 마음의 휴식, 사유의 휴식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평등[捨]을 향하고 마침내는 힘써 나아간다는 생각과 선정을 닦는다는 그 사유까지 쉽니다.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곧 끝이 아닙니까?바라문은 말하였다.존자 아난다님,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사여의족 각 지분의 개념

    ①욕여의족(欲如意足)

    수승한 선정을 얻으려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 도심(求道心)이 강렬하여 하고자 하는 대로 수행이 잘 되는 것입니다.

    ②염여의족(念如意足)

    정념(正念)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③진여의족(進如意足)

    쉬지 않고 한결같이 나아가는 것 , 정진여의족 정진신족(精進神足)이란 정진이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④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

    사유하여 저 이치의 마음에 해태하여 흩어지지 아니하는 것. 선정(禪定)이 한결같이 잘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근(五根)

    불법 가운데 도의 뿌리를 깊이 내려 세속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을 말합니다.

    오근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우리를 동요 없는 자기 확신의 땅에 이르게 하는 다섯가지 근본[五根]이 있다.그것은 곧 믿음[信根], 정진[精進根], 살펴 생각함[念根], 선정[定根], 지혜[慧根]다. 어떤 것이 믿음인가. 성인의 예지는 여래에 대해 믿는 마음을 일으키되, 그 근본이 견고하여 모든 하늘, 악마, 바라문과 세간법으로는 무너뜨릴 수없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 한다. 이른바 네 가지 곳 생각함이다. 어떤 것이 선정인가. 네 가지 선정의 실천이다. 어떤 것이 지혜인가. 이른바 네가지 거룩한 진리이다.이 여러가지 공덕은 다 지혜를 그 으뜸으로 하나니 마치 집을 마룻대를 으뜸으로 하는것과 같다.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근 각 지분의 개념

    ① 신근(信根)

    불법승 삼보와 고집멸도 사성제의 이치를 관하는 것. 삼보와 사제를 믿는 것. 삼보와 사제법의 진리야 말로 나를 완벽한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확고한 믿음, 신념이 도법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② 진근(進根)

    용맹하게 선법(善法)을 닦는 것, 정진근. 의심이나 갈등없이 번뇌와 망상없이 노력하게 하는 마음 정진근(精進根)이란 정진함에 있어서 물러섬이 없는 것입니다.

    ③ 염근(念根)

    대경(對境)을 마음에 머물러 두고 있지 않는 작용. 정법을 억념(憶念)하는 것. 경계의 끄달림을 끊고 오로지 념념상속(念念相續) 하는 것. 불법을 항상 생각하는 데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④ 정근(定根)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지(住止)시켜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 선근공덕 발생의 근원밖으로 경계에 매이지 않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 선정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⑤ 혜근(慧根)

    진리를 생각하는 것.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승한 능력. 제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불법의 진리를 여실히 아는 바른 지혜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오력(五力)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서 뛰어난 작용을 하는 다섯 가지 힘을 말합니다.

    오력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진리 안에 굳건히 세워두는 다섯가지 힘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지헤의 힘이다. 믿음의 힘이란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四不壞淨]이요, 정진의 힘이란 네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이요, 선정의 힘이란 네가지 선정[四禪]이며, 지혜의 힘이란 네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임을 알아야 한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력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력(信力)

    신근을 증장시켜 사신(邪信)을 파하는 것. 불법을 믿고 다른 것을 믿지 않는 것

    ②진력(進力)

    진근을 증장시켜 해태(懈怠)를 파하는 것. 선법을 짓고 악을 폐하기에 부지런한 것

    ③ 염근(念根)

    염근을 증장시켜 사념(邪念)을 파하는 것. 사상을 바로 갖고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것

    ④ 정근(定根)

    정근을 증장시켜 난상(亂想)을 파하는 것. 선정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는 것

    ⑤ 혜근(慧根)

    혜근을 증장시켜 제혹(諸惑)을 파하는 것. 지혜를 닦아 사성제를 깨닫는 것

     

    칠각분(七覺分)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며,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의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범어로는 bdjjhanga (보장가)로 불려지며, 7각분, 7보리분법 으로 한역되기도 한다. 7각지는 지혜의 요소라고도 표현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유용한 7가지 상황으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존재를 관찰함에 있어서의 주의, 방법을 7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칠각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일곱가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七覺支]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곧 바른 생각[念覺分]과 나아가서는 버림[捨覺分]이다. 만일 수행자가 바른 생각[念]을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햐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감이 존재를 바르게 가림[擇法], 힘써 나아감[精進], 기뻐함[喜], 쉼[倚], 선정[定]을 닦으면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칠각분 각 지분의 개념

    ① 택법각분(擇法覺分)

    택법이란 간택, 분별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수행자가 가르침 가운데에서 진실된 것을 선택하고 거짓된 것을 버리는 것으로 선택하는 항상 반야도리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공부를 해나갈 때에도 부질없이 상대유한적인 문제로 의심하면 참다운 반야지혜가 되지 못한다. 또한 어떤 법이 자기한테 맞는가 간택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질, 원래품성을 잘 헤아려서 택법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② 정진각분(精進覺分)

    진근을 증장시켜 해태(懈怠)택법을 잘한 뒤에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정진력이 있어야한다. 굳은 신념과 무서운 의지력을 가지고 부지런히 애쓰는 것이 또한 깨달음의 조건이다.를 파하는 것. 선법을 짓고 악을 폐하기에 부지런한 것

    ③ 희각분(喜覺分)

    염근을 증장시켜 진실의 가르침을 실행하여 얻어지는 기쁨이다.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면 기쁨이 있다. 기쁨을 느끼면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이 때에는 얻는 법에 확신이 생기고, 자기가 걸어가는 길에 자신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기쁨은 상대적이고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고 삼매에서 얻어진 기쁨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쁨이다.사념(邪念)을 파하는 것. 사상을 바로 갖고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것

    ④ 제각분(除覺分)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제거하므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긴장, 불안, 초조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욱더 맑아지고 적적해진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면 이에 마음을 두어 관찰하면서 그것을 계속 지속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또한 마음과 몸이 평안하게 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삼매의 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⑤ 사각분(捨覺分)

    우리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즐거움을 주는 대상도 마음을 움직여 공부에 장애가 되므로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이 좀 안되면 그것 생각하느라고 공부가 안되고 또 잘되면 잘되었다고 생각하느라 공부 못하니 어떠한 일도 법성자리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므로 공부할 때는 다 내려놓아야 한다.

    ⑥ 정각분(定覺分)

    모든 일에 마음이 집중되어 그것과 하나가 되면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어져서 외부의 자극도 받지 않고, 안으로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되니, 이때 고요하고 순일한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이와 같은 삼매 의 깊은 체험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깨달음이 솟아나는 샘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인은 반드시 이러한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번뇌와 망상이 끊어지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지혜와 자비로움 그 자체로 나타나고, 과거의 망상이 깨달음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깨달음을 다시 관찰하는 힘을 얻어야한다. 이 단계가 수행의 마지막이 아니라 참수행의 시작이다.

    ⑦ 염각분(念覺分)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 일어난 마음이 한결같은 삼학의 길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관찰하여 한결같이 머물러야한다. 그러면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더욱 증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八正道)

    멸성제(滅聖諦)를 성취하는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정사(正思) 즉 바른 사유, 정정진(正精進) 즉 바른 노력, 정념(正念) 즉 바른 명심, 정어(正語) 즉 바른 말, 정업(正業) 즉 바른 행위, 정명(正命) 즉 바른 생활, 정정(正定) 즉 바른 명상 등 여덟 가지는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최선의 길입니다.

    팔정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삿됨과 바름이 있느니 자세히 잘듣고 잘 생각하여야 한다.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삿됨인가. 삿된 견해와 나아가서는 삿된 선정이다. 어떤 것이 바름인가. 바른 견해와 나아가서는 바른 선정이다.그 가운데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자기 자립성을 가지고 있되[不斷] 관계를 통해 변해가는[不常] 현실에 대한 바른 견해란 타인에 대한 보시가 있고 여래의 교설과 제(諦)가 있고 선한 행위 악한 행위와 그 행위의 과보가 있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고 부모가 있고 중생의 태어남[生]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유위인과에 대한 정견). 그리고 (현실법은 연기된 것이므로 자성이 없는 것이니) 현실의 질곡속에 묶임이 없이 아라한이 열반으로 잘 향하고 잘 이르러,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존재의 실상을 스스로 알고 깨치는 것이다.그는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깨침으로써 나의 태어남[生]은 이미 다하고[我生已盡] 깨끗한 행은 이미 정립되고[梵行已立] 해야 할 일을 빠뜨림 없이 모두 마쳐[所作已作]이 다음의 집착된 생존을 다시는 받지 않음[不受後有]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어떤 것이 바른 사유인가. 탐욕을 벗어난 뜻, 성냄이 없는 뜻, 남을 해치지 않는 뜻이다. 어떤 것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두 말,나쁜 말,번지르르하게 꾸미는 말을 떠남이다.어떤 것이 바른 행위인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떠남이다.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의복, 음식, 잠자리, 의약품을 구해 쓰고, 법답지 않게 구하지 않음이다.어떤 것이 바른 방편인가. 해내고자 하는 열망[欲]과 정진(精進)의 방편이니 번뇌를 떠나며,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섬이 없이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어떤 것이 바른 생각인가.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따르는 생각이나 헛되고 망녕되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어떤 것이 바른 선정인가. 마음을 어지럽지 않은데 머물러 두고 굳게 거두어 가져, 고요히 삼매(三昧)에 든 한 마음[一心]이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팔정도 각 지분의 개념

    ① 정견(正見)

    정견은 ‘바로 봄’을 뜻한다. 곧 올바른 견해이다. 이 정견은 유무(有無)의 편견을 벗어난 정중(正中)의 견해이다. 곧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는 견해이고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다. 즉 사제(四諦), 십이연기, 삼법인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리의 통찰과 함께 참된 깨달음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바른 사고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正思惟)

    정사유는 올바른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 먹는다’는 뜻으로 ‘생각 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바르게 잘 분간하는 것이다.

    ③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행동이고 바른 생각과 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이다.

    ④ 정어(正語)

    올바른 말, 곧 온갖 망령된 허망한 말[妄語], 삿된 말[邪語] 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이다. 올바른 생각에 의해 하는 말이고 항상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하여 구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한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이다.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이다.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노력으로 인하여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 아니한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다.

    ⑦ 정념(正念)

    올바른 정신과 생각, 사념(邪念)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바른 생각을 말한다. 또한 ‘바르게 기억 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정견(正見)이 가득 차고 항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⑧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라는 음역어(音譯語)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 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나는 경지를 뜻한다.

     

     

     

     

     

     

    왼쪽 3m 석등은 여느 신라 석등과 달리 모양이 독특하다. 옛 건축이나 목공에서 두 석재-목재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붙이는 부재가 나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비장이라고 하는데 이 석등은 아래 기둥돌이 나비장 모양으로 돼 있다. 기다란 기둥돌에 비해 두툼하고 퍼져 있어 안정감을 더해준다. 네 기둥으로 된 개방형 불 밝이창(화사석)도 고려시대에 새로 등장한 양식이고 그 양식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개산조당(開山祖堂)

     

    개산조당은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하고 해장보각에 딸린 출입문으로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전각 정면에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 문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양반집이나 서원의 솟을삼문을 빼닮은 문은  ‘솟을삼문’형식이며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중앙 칸이 양 측면 칸보다 높게 솟아 ‘솟을삼문’이라고도 한다. 3칸 모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祠堂)의 솟을삼문과 같다.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 진영을 봉안한 해장각으로 들어서는 '개산조당'으로 문만 남아 있지만 예전엔 담을 둘러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문이 셋 달렸고 가운데 문이 솟아 오르듯 높아 솟을 삼문이라고 하는데 두석물이 개산조당 삼문을 양쪽에서 지킨다.

     

     

     

     

     

     

    솟을 삼문에 붙은 '개산조당' 편액은 통도사 세운(개산) 조사를 모신 곳이라는 뜻이고 편액 글씨를 일제강점기 통도사 주지를 지낸 축산 구하스님이 쓰셨다.  편액 걸린 뜬장혀를 화반이 받치고 있다.

     

     

     

     

     

     

     편액이 붙은 앞쪽 공포엔 연꽃 덩굴문 이익공에 봉황 보 머리를 얹었다.

     

     

     

     

     

     

    안쪽 문짝 위 공포는 익공이 하나만 내밀고 있다.

     

     

     

     

     

     

    빛바랜 단청 중에 노란빛과 붉은 빛만 많이 남아 분위기가 독특하다.

     

     

     

     

     

     

    문 전면과 문짝 사이를 잇는 들보 단청도 많이 바래 오히려 회화적이다.

     

     

     

     

     

     

    갓 칠한 단청이 따를 수 없는 세월의 기품과 편안함이 있다.

     

     

     

     

     

     

     문 위엔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로 홍살을 올리고 중간에 삼태극을 두었다...

     

     

     

     

     

    해장보각(海藏寶閣)

     

    개산조당 삼문 바로 뒤에 있는 해장보각은 통도사를 세운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727년 영조 3년때 처음 지었고 1900년 고종4년 때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맞배지붕집이다.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해장보각은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內陣 : 안두리)기둥이 배치 되어 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 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 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관(貞觀) 17년(643)에는 자장율사가 삼장(三藏 : 經藏, 律藏, 論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하였다.” 삼국 유사 전후소장사리조)고 한 내용은 이미 삼국시대에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奉安) 사찰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대장경이 다른 사람 아닌 창건주 (創建主) 자장율사에 의하여 봉안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그 전각에 들어오는 문을 개산조당이라 하였고, 전각 자체를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이라 한다.

     

     

     

     

     

     

    해장은 '바다에 뒀다'는 뜻인데 불경을 용궁보각에 뒀다는 얘기와 대장경의 진리가 바다 속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익공 사이 공포 벽마다 부처가 여러 모습으로 화현한 화불(化佛)을 그려 놓았다. 이렇게 벽체나 공포 벽에 그린 장식화를 별지(別枝)화라고 한다. 이런 불화뿐 아니라 용. 학. 코끼리. 사자 같은 짐승, 연꽃을 비롯한 꽃, 사군자와 산수화까지 다양하다.

     

     

     

     

     

     

    편액은 병조판서 영의정을 지냈고 서화에 능했던 이재(彛齋) 권돈인 (1783~1859)이 썼다.   왼쪽에 '신해년 국화 핀 가을에 이수(彛叟)'라는 서명이 붙어 있다.   이수는 별호이고 69세 1851년에 쓴 것이다.  추사는 그의 예서를 '동국에서는 전혀 없었던 신합(神合)의 경지'라고 높이 샀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대장경 400여 상자를 싣고와 통도사에 봉안했다는 삼국유사 기록대로 전각 안 진영 주변에 고래대장경 1234권을 모셔뒀다고 한다. 해장보각 속에 모셔져 있는 자장율사 진영이다.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개창한 개산조이다.

     

     

     

     

     

     

    안에 모신 자장율사 영정은 길이 170cm 폭 100cm로 1804년 순조 때 화승 성인과 계한이 그린 경남문화재이다.  등받이 의자 위에 가부좌로 올라 앉아 왼손에 먼지털이처럼 생긴 불자(拂子)를 잡고 오른손으로 불자의 술을 만지고 있다.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털어낸다는 상징적 불구(佛具)의 하나이다.  자애로우면서도 위엄 어린 고승을 잘 표현했고  전체적으로 녹색과 적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해장보각의 벽화가 민화풍이라서 익살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향 해장보각의 우측 서쪽 측면 외부의 까치호랑이 민화그림과  맞은 편 해장보각에  당초 문양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해장보각(海藏寶閣) 주련

     

    寶藏聚玉函軸 (보장취옥함축)   보배스런 경을 모아 옥함에 보관했네.

                           集西域譯東土 (집서역역동토)   서역에서 모아 동토에서 번역했네.

                          鬼神護龍天欽 (귀신호룡천흠)   귀신이 보호하고 천룡이 흠모하니

                          標月指渡海筏 (표월지도해벌) 마음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고해를 건너는 땟목이네.

     

     

     

     

     

     

    해장보각 뒤엔 측면의 장경각과 전향각이 보인다.

     

     

     

     

     

     

    장경각(藏經閣)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장경각은 절에 내려오는 경전과 목판을 봉안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 및 중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 18세기 이후의 건물로 생각된다. 장경각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경판(經板)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이전된 장경각의 목판은 정시한(1625~1707)이 저술한 산중일기에도 등장하는 17세 초반 활동한 대 각수 연희가 발원하여 직접 제작한 목판들로서, 통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울산 운흥사(雲興寺)가 조선말기에 폐사될 때 옮겨온 중요한 경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건물 안에는 목판(木版)장경을 봉안하였는데, 이들 목판 대장경을 강원(講院)의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중요 경전들로『능엄경』,『기신론현수소(起信論賢首疏)』,『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법수(法數)』,『사집(四集)』 등 15종의 경판이 있다. 따라서 통도사는 사찰의 교육기관인 강원을 통해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목판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장경각과 전향각

     

     

     

     

     

     

     

     

     

     

     

    전향각, 장경각 더 안쪽으론 화엄사 구층암처럼 다듬지 않은 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전향각이 있다.    여염집처럼 생겼는데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라고 한다.

     

     

     

     

     

     

     관음전과 개산조당. 해장각. 용화전이 나온다.

     

     

     

     

     

     

    용화전(龍華殿) -경남 유형문화재 제204호

     

    용화전은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1369년(공민왕 18)에 초창되었으나 당시 창건주는 알 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1725 년(영조 元年)에 청성대사(淸性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고 1899년 고종 때 수리했다.

     

     

     

     

     

     

     

     

     

     

     

     

    건물 안에는 약 2m 정도의 호분칠(胡粉漆)을한 56억7천만년 뒤 미래세계에 출현할 석조미륵불좌상(石造彌勒佛坐像)을 봉안하였다. 독존(獨存)으로 모신 것으로 보아 고려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출현하실 미래불(未 來佛)이다. 그 부처님의 탄생하실 곳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이고 또 설법회상(說法會上)을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하므로 법당의 명칭을 용화전이라 하였다.

    미륵불 사상은 조선 말기 배고픔과 고통에 시달리던 민중이 미륵불을 고대하면서 민간 미륵신앙으로 발전했다.

     

     

     

     

     

     

     

    용화전 미륵후불탱

     

     

     

     

     

    용화전은 내외벽화로 가득하다. 서유기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놓았다.

    전각 내부 동. 서측면 벽체 내부 벽화에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이야기를 다룬 중국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西遊記)’를 소재로 한 벽화가 6점이 있는데 서유기가 우리나라 사찰 법당의 벽화로 그려진 것은 현존하는 유일한 예 이다.

    경천사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기단부에 서유기 도상이 부조되어 있지만, 벽화로는 유일하다.

     

     

     

     

     

     

     

     

     

     

     

    용화수에 들어간 용(龍) 자 때문인지 용화전엔 유난히 용 장식이 많다. 이 기둥머리 용두는 여느 절 용머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용화전은 용으로 가득한 미륵의 집이다.   다른 용들은 생긴 게 조금 다르고 독특하다. 

     

     

     

     

     

     

     이 용은 입을 다물고 있고 옆얼굴에 돋은 지느러미를 강조했다.

     

     

     

     

     

     

    턱도 길어서 용의 장엄한 맛이 덜하다.

     

     

     

     

     

     

    공포에 내민 익공 위에는 대개 봉황이 앉아 있던데 용화전 익공 위엔 용머리가 올라 있다.

     

     

     

     

     

     

    귀공포에 교차해 내민 보머리는 아무 조각 장식 없이 목재 그대로이다. 

     

     

     

     

     

     

     

     

     

     

     

     

    외벽 서쪽 왼쪽에는 십장생인 바위와 학?소나무 벽화가 있고, 오른쪽에는 구름 위에서 옷깃을 휘날리며 곡을 연주하는 여인에 장단 맞추어 춤추는 학 벽화가 있다.

     

     

     

     

     

     

    외벽 서쪽 가운데에는 청룡 한 마리가 구름에 온몸을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여의주를 잡으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절집에 용 장식을 많이 하는 것은 용이 불국세계를 수호할 뿐 아니라 중생을 극락으로 태우고 가는 반야용선의 뱃머리가 용이기 때문이다.  기둥머리에 용을 조각한 것은 법당이 극락 행 반야용선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용화전 외벽에도 용을 그려놓았다.

     

     

     

     

     

     

    외벽 동쪽벽은 색이 많이 퇴색되어 잘 구별하기가 힘들지만 우측에는 까치호랑이 그림이었다...

     

     

     

     

     

     

    용화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과 봉발탑(보물 471호)

     

     

     

     

     

     

    봉발탑(奉鉢塔)- 보물 제 471호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서있는 것으로  탑도, 등도 아닌 석조물이 서 있다.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고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인데, 이를 봉발탑이라고 하며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이 석조물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부등형(不等形) 8각 간석(竿石)을 세우고 간석 위에 상대석(上臺石)을 놓았으며 그 위에 뚜껑을 갖춘 발(鉢)을 올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석등(石燈)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석등의 화사석(火舍石) 위치에 발이 놓여 있어 특이하다. 이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부처님 제자 가섭존자는 석가여래의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인도 계족산에서 미륵불을 기다린다고 한다. 미래에 미륵불에게 전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석조 발우는 꼭 같지는 않지만 보은(報恩)의 법주사(法主寺)경내의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이 머리에 이고 있는 석조발과 같은 형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용화전에 모신 미륵불과 관련이 깊은 석조물이다. 

     

     

     

     

     

     

    봉발탑이 용화전 앞에 세워진 것은 미륵불이 석가여래를 이어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과 그 위의 뚜껑이 있는 밥그릇 형상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용화전 앞에 놓인 커다란 봉발탑이 눈길을 끈다.  봉발탑이 커다란 사발 모양을 닮았다.  봉발탑은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증거로 계송을 지어주거나 가사나 발우를 전하는 불가의 전통에 따라 부처님의 옷과 그릇을 56억 7천만년 후에 오시는 용화전의 주불인 미륵불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하는 탑이다.

     

     

     

     

     

     

    이 봉발탑은 정확하게 금강계단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고 한다.

     

     

     

     

     

     

    대광명전(大光明殿)보물 제1827호

     

    용화전 뒤, 중로전 중심 전각 대광명전으로 간다.

    규모나 건축 기법, 목재가 빼어나 통도사에서 적멸보궁 다음가는 건물로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선이 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통도사 창건 때 처음 지었고 지금 건물은 1756년 불탄 2년 뒤에 다시 세워 조선 1758~1959년 중수 건물인 대광명전은 중로전(中爐殿)의 중심건물이다. 대웅전(大雄殿) 서북쪽에 위치(位置)하며 건물의 규모나 목재 또는 가구수법(架構手法)이 대웅전 다음가는 우수한 건물로 평가 받고 있으며 1756년 10월 화재로 전소 된 것을 1758년 9월 중건하였다고 한다.   통도 사약지(通度寺略誌)에 따르면 통도사 창건 당시에 초창하였다고 하며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대장경 400함 가운데 화엄경 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건물로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광명전은 화엄경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비로자나불은 법계의 진리와 일치하는 부처이며 우주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法身)불이다. ‘비로자나’라는 범어 자체가 ‘광명, 빛’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서 모시는 법당 이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통도사 대광명전 비로자나불과  삼신불도(보물 제1042호)

     

    내부에는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비로자나’는 광명의 빛을 두루 비춘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법계의 진리와 일치하는 부처이며,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이다.

     

     

    불상 뒤엔 보물 1042호 삼신불탱화가 걸려 있다. 삼신불은 대개 석가, 아미타, 약사여래를 표현하는데 이 곳 삼신불 탱화는 세 폭 그림에 각각 중앙 비로자나불과 왼쪽 노사나불,오른쪽 석가모니불을 그려 드문 경우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을 14보살, 10대 제자, 팔부중, 용왕, 용녀, 14타방불이 에워싸고 있다.

    1759년 영조 때 이름난 불화 스님들이 그려 조선 후기 불화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있고 여기 있는 것은 모사품이다.

     

    불상 뒤편에 조성된 삼신불탱은 현재 원본은 박물관으로 이전되었으나, 조선 후기 통도사를 기점으로 활동하였던 임한(任閑)스님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현존하는 삼신탱화 중에서 그 화격이 최고로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좌측부터 석가모니후불탱(釋迦牟尼後佛幀) ,  비로자나후불탱(毘盧遮那後佛幀),  노사나후불탱(盧舍那後佛幀)이다...

     

     

     

     

     

     

    불단에 지권인 손갖춤을 한 비로자나 불상을 봉안했다. 이치와 지혜,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은 본래 하나라는 뜻이다.대광명전 내부 비로자나불상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보물  제1042호) - 석가모니 후불탱의 중간쪽 탱화

     

     

     

     

     

     

    우측의 대광명전 신중탱(大光明殿 神衆幀)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9호라 한다...

     

     

     

     

     

     

    대광명전 단청은 통도사 전각 중에서도 많이 바래 칠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법당 내외에 조각된 목조비룡(木造飛龍)의 모습이 사실적인데 이는 조선시대에 발달된 목조공예의 수법을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단청을 칠하지 않은 듯 그대로 드러난 나무 빛깔이 좋다.

     

     

     

     

     

     

    용화전처럼 귀공포 익공 위에 용머리를 올려 처마를 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역시 용화전처럼 귀공포에서 교차하는 보머리가 조각 장식 없는 민목재이다.

     

     

     

     

     

     

    화마(火魔)를 다스리는 소금 단지,    통도사는 각 전각 모서리 평방 위에 소금 단지를 올려 놓았고 단오에 맞춰 단지를 교체하는 전통이 생겼다.   소금은 바다를 의미하기 때문에 바닷물로 화재를 막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항아리를 덮은 한지(韓紙)에는 화마를 다스리는 게송(偈頌)이 쓰여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의 평방 중앙에는 화마를 다스리는 게송(偈頌)이 수호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통도사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는데 대광명전만은 화마를 피했다.  연유를 살펴보니 대광명전 평방에 화마를 쫓는 게송(偈頌)이 쓰여 있었다.

     

    吾家有一客 (오가유일객)   우리 집에 한 손님이 계시니

    定是海中人 (정시해중인)   바로 바다 속에 사는 사람이다.

    口呑天藏水 (구타천장수)   입에는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能殺火精神 (능살화정신)   능히 불의 정신을 소멸할 수 있네

    천창수(天漲水)란 하늘에 넘치는 물, 곧 비를 말하는데, 용이 비를 내려 화재를 막아낸다는 의미다.

     

    이후 통도사는 각 전각 모서리 평방 위에 소금 단지를 올려놓았고 하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으로 생각된다.

     

     

     

     

     

     

    향 대광명전 우측 뒤로 돌아가면...

     

     

     

     

     

     

     이 건물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건물인 듯 보인다.

     

     

     

     

     

    원통방(圓通房)

     

     

    원통방과 감로당은 화엄전, 황화각과 함께 중로전의 대방(大房)이다. 원통방과 화엄전은 법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 감로당이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통도사사적비’에 따르면 고종 19년(1882) 화엄전에서 실화하여 원통방과 감로당이 소실(燒失)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다시 감로당에서 실화하여 명부전과 함께 원통방, 화엄전까지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인 1887년 덕명대사(德溟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건물로 강원의 학인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이다. 감로당을 비롯한 口자형 건물들은 약 86칸으로 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이다.

    원통방은 원래 큰 행사 때 대중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쓰다 지금은 그 옆 감로당과 함께 스님들이 살며 경을 공부하는 요사채 원통방이다.

     

     

     

     

     

     

    ‘원통방‘ 매우 조형적인 편액 글씨는 대원군(석파 이하응)이 썼다. 방(房) 자의 위 아래를 좌우로 해체해 소(所) 자처럼 보인다.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며 또한 대구출신의 서예가인 석재 서병오의 호 석재를 지어준 사람이 이하응으로 알려졌다.

     

     

     

     

     

     

    원통방 울타리 곳곳에 법구경 구절이 쓰여 있다.

     

     

     

     

     

     

     

     

     

     

     

     원통전 우측에   지금은 중로전에 현판만 남겨져 있다.  '一爐香閣'은 원래 보광전 안에 있던 요사에 붙은 현판이었는데 지금은 새롭게 요사를 지은 후 이곳 중로전으로 현편을 옮겨달았다.

     

     

     

     

     

     

    一爐香閣 김정희 글씨

     

     

     

     

     

     

    일로향각 옆의  감로당, 대웅전이 있는 상로전 영역으로 들어서기 직전 왼쪽에 감로당이 있다. 1340년 고려 충혜왕 때 처음 지었고 여러차례 불타ㅁ자 형 지금 건물은1887년 고종 때 다시 지었다고 한다.  요사채 중에 제일 큰 86칸 중심 요사 로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으로 쓰고 있다.  감로는 고대 인도와 중국에서 전해 오는 영약으로 불교에선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기도 한다.

     

     

     

     

     

     

     

     

     

     

     

    감로당에 걸린 귀한 말씀들....

     

     

     

     

     

     

     

     

     

     

     

     

     

     

     

     

     

     

     

     

     

    감로당 옆의 출입문이다...

     

     

     

     

     

     

    중로전인데 출입문은 상로전의  명부전 오른쪽으로 종무소, 공양간, 요사채의 서쪽 출입문이 나 있다.  원주실(院主室)이란 절 살림을 책임지는 원주스님의 집무실을 가리킨다.  문 위에 붙은' 좌신문' 편액은 월하 스님 글씨이다.

     

     

     

     

     

     

    원주실(院主室)은 공양간과 후원의 사무, 노무를 주관하는 곳으로서 공양과 각종 재를 준비하고 객사를 관리하는 곳이다.

    * 각종 천도재나 49재 그리고 객사(숙박) 등에 대한 상담, 접수 : 055-382-7186

     

     

     

     

     

     

    공양간(供養間

     

    사부대중과 일반 내방객의 공양을 짓는 곳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으로 공양을 짓는데, 사시마지종(오전 10시 30분에 소종 5타)을 치면 먼저 공양을 불기에 담아서 각 법당으로 가져간다.  통도사 전통으로 이 소임은 강원에 학인스님들이 담당하고 있다.

     

    공양간 인근의 장독이 인상적이었다.

     

     

     

     

     

     

    장독대 아래로 후원(後院 - 식당, 주방)이 있다.

    사부대중과 일반 내방객이 자유롭게 공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약 천여명의 대중이 동시에 공양할 수 있는 좌석이 준비되어있으며, 서예나 회화 작품 등의 전시가 가능하도록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다.

     

     

     

     

     

     

     상로전 구역의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은 상로전의 중심영역이자 통도사를 대표하는 목조건물이다.

     

     

     

     

    통도사의 불이문을 들어서 오층석탑. 관음전. 세존비각ㆍ개산조당ㆍ해장보각ㆍ용화전ㆍ장경각ㆍ전향각. 용화전. 대광명전. 황화각.영각. 감로당. 원통방, 공양간. 원주실이 있는 중로전 영역이 있는 중로전에서 이제 통도사의 하이라이트로 이어지는 통도사 상로전 영역의 금강계단. 대웅전. 구룡지. 설법전.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산령각. 보광선원. 탑광실. 정변전. 호혈석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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