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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등명낙가사
2016. 8. 1.
2016. 7. 28 ~ 29. 1박 2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설악산 오세암 기도 길에 오면서 들러본 강릉 등명낙가사 이다.
늘 1년에 한번씩 봉정암 기도위해 지나치던 등명낙가사를 2007년 이후 이번에 9년만에 다시 들러 본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 동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약 30분을 달리다 보면 화비령 동쪽 괘방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찰(大刹) 등명낙가사를 대할 수 있게 된다. 등명낙가사는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해수관음도량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다사(水多寺). 자장율사는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쉼 없이 침범하여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곳에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건립하고 절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에 세운 탑은 3기로서 그 1기는 현존하는 5층석탑이고, 다음 1기는 6·25때의 함포사격으로 소실되었으며, 마지막 1기는 절 앞의 바다 속에 세운 수중탑(水中塔)이었다고 한다.
호국의 의지 속에 창건된 이 절은 신라 말기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고, 고려 초기에 중창하여 이름을 등명사(燈明寺)로 바꾸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이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등명사라 한 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 때 이 절이 강릉도호부 내에서는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修學徒)가 3경(三更)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한 데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현재 절 근처에는 고려성지(高麗城址)가 있다. 이 성은 고려시대에 등명사의 중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짓고 성을 쌓았다는 사방 1Km의 석석이라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의 사찰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등명사는 조선 중기에 폐허가 되었고, 이 곳에 다시 절이 들어선 것은 1956년 경덕(景德)스님에 의해서 였다.
처음 조그마한 절을 지은 스님은 1천일 관음기도 끝에 해수관세음보살(海水觀世音菩薩)을 친견하고 침술을 점지 받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고,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자 스님은 절을 증축하고, 관세음보살이 계신 이곳은 보타락가산이라 하여 낙가사로 사찰명을 정하는 한편, 옛 사찰명인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 명명하게 되었다. 그 뒤 경덕스님은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과 같은 명실공히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일주문 앞의 포대화상
등명낙가사 일주문은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천정에 용을 새겨 놓았다.
일주문에는 '계방산 등명낙가사' 편액이 걸려 있다.
여의주를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느껴진다.
일주문 한가운데는 돌기둥이 서 있고 그 돌기둥에는 '대한민국정동'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양의 궁궐에서 정동쪽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 동쪽을 가르킨다. 일주문이 우리나라의 정동쪽의 동해를 보며 서 있다는 표식으로 나침판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일주문 옆의 거북과 용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탑이 보인다. 등명사가 폐사된 뒤 1956년 경덕(景德)이 옛터에 절을 중창하고 낙가사라 개칭하였는데 경덕선사 부도탑이 뒷줄 맨 왼쪽에 있다.
일주문 들어서 오른쪽, 소나무 뒤로 돌탑과 등명감로약수가 보인다.
등명 낙가사 경내에 위치한 약수는 현재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서 영상전에 모셔진 오백라한님을 조성하여 봉안한 후부터 발견되어 샘 솟고 있는 신비한 약수로써 국립보건원에 의뢰하여 분석한 바 다음과 같은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약수를 마셨을 때의 효능은 빈혈증, 위황병, 만성 출혈증. 만성 말라리아에서 오는 빈혈과 비종, 만성 신경증
신경쇠약, 신경통, 소화불량, 허약체질, 위장병, 투병 후 회복 등등 목욕을 했을 때의 효능은 만성 피부염. 무좀, 관절염 신경통, 습진, 피부 개음 및 피부병 일체 소족에 땀이 날 때. 피부에 고름이 흐를 때 여러 가지 부인병 등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등명낙가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렇게 멋진 돌탑이 쌓여 있다. 너무 멋지고 정겨운 옛 모습이다. 직진으로 그대로 올라가도 불이문과 마주친다.
큰 법당인 영산전과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같은 예쁜길도 있다.
이곳은 종무소이다. 이곳에서 멀리 동해의 푸른바다가 보인다. 물론 절 어디에서봐도 바다가 보인다.
불이문이다. 올라가는 중간에 공양간이 있다. 극락보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앞 건물의 1층으로 길이 되어있어 그곳으로 통해서 올라가면 된다.
이곳은 극락보전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정토삼개경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극락 국토가 있다고 한다.
극락이란 명칭은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안양으로 번역된다.
아미타불은 성불전에는 한나라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로서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48가지 원력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셨다.
아미타불은 그 광명이 없다고 하며 극락전을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등명낙가사 극락보전 편액
극락전 가운데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고해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음보살과 자장 보살이 자리 잡고 있다.
극락전 삼존불 뒤쪽에는 극락의 법회 장면인 극락회상도가 모셔져 있다.
등명락가사에서는 선망부모 조상영가와 일체인연 있는 영가들을 위해 평생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먼저가신 조상님들께 자손으로 면목이 없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 하지못해 한 스러울 때, 부모보다 일찍 죽은 자식이 마음에 걸릴 때, 사건 사고로 비명에 가신분이 걸릴 때, 친정 부모님 제사 지내기가 어려울 때, 종교 간에 갈등으로 집에서 제사지내기 어려울 때, 이런 분들의 위패를 절에 모시면 영가로 인한 장애와 나쁜 액운이 없게 되며 가정은 편안해지고 자손은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며 효도하는 가풍이 심어지고 만사가 원만해 진다
위패봉안자는 매년 음력 3월 16일 합동제사를 지내드리며 설날, 백중(음력7월 15일), 추석에 합동제사를 지내드린다고 한다.
극락보전 문은 연꽃.거북등 그림도 이쁘고 단청의 색도 은은하니 화려하지 않아도 꽤 멋스러운 꽃살문이다.
극락보전 벽에는 부처님 일대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극락보전은 1995년 4월 19일( 음 3월 20일) 청우 스님께서 낙성식을 봉행하셨다고 한다.
극락보전 위로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이 절의 주전인 영산전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 회상도와 나한을 모신 영산전 내부 중앙에 영산회상도를 배경으로 가운데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연등보살과 미륵보살상의 삼존불이 그리고 삼존불 뒷편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입상을 모셨다.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에는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보살과 일광, 월광보살, 십대제자, 사천왕 등을 모셨다.
부처님 좌우로 옥으로 만들어진 500나한을 모시고 있다.
나한은 '응공' 이라고도 하며 (마땅히 공경 받으실 분) 금생에서 모든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난 분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과 동등한 신통력을 갖춘분 이라고 하며 부처님 당시의 제자 모습이기에 근엄하지도 않으며 이웃같이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불단 좌우에 모셔진 오백나한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셨고 북한을 같이 고향으로 두신 고경덕(高景德), 손경산(孫京山) 두 스님께서 오백나한의 힘으로 남북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인간문화재 해강(海岡) 유근형 옹의 3년 6개월의 각고 끝에 1977년 10월 오백나한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한분 한분이 옛부터 전승되어오던 나한도에 근거하여 고려정자 비법 그대로 조성하였기에그 독특함을 한층 더해준다,
또한 이 나한상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부요직 인사들이 동참해서 간절한 남북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불단을 바라보며 좌측인 서향으로 104위 화엄신중님과 지장보살 탱화를 모시고
불단을 바라보며 우측인 동향으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과 감로탱화를 모셨다.
1982년 (음) 5월 5일 영산전 낙성식을 주지 청우스님께서 봉행하셨다. 지금 등명락가사의 전각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새로 건립한 것들이라고 한다.
영산전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모습이다.
영산전 옆쪽에 있는 범종루 이다.
영산전 뒤쪽에 있는 삼성각 이다. 지금 등명낙가사는 온통 불사중이라 어수선하고 삼성각으로 가는 길은 한창 포크레인으로 공사중이라 삼성각 진입이 통제된 상태라 삼성각 내부는 볼수가 없었다.
약사전 오층 석탑으로 가는 길이다.
만월보전은 약사여래불이 계신 곳이다.
만월보전 (滿月寶殿), 약사전은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의 불상을 모신 법당으로 약사여래는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로써 대의왕불(大醫王佛) 이다
약사여래는 과거에 12대원을 세워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난을 소멸시키며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하고 또 부처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無常菩리)의 묘과을 증득케 하겠다고 서원 하였다.
약사여래불상의 형상은 큰 연화 위에 왼손은 약병을 오른손은 시무외인(두려움을 없애는)을 짓고 있다.
좌우에는 일광(日光)변조보살과 월광(月光)변조보살이 협시해 있다
불상 뒤에는 약사회상도를 모셨는데 불설약사여래본원경에 의하면 빨간 구슬처럼 보이는 해의 일광, 하얀 모양 달의 월광보살과 12신장이 호법신장으로 되어 있다.
간혹 사천왕을 12신장과 같이 모시는 경우가 있다,
만월보전 우측향의 신중탱
만월보전 좌측향
만월보전 꽃살문도 곱다.
1982년에는 청우(淸宇)대사가 극락전· 약사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만원보전 앞에서 바라본 오층석탑과 경내 전경이다.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오층석탑과 동해바다
옛부터 정동쪽은 약사 여래도량으로 동방만원약사유리광 여래보전 이라고 한다.
약사전 뒤 푸른 대나무 숲속에는 천년전 옛 등명사 보궁본당 터 만이 고려오층석탑을 앞에 두고 오늘도 묵묵히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등명사지 오층석탑 (燈明寺址 五層石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등명사지 오층석탑은 낙가사 경내에 서 있는 석탑으로 이곳은 원래 등명사 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창건 당시인 선덕여왕 때 세워진 탑이라고 하나 양식상으로 보면 고려 초기 탑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5층 석탑으로 1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이지만 2층 부터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같은 돌로 만들어 졌다.
옥개석은 받침이 3단인데 5층만 2단이며, 1층 탑신석의 동쪽 면에는 문틀과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다
불탑의 꼭대기 부분 상륜부(相輪部)에는 네모난 지붕모양의 장식 노반(露盤)과 연꽃의 꽃잎이 위로 향하여 벌려진 모양 앙화(仰花)만 남아 있으며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다,
기단부의 장식과 탑 몸체부 등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으로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아래층의 옥개석과 위층의 탑신석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등명사지 오층석탑은 같은 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을 하나의 돌로 만든 점이 독특하다. 특히 2층 기단부에는 돌자물쇠를 채워 놓았던 관계로 탑 안의 보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왔다
원래는 이와 같은 탑이 3개였는데, 하나는 함포사격으로 파괴되어 그 잔해만이 바닷가에 남아 있고, 또 하나는 수중탑(水中塔)이었으나 언제부터인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만월보전 옆으로 달마도를 제작 판매하는 곳이 있다.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만월선원이다.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만월선원과 마주보는 요사채 이다.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누각이다.
아름다운 금오산이 옥봉을 이고 힘차게 솟은 푸른파도 공중에서 부서진다,
학처럼 파리한 스님은 품격을 자랑하고 뛰어난 경치를 땅도 공교로움을 뽑낸다,
닭도 울지 않은 새벽에도 루(樓)에는 해가 뜨고 신기루 이는 곳에 해풍이 산들산들
탑대(塔臺)는 기이한 정취를 서로 알것같아 아침해를 기다리려니 만물의 붉음이 드러나네
(1270년 등명사에서 이승휴 지음)
망망한 물결을 절이 누르고 앉았어니 오르매 마치 바다 한가운데 있는듯,
발 걷어니 대 그림자는 성긴듯 빽빽 베개를 의지하니 여울소리는 높으락 낮으락
고요한 밤 경루에 향 촛불이 싸늘하고 달 밝어니 객실에는 갈건이 써늘해라
이런 좋은 경치에 머물 인연이 없어서 온 종일 먹고 살기에 바쁘다니
(1160년 등명사에서 김돈시 지음)
누각에서 바라본 만월선원 모습이다.
만월선원 아래로 전등선원이 새로이 조성되어 있다.
전등선원 앞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누각옆의 자잔한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다.
누각옆 포대화상앞에서 바라 본 불이문 가는쪽 전경이다.
이제 일주문으로 향한다.
일주문으로 향하다 뒤돌아본 전경이다.
이제 일주문이 바라다 보인다.
태백산맥의 한 줄기를 물려받아 동해의 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괘방산의 중턱에 다소곳이 위치한 등명낙가사는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강릉 지방 해수관음도량의 요채라 할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인 ‘등명낙가사’를 설악산 오세암 기도길에 다시 들러 보며 오늘도 고맙고 감사한 맘 내려 놓으로 우리는 그렇게 길을 달려 포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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