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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추의 창경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여행방/서울시 2019. 11. 15. 09:09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창경궁 (사적 제122)

     

     

    2019.   11.   15.

     

     

    2019.  11.    13.  델타 테마여행 회원 76명과 함께  서울 4대궁 순례이다.  포항에서 5:20 출발하여 여주휴게소 1번 쉬고 09:40 창덕궁 도착이다..

    먼저  서울 4대궁 관람 순서는 09:40  창덕궁 - 10:30 창경궁 - 12:00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에서 점심 식사 - 13:10  경복궁 - 15:10 덕수궁 순으로 돌아 보기로 한다.......

     

    4대궁 두번째로 창덕궁에서 옆문으로 창경궁으로 들어가서 창경궁  여행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붙어 있어 창덕궁에서 창경궁 함양문으로 들어선다. 함양문은 창덕궁과 통하는 문이다. 후원 입구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창경궁을 들어서며 창덕궁 후원을 두르고 있는 돌담너머로 비원을 상상해 본다...





     창경궁에 들어서니 단풍이 한창인 모습이다.





    고궁의 단풍








    창경궁 내전인 통명전. 양화당이 내려다보인다...




















    무척이나 아름답게 유혹적이다.   초겨울 분위기로 스산할 줄 예상했는데 여기는 단풍이 한창 물들어 가고 있다.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인 통명전이 내려다 보인다...











    양화당과 통명전








    창경궁 자경전 터(慈慶殿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지은 전각이다한중록의 산실이기도 하다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뒤편에는 아름다운 계단식 후원이 있었다...







    왕비의 생활 공간으로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인 양화당과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인 통명전 뒤로 샛노란 너무 고운 단풍이다...





    풍기대 (보물 제846호)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는 풍기를 세웠던 창경궁에 있는 석대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동궐도(東闕圖)'에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다.

















    성종태실비로 가본다...



























    관덕정(觀德亭)


    창경궁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있는 사정(射亭)으로 정, 측면 1칸에 초익공계 양식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공혜왕후 한씨가 잠례를 거행하던 장소에 1642(인조 20) 취미정(翠微亭)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64(현종 5)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1909년에 조성된 연못인 춘당지(春塘池)








    창경궁의 춘당지는 한없이 잔잔하고 고요하다.





    춘당지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연못이다. 본래 이 은 국왕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농사를 시연하는 땅인 권농장(勸農場)이 있던 곳이었다. 이를 일제가 1909년에 없애고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일본식 정원을 만들면서 지금의 호리병 모양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이 위를 떠 다니는 케이블카가 개통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철거되었다. 1980년대 복원 당시 한국식 정원으로 개조하였다.

















    춘당지 옆의 팔각칠층석탑은 보물 제1119호 이다...










     

    화려하게 수놓은 알록달록의 빛깔들....

















    대온실(등록문화재 제83호)과 온실 앞 정원


    창경궁 식물원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인 후쿠바가 설계, 프랑스 회사가 시공을 담당하였고, 대한제국 순종 융희 원년(1907)에 기공하여 융희 3(1909)에 준공하였다. 건축 당시에는 170여 평(570m2)으로 동양 최대 규모의 목조 식물원이었으며, 각종 희귀 식물을 전시하였다.

    1969년에 양옆에 돔 모양의 온실이 설치되어 있으나 창경궁 복원공사 중 철거되었다.





    대온실의 내부








    대온실 근처의 '한국자생식물화단'은 한국식물로서 월동이 가능한 중부지방 자생식물을 모아놓은 화단으로 세계적 희귀식물인 미선나무를 비롯해 400여 종 600여 포기가 심어져 있어 도시 어린이들이 자연생태를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빗방울이 오락 가락 하지만 창경궁의 가을은 찬란했다...














    내전


    숭문당 밖으로는 내전의 전각들이 전개된다. 숭문당의 서북쪽으로 함인정이 있고그 좌우로는 담이 둘러져 있다이 담 뒤편으로 환경전· 경춘전 등의 침전이 있고, 그 북쪽으로 내전의 정전인 통명전이 있다. 환경전에서 통명전으로 이르는 일대는 왕과 왕비가 기거하던 곳으로, 다른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식이 높게 잘 다듬어져 있다.





    통명전과 양화당








    통명전(通明殿)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있는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이다명정전 서북쪽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는데동쪽에 있는 환경전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 창경궁 창건 때인 1484년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16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정조 14(1790)에 불에 타 소실되었다.지금의 건물은 순조 34(1834) 창경궁의 전각 대부분을 재건할 때 지은 것으로, 건물은 정면 7, 측면 4칸 규모인데, 정면 5, 측면 2칸을 감싸며 퇴칸이 설치된 형식을 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용마루가 없다.




    통명전 (보물 제818)


    동궐도에는 이 건물이 터만 남은 것으로 보아 순조33년 이전에 불탄 것으로 보이며 숙종 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해하기 위해 통명전 뜰에다가 저주하는 물건을 심어다놓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통명전 연못 일부


    통명전의 서쪽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은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의 장방형인데연못 위에는 길이 5.94m, 2.56m의 간결한 돌다리가 동서로 놓여있다이 연못은 북쪽에서 약 4.6m 떨어진 샘에서 넘쳐나는 물을 직선으로 설치한 석구를 통해 폭포로 떨어지도록 고안하였다.





    창경궁의 침전으로 내전의 중심건물이다.   장희빈이 인현왕후의 처소인 이 곳 아래에 흉물을 묻고 밤마다 무당을 불러 재앙을 빌고 인현왕후가 세상을 떳던 음산한 일화가 담겨있는 곳이란다.  조금의 역사를 알고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듯...





    양화당(養和堂)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양화당(養和堂)은 왕비의 생활 공간으로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 6,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 건물 단층집으로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을 얹었고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이다





    1484(성종 15)에 지어졌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으로 인해 불에 탄 것을 매번 다시 지었으며 1830(순조 30) 또다시 불에 탄 것을 1843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가 이듬해 돌아와서 이곳에 거처하기도 하였으며, 고종 15(1878) 철종비 철인왕후 김씨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글씨이다.








    환경전(歡慶殿)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정면 7,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1484(성종 15)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광해군 8)에 중건하였다. 그   후 1830(순조 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동왕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참고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과 소현세자가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가 승하했을 때는 관을 모시는 빈궁으로 사용되었다가 화재가 발생해 재궁을 불속에서 가까스로 꺼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궐도에는 누마루가 있지만 현존하는 건물에는 누마루가 시설되지 않았다

    환경전 또한 침전임에도 불구하고 용마루가 있다. 또한 중종이 환경전에서 훙서하였으며,   세자 시절의 광해군,   광해군의 세자 이지,   소현세자, 등이 거처하였다가 소현세자 사후 1652(효종 3) 14세까지 숭선군이 여기서 거처하였다.








    경춘전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로 왕비의 침전이다.

    정면 7, 전후퇴칸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다.

    1484(성종 15)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다가 1616(광해군 8)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1834(순조 34)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인수대비가 거처하던 곳으로 혜경궁 홍씨가 거쳐하던 곳이기도 하다정조, 헌종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또  인수대비와 인현왕후,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함인정과 환경전








    함인정(涵仁亭)


     창경궁의 정자 중 하나로 환경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다. 빈양문을 지나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건물이며, 내밀한 내전권역으로 가기 전에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건물로, 사랑방 같은 역할의 정자라 할 만하다. 연혁으로는 1484(성종 15)에 지은 인양전(仁陽殿)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가 인조반정 후 인왕산 밑에 인경궁에서 헐어다가 옮겨 지었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함인정 부근은 마당이 넓어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원래 함인정은 전면 열린공간이 아니었다.  3면은 막힌 공간이었다함인정과 환경전 사이에 공묵합이라는 전각이 있었으나 소실되어서 현재는 없다.










    맨 오른쪽 전각이 숭문당


    숭문당(崇文堂)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왕이 태학생들을 접견하여 주연을 베풀었던 곳이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문정문



    문정전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이다.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은 명정전의 오른쪽인 남쪽으로 명정전과 직교하며 서 있다. 여기서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죽은 곳은 선인문 쪽이라 한다. 원래 12칸이었으나 복원 때 9칸으로 복원하였다. 동궐도에서 보면 문정전 주변에 회랑이 쳐져있다.








    남쪽에서 바라본 문정전























    데칼코마니처럼 너무 흡사한 모습의 나무.  아무리 한 나무지만 저렇듯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는지 신비스러운 느낌이 든다.





    광정문





    외전


    명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정전인 명정전이 있고 그 앞에는 자연석을 깐 넓은 마당이 있으며, 가운데 좌우로 품계석(品階石)이 놓여 있다. 이 부분은 사방이 행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명정전 (국보 226호)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다.

    정전은 성종 15(1484)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1616)에 중건한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2단의 월대 위에 정면 5,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 중층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보다 격식이 낮다특이한 점으로는 건물 뒤쪽에 퇴칸 형식의 월랑을 두고 있으며, 건물 내부의 앞쪽으로 고주를 세우고 뒷부분 기둥은 모두 생략하였고, 정면 양 협칸의 벽면 하부를 전복돌로 쌓아 점을 들 수 있다.   명정전은 뒤쪽 터가 높게 경사져 있어, 뒤를 제외한 세 면에만 경사지에 맞추어 월대를 조성하였고, 좌향도 지세에 흐름을 맞추었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는다.





    명정전 뒷쪽 통로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행각은 2칸 폭의 복랑이며, 경복궁의 행랑에 비해 높이가 낮다.

    명정문 구역은 보수공사로 통제중이라 광정문으로 다시 나온다.






    옥천교(보물 제386)


    창경궁 금천 위에 놓은 다리로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모든 궁궐 마당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쪽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뒤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궁궐 앞쪽에 일부러 낸 물길이다이를 '금천'이라 부른다.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옥천에 놓인 다리가 '옥천교'이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가로질러 흐르는 옥천을 건너는 옥천교(玉川橋)가 있고 다리를 지나면 명정문 (明政門)이 있다.


    명정문

    명정문(明政門)은 홍화문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 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이다. 명정문은 흥화문과 같이 동향을 하였는데,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동서 중심축 선상에 정확하게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보수공사로 막혀 있어 명정문은 볼수가 없었다...





    창경궁을 관람 후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으로 나간다.




    홍화문 (보물 제384)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동향이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1484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616년에 다시 지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 왕이 백성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영조는 홍화문 앞에서 균역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백성에게 직접 물었고, 효심 깊은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누어 주며 기쁨을 함께했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을 나와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광장시장 맛기행을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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