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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으로 유명한 불갑사 (전남 영광군)사찰여행/전라도 2018. 4. 16. 21:39
꽃무릇으로 유명한 불갑사
2018. 4. 16.
2018. 4. 15. 대한불교산악회 자연보호 등반대회 및 한마음 합동 법회 참석위해 산빛어울림 불교산악회와 함께한 불갑산 산행하면서 들머리에서 들러본 불갑사이다...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법당에서 아침 예불을 올린다..
2017. 9. 10. 산빛어울림님들과 꽃무릇 보러 왔다가 7개월여 만에 다시 들린 불갑사이다...
나이가 660년이 된 25m 높이에 둘레가 5.9m 난 된 큰 느티나무가 쉼터를 제공해 준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불갑사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4개의 나무 기둥과 중간에 두 개의 느티나무 기둥이 보태어져 있어서 특이하다. 불갑사는 그러고 보니 좀 특별한 곳이다..
꽃무릇 공원을 산책하며 올라가다 만난 호랑이...
1908년 농부가 잡았다는 불갑산 호랑이로 현재 유달초등학교에 박제표본으로 있으며, 100년 기념으로 호랑이 모형과 굴을 재현해 놓았다..
현재 유달초등학교에 이곳 모악산에서 붙잡힌 호랑이가 박제로 보관되고 있는데, 남한에서 포획된 것으로 유일한 박제라고 한다.
일주문에서 불갑사로 오르다보면 이렇게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도 많다.
정형택 시인의 시가 옆에 전시되어 있어 시선을 끈다.
상사화 축제로 유명한 절이다 보니 불갑사 사찰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볼거리가 너무 풍성했다.
상사화 공원입구의 불갑산 산행 안내도..
우리는 불갑사를 보고 불갑저수지.동백골을 지나 구수재로헤서 용천사로 내려가는 짧은 둘레길 코스의 산행을 하기로 한다. 1시까지 대한불교산악회 자연보호 등반대회 및 한마음 합동 법회 참석위해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이번은 힐링 둘레길 걷기다..
공원에 탑원을 조성해 두었다..
해탈교 쪽 부도를 만나러 간다....
일주문에서 상사화 군락지를 지나면 부도전..
부도전에는 고려시대 조성된 각진국사 자운탑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조성된 5기, 근대 이후 조성된 4기의 비석이 있다.
좌측의 비석은 정삼품통정대부김공상기공덕송비(正三品通政大夫金公商基功德頌碑)이다.
1939년 세웠으며, 높이 204.5cm, 비신 폭 48.7cm이다.
그 뒤편에 비석은 1940년 세워진 설제대사(雪醍大師)기념비로 높이 111.5cm, 비신 폭 40.2cm이다.
우측 척번째의 부도는 각진국사자운탑(覺眞國師慈雲塔)으로 송광사 16국사 중의 한 분인 각진국사의 부도이다.
1355년에 조성된 것이며, 높이 260cm, 탑신 폭 35cm이다.
전체적인 외양은 송광사 16국사 부도와 유사하지만 탑신이 매우 좁고 옥개석은 지나치게 커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다.
그 옆 두번째로 1680년에 조성된 범종형의 회명당 처묵대사탑(晦明堂 處墨大師塔)은 높이 164cm, 탑신 폭 71cm이다.
전형의 모습에서는 벗어났지만 대체적으로 범종형 부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번째의 만자명탑(卍字銘塔)은 탑신에 당호가 없고 만(卍)자가 새겨져 있어 붙여진 부도이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40.5cm, 탑신 폭 38.7cm이다.
네번째는 서산당탑(西山堂塔)으로 대체적으로 바로 옆의 만자명탑과 닮았지만 탑신이 팔각기둥형이다.
탑신의 명문은 서산까지 확실하지만 나머지는 판독이 곤란하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28cm, 탑신 폭 29cm이다.
다섯번째, 이름을 알 수 없는 일명부도는 전체적인 외양이 각진국사자운탑과 흡사하다.
다만, 기단부가 간략화 되었고, 옥개석이나 상륜부가 투박해 지는 등 후행의 모습이 뚜렷하다.
마지막의 청봉당(晴峰堂)의 부도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85cm, 탑신 폭 57.5cm로 비교적 큰 편이다..
불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1741년(영조 17)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설을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절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고, 사전(寺田)이 10리에 미쳤다고 한다. 그 뒤 많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법릉(法稜)이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 대웅전의 본존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34년해릉(海稜)이 중창하였는데, 창건 당시의 규모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었다.
1644년조암(照巖)이 중수하였고, 1654년(효종 5)과 1675년(숙종 1)에도 중수가 있었다. 1680년채은(采隱)이 대대적으로 중건하였고, 1702년·1705년·1706년에도 팔상전과 탱화·나한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다. 1802년(순조 2)득성(得性)이 중창한 이후 1869년(고종 6)설두(雪竇)가, 1876년설파(雪坡)가, 1879년동성(東城)이 각각 중건하였다. 1904년에는 금화(錦華)가 만세루를 중수하고 1909년에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영광읍에 불갑사포교당인 원각사(圓覺寺)를 세웠다. 1937년만암(曼庵)이 명부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1938년에는 설제(雪醍)가 개수하였다.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년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 칠성각· 일광당(一光堂)· 명부전(冥府殿)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만세루(萬歲樓)· 향로전(香爐殿)· 산신각· 범종각· 세심정(洗心亭)· 천왕문(天王門) 등 15동의 건물이 있다.
금강문. 천왕문. 만세루가 일직선으로 보인다..
불갑사(佛甲寺)는 호남(湖南)의 명찰(名刹)로 유서(由緖)깊은 고찰(古刹)이다.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가 남중국 동진(南中國 東晋)을 거쳐 백제 침류왕 1 년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이 제불사(諸佛寺)의 시원(始原)이요 으뜸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하는불갑사 금강문을 들어선다.
불갑사는-- 불교가 전해진 뒤 처음 건립됨으로써 모든 사찰의 으뜸이 된다고 하여 이름에 부처 불에 첫째 '갑'자를 쓰는 절이 되었다 한다...
금강문에 걸린 편액의 글씨체가 화려하다.
금강문에서 보니 천왕문과 만세루가 나란히 보인다.
금강문 들어서서 좌측으로 보이는 불교용품 판매 및 찻집인 명경전 이다..
금강문 들어서서 우측으로 보이는 불갑사 성보박물관이다..
수다라 성보박물관
불갑사 지장시왕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8호)
지장시왕도는 지장을 본존으로 하여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범천, 제석천, 사자, 판관, 사천왕 등을 배열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화기의 기록으로 1777년 영산회상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밝고 선명한 색조, 가늘고 섬세한 필법, 안정적이면서 원근감이 느껴지는 화면 구성, 다양한 모습의 시왕 및 권속들의 표현 등 우수한 회화적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당시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불화승 비현, 복찬, 쾌윤 등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하단의 부분적 손상이 있으나 전반적인 바탕화면과 색상의 보존상태가 좋고, 불화의 가치도 높다.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307호)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행한 설법광경을 도설한 것이다. 화기의 기록으로 제작자와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작품으로 1777년에 비현 등 15인의 불화승에 의해 제작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안정된 구도와 화면의 변화, 양록· 선홍· 양청과 같은 선명한 색조의 사용, 등장인물들의 상호의 표정묘사, 가늘고 섬세한 세필의 선묘 등 18세기 후반의 회화양식을 구사하고 있으며 회화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비현, 복찬, 쾌윤 등으로 이들은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경상도 지역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던 불화승유파의 작가들이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회화작품으로서 예술적 가치도 클 뿐만 아니라 뛰어난 화승들의 작품으로 보존가치가 크다.
불갑사 삼세불회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
삼세불회도는 비단에 채색을 하여 그린 불화로 석가・ 아미타・ 약사의 삼부처를 한 폭에 그린 그림이다. 제작 시기는 필선의 사용이나 구도, 대상의 의습처리, 표현기법, 색상, 문양의 회화적 수법과 불갑사의 불사기록 등으로 추정하여 볼 때 18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삼세불회도 가운데 제작시기가 이른 작품으로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
불갑사 간다라 황금소탑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조선 1764년에 제작. 높이 64.5cm. 건물 중앙에 화마를 막는다고 조각과 회화등으로 설치한것으로, 기와의 양측면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이 있어 갑신년인 1764년 5월에 기와장인 척민(陟敏)이 대웅전의 번와(飜瓦)를 위해 조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동자상
불갑사 명경대
불갑사 소대와 가사함
불갑사 불감
불갑사 불연
불갑사 동종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1호)
동종은 주종기에 따르면 ‘獅子山 鳳林寺 大鍾’으로 1702년(康熙四十一年壬午, 조선 숙종 28년)에 “金尙立子三 金水元 金成元 片手金成奉”에 의해 조성되었음 기록하였다. 불갑사의 동종은 주종기가 남아있어 제작연대와 제작 장인, 봉안처, 시주자가 확인되는 18세기 초의 종이다. 조선후기 동종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종장들의 내력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종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영광 불갑사 목어
영광 불갑사 법고
영광 불갑사 고승들과 진영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금강반야바라밀경언해, 천로금강경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묘법연화경 권1-3, 선종영가집
불갑사 치성광여래도
불갑사 철조여래상
천왕문 사이로 만세루가 보인다..
불갑사 천왕문(天王門)..
가람의 경내로 들어서는 53개의 계단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맞배집이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
영광 불갑사 천왕문 현판
불갑사 사천왕상(四天王像)- 전남 유형문화재 제159호
높이 약3.5m이며, 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조선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상은 균형미와 조화미를 갖춘 거대한 목조품으로 사천왕문 좌우편에 2구씩 배치되어 있다.
소요산(逍遙山)의 연기사(烟起寺)에서 조선 중기 연기조사가 목조로 조각한 것이라고 전한다.
1800년대 말 고창 소요산 연기사의 터가 좋다하여 당시 현감이 절을 소각하고 집을 세웠는데, 1870년(고종 7년) 승려 설두(雪竇)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목선 4척을 동원하여 바다건너 법성포로 들여와 불갑사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천왕문 안에 사천왕탱화를 모셔놓았는데 현재 불갑사에는 “大韓光武八年甲辰二月(대한광무팔년갑진이월)”이라는 연대가 적힌 사천왕탱화가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보림사 사천왕상들과 거의 흡사한 제작기법과 형태를 보이고 있어 흥미를 끈다.
불갑사 사천왕상은 자세라든지 얼굴의 형태 등 전반적인 면에서는 보림사 상과 거의 같은 틀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세부사항, 즉 허리띠, 보관 끈, 천의의 끝자락 등에서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보림사 상보다 규모가 작고 기법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비천상 등 보관 장식이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사천왕상은 불갑사의 격조를 더해주고 있다.
사천왕상은 외모도 준수하지만 몸 안에서 1997년 9월 월인석보 등 보물급 고서 50권이 쏟아져 나와 더 유명하다.
악귀는 모두 8구가 있으며,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천왕문에서 불갑사 만세루(萬歲樓)가 바로 보인다..
천왕문 들어면서 좌측의 범종각..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년 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누각 옆에 참식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만세루 정면에는 불광보전(佛光菩殿)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만세루는 중층의 누각으로 사찰교육을 하는 강당이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과 사천왕문을 연결하는 중심축상에 있다. 여느 사찰의 강당과 유사한 건물로 웅장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만세루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불갑사에는 건물중에 만세루(萬歲樓)라는 누정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의 주공간을 진입할 때 누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다. 화엄사(華嚴寺)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는 낮은 중층의 누각으로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초기 사찰의 강당은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 뜰에 설치하였고, 불갑사도 마찬가지이다.
누각이지만 누하의 높이가 낮아 누하진입방식의 누각은 아니다. 누각 좌우가 개방되어 있어 누각을 돌아 대웅전 앞마당으로 진입하며 선운사 등 비교적 평탄지에 있는 사찰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이다.
널찍한 자연석 초석 위에 누하주를 놓고 그 위에 귀틀을 짜서 상층 마루바닥을 형성하였다. 기둥 상부는 주심포식 공포를 짜고 주간에는 화반을 1구씩 두었는데 전면은 판형이고, 배면에는 귀면을 새겼다.
전후면은 5칸 모두 분합문을 달았는데 주출입문인 배면 어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부에 머름을 들이고 그 위에 문짝을 설치하였다. 구조는 7량가로 짰다. 앞뒤 기둥 위로 걸린 기둥은 구불구굴하게 휜 자연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돋보이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짧은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세운 다음 판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받쳤다. 대들보를 받친 내부 기둥 상부는 주두와 첨차 등을 받쳤는데 단면을 연꽃과 용으로 조각하여 색다르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고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었다. 내부는 통칸으로 트여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구조가 드러난 연등천장이다. 만세루는 불갑사의 여러 전각 가운데 가장 많은 중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앞에서 살핀 대로 1741년 1월에 중수를 마치고 석촌 거사가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02년에 다시 중수한 후 최수준이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78년으로 추정되는 '불갑사만세루중수기' 등이다.
현재 정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축소되었지만 절이 한창 번성하던 조선시대에는 누각의 정면은 7칸에 달했고, 고려시대에는 기둥 높이가 90척에 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의 피해를 딛고 복구하면서 3칸으로 축소되었고, 숙종 때(1674~1720) 다시 7칸으로 복원하였다. 이후 1938년에 설제 스님이 누각 왼쪽이 썩자 한 칸을 줄여서 6칸으로 축소하였고, 1984년에는 수산 지종 선사가 법당이 3칸임을 고려하여 누각을 다시 한 칸을 줄여 5칸으로 개수하였다.
또한 1996년에는 두각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있었다. 현재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교한 꽃살문이 아름다운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호)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 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었다.
대웅전은 전면과 우측 벽 전체가 문이어서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서향 건물에 부처님이 남향한 불단 배치도 특이하다.
부석사 무량수전, 마곡사 대광보전처럼 건물 좌향과 불상의 시선이 직각을 이루는 드문 예 가운데 하나다.
불갑사 대웅전은 특이하게 올라오는 방향에서 봤을 때 출입문이 오른쪽에 있고 불상도 그쪽을 향해 있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 현판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부처님은 서쪽으로 모셔져 있다. 불전함이 보이는 문이 어간 문이다.
특이하게도 오른쪽의 문에서 바라 보아야 석가모니불을 마주할 수 있다. 대웅전이 서향이라 석가모니불이 남향을 하기 위한 방법이겠지...
정면인 서쪽 입면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았는데 꽃살로 짠 문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좌상은 동쪽을 등지고 서향으로 앉아 있고 신중탱은 남쪽에 있다..
삼존불 뒤로는 후불탱화가 있다..
대웅전 내부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의 중앙 불단은 서면을 향한 건물의 방향과 달리 직각으로 남측면을 향해 조성되었는데, 이 불단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아미타· 약사불좌상의 목조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중앙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43cm이고, 좌우에 협시한 불상은 125cm로 주존상이 약간 크게 표현되었고, 각각 존상은 장식이 화려한 팔각 목조대좌를 갖추고 있다.
삼존불상의 조성년대는 최근 본존불상과 협시불의 대좌 안쪽에 쓴 묵서명 개금기와 복장기가 발견됨에 따라 본존인 석가불은 1623년(인조1)에 조성된 뒤 1634년에 개금하였고, 오른쪽의 협시불상도 1634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음이 확인 되었다.
조성기에는 불상은 무염(無染) 스님을 비롯한 10인의 화승들이 조성하였다. 그리고 이후 1743년(영조19)에 두 번째로 개금하였고, 1747년에도 다시 개금하였다고 전한다.
불단 우측의 신중탱화(神衆禎畵)..
최근에 그려진 신중탱화로서 원본은 몇 해 전에 도난 당하였다고 한다.
구도나 분위기가 원본을 충실히 따르고 대체로 구도나 색감으로 보아 19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여겨진다..
불단위에는정교하게 조각된 닫집을 설치하였고 닫집 천정에는 용들과 연화봉. 구름과 극락조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불국토를 재현했다..
불갑사 목조석가여래 삼존불좌상(보물 제1377호)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무릎이 넓어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도우·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충청도·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삼출목
대웅전 바닥은 우물마루 이다..
대웅전 내부 벽화
불갑사 대웅전 불단 뒤에는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와 비슷한 둥근 보름달에 모셔진 수월관음보살상 그림이 모셔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백의 관음전 아래로는 부처님 불단과 연결된 환기통로 비슷한것 (?) 이 있었다..
대웅전 안에서 바라본 문살
대웅전 현판
추녀 귀공포 상부에도 용머리를 새겨 넣어 화려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불갑사 대웅전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 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다.
남측과 서측면에 달린 꽃살문은 연화, 국화, 금강저 등의 문양을 새겨 짰는데 현존 꽃살문 가운데서도 수작에 속한다.
절에 세워진 건축물 중에서 부안 내소사 대웅전의 꽃문살을 손에 꼽는데 불갑사 대웅전 문에도 다양한 꽃문살과 기하학적인 불교 도안이 새겨져 있고 도깨비 형상의 귀면탈 문양이 그려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대웅전 향 좌측 외부벽은 부처님 불단 뒤의 문을 중심으로 우측 외부벽화
동쪽에는 후불벽이 붙어 있는 까닭에 문을 내지 않았다.. 좌측면 외부벽 중에서 문을 중심으로 좌측 외부벽화
좌측면 외부벽 중에서 문을 중심으로 우측 외부벽화
남측면 3칸에도 2분합문인데 역시 꽃살문을 달았다.
영광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있다)는 화마(火魔)예방을 위해 만들었다.
대웅전 용마루 귀면(鬼面)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三尊佛臺)가 있는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다.
특히 대웅전 처마 조각과 연꽃 문양을 세련되게 조각해 끼워맞춘 대웅전의 문살 등은 옛 선인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엿보게 한다.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문을 연화문과 국화문, 보상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칸에는 소슬빗살 무늬로 처리하여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불갑사 괘불지주
대웅전 앞 마당의 괘불지주 2쌍이 자연스러운 배치를 하고 있다.
괘불지주에는 강희 49년(1710년)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불갑사에는 1710년경에 조성된 큰 괘불이 있었으나, 용천사에서 빌려다 사용하던 중에 6.25동란 때 용천사가 소실되면서 애석하게도 함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불갑사 각진국사 자운탑
각진국사는 고려말 충정왕, 공민왕대의 왕사였으며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한 분으로서, 만년에 불갑사에 주석하여 불갑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이 각진국사 자운탑은 고려 공민왕 8년(1359년)에 이달충이 세운 고려 후기 작품이다.
대웅전 뒤 팔상전 우측과 대웅전 옆 계단 위의 향로전(香爐殿)..
향로전은 정면 5칸,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설선당(說禪堂)은 스님들이 불경을 공부하는 교육장소이다..
설선당 옆의 탐플스테이 공간의 사용하는 출입문이 특이하다..
설선당 옆의 문수전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승당인 일광당은 대웅전 향 좌측에 있다..
승당인 일광당이다..
일광당(日光堂)은 대웅전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당초에는 선당(禪堂) 용도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승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방과 부엌, 툇마루로 나뉘어 있는데 좌측 2칸은 부엌이며 우측 3칸은 방을 들이고 배면쪽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이며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고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일광당 뒤의 수각
백운당
대웅전 향 좌측 일광당 옆에 위치한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처마는 홑처마이며 구조는 간결한 5량가를 결구하였다.
대웅전 뒤편 왼쪽에 있었던 것을 대웅전 우측으로 옮겨온 것인데, 각진국사가 중창했을 당시에는 이 자리에 적묵당이 있었다..
1937년 만암(曼庵)이 명부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1938년에는 설제(雪醍)가 개수하였다.
명부전에는 이 지장보살이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사후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이 안치되어 있다.
명부전 내부는 뒷벽에 붙여서 ㄷ자형 불단을 두고 존상을 안치하였다.
중앙불단에는 지장삼존상을 봉안하였고, 명부세계에서 지장보살을 도와 사자(死者)를 심판한다는 시왕상 10位와 판관, 녹사, 사자, 인왕 등을 각각 2位씩 모셨다.
시왕상은 1654년에 조성된 작품으로서 조선후기 목조조각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례이다.
지장보살은 양감 넘치는 얼굴에 승문형 민머리를 하고, 눈은 가늘고 길게 아래쪽을 내려보고 있으며 살짝 웃는 인상을 풍긴다.
이마에는 백호가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으로 걸치고, 내의는 가슴부분에서 띠로 돌려 고정하였는데 띠 위부분의 내의가 꽃잎모양으로 주름져 있다.
옷주름은 어깨를 타고 배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흘러 두 무릎 사이에서 부채꼴로 퍼지게 묘사하였고, 수인은 아미타구품인을 결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시립하고 있다.
그리고 1654년에 조성된 지장탱, 조선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업경대, 목조 동자상 등이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나,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후면에서 본 명부전이다..
대웅전 뒤로 조사전. 칠성각과 팔상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왼쪽 조사전 앞에는 벽돌로 세운 굴뚝이 있는데 몸체에 그려진 웃는 얼굴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조사전으로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칠성각과 나란한 팔상전
칠성각
칠성각은 칠성단을 중앙으로 향우측에 산신단을 향좌측에 독성단을 모셔 놓아 산신각 역할을 하고 있다..
팔상전은 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무량수전
삼불상과 함께..
원불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문살이 곱다..
전각 벽에 그려진 불화
무량수전은 삼면이 불화로 장식 되었다..
불갑사 5층 불사리 석탑
불사리탑 조성비
불사리탑에서 바라 본 향적전
도양실과 정신각
문수전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뒤 계단위의 향로전
靈月樓
靈月樓 앞의 장독대
요사 청풍루
보장각으로 종무소로 사용중이다.
이제 불갑사를 거의 돌아 보고 청풍루 앞에 섰다..
청풍루 옆으로 나와서..
불갑사 저수지를 거쳐서..
불갑사의 봄을 기억하며 불갑저수지.동백골을 지나 구수재로해서 용천사로 내려가는3km 가량의 짧은 둘레길 코스의 산행을 하기로 한다. 1시까지 대한불교산악회 자연보호 등반대회 및 한마음 합동 법회 참석을 위해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이번은 힐링 둘레길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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