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고창 선운사(전북 고창군)
    사찰여행/전라도 2023. 11. 10. 22:09

    고창 선운사 

     

      

    2023.   11.   10. 

     

     

    2023.  11.  7 ~ 8(1박 2일).  가배와 함께한  담양. 고창. 장성 등  전라도를 둘러 보고 오는 길에 경남 거창 추모공원도 둘러보는  여행길이다...

    11.  7일 1일 일정은 포항에서 담양으로 이동 후 담양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  죽녹원, 관방제림을 보고  나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 후   고창 도솔암. 선운사. 람사르 갯벌을  돌아보고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쉬는 일정이고

     

    11. 8일 2일 일정은 아침식사 후 전남 장성으로  이동하여 백양사를 보고 다시 고창으로 이동하여 문수사를 보고 점심 식사 후  이동하여 경남 거창 추모공원을  둘러보는 알찬 일정으로 짜여진  전남 여행이다.

     

     첫날 여행  네번째 여행지인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나와 다섯번째 여행지 선운사로  향해본다...

     

     

     

     

     

     

    나도 여행동료들 덕분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와 보는 도솔암에서 감회가 새롭다....   아쉬운 듯 선운사 산내암자 도솔암을 뒤로 하고  차량으로 선운사로 향한다... 

     

     

     

     

    울긋불긋 단장한 나무들을 따라 내려가면 삼국시대에 세워진 천년고찰, 선운사를 만날 수 있다.

     

     

     

     

    도솔교를  건너 천왕문 앞에 선다.

    천왕문은 도솔교를 건너서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해당하는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2층 누각 건물인데, 아래층에는  중앙에 통로를 내고 좌우 협칸에 사천왕상을 봉안하여 천왕문의 성격을 가지게 했는데  위층에는  범종을 두어 범종루의 역할도 겸하게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천왕문은 1624년 창건된 것으로 전하지만 현재의 문은 1970년에 건립된 것으로 최근 사역을 정비하면서 앞쪽으로 이건 되었다. 

     

     

     

     

    조선시대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천왕문'이라는 힘찬 글시체의 서판 편액이 걸려있다.

     

     

     

     

    대문을 지키고 선 천왕상으로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과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과 서방을 지키는 광목천왕

     

     

     

     

     

     

     

    천왕문 사천왕상 발밑의 탐관오리와 

     

     

     

     

     

     

     

     

    음녀상은 형벌을 받는 이의 모습이 고통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선과 욕심을 버리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세루가 보인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당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구름속에 신선이 누워 참선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운사는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고승 검단선사가 세웠다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진흥왕이 세우고 검단선사가 고쳐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운사는 백제시대 창건하신 검단스님이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한다.    또한 당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 ․ 가을이면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주민들이 매년 소금을 가져온다고 한다.

     

     

     

     

     

     

     

    만세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53호 ) 

    만세루는 불법을 배우는 승려들의 강의실이다.  백제 위덕왕 24년 (577)에 검단 선사가 선운사를 짓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고 또 고려시대 건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말에 보수된 것이다.  이 건물은 비대한 자연목을 껍질만 벗기고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함과 함께 넉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만세루 편액

     

     

     

     

     

     

     

    아름드리 통나무를 그대로 세워놓은 기둥이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하나같이 온전한 것이라고는 없는 것들이 모여 이렇게도 멋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만세루의 멋 중 하나이다.

     

     

     

     

    만세루에서는 선운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마실 수 있다.    다 마신 후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히 정리해야 한다.

     

     

     

     

     

     

     

    대웅전 앞 육층석탑 (전북유형문화재 29호) 

    선운사 육층석탑은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에는 고려시대의  6층 석탑이다. 다층탑에서 6층은 그 예가 없으며, 홀수의 탑이 보편적이다. 상륜부의 이색적인 양식과 문양을 지니고 있으며, 상대갑석이 장엄한 점 등은 14세기의 석탑임을 말해주고 있다.

     

    원래는 9층탑이었으나 성종 이후에 3층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방형의 축대안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정사각형의 돌 윗변을 둥글게 처리한 하대석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사각형의 중석을 세웠는데, 이 중석은 네 귀에 우주(隅柱)를 조각하였다.   갑석은 방형인데 아랫면은 수평으로 다듬고 중앙에는 1단의 받침을 새겼으며,   윗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룬 채 중앙에는 1단의 옥신(屋身)괴임이 있다.

     

     

     

     

    선운사 대웅전(보물 제 290호)

    대웅보전은 선운사의 중심 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구조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기둥위의 장식구조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多包) 형식이지만 맞배지붕을 얹은 조선중기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의 건축물답게 섬세하고 다포(多包)의 짜임새가 장식적인 걸 볼 수 있다.

    대웅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는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워 간단히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조선 중기의 건축답게 섬세하고 장식적인 구성과 빗살 여닫이문이 화려한 건물이다.

     

     

     

     

     대웅보전 편액,   바랜 단청이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대웅보전 편액

     

     

     

     

    대웅전 금동보살좌상(보물279호)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 삼세불을 봉안하고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삼존은 중앙의 비로자나불상을 주존(主尊)으로 하여,  향 불단 왼쪽에 약사불과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 14)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향 불단 좌우에 약사회상도. 아미타회상도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금동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셨다.

     

     

     

     

     

     

     

     

     

     

     

     

     

    대웅전 신중탱

     

     

     

     

    부처님 위로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서각되어 있었다.

     

     

     

     

    안쪽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여 구름ㆍ학ㆍ연꽃 등으로 장엄하였다.

    내부 벽에는 산수ㆍ비천ㆍ나한 등을 벽화로 장식하였고, 닫집과 중앙의 불단 등은 비교적 간략하고 단순한 모습이다.

    이 건물은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단청벽화가 뛰어나게 아름답다...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였고 단청벽화가 매우 아름답다.천장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커다란 운룡문(雲龍紋)이 그려져 있다.

     

     

     

     

    법당내부 천정에는 수많은 용들이 구름속에 몸을 감추고 선군사를 수호하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향 관세음보살  벽화 우측의  벽화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관세음보살 벽화로 관세음보살의 눈이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한다...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향 관세음보살  벽화 좌측의  벽화 

     

     

     

    장엄한 대웅전 공포, 다포(多包)의 짜임새가 장식적인 걸 볼 수 있다. 

    건물 뒤쪽의 처마는 간략하게 처리되어 앞뒤 처마의 모습이 다르며 벽은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널빤지 벽이다.   

     

     

     

     

    계단 좌우의 괘불대는 1797년(정조 21)에 7명의 시주자가 힘을 모아 조성하였고,  당간지주는 1728년(영조 4)에 조성한 것이다.

     

     2쌍의 괘불대(掛佛臺)는 괘불을 내어 걸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현재 마모되기는 했으나 옹정육년(雍正六年, 1728년)과 가경삼년(嘉慶三年, 1798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대웅보전 앞마당의 좌우에는 여러 석물들이 놓여 있다.   대웅보전에 오르는 계단 좌우의 괘불대 2개와 계단 왼쪽의 당간지주, 그리고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1개 서 있다.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 184호)

    동백나무숲은 선운사 경내지가 시작되는 대웅전으로 부터 400m지점 뒷산에서 부터 시작하여 대웅전 뒷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16,500㎡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자생지로 학술적 연구 자료가 되어 1967년 2월 11일 천연기념물184 호로 지정 되었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여수의 오동도와 비교할 만큼 유명하다.

     

     

     

     

    대웅전을 감싸고 있는 동백꽃의 장관은 아마 양력 3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매년 그랬으니까 말이다.

    동백꽃의 멋은 다른 꽃도 그렇듯이 화려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백꽃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화려함으로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리라.

    아직은  피지 않는 300년 ~500 수령의 동백숲은 모든 번뇌를 구원하려는 듯 묵묵히 겨울로 가는 차가운 바람을 가슴으로 안고 서 있다.

     

     

     

     

    선운사를 말할때는 동백꽃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는데  동백나무숲은 과묵함으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만은 이미 활짝 핀 동백꽃을 보는 듯했다.

    지금보다는 한 겨울 온통 눈으로 뒤덮혀있을 때,   선혈같은 동백꽃을 보는 것이 선운사의 백미라고하더니 그럴만 했다.   김용택님도'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하지 않았는가?   한겨울의 선운사도 참 좋겠다.

     

    선운사 동백나무는 사찰 창건당시 동백열매의 기름을 등유로 사용하기 위하여 식재한 것으로 추정 될 뿐, 언제부터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사찰 보호림 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며 약 2,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음전(觀音殿)은 대웅보전의 뒷편 동쪽에 위치하는 정면, 측면 각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관음전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 그리고 오른쪽 벽에는 1991년에 조성한 신중 탱화가 있다.

     

     

     

     

     

     

     

     

     

     

    관음전 앞 감로수

     

     

     

     

     지장보궁

     

     

     

     

    관음전 옆의 지장보궁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봉안 중이다.

     

     

     

     

    선운사  금동보살좌상(보물 279호)으로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선운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금동보살좌상은 머리에 두건과 유사한 보관을 쓴 모습의 보살상으로 넙적하고 군살진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짧은 목등 비만한 인상을 보이고 있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이지만 두터운 옷에 쌓여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불의의 주름은 매우 두텁고 장식적인 수법을 보여 살찐 얼굴 형식의 옷무늬 처리등으로 보아 이 보살상은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전(靈山殿)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일자집 맞배 지붕 건물이다.

    2단의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영산전의 원래 이름은 장육전(丈殿)이었다. 1471년 처음 조성될 때는 2층 전각 형태로 조성되었으나 1614년에 중건하면서 단층으로 바뀌었고 1821년과 1839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장육전이라 이름은 내부에 봉안된 불상이 1장 6척이나 되는 큰 불상이었기 때문이며, 거대한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서 2층의 누각 건물로 조성했던 것이다.

     

    익공 형식의 공포(栱包)는 쇠서를 내밀지 않고 초각으로 말아 올린 물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단에 봉황의 머리를 조각하고 화각첨차를 사용하는 등 조선 후기의 경향을 보여준다.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천장은 불상 상단을 닫집 처리하였고 옆의 대웅전보다 간략하며, 뒷면 쪽 고주는 중보까지 올라가는 기둥을 사용하였다. 뒷면 벽까지 넓혀진 중앙의 불단에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좌우측 'ㄱ'자 형의 불단에 16나한상이 안치돼 있다. 불단 가운데에 석가여래상이 안치돼 있고, 좌우측에는 제화갈라보(提和竭羅菩薩: 연등불, 보광불, 정광불이라고도 함)입상과 미륵보살입상이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 협시보살의 높이는 2.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 있다.   이 삼존상은 목조불로서는 희귀한 우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좌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육계는 없으며,  얼굴은 방형(方形)에 가깝다. 목부문 아래에 삼도(三道)가 좁게 표현되어 있고,   통견납의(通肩衲衣)의 간략한 의습에 가슴 밑 군의상단(裙衣上端)이 직선적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서 손 등을 위로 하여 중지(中指)를 무릎에 접하고 있고,   왼손은 손 등을 밑으로 하여 제2지(第二指)와 무지(拇指)를 맞대고 있다.   

     

     

     

     

    영산전 천정 단청이 장엄하다.

     

     

     

     

    선운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향  영산전 우측 외부벽화

     

     

     

     

     

     

     

     

     

     

    향  영산전 좌측 외부벽화로 영산전 벽화가 너무나 곱다...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영산전 앞에 1개 서 있다.

     

     

     

     

    명부전은 대웅전 서쪽에서 동향하고 있는 건물이다. 명부전으로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전각인데 본래는 1658년(효종 9)에 시왕전으로 창건된 것이다.

     

    명부전(冥府殿)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나타낸 전각으로,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는 초익공 형식을 사용하였는데 연봉이 달린 쇠서나 봉황두 형태의 초각 등에서 조선후기의 장식적 경향이 나타난다.

    전면의 중앙 3칸에는 분합문을 설치하였으며, 양쪽 협칸은 상단에 띠살 형태의 창, 하단에 판장문 형태로 마감하였다.

     

     

     

     

    명부전 편액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왕이 협시하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해서 

     

     

     

     

    시왕상· 사자상· 판관상 등을 봉안하였다.   

     

     

     

     

    이 삼존상은 1676년(숙종 2)에 조성한 것으로서,  다소 경직된 모습이 보이나 적절한 신체비례와 온화한 상호가 17세기 조선 후기 조각문화의 절정을 잘 보여준다.   

     

     

     

     

    이 밖에 명부전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악귀를 물리치는 형상의 인왕상 2체와 창을 든 외호신중 2체,  동자상 4체가 봉안되어 있다.

     

     

     

     

     

     

     

     영산전 1단 위로 조사전 . 팔상전이 보인다.

     

     

     

     

    좌로부터 조사전.  팔상전. 산신당과 영산전

     

     

     

     

     팔상전

    팔상전의 배치는 우측의 대웅전을 축으로 좌측에는 명부전이 배치되어 가지런히 쌓은 축대와 돌계단이 소박 하면서도 안정된 배치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영산전 뒤편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 양식을 지닌 아름다운 전각이다.

     

     

     

     

    팔상전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8점을 보관하고 있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부처님의 행적을 여덟 가지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한 팔상탱화를 봉안한다는 의미에서 전각 이름이 유래한다.  

    이곳 팔상전에도 1706년에 건물을 중건하면서 함께 봉안한 팔상탱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팔상탱화는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1900년에 조성한 2점과 1992년에 새로 조성한 6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팔상전에는 천룡조각이 이채로운 닫집을 마련하고 석가여래좌상을 주존으로 봉안하였다.   본래 이 곳의 불상은 1707년(숙종 32)에 심경 스님이 봉안한 삼존상이 있었지만 지금의 작품은 후에 새로 조성한 불상이다.   본존 뒤로는 1901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가 있고,  그 좌우로 소형의 나한상을 모셨다.

     

    내부의 불단은 'ㄷ'자형으로 간략하지만 닫집은 2개의 기둥을 세우고 천룡조각을 한 화려한 형식이다. 불단의 중앙에는 근래에 조성한 금동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였으며, 후면벽에는 1901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팔상탱을 봉안하였다.

     

     

     

     

    산신당은 영산전 뒤편,   팔상전 옆에 자리한 앞면 3칸,  옆면 2칸의 아담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된 이래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산신각은 우리나라 외에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한국적 불교신앙의 산물이다.  즉 불교가 수용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토착신앙의 산신이 불교에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등장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산신각은 한국적 불교의 변용(變容)인 셈이다.  그런데 선운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의 창건주를 산신으로 화현(化現)시켜 산신각에 봉안하고 있다.

     

    왼쪽에는 최근의 산신당의 주인인 산신을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고,  정면에는 절의 창건주인 검단선사와 참당사의 창건주인 의운(義雲) 선사를 하나의 화폭에 나란히 그린 1915년작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두 사람 사이로 소나무가 있고 호랑이가 도설되어 자칫하면 산신탱화로 오인하기 쉽다.

     

     

     

     

    조사전

     

     

     

     

    조사전 내부에는 일곱분의 조사를 모셨다.

    1500여년전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스님을 비롯해 참당사를 창건한 의운. 설파. 백파. 경담. 환응. 석전스님 등 일곱분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 앞에서 바라본 영산전과 만세루 그리고 명부전이고 명부전 옆으로는 승가대학이 자리한다.

     

     

     

     

    명부전.  조서전 그리고 영산전

     

     

     

     

    대웅전과  대웅전 앞 육층석탑 그리고 만세루

     

     

     

     

     

     

     

     

     

     

    오늘도 불교 유산이 진열되어 있는 성보박물관은 일정상 보지를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선운사는 다소 담백하다.   전각은 수수하고, 수없는 큰스님들의 발자취에도 불구하고 내세움이 크지 않다.   안으로 배어있는 역사와 전설이 선운산의 절경과 꽃나무들의 아름다움 못지 않다.

     

     

     

     

     선운사 종무소

     

     

     

     

    선운사 전통다원 겸 불교용품점과 선운사 범종각

     

     

     

     

     

     

     

    천왕문 앞 도솔교 건너편 언덕에 펼쳐져 있는 야생 차밭의 아름다움과 도솔천 그리고 성운사 돌담

     

     

     

     

     

     

     

    이쁜 단풍잎이 햇살을 가득 머금고 살랑인다.

    파란 하늘과 오색찬란한 잎들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고창 선운산을 찾은 방문객도 수채화처럼 물들어 가는 단풍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바록 지고 있는 단풍이지만....

     

     

     

     

     

     

     

     

     

     

     

     

     

    선운사를 감싸고 흐르는 아름다운 천(川) 이 있는데 이 천(川)의 이름을 도솔천이라고 한다.   전생에 덕과 선행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곳을 의미하는 도솔천의 세계를 여기 선운사 옆에 구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산책길 옆에 흐르는 계곡에 비친 단풍을 보는 것도 묘미이다.

     

     

     

     

    선운사 담장을 따라 걸으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껴볼수 있다.   간간히 들려오는 풍경소리...

     

    절을 지나 위로 올라가는 산책로 역시 참으로 호젓하고 좋았으며 오르 내리는 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나 키 높은 나무들이 만든 숲...  그리고 숲속 향취에 취해서 담담하게 오르 내리는 점잖은 산책객들...

     

     

     

     

     

     

     

     

    선운사 왼쪽으로 도솔천이 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왼켠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냇물과 깊숙하게 그림자를 드리운 숲....   그리고 산책하기에 적당한 진입로...  이런 풍광을 해치지 못한 채 선운사는 그 넉넉함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나무그늘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도시생활에 찌들려 있던 나에게는 정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고 단풍나무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는데 며칠 강풍으로 많이 떨어진 단풍으로 멋진 단풍은 보지 못 했지만 깊은 가을에 맞은 선운사가 못내 아쉽다...

     

     

     

     

    일중 김충현 선생 현판 글씨가 있는 선운사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 옆  '선운산 드라마. 영화 촬영지' 안내도도 지난다...

     

    선운사는 시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어서인지  선선한 날씨 조차도 오히려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내가 사랑한 것은 적막감 후에 오는 편안함이다.   그래서 산사는 늘 나에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내년 4월...  동백이 만개할 즈음에 반드시 다시 찾아오리라는 생각도 해보며...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흥얼 흥얼~  ~

     

    그리고 길을 달려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고창 람사르 갯벌로 향해본다....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