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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 선운사 산내암자 도솔암
    사찰여행/전라도 2023. 11. 10. 11:28

    고창 선운사 산내암자 도솔암 

     

      

    2023.   11.   10. 

     

     

    2023.  11.  7 ~ 8(1박 2일).  가배와 함께한  담양. 고창. 장성 등  전라도를 둘러 보고 오는 길에 경남 거창 추모공원도 둘러보는  여행길이다...

    11.  7일 1일 일정은 포항에서 담양으로 이동 후 담양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  죽녹원, 관방제림을 보고  나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 후   고창 도솔암. 선운사. 람사르 갯벌을  돌아보고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쉬는 일정이고

     

    11. 8일 2일 일정은 아침식사 후 전남 장성으로  이동하여 백양사를 보고 다시 고창으로 이동하여 문수사를 보고 점심 식사 후  이동하여 경남 거창 추모공원을  둘러보는 알찬 일정으로 짜여진  전남 여행이다.

     

    첫날 여행 세번째 여행지인 담양천변의   관방제림을 보고 점심 식사 후  네번째 여행지인  고창 선운사 도솔암으로 향해본다...

     

    당초 계획은 선운사만 가기로 했었는데 도솔암을 가고 싶어하는 분들의 강력한 건의로 당초 계획을 급 변경하여 갑자기 도솔암 종무소 보살님과 통화하여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까지 차량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선운사로 향하며 바라본 고창 병바위는 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인데 멀리서 보면 사람 옆 얼굴을 닮았다.

     

     

     

     

    차량으로 일중 김충현 선생 글씨가 걸린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선운사를 지나

     

     

     

     

    고운 단풍길을 따라 도솔암으로 오른다.

     

     

     

     

    도솔암을 갈수 있어 많은 여행 친구분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계절이 너무 빨리 가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늦게 왔다고 서운해서 일까?    8. 9월이면 붉은 피를 토해 낸 것처럼 만개하는 상사화는 이미 다 져버리고 흔적도 없고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잎이 남아 상사화의 흔적을 말해준다.  선운사 입구부터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단풍들 그리고 계곡이 이어졌다.

     

     

     

     

     

     

     

     

     

     

    도솔암 주차장에 도착한다...

     

     

     

     

    도솔암 주차장에서 도솔암 오르는 길 ~

     

     

     

     

     

     

     

    도솔암 100m ~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리는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린다.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이 두가지의 이름은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조선말기 까지는 현 극락전 영역이 北 도솔암...  현 내원궁이 上 도솔암...  현재는 통괄해서 도솔암이라 한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산내암자로서 대웅전 서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상하 2개의 도솔암만 남아 있다.

    사시사철 일년 365일 전국의 신심있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지장기도 전문 도량이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 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도솔암은  상 도솔암.  하 도솔암.  북 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상 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 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하 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에 해인(海印)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북 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였다.

     

    이처럼 각기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와 와서 북 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 나한전. 도솔천 내원궁 .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 극락보전,  북 도솔암은 지금의 극락보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였다.

     

     

     

     

    도솔암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본존불로 하여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좌우보처로 상단에 모셔져 있으며, 아미타극락불탱이 후불탱화로 모셔져 있다.

     

     

     

     

    도솔암 극락보전 내부의 신중탱

     

     

     

     

    도솔암 극락보전 내부의 칠성탱과 독성탱

     

     

     

     

    도솔암 극락보전과  요사인 동당

     

     

     

     

     

     

     

     

     

     

     

     

     

    도솔암 극락보전과  종무소가 있는 서당

     

     

     

     

    종무소 앞 감로수

     

     

     

     

     

     

     

    상사화는 이미 다 져버리고 꽃과 만날 수 없는 푸른디 푸른 잎만 남아 이곳이 상사화 밭임을 증명하며 상사화의 흔적을 말해준다.  

     

     

     

     

    상사화는 애처롭다.   꽃과 잎이 평생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꽃은 가을에 핀다.   하지만 잎은 꽃이지고 부터 봄까지 비늘줄기 끝에서 뭉쳐나고 6 ~ 7월에 마른다.   꽃이 있을 땐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땐 꽃이 없다. 서로를 생각한다고 해서 상사화(相思花)다.

     

    상사화 꽃과 잎은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닮았다.  지장보살은 부처님 입멸 뒤 미륵불이 사바에 나투실 때까지 하늘과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 등 육도 중생의 성불 원력을 세웠다.   고통에 빠진 중생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까진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대자대비 화신이다.  탐내고 화내며 어리석음에 찌든 중생들이 많은 탓에 지장보살의 성불이 늦어지는 건 아닐런지.   지장보살이 중생 모두를 성불시키는 그 날,  도솔천 미륵불이 사바에 나투리라.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 영역 옆 나한전으로서  下 도솔암에 해당되는 곳이다...

     

     

     

     

    도솔암 나한전(문화재자료 제110호) 

    극락보전과 종무소 옆길로 오르자 마애불상이 조각된 거암의 옆에 나한전이 객을 맞는다.  이곳에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어보면 모두 들어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도량 옆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주민들을 괴롭히자 인도에서 나한상을 모셔와 봉안했다고 한다.

     

     

     

     

    이무기를 물리친 나한상 치고는 익살스러운 모습이 친근하다.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6나한상은 서로 서로의 얼굴표정 만큼이나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다.   모든 불상의 복장은 비단옷처럼 아주 화려하다.

     

     

     

     

     

     

     

    도솔암 나한전 옆의 윤장대

     

     

     

     

    탑 위에 사람들의 소원이 올려져 있다.   사람들은 각자 무슨 소원을 그리도 빌었을꼬....   나도 돌 하나를 올려본다.

     

     

     

     

    전설에 의하면 용문굴이 용문암이란 암자였는데 이무기가 추방당하면서 큰바위를 뚫고 가니 그 암자를 지금의 나한전으로 신축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건물은 정면3칸 측면2칸 맛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무기란 흉칙한 동물이 살고 있으면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어 1,300여년 전에 나한상을 인도로 부터 도입하여 안치하니 이무기가 추방되었으며 다시는 이무기가 나타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뚫고간 큰 바위에 나한전을 신축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하(下) 도솔암인   마애여래좌상 위로  도솔암인  내원궁이 보인다...

     

     

     

     

     

     

     

     

     

     

    도솔암 마애불(보물 1200호)

    나한전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미륵비결 설화를 간직한 동불암 마애불이 나온다.

     

    도솔암 서쪽 바위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마애불을 친견했다.   도솔암은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중생들이 기도와 수행을 통해 도솔천에 태어나길 발원하며, 미륵불이 사바에 나퉈 모두를 구제해 주길 기원하는 도량으로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전해오는 얘기에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해 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했단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른다.  마애불은 눈이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코는 우뚝 솟았다.   앞으로 내민 일자형 두툼한 입술이 참회와 번뇌,  업장소멸에 인색한 중생들에게 토라진 듯하다.   가슴에는 사각형으로 큼직하게 복장 구멍이 보였다.   배꼽에 신기한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내려져왔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1890년 배꼽을 열어 책 한 권을 꺼냈다.그런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자 두려워 도로 넣어두고 봉했다.   그 뒤 동학교도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 책이 세상을 개혁할 비책이 적혀 있다.   동학교도들은 미륵불 출현을 앞세워 이 곳에서 집회도 열고 1892년 동학교도 손화중이 비결을 꺼냈다는 설도 들린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찌 책 한 권에 있으랴.   원효 스님은 도솔천에 왕생하는 9가지 인연을 말했었다.   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거나 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다든지,  깊은 선정을 닦아야 한다.   또 경전을 수지독송하고 번뇌를 다 못 끊었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거나 계를 수지한 뒤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복업을 닦고 악을 범했어도 정성껏 참회하며 미륵 이름을 듣고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으로 예배해야 한다.   현생을 참회하고 번뇌와 업장을 소멸하는데 소홀한 어리석은 중생심이 마애불 입술을 일자로 만들었으리라.

     

    고려시대 조각한 것으로 높이 6m  폭3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력불상 중 하나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는대 조선말기 관찰사를 지낸 이서구가 열자 마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다고 하는데 19세기 말 동학의 점주 손화중이 가져 갔다고 한다.

     

     

     

     

     

     

     

    굳은 신심으로 새긴 마애미륵불이 천년 비바람을 견딘 채 도솔천 내원궁을 떠받치고 있었다.   중생들은 번뇌로 인해 수천년 동안 수없이 신심이 피고 졌다.   허나 피고 지는 신심이라도 성불을 기원하는 사무친 발원은 진실할 게다.   그 신심이 마애불 풍경 속에 담겨 있었다.   절로 합장이다.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륵불이라 한다.

     

     

     

     

     

     

     

     멀리 내원궁이...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일주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도솔천 도솔암 입구인 내원궁 문 입구에 섰다.

     

     

     

     

    나한전에서 지금의 도솔천 내원궁 上도솔암 오른 길 ~

    나한전 옆에는 암벽을 오르는 바위 위에는 계단 161개가 놓여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가 본다.  정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정상에 대한 기대는 사람의 마음을 혼돈으로 몰아 넣는다.   그 혼돈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원궁으로 161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나갔다.   현생에 지은 잘못을 하나하나 108번 참회하고 업장소멸을 발원하며 108계단을 딛으랬다.   나머지 계단은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친견하는 심정으로 디뎌야 정갈해진 마음으로 내원궁을 참배할 수 있다고 했다.

     

     

     

     

     

     

     

    도솔암 내원궁(전라북도 문화재 125호)

     나한전에서 오른쪽으로 난 깍아 세운 바위틈을 비집고 바위계단을 잠깐 오르면 161개의 계단 끝 암반 위 좁다란 터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날아갈 듯한 내원궁이 있다.

    계단 꼭대기에 오르면 아주 작은 전각이 있는데 이 전각이 상도솔암이라고도 불리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마애불좌상이 새겨진 절벽 꼭대기에 서있는 전각이다.   도솔암 안의 내원궁은 나한전 뒤의 가파르고 좁은 돌계단 위쪽 천인암(千仞岩)이라는 험준한 바위 위에 세운 법당으로 바위 위를 上도솔암이라고 한다. 이중 ‘도솔천내원궁(兜率庵內院宮)’이라 쓰인 현판이 있는 곳이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이다.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에는 내원궁과 외원궁의 두 궁전이 있다 한다.  외원궁은 하늘나라 일반중생이 살고 있는 곳이며 내원궁은 미륵보살 정토라 한다.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암이라고도 부른다. 이 건물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웠기 때문에 기단 없이 편편한 곳에 자리 잡아 원형 주춧돌만 두었고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화려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현재 건물은 조선 초기에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고, 벽선에 亞자형 2짝 여닫이문을 달았는데, 가운데 칸과 양 옆칸은 그 간격을 다르게 하여 예불 공간을 크게 하였다. 천장의 구조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이며,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을 모시고 있다.원래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은 통일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한다. 1511년(중종 6)에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3창(三創), 1817년(순조 17)에 4창(四創)하였다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는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유순(由旬: 약 6.5㎞길이) 되는 곳에 도솔천이라는 천계(天界)가 있고, 거기에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다고 한다. 그 나라에는 칠보(七寶)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이 가운데에 있고, 궁전 주위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며 온갖 새와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또 거기에는 내원궁(內院宮)과 외원궁의 두 궁전이 있는데 외원궁은 하늘나라 일반중생이 살고 있는 곳이고, 내원궁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이다. 내원궁을 오르는 돌계단은 오르면서 저절로 속세를 잊게 하며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원궁은 상도솔암 이라고도 불리는 자그마한 건물 미륵보살이 장차 부처가 되어 세상을 제도할 때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안치된 전각이어야 한다.

    그러나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이 안치되어 있다.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80호) 

    내원궁엔 미륵불이 없었다. 미륵불 머무는 정토 내원궁엔 1m에 조금 못 미치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금동지장보살좌상이다.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 중품인을 취했다. 왼손은 가슴과 배 중간쯤 법륜을 살포시 잡았다.  부처님 입멸 뒤 미륵불 출현까지 56억 7000만년 무불시대 육도 중생을 남김없이 해탈시킬 대비대원 지장보살.  무불시대를 종식시키겠다는 단단한 서원처럼 수인은 굳건했다.

    법륜 들고 수인 맺은 내원궁 지장보살님의 입술 끝에 맴도는 미소가 그윽하다.

     

    이 좌상은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지만 15세기경 보살상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머리에는 모자 같은 두건을 쓰고 있으며 이마에 두른 두건의 좁은 띠가 귀를 덮어 내리고 있다.  이러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모습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던 도상적인 특징으로, 현존하는 많은 고려불화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수려한 보살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며 전체적으로 퉁퉁한 느낌을 준다.  이 좌상은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훔쳐갔던 것을 되찾아서 1940년에 이곳에 모셨는데 도솔암의 지장보살상과 함께 그 예가 드문 지장보살상의 하나로 지장신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후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조각한 것으로 균형미와 우아함으로 고려후기 불상의 최고걸작이라 평가되고 있다.

     

     

     

     

     

     

     

     

     

     

    고창 도솔산 도솔암은 마애미륵불과 지장보살이 함께 모셔진 기도도량이기도 하다.   미륵불이 머물러야 할 도솔천 내원궁에 지장보살이 상주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 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도솔암이 왜 도솔천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했다. 도량이 도솔산 품에 폭 안겼다.

     

    내원궁이 있는 천인암은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도솔천, 미륵부처님의 정토라 불린다.  상상속의 영상이 펼쳐진다.  호남의 내금강이라고도 불리는 선운산 도솔계곡은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암석들이 거대한 수직암벽을 이루고 있다.

     

    내원궁에 오르니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 너무 늦게 왔구나.’  기암괴석 사이로 단풍나무들은 잎을 떨궈버리고 없다. 한 주만 더 빨리 왔다면 가을단풍의 정점에 서서 장관을 지켜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있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광은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게 했다. 내원궁이 있는 천인암은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일심으로 합장하며 다음 생을 꿈꿔본다.

     

    '늘 좋은 날 되소서.'  중생들에게 밝힌 등불만큼이나 내원궁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자리에 서서 꼼짝을 하지 않고 두 손을 합장하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후두두둑. 마음속에서는 소낙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지상의 끝,  하늘이 시작되는 내원궁 앞에서 마음속 번내를 씻어내는 이 기분!!   다시금 부처님께 합장한다.....

     

    도솔암에서 참회하는 마음과 업장 그리고 번뇌 소멸을 바라는 지장기도가 익어 간다.

     

     

     

     

     

     

     

     

    도솔천 내원궁의 뒤편에 자리한 산신각에는 특별한 산신이 모셔져 있다.

    산신각의 주인공은 도솔암을 비롯한 선운사,  참당암 등 도솔산 내의 사암을 창건한 검단선사와 의운국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분의 스님은 도솔산에 살고 있던 도적들을 교화하고 가난한 중생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어 삶의 길을 열어 주셨다.  이처럼 지역민에게 한없이 자애로왔던 두 스님을 열반 후에도 도솔산 산신으로 남아 중생들의 염원과 기도소리를 듣고 소원을 성취해 주시는 성현으로 남아 계신다.

     

     

     

     

    금당선사가 말을 타고 착지한 말 발자욱 (산신각 옆 내원궁 뒤쪽 바위)

    지금 천마봉이라 하는 마애불 좌측의 높은 봉우리를 당시에는 천길바위라 했으며 그 천길바위에서 검단선사가 말을 타고 상도솔암 옆으로 뛰어내려 마상에서 즉시 우측의 바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휘갈겨 썼다고 한다그때 말이 착지한 곳에 말 발 자욱이 4개 선명히 찍혔고 물이 고여 있었으며 우측 바위에 글씨도 있었다지금도 그 말 발자욱은 남아 있다.  

     

     

     

     

    그리고 글씨도 있다.

    말이 착지하여 마상에서 썼다는 글씨 위치에 바뀐 석판의 현재 글씨가 산신각 오른쪽 바위에 있다.  '이찬하 자 범세, 상지칠년 경오 람색 김왕'

     

     

     

     

    내원궁에서 바라본 건너편 바위로  검단선사가 말을 타고 뛴 천길바위 천마봉

     

     

     

     

    기도하는 마음으로 161개의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의 절경사이에 자리 잡은 도솔암 뒤편 산길 위에 있는 나한전을 지나 

     

     

     

     

     

     

     

    극락보전으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솔암은 참  멋스럽다...

     

     

     

     

     

     

     

     

     

     

     

     

     

     

     

     

    언제쯤 마애미륵불 눈과 입술이 빙그레 웃을까?

    잎이 태양 에너지를 힘껏 빨아들여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상사화처럼 지장보살의 기도와 미륵불의 기다림이 애처롭다.  지장보살의 중생 구제 원력이 우리네 신심을 자양분 삼아 미륵불로 피어날 그 날을 기다린다.

    가을햇살 나누어 퍼지는 도솔천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가녀린 풀한포기 바라볼수 있는 작은 눈이 있다면 이 모두가 행복이리라...

     

     

     

     

     

     

     

    도솔암 찻집도 지나

     

     

     

     

     

     

     

     

    나도 여행동료들 덕분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와 보는 도솔암에서 감회가 새롭다....   아쉬운 듯 선운사 산내암자 도솔암을 뒤로 하고 선운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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