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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항재 입구에 위치한 고요한 사찰, 정선 정암사-강원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10, 고한읍 고한리 2
    사찰여행/강원도 2018. 10. 17. 12:03

    만항재 입구에 위치한 고요한 사찰,  정선 정암사

      

      

     2018.     10.    17. 

      

      

    2018.   10.   14.  불교산악회 산빛 어룰림과 함께 강원도 정선군 민둥산 억새 보고 오다가 민둥산 산행 후 두번째 목적지인 정암사로 향했다.

    만항재 입구에 위치한 고요한 사찰, 정암사 여행 이다.. 


    민둥산 주차장에서 고한쪽에서 차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함백산 만항재 드라이브코스 초입부에 위치하고 있는 정암사 이다.

    만항재를 들릴때 함께 들러보면 좋을 곳이다.

      

      





    정암사는 신라시대의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 현판은 탄허스님이 썼고 재질은 느름나무라 한다.





    정암사는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거나 일주문에서 경내가 멀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찰이다.  탄허 스님이 썼다는 ‘태백산 정암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 산기슭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그 너머로 높고 낮게 들어선 건물들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인상좋은 포대화상 뒤쪽 산위를 보니 수마노탑이 조그만 하게 보인다

    정암사 경내에서 약 100m쯤 위에 떨어진 적멸보궁 뒤편,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 위에 서 있어 일주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포대화상이 떡하니 웃고 계신다.





    절은 골짜기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먼저 물길을 건너기 전에 만나는 것이 선불도량인 육화정사와 새로이 지은 요사채와 범종각,   관음전 등이다. 일주문을 포함해 다 최근(1970년대)에 지은 것들이다.




    육화정사 우측 절 입구 초입에 새로 지은 요사채가 참으로 곱다...





    선불도량인 육화정사


    가을빛으로 물든 담쟁이 덩굴이 여느 벽화물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육화정사가 있고 정면에 범종각이 보인다.






    극락교는 이름처럼 깊은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처럼 보인다.


    탐방객을 잡아 끄는 정암사의 정갈한 보석들은 물길 건너에 있다.   범종각 옆 극락교를 건너면 오래된 주목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르며 서 있고   그 뒤로 단아한 자태로 들어앉은 건물이 적멸궁이다.





    지장율사 주장자, 주목나무


    극락교를 건너면 한그루의 주목이 눈에 띈다.  약 1300년 전 자장율사가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로 남긴 나무라 한다.


    스님은 증표라도 남기려는 듯 적멸보궁 옆에 평소 애용하던 주장자(지팡이)를 꽂으니 오늘날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도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지 원줄기는 마르고 그 속에서 다시 싹이 나서 자라는 이적(異蹟)을 보여 스님의 지극한 불심을 실감하게 한다.





    정암사 정멸보궁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주목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르며 서 있고   그 뒤로 단아한 자태로 들어앉은 건물이 적멸궁이다.  지금의 적멸궁은 1770년 중창된 뒤,  1858년과 1919년에 중수를 거친 건물이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해 놓지 않은 불전으로 부처님 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고 적멸보궁에는 아무런 성상도 두지 않고 불탑에만 예배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건물이다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적멸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보궁 위의 닫집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하였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1975년 11월에 도난당하였다고 하니 애석할 따름이다.



     

     

    보궁 내의 신중단의 신중탱

     

     

     

     

    보궁 내의 동종

     







    극락교를 지나 적멸보궁에 이른다.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정암사는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기에 대웅전 대신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적멸보궁을 두었다.  이러한 성지를 보궁이라 한다.


    정암사는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기도의 성지가 되고 있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10여곳의 사찰중 이곳이 갖는 의미는 여타 사찰과는 사뭇 다르다.

    문수보살에게 직접 자리를 지정 받았을 뿐 아니라, 율사가 말년에 수행하다 입적한 곳이기 때문이다


    쾌적한 날씨에 한 가닥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산중이지만 금방이라도 풍경 소리가 들려올 듯 산사는 고즈넉하기만 하다.


    지금의 건물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인데, 「정암사사적」에 따르면 1770년(영조 46)에 중수한 모습이 남아 있다. 그 뒤에도 1858년(철종 9)과 1919년에 각각 중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정암사 극락교 뒤로    이렇게 정암사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극락교를 건너와 일심교를 건너 산중턱에 있는 수마노탑으로 향한다.

     




    기념품 판매점을 지나 다리를 하나 더 건너면 완만한 산길이 나온다.  왼편 계곡으로는 열목어 서식지가 이어진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지나 10여분 남짓 가파른 계단길을 꽤 오르면 수마노탑을 만나게 된다.









    경내에도 수마노탑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가을이 물들어 있다.





    수마노탑으로 오른다. 오래된 돌담 흔적이 남아 있는 전나무숲에서 시작되는 이 가파른 산길은 정암사가 간직한 아름다운 유산 가운데 하나다.








    수마노탑으로 가는길은 지그재그식 계단으로 잘 이어져 있다.





    정암사  수마노탑(淨巖寺水瑪瑙塔) - 보물 제410호


    누군가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누군가는 기념사진을 찍고...   언제나 그렇듯 사찰이 품고 있는 기운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연등과 파란 하늘이 참 아름답다.





    산길은 200m가 채 안되지만, 가파른 돌계단 길을  쉬어가며 오르면 탁 트인 경치를 내다보고 서 있는, 높이 9m의 7층 모전 석탑 수마노탑에 닿는다.

     

    수마노탑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해 놓은 곳이며, 탑돌이를 하면 좋다.

    자장율사가 643(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이 곳 갈래산까지 무사히 가져온 마노석을 쌓아 만든 탑인데 용왕의 도움으로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마노석을 옮겼다 하여 수마노탑이라 불린다.

     

    본디 자장율사는 금탑, 은탑, 수마노탑의 세 탑을 쌓고 부처님의 보물들을 담았다고 한다.

     

    탑의 훼손을 우려하여 금, 은탑은 깊은 산속으로 숨겨두어 수마노탑만이 전설을 전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정암사 뒤편 천의봉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절은 636(신라 선덕왕 5)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신보를 얻어 귀국한 뒤 세운 절로 이 탑에 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현재 법당에 불상이 없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 모전석재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모전석재는 회록색의 수성암질 석회암인데, 길이 30~40cm, 두께 5~7cm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전()처럼 보인다. 1층은 폭 178cm, 높이 103cm로 크며 남면 중앙에 감형의 방광을 만들고 가운데 1매의 판석을 끼웠는데 중심에 철제 문고리를 달아 문비임을 나타내고 있다. 옥신석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낮아 높고 불안정해 보인다.






    옥개석은 비교적 넓은 편으로 추녀 밑에 약간 반전이 있으며, 층급받침은 1~71단씩 줄어 1층은 7단이고, 7층은 1단으로 되어 있다. 낙수면의 층단도 각 층마다 1단씩 줄어 1층은 9단이고, 7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 끝에는 풍령이 달려 있다. 상륜부는 화강암 석재로 된 노반 위에 청동제 상륜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꽃 모양으로 투각된 오륜 위에 복발·보륜·병형이 있고, 병형의 목에서 4개의 철쇄가 나와 4층 옥개까지 늘어져 있다. 맨 위에는 4각으로 돌출된 수연형이 있다.

    1972년 해체·수리할 때 5개의 탑지석과 기단부의 적심부에서 청동합·은제외합·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1770(영조 46), 1778(정조 2), 1874(고종 11)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지붕돌 네 귀퉁이마다 걸린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잡티 없는 맑은 소리를 들려준다.

    정말 탑을 어떻게 조성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간이 좁다.   딱 탑 앞에 3명 정도가 참배를 하면 좋을 정도로..

     

    수마노탑에서 소원하나 빌어 본다...   마음을 비우라 했건만...






    수마노탑에서 바라본 정암사 전경으로 내려다 본 정암사 경내가 참 포근해 보인다


    절 뒤편의 가파른 산비탈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수마노탑  앞에 서면 정암사 주변의 협소한 골짜기와 가파른 산비탈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같다.  일주문과 절 마당이 아득히 내려다보이고,  갈래 마을 쪽의 산줄기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눈 덮인 2013년 12월에도 와 보고 곱게 단풍으로 치장한 가을에도 와 봤으니 새싹이 막 돋을 무렵에 한번쯤 다시 오고 싶다.






    정암사 입구 주변의 산들도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수마노탑에서 오르 낼리는 길은 지그재그식 계단으로 잘 이어져 있다.








    정암사 문수전과 요사가 보인다...







    청량한 가을을 맞는 돌탑들도 그저 이쁘다정암사 문수전과 요사 위로 삼성각과 자장각이 나란이 붙어 있다.. 








    사찰 사이로 맑은 계곡이 흐르는데 열목어가 산다고 한다.

    수온 20도 이하가 안되면 살지못하고 눈에 열이 많아 눈이 빨개서 열목어인 천년기념물 제 73호인 열목어 서식지인 정암사 계곡

    눈으로만 봐도 1급 청정수임을 알 수 있는 맑은 물이었지만 열목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정암사 문수전


    2013년에 왔을때에는 정암사 문수전이 없었고 관음전이 여기에 있었는 듯 싶다 (?).... 


    정암사는 적멸보궁이 있기 때문에 대웅전은 없고 문수보살이 모셔진 문수전이 상당히 큰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정암사 문수전 내부에는 문수보살을 모셔 두었다.






    정암사 문수전의 신중탱






    정암사 문수전 우측의 스님 수행공간







    향 문수전 왼쪽의 육화정사





    육화정사는 종무소겸 요사로 팔각지붕에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다.







    고요함 속의 풍경 소리마저 아늑하다.






    문수전과 육하정사 사이를 지나 산기슭으로 오르면  관음전과  






    삼성각(三聖閣).  자장각(慈藏閣)을 만난다.






    문수전 뒤쪽을 오르면 아담한 크기의 관음전과 삼성각. 자장각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다.






    2013년에 왔을때만 해도 관음전은 육화정사 옆 문수전 자리에 있었는데  이곳 위치로 최근에 불사한 관음전이다..  





    관음전 내부의 관세음보살














    삼성각으로 오르며 바라본 관음전 측면






    향 관음전 우측으로  삼성각. 자장각이 자리한다...









    삼성각(三聖閣)은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다.

     

     

     

     





    향 삼성각 내부의 칠성(七星)을 중심으로 좌측의 산신(山神)과  






    향 삼성각 내부의 칠성(七星)을 중심으로 우측의 독성(獨聖)






    삼성각 옆으로는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를 봉안한 자장각도 보인다.   자장각은 자장율사를 모신 전각이다...


    대덕 자장은 김씨로서 본래 진한의 진골 소판(蘇判`신라의 3등급의 벼슬) 무림의 아들이다.   무림은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이에 불교에 귀의하여 천수관음보살에게 자식 하나 낳기를 기원하면서 ‘만약 아들을 낳으면 희사하여 불법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다리로 삼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윽고 자장의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이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공교롭게도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었다.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고 했다.

     

    정신과 뜻이 맑고도 슬기로웠으며 문장이 날로 더했으나 속세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양친이 일찍이 세상을 뜨자 마침내 처자식을 버리고 토지와 집을 버리고 원녕사(元寧寺)를 세웠다.   홀로 깊고 험한 곳에 거처하면서 이리나 호랑이도 피하지 않았다.   고골관(枯骨觀`죽은 사람의 뼈,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법)을 닦으면서 조금이라도 게을러지고 피곤한 기색이 있으면 곧바로 작은 방을 만들어 주위를 가시덤불로 둘러치고 그 속에서 벌거벗고 앉아서 움직이면 번번이 가시에 찔리도록 했으며 머리는 대들보에 매달아서 정신이 흐려짐을 막으면서 수도해서 신라의 큰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명사찰을 가면 지장율사의 기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만큼 당대에 빼어난 고승이었던거 같다.



     

     







    삼성각 앞에서 바라본 스님 수행공간과 문수전 처마가 정겹다...








    관음전 앞에서 바라본 정암사 입구에 있는 참 고운 전각의 스님요사






    관음전 앞에서 바라본 육화정사





    문수전 마당을 내려서며 바라본 적멸보궁 구역이다...








    정암사를 나가다가 다시금 일주문 들어 서면서  맞은편 산등성이에 보이는 수마노탑을 바라본다..










    비록 절 크기로는 많이 크지 않지만 천년 고찰이면서 기도 도량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곳 정암사를 나간다.








    봄여름 환상의 자연화원을 이루는 함백산 만항재로 향하는 입구에 위치한 정선 정암사 입구주변 주차장. 가을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정암사 입구부터 만항재 까지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드라이브 코스이다.

     

    워낙에 만항재로 향하는 드라이브코스가 아름답기도 하고 비록 절 크기로는 많이 크지 않지만 천년 고찰이면서 기도도량으로서 이름을 떨친 정암사 역시 조용히 가을 운치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 정선이나 태백 여행가면 함께 들려보면 좋을 듯 하다.

     

    미리 다녀온 좀 이른 가을 여행은 정선으로 가길 참 잘했다. 또 힘내서 남은 10월을 힘차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소리 없이 물들어 가는 단풍처럼 나도 나만의 색을 더 깊게 물들여 가기 위한 시간임을 잊지 말자. 나의 색을 위해 열심히 깊어지고 있는 것임을....

     





    그렇게  민둥산 억새와 적멸보궁 정암사를 보고  태백을 지나 울진을 저쳐 다시 삶의 터전인 포항으로 향하다 바라본 멋진 석양도 보너스로 받아본다..


    길은 걸어가 봐야 길을 알게 되고 산은 올라 가 봐야 험한 줄 알게 된다.
    길이 멀어지면 말의 힘을 깨닫게 되고 산이 높아지면 공기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사람을 알게 되고 긴 세월이 지나가 봐야 그 사람의 마음도 엿보게 된다.

    동녘은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물은 끓기 직전이 가장 요란하듯  행복은 막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다가온다.
    서두름 없는 초지일관 한결 같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가꾼 나의 하루를 마무리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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