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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북경 4. 5일째
    중국 - 북경 2010. 4. 1. 17:33

     

    중국 북경 4. 5일째

     

     

     2010.  4.  3.

    2010.  3.  27.  네째날...........

     

     

    우리 세자매는 북경에 살고 있는 막내 은희집에서 일찍 나와 오늘 일정인 천안문광장, 자금성, 경산공원, 후동거리, 십찰해를 보기로 한다...

     

     

     

     

     

     

     

    ○ 천안문 광장

     

     

     

     

     

     

     

     

     

    천안문(天安門) 광장

     

     

     

     

    ㉠ 천안문 광장의 내력은

     

     

    명청시기, 천안문 광장은 황성 정문 앞의 광장으로 천안문의 지위를 나타내고 돋보이게 하는 凸형의 광장이었다.

     

     

    명 초기,  현재 모주석 기념당 위치에는 "대명문(大明門)"이라는 성문이 있었다.

     

     

    청대에는 "대청문(大淸門)"이라 했으며 청이 몰락한 이후에는 "중화문(中華門)"이라 개명했다. 그리고 동서 장안가에는 각각 장안 좌문과 장안 우문이 있었으며이3개의 문 사이를 붉은 벽으로 둘러놓았는데 이것이 면적 11hr의 당시의 작은 천안문 광장이었다.

     

     

     

     

    ㉡ 현재 천안문 광장의 형태

     

     

    1957년 확장 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광장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면적은 40hr으로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다.   남북 880m,  동서50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의 광장이다.   광장 북쪽은 천안문,   남쪽은 정양문,   서쪽은 인민대회당,   동쪽은 중국혁명 박물관과 역사 박물관,   중앙은 인민 영웅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뒤에는 모주석 기념당이 위치한다.   천안문의 서쪽은 중산공원이며 동쪽은 노동인문 문화궁이다.

     

     

     

     

    ㉢ 천안문 광장에서의 혁명활동

     

     

    <1919년 5월 4일>- "5.4운동" 반제반봉건 운동

     

     

    <1926년 3월 18일>- "국민대회" 반일본제국주의 운동

     

     

    <1935년 12월 9일>- "십이구운동" 반일본제국주의 운동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선포

     

     

    <1976년 4월 5일>- "4인방 타도" [4인방: 문화대혁명 기간 중(1966~1976)에 정권을 잡고 있었던 4명 간청, 장춘교, 요문원,왕홍문] 주은래 총리의 사망으로 북경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추모식을 가졌는데 4인방은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추도회를 제한하고 화환을 치워 버렸다.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3월 남경에서 시작하여 4월 청명절에는 시민 200만명 이상이 천안문 광장에 모였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건"

     

     

    1989년 5.4운동 70주년이 되는 날 이후 거듭 대규모의 시위를 조직하고 민주주의, 부패의 종결, 인플레이션 퇴치를 요구하게 된다.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이 시위는 보수파의 주도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피의 탄압이 자행된다. 이 사건으로 개혁파는 크게 후퇴하고 당 총서기 조자양이 실각한다.

     

     

     

     

     

     

     

     

     

     

     

     

     

     

     

    천안문 광장의 남쪽 모주석 기념당

     

     

     

     

     

     

    모주석기념당은 모 주석 사망 1주기가 되던 1977년 5월에 건립되었다.  

    마오쩌둥의 유해가 있는 수정관이 지하 1층에 안치되어 일반 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모주석을 보기 위해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다른 곳과 달리 군인들에 의해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며 요금은 무료이며 짐이나 카메라는 입구에 보관료를 주고 맡긴 후에 입장이 가능하다.

     

     

     

     

     

     

     

     

     천안문 광장 서쪽의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1958년 10월에 시작하여 1959년에 완성되었다.

     

     

    면적은 171,800㎡이며 전국 인민대표대회를 여는 장소이며 인대상위회의 사무실과 당 중앙, 국무원과 각 인민단체가 정치 활동을 하는 장소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은 장소.

     

     

     

     

     

     

     

    천안문 광장 동쪽의 국가박물관.

     

     

     

     

      

     

    1959년 8월에 건축되어진 박물관은 천안문광장의 동쪽에 위치하며 인민대회당과는 마주 보고 있다. 그 규모는 남북 313m, 동서 149m, 높이가 40m에 이른다.

     

     

     

     

     

     

    중국역사박물관에는 중국의 원시사회에서 노예사회, 봉건사회, 1919년의 민주주의 운동인 오사 운동에 이르는 중국 역사가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역사박물관의 고대 전시실

     

     

     

     

     

     

     

     

    중국혁명박물관에는 아편전쟁에서 신해혁명, 오사 운동, 중국의 6.25전쟁 등 근데 100년간의 역사를 볼수 있다.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남쪽이 역사박물관이며 북쪽이 혁명박물관이다.

     

     

     

     

     

     

    천안문에서 중앙에 있는 인민영웅기념비

     

     

     

     

     

     

    1958년에 건축되어진 인민 영웅기념비는  1840년 이후부터 해방 전쟁 시기까지 국가 독립의 쟁취,  민족해방,  자유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길이기 위해 건립 되어진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념비이다.

    전체 점유면적은 3000㎡,   높이는 37.94m이며 17000개의 화강암과 한백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비의 정면은 모택동 주석의 글씨인 "人民英雄永垂不朽(인민의 영웅은 영원히 전해져 불후하다)"의 8자가 새겨져 있다.

    후면은 주은래 총리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 아래 양층으로 된 받침에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국화,   연꽃,  목단과  백합이 8개의 화환으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는 근 백년이래의 혁명사를 나타내는 190명의 인물 형상이 새겨져 있다.

     

     

     

     

     

     

     

     

     

     

     

     

     

     

     

     

     

     

     

     

     

     

     

     

     

     

     

     

     

     

     

     

     

     

     

     

    천안문 광장의 중국 경찰들...

     

     

     

     

     

     

     

      

     

     

     

     

     

     

     

      광장 북쪽이 천안문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이고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고,  면적은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 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고,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었는데,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며,   현재 천안문광장에서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자금성

     

     

     

     

     

    정양문

     

     

    구 북경의 내성에는 모두 12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정양문은 이 중에 하나로서 내성의 정문이었다.

    명(明) 영락(永樂) 18년에 건축되어진 정양문은 가장 오래된 성문중의 하나이다.   정양문은 당시 북경성에서 가장 높은 성문이었으며 여러 성문중에 가장 정교하게 지어진 성문이다.   봉건시대에는 황제의 어가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천안문광장에서  북쪽인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두번째문인 천안문

     

     

     

     

     

     

     

     

     

     

     

     

     

     

     

     

     

     

     

     

     

     

     

    12개의 성문중 2번째 천안문을 들어서니 오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문은 황궁외조의 정문이며 자금성의 남문이다. 그 돌출된 모양은 최고의 황권을 나타 내어 주고 있다.   오문은 3개의 문이 있으며 또한 양측에는 좌우 액문이 있다. 중간문은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는 문이다.   그러나 청때는 전시에 합격한 3명(장원, 방안, 탐화)는 합격자 발표 시에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외 황제와 황후가 결혼하는 날, 황후 또 한 중문을 통해서 황궁으로 입궐하였다.

     

    그외 문무백관은 좌문을 통해서 출입하였으며 왕실종친은 우문을 통하여 출입하였다.  기타 지위가 낮은 관원은 좌우 액문을 통하여 출입하였다.

     

     

     

     

     

     

     

    ⓑ 오문의 중앙 누각의 좌우에는 종고루가 설치되어있다.   황제가 대조에 임할 시에는 종과 북이 모두 울렸으며 제단으로 갈 때는 종이 태묘에 제사지내기 위해 오문을 나갈 시에는 북이 울렸다고 한다.

     

    ⓒ 매년 동지 때,   황제는 이곳에서 농사력(음력)을 반포하여 황제가 농사를 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 청조시,   농민봉기나 반청 세력과의 전쟁 중에 잡은 포로를 오문 앞에서 황제에게 바 쳤으며 황제로부터 상을 받았다.

     

    ⓔ 명조시,   오문앞은 또한 "정장(廷杖)"을 행하던 장소였다.

     

    문무 백관 중에 감히 황제의 존엄에 무례를 범한 자는 오문으로 끌려나와 엉덩이 를 맞았는데 이를 "정장"이라 한다.

     

    형은 4명의 금의위가 범죄자를 포대에 싸서 때렸으며 때린 이후에는 높이 들어 땅에 떨어뜨렸다. 이는 맞을 때는 죽지 않게 하며 떨어뜨려서 죽이기 위함이었다.

     

     

     

     

     

     

     

     

     

     

     

     

     

     

     

     

     

     

     

     

    자금성 안내도

     

     

     

     

     

     

     

     

     

     

     

     

     

     

     

    오문을 들어서서  

     

     

     

     

     

    태화문(太和門)을 통과하여야 태화전으로 들어간다.

     

     

     

     

     

     

    태화문 앞 청동사자

     

     

     

     

     

    금수교를 지나 태화전에 닿는다..

     

     

     

     

     

     

    태화전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금수교를 지나 태화문을 통해 태화전 앞이다...

     

     

     

     

     

     

     

     

     

     

     

     

     

     

     

    궁내 최대의 대리석 조각인 윈룽다스댜오.

     

     

     

     

     

     

     

     

     

     

     

     

     

     

     

     

     

     

     

     

     

     

     

     

     

     

     

     

     

     

     

     

     

     

     

     

     

     

     

    자금성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사용할 방화수를 담아두는 큰 그릇. 겉은 금으로 두텁게 발라져 있다.

     

     

     

     

     

    자국표시는 일본 점령시 금을 긁어가려고 그런거고, 받침 아궁이는 겨울에 물이얼면 불땔려고...

     

     

     

     

     

     

     

     

    태화전을 우측으로 돌아가자 용(龍)을 비롯한 각종 문양이 새겨진 월대(석조난간)이 보이고...

     

     

     

     

     

     

     

     

     

     

     

     

     

     

     

     

     

     

     

     

     

     

    ○  경산공원

     

     

     

     

     

     

     

     

     

     

     

     

     

     

     

     

     

     

     

     

     

     

     

     

     

     

     

     

    ○ 후동거리

     

     

     

     

     

     

     

     

     

     

     

     

     

     

     

     

     

     

     

     

     

     

     

     

     

     

     

     

     

    ○ 십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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