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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동 신라 소재상 부인 순절비(포항시 북구 용흥동 산 24-1번지)여행방/경상도 2015. 10. 11. 08:30
용흥동 신라 소재상 부인 순절비
2015. 10. 11.
2015. 10. 6. 오늘은 포항의 북구 용흥동과 기북면. 기계면 지역을 탐방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행복은 자존심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도 있겠지만 결국 행복은 당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햇살 좋은날 나홀로 행복한 나만의 여행길 찾아 오늘도 여기 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탐방할 문화재와 여행지는 포항시 북구 용흥동 신라 소재상 부인 순절비와 기북면의 덕동 숲과 용계정. 여연당 고택. 애은당 고택. 사우정 고택. 오덕리 근대가옥. 이원동 가옥과 기계면의 봉강재. 분옥정. 봉계 고인돌. 새마을 운동 발상 기념관. 문성 고인돌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오늘 첫번째 일정으로 기계쪽으로 가면서 포항시내의 용흥동 산 24-1번지에 위치한 신라 소재상 부인 순절비를 먼저 만나 본다....
시내에서 우방아파트 지나 제일교회 사거리에서 기계방향으로 연화재쪽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주차장 옆에 위치해 있다.
건 립 일 : 1991. 2. 28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 위치한 연화봉은 흔히 솔개재라고도 하고, 연꽃봉 혹은 망부산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신라시대 말기에 조정에 소랑이라는 덕망이 높고 청렴결백하여 충직한 대신이 있었다.
소랑은 청빈하고 공평무사하여 부패한 조정대신들 가운데 독야청청의 청백리로 백성들로부터 크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 부인 또한 절세미인이이서 '장안선녀'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고 정숙한 부덕은 온 백성의 거울이 되어 왔다.
그런데 소랑의 부인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임금은 부인을 한번 만나보고자 기회를 노리던 중 조정에 출사한 소랑에게 그날 밤 미행으로 소랑의 집에 들자고 한다고 일렀다.
임금이 신하의 집에 거동한다는 것은 여간 신임이 두텁지 않고는 바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소랑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다급히 자기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임금의 뜻을 전하는 한편, 융숭한 대접을 하고자 연회 준비를 하라고 이르고 임금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금은 미복차림으로 소랑의 집에 당도하여 진수성찬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임금은 술이 얼큰히 취한 가운데 인사차 들어온 부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자, 매혹되어 이성을 잃고 부인을 범할 마음을 품게 되었다.
임금은 그 날부터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소랑을 죽이든지, 삭탈관직하여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든지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사악한 계획을 세우기에 골몰하였다.
마침 일본으로부터 사신이 와서 신라조정에 조공을 바치고 돌아간 후 그 답례로 일본에 파견할 사신을 선임해야만 했는데, 임금은 소랑을 적임자로 임명하였다.
소랑이 일본으로 간 후 임금은 그 부인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수 차례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회유하였다. 그러나 지조 높은 부인은 끝내 임금의 강압을 물리치고 결사 저항하였다. 임금은 온갖 유혹에도 굴하지 않자 부인을 죽여버리고자 하였으나 외국사신으로 떠난 대신의 부인인 점과 임금의 체통을 고려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먼 곳으로 추방하여 버렸다. 소랑부인은 소랑이 타던 말과 개 그리고 노비 한 사람을 데리고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동쪽바다가 잘 보이는 연화봉에 올라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낮이나 밤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 소랑이 돌아오는 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임금의 명을 받고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간 소랑은 충실하게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뱃길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불행하게도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낭군의 슬픈 소식을 전혀 알길없는 소랑부인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연화봉 움막에서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병이 들어 5년 만에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이에 소랑이 타던 말과 개도 돌봐주던 주인을 잃자 사방으로 헤매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오직 한 남자의 지어미로 일부종사의 굳은 정절을 지키다가 죽어간 소랑부인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부인을 추모하여 후히 장례를 지내는 한편, 말과 개의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으며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삼간초옥을 건립하여 부인의 혼백을 모시고는 '망부사'라 이름지어 부인의 넋을 위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연유하여 이 산을 '망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세조때 어떤 암행어사가 망부산을 지나다가 소알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넋을 위로하여 읊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望臨碧空(망임벽공) 멀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怨情感離別(원정감이별) 이별한 낭군만 그리워 하네
江草不知愁(강초부지수) 강가의 푸른 솔이 야속하구나
岩花相爭發(암화상쟁발) 바위에 붉은 꽃은 다투어 피어나건만
雲山萬里隔(운산만리격) 산과 구름이 만리길을 막아
音信千里絶(음신천리절) 님의 소식이 영영 끊어졌도다
春去秋復來(춘거추복래) 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건만
相思幾時歇(상사기시헐) 아니오는 님 생각 언제 풀것인가
오늘 첫번째로 소랑부인의 남편향한 애절한 마음을 그리며 신라 소재상 부인 순절비를 보고 기계면을 지나 기북면부터 다녀 오기로 하고 두번째 여행지인 기북면 덕동 마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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