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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겨주던 법흥사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 무릉도원면 법흥리 422-4 
    사찰여행/강원도 2018. 11. 2. 23:43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겨주던 법흥사 

      

      

    2018.     11.    2. 

      

      

    2018.   11.   2.   가을빛이 고운 날 한국불교대 大관음사 10기 도반들과의 가을 소풍으로 강원도 영월 지역의 사자산 법흥사. 요산정과 요산암. 장릉 그리고 보덕사 등을 둘러본 여행길 이었다... 


    06:00 포항에서 출발하여 군위.안동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제천을 거쳐 법흥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09:45분이다. 

     

      




    제천을 지나 영월로 들어서서 이제 법흥사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월은 산수 수려하여 얼음처럼 차갑게 흐는 맑은 계곡물이 생각이 나는 곳이다.










    사자산과 백덕산에서 발원하여 구비구비 흘러내리는 맑디맑은 법흥천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이윽고 사자산 법흥사라는 현판이 붙은 일주문이 웅자를 드러낸다.

    흰색 화강암으로 깎은 코끼리와 용의 조각이 떠받치고 있는 일주문은 우람하지만, 산문 안쪽으로도 몇 개의 식당과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황장금표비를 지나면 이내 법흥사 일주문으로  오대산 상원사태백산 정암사영취산 통도사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에 꼽히는 절집이다.





    법흥사 일주문 편액


    일주문의 전면과 후면 추녀 아래에는 각각 '사자산법흥사' '사자산문흥녕선원' 이라고 씌여진 멋진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두 현판 모두 부여 출신의 서예가로 한국서도협회 회장을 역임한 무림(霧林) 김영기(金榮基)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특히 후면의 현판은 '서예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글씨이다.








    법흥사 입구는 1밖부터 솔 향이 가득하다. 들어 갈수록 울창해지는 송림은 솔바람을 날리며 마음을 씻어 준다.









































    길이 끝나고 나무들이 즐비한 산길의 끝에는 넓은 주차장이 펼쳐져 있고 우람한 산과 울창한 숲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둘러 싸고있어서 또 다시 감탄을 하게 만든다. 사자산이라고 한 이유를 이곳에서 보면 알 것 같다.





    원음루 앞에서 도반들과...








    법흥사는 입장료. 주차료 모두 무료이다.





    일주문을 지나 1km 가까이 올라가면 우측으로 법흥사 전각들이 눌어서 있고그 가운데 부분에 출입문에 해당하는 2층 누각 원음루(圓音樓)가 서 있다.





    '원음루'와  '금강문'의 두 현판 모두 임오대서(任午大暑) 서봉(瑞鳳)이라는 관지가 있어서 2002년 여름에 '서봉'이라는 분이 쓴 글씨인데, 정작 서봉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작은 것들이지만 이런 내력들이 쌓이고 전수되어서 사찰의 역사가 되는 것인데...





    최근에 지어진 듯한  전면 3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이 전각은 전체적으로는 누각이면서 절로 들어가는 1층 통로에는 '금강문'의 현판이 붙어 있고법고각(法鼓閣) 역할을 하는 2층 추녀 아래에는 '원음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2층에는 대형 법고(法鼓)와 목어(木魚), 운판(雲版)이 보관되어 있다.

    원음루는 지붕이나 2층의 난간화려한 단청에 이르기 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전각이었다.





    원음당(법흥사 종무소)





     한국 33 관음성지  제29호 법흥사





    종무소와  마주보고 있는 다향원








    원음당(법흥사 종무소)과 현심당 그리고 흥녕원 전각이 차례로 보인다.




     

    법흥사의 선원,  흥녕원 (興寧院)


    심우장과 현심당에서 축대 아래로 내려서면 ''자로 지은 커다란 전각에 있는데 '흥녕원'(興寧院)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법흥사의 선원 건물인데, 법흥사가 원래 자장율사께서 세우신 흥녕사 옛터에 세운 사찰임을 일깨우는 당호인 듯하다.






    강원도 기념물 제6호인 흥녕선원지가 남아 있다.





    적멸보궁 오르는 길 오른쪽 편에 있는 두 요사채, 심우장(尋牛莊)과 현심당(現心堂)이다. 심우는 목우(牧牛)와 같은 의미로 '소를 찾는다', 혹은 '소를 먹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심우장에는 법흥사의 주지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 듯 하다.








    흥녕원 앞에서 바라본 다향원과 원음루





    종무소 앞을 지나 극락전 영역으로 이동한다...





    법흥사의 수각이다.   사자산이라 그런가 사자 조각상의 입에서 사자산의 지하수가 흘러나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극락전 영역의 종각.  조사전.  극락전이 차례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지 않는  극락전


    수각을 지나면 왼쪽으로 현판은 없으나 문창살과 단청이 화려한 정면3, 측면 2칸이 팔작지붕 건물인 커다란 전각이 서 있다.

    법흥사 전각 안내판에는 대웅전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이 건물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극락전(極樂殿)이다. 극락전은 무량수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극락전 아미타 삼존상





    극락전 법당의 중앙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를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듣고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지장보살은 중생들에게 지혜의 광명을 비추어 험한 세상에서 힘을 얻게 만들어서 불국정토로 나아가게 해주는 보살님들이라고 한다.








    극락전 동쪽단인 신중단의 신중탱






    극락전 서쪽단인 영가단






    극락전 아미타 삼존불을 호위하는 용과  장엄한 닫집






    극락전 현판은 지금은 적합한 나무를 골라 건조시키는 중인데 적어도 3년 이상은 젖었다 말랐다 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극락전 맞은 편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범종각이다.   전각이 커서 그런가 동종의 모습이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도 하다.





    극락전 왼쪽 아래에는 정면 3, 측면 1칸의 아담한 조사전(祖師殿)이 서 있다조사전은 사찰의 창건주나 고승대덕의 영정을 모시는 전각으로 영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사전 현판 글씨도 일주문 현판 글씨를 쓴 무림 김영기 선생의 작품이다.





    징효절중 국사(왼쪽)의 진영,  자장율사(오른쪽)






    조사전 내부에는 선덕여왕 때 흥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오른쪽)와 그 후 신라말 고려초에 흥녕사를 크게 중흥시킨 징효절중 국사(왼쪽)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 옆 뒷쪽에  위치한 삼성각







     삼성각 내부에는 용왕탱,  칠성탱,  독성탱이 있다.











    삼성각에서 나오면서 극락전과 조사전,  그리고 원음루와 종각이 바라다 보인다...





    극락전 영역을 지나







    넓은마당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좋다...






    만다라전 옆 적멸보궁 안내 비석을 따라 적멸보궁으로 향해본다.









    법흥사는 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후 헌강왕 때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을 열고 위세를 떨쳤건만 불에 타버린 다음 천년 가까이 작은 절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이 중건하고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 산불로 다시 소실된 뒤 17년의 중건불사를 마쳤으나 몇 년 후 이번엔 산사태로 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다 1939년 적멸보궁만을 중수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에 다시 대대적인 불사를 했다.






    법흥사는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891(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 944(혜종 1) 중건.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로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0년에 중건, 1931년의 산사태에 옛 사지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대웅전·무설전(無說殿요사채 겸 공양실인 심우장(尋牛莊) 등이 있다.





    만다라전 옆에서 시작하여 산중턱으로 올라가는, 적멸보궁 가는 길이다양쪽 언덕으로 펼쳐지는 이 금강송 숲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승지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약 300m 올라가면 적멸보궁을 만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적멸보궁으로 가는 솔숲 오르막 길은 숲이 도탑고 길은 고즈넉해 마음이 자연으로 녹아드는 듯 그윽하다. 이 숲에는 천연기념물 제 242호 까막딱따구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십분정도의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면 적멸보궁을 만나게 된다.  적멸보궁 가는 산길이 멋지다. 특히 단풍이 든 가을이란 계절에...






    극락전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길은 단풍의 바다다.





    말이 필요 없고 감탄사만 절로 나올 만큼 매혹적이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도중에  이런 예쁜 전각도 있다.





    제2 보궁 약사전이다.

    적멸보궁을 오르는 길은 두 가지이다.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길이다. 오른쪽으로 올라 수각을 지나가서 적멸보궁에 오른다음에 왼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산신각과 약사전을 보며 내려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곳곳에 소원을 기원하는 분들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왼쪽 큰 전각은 약사전이고,  오른쪽 작은 전각은 산신각이다.











    수각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산길로 오르기 전에 있는 수각이다.





    왼쪽 큰 전각은 약사전이고, 오른쪽 작은 전각은 산신각, 그리고 앞의 수각






    소나무, 전나무 어우러진 숲길을 지나 맑은 샘물로 갈증을 달랜 뒤








    다시 투명한 가을 햇살 쏟아지는 오솔길을 걸으면 




     

    이내 우람한 병풍바위가 호위하고 있는 적멸보궁이 보인다.


    적멸보궁은 제일 높은 곳에 있다법흥사 인근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 수백그루가 장관을 연출한다.





    숲길을 지나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숨이 차오른다이어 탁트인 시원함과 함께 사자산을 품은 적멸보궁이 반갑게 맞아준다진신사리를 모신 곳답게 신비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적멸보궁은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적멸보궁의 품에 안고 있는 듯한 사자산의 산세가 자못 웅장하다.

    사자산 연화봉 아래 불교계의 성지 법흥사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법당이다.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님의 성물인 진신사리가 묻혀있기에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기 때문인다.

    적멸보궁 편액을 붙인 전각인 진신사리의 예배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으며 사리를 모신 곳으로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고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는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며, 이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에서는 석가모니, 즉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여 다른 부처님을 상징할 수 있는 불상이나 조각을 절에 두지 않는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님의 몸이기 때문에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전각 뒷벽을 큰 유리창으로 하여 참배객들이 사리탑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적멸보궁의 불상 자리에는 커다란 황금색 방석이 놓여져 있다.   진신사리로 이곳에 오신 부처님께서 직접 임재해 계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





    적멸보궁 내부의 황금색 방석 위의 장엄한 닫집 






    적멸보궁 내부의 우측 신중단의 신중목각탱






    적멸보궁 내부의 좌측  소종과 내부 벽화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적멸보궁 뒤쪽 언덕에 자장율사가 기도한 토굴과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부도그리고 당나라에서 사리를 넣어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분(石墳)이 있다.   그러나 부도는 상징일 뿐이다.   자장은 당나라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중 몇 톨을 저 뒷산 어딘가에 묻어 놓았다고 한다그래서 적멸보궁 뒷산 전체가 바로 신앙의 대상이 된다돌멩이 하나풀 한 포기나무 한 그루 등 온산이 다 부처의 몸인 셈이다그렇다면 붉게 타오르는 이 단풍 또한 부처가 아니겠는가?   부처의 자애로운 손길인?   낙엽 하나 허공을 긋는데, 문득 향내 그윽한 적멸보궁에서 울려 퍼지는 낭랑한 독경소리…   사바세계에서 묻혀온 온갖 때가 모두 씻겨 나간 듯 정신이 맑아진다.






    적멸보궁 뒤에 있는 부도와 석분이다.

    이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이 있고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사자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유학 중 청량산에서 문수보살 현신을 만나 석가모니의 가사. 바리 한 벌, 머리뼈 진신사리를 받았다고 한다.

     

    보궁에는 석분과 부도가 놓여져 있고 무덤을 연상케 하는 둥근 산비탈이 높은 산을 배경으로 있다.   이곳 어디에 부처님 사리가 묻혀 있을 것이다그 옛날 자장율사가 이곳에 사리를 안장할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번뇌도 이곳에 도달하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부처님 사리가 있으나 사리를 볼 수 없다무진 번뇌가 보이지 않는 사리처럼 사라져 버렸다집착할 것도 없는 마음을 잡고 있는 것도 어리석음이고 무지인 것인데 알면서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중생의 숙명이다놓아 버리고 내려놓지 못하여 얻은 번뇌들이 하나 둘 씩 떨어져 나가면 무겁던 무게들이 가벼워진다이 울창하고 거대한 산자락 안에 들어앉은 이들이 얻은 편안함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스스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부처님 세상은 안온하다. 부처님 말씀처럼 무지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생겨난 번뇌와 고통은 스스로를 등불삼아, 부처님 법을 따라서 살면 삶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번뇌를 내려놓은 평온 속에 번지는 미소가 가을햇살을 받아 꽃처럼 피어난다.






    법흥사 석분(강원도 유형문화제 제 109)


    이곳은 신라 지장율사가 도를 닦던 곳으로 전한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돌방의 겉모습은 흙을 몽긋하게 덮어 무덤처럼 보인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이 무덤처럼 남아 있고 부도 한 기와 지붕 모양의 깨진 돌덩이가 있다.

    깨진 돌덩이는 자장이 진신사리를 담아 온 함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부도에 진신사리는 없다. 자장은 도굴을 우려해 진신사리를 연화봉 어디엔가 두고 위치마저 세월에 묻어 버렸다.










    영월 법흥사 부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


    적멸보궁 뒤편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부도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부도탑 앞에 정성스럽게 켜놓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푹 익은 가을 속에 묻힌 산사 뒤로 사자산, 앞으로 구봉대산의 정기를 받아 온통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영월 법흥사의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으로 온갖 '번뇌 망상을 적멸한 보배로운 궁" 이라는 의미

     

    법흥사는 신라에 화엄사상(華嚴思想)을 최초로 소개한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화엄사상이란,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불교사상이다.











    법흥사는 신라 시대인 647년경(진덕왕 재위 기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적멸보궁 중 가장 유명한 5개의 보궁을 꼽아 5대 적멸 보궁이라 하는데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에 있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영월군)(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등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연화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나무 숲과 저 멀리 구봉대산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만들어낸 와불의 형상을 바라 볼수 있는 복지에 자리하고 있다.











    나의 마음에 속세에서 가져온 번잡하고 괴로운 마음들 툭툭 털어 버리고 부처님 품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위로를 받으며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적멸보궁에서 왼쪽 길로 내려간다.





    산신각 아래의 수각. 약사전.  산신각이 구도 잘 잡힌 수채화처럼 내려다 보인다.





    어찌 감탄사가 안 나올까? 비록 길은 좁지만 그래서 더 운치가 느껴진다.








    말이 필요 없고 감탄사만 절로 나올 만큼 매혹적인 길.








    적멸보궁에서 산신각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절정의 가을이다..











    온통 가슴까지 붉게 타버릴것만 같다...














    도반과 함께 멋진 길을 손 꼭잡고 걸어본다...





    산신각 도착이다...









    산신각 내부의 산신탱








    적멸보궁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니 약사전 뒷편에 산신각이 나타난다. 사자산 산신을 모신 이곳은 기도 빨이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나서 특별히 참배객이 많다고 한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제2보궁 약사전의 후면이다.






    약사전 내부의 부처님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부처님이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린 제2보궁 약사전을 내려서면




     

    중대 요사체와 법운당을 만난다.





    중대 요사체는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는 제가불자들이 머물수 있는 공간이다.





    중대 요사와 약사전을 내려간다..




     

    왼쪽 큰 전각은 약사전이고,  오른쪽 작은 전각은 산신각 이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내려 간.









    금강송의 크기가 하늘을 찌르듯이 서 있는 그 길을...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이다길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 숲길이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만다라전 옆의 고운 단풍나무가  자태를 자랑한다...







    오던 길을 돌아서서 내려오는 도반들의 모습을 담아 본다...






    이곳에도 소원을 기원하는 분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돌탑이 세워져 있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입구 표지석으로 내려왔다...






    적멸보궁 안내비석과 마주보고 있는 만다라전






    법흥사에는 다른 사찰에 없는 독특한 전각이 하나 있다. 바로 만다라전이다.
    만다라전은 정면 1, 측면 1칸의 작은 전각인데, 여기에는 2003년 법흥사의 대 법회에 참석했던 티벳 스님들이 조성한 만다라가 봉안되어 있다.









    아래 쪽 유리상자 안에 든 만다라는 가는 모래에 색깔을 입혀서 그린 불화(佛畵)로서, 티베트 불교인 밀교에서 발전시킨 것이라 한다.   신성한 단 위에 부처와 보살을 그려서 우주의 진리와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티베트 특유의 불화이다.

     

    만다라는 티벳 승려들이 그리는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불교미술로 주로 모래가루로 그린다고 한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Manda(본질)라는 어간과 La(성취)라는 접미사가 합친 것으로 우주의 본질생명의 진수가 가득한 원형을 뜻하는 것으로명상을 통해 우주의 핵심즉 대일여래의 큰 생명력에 합일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안내도라 한다.   이 만다라전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것으로 법흥사에서 볼수 있다.














    다시 극락보전 영역의 사자가 감로수를 토해 내는 수각 앞으로 돌아왔다..






    사찰 언덕 200년된 보호수 아래로 징효국사의 부도탑. 부도1기와 자그마한 불상1. 징효국사부도탑비. 법흥사중수비 등이 보인다.






    징효국사부도탑비와  법흥사중수비






    징효대사 보인탑비(보물 제612)


    절 입구 비석은 영월군에서 유일한 보물. 바로 옆 부도와 짝을 이루는 징효대사 부도비다.

    1천년 세월(944년 건립)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아 돌거북과 용은 지금이라도 꿈틀거릴 듯 생동감이 넘친다.






    극락전의 오른쪽에 쌓아 놓은 축대 위에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리고 그 위에 한 쌍의 용머리를 조각한 머릿돌을 얹은 비석이 서 있다.
    이 탑비는 흥녕사를 크게 중흥시킨 징효국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징효국사보인탑비'로 고려 혜종 원년인 944년에 세워졌으며,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어서 보물 제612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 문파를 연 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에서 선종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던 사람이다.


    징효대사 승탑 너머로 구봉대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정효대사 부도와 탑비사이의 불상1구와





    부도탑 1기






    밤나무 앞에 위치한 징효국사의 부도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


    징효국사부도탑비 뒷편에는 징효국사의 부도(사리)탑이 서 있다.   징효국사는 19세에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901)75세로 입적한 큰 스님이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8각을 이루고 있는 이 부도는 징효국사보인탑비와 비슷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징효국사의 부도탑 위의 아기 부처님들...









    사찰 언덕엔 200년된 보호수로 우람한 밤나무가 곱게 단장햇던 고운 옷을 다 떨구고 방문객을 반긴다.











    법흥사를 충분히 들러보고 패엽경을 친견하고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아 종무소에 들러 도움을 청하니 주지스님이 직접 보관 중이라 직접 친견은 어렵다고 하며 사진만 구할수 있었다.  그렇게 라도 도움 준 종무소 보살님 감사했습니다. 





    패엽경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인도에서 영라수(靈羅樹) 잎에 경전을 기록하였던 것으로앞뒤 가득하게 범어로 쓰여져 있는 희귀한 것으로본래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공산 치하를 피하여 한 승려가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왔으나,  30여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부산의 한 절의 주지가 신도로 부터 얻어 법흥사에 봉안중이라 한다. 





    원음루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진 구봉대산을 바라보며 법흥사 원음루를 나선다.





    원음루 앞 법흥사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1솔 향이 가득한 솔바람 길을 내려가다..








    법흥사 일주문을 나와...









    사바세계로 돌아왔다...

    법흥사 일주문에서 한참을 내려오면 삼거리 길에서 주천 방향를 따라 두번째 영월 여행 요산정. 요산암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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