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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성읍민속마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여행방/제주도 2023. 6. 29. 09:44

    제주 성읍민속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188호)

     

      

    2023.  6.   29. 

     

     

    2023. 6. 21~23 제주도2박 3일 여행 둘째 날이 시작된다...

    오늘은 돌문화 공원, 스카이 워터쇼 공연, 성읍민속마을 ,  혼인지,  사려니 숲 까지 여행하고  오늘도 새마을 금고 제주연수원 숙소에 숙박하는 일정이다. 

     

    3일간 제주여행 중 둘째날   두번째 여행지로는  스카이 워터쇼 공연을 보는 시간을 가져 본 후

     

    오늘 세번째 여행지로는 성읍민속마을로 이동하여 점심식사 후 성읍민속마을을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성읍민속마을의 정의원님 식당에서 흑돼지두루치기로 점심식사를 한 후

     

     

     

     

    성읍민속마을을 돌아본다...

    이엉을 얹은 초가지붕과 돌로 된 담장이 눈길을 끈다.

     

    지역 특성이 강한 성읍마을은 특별하게 더 출중한 건물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아 모두가 그만그만하다.   이 한옥들은 대체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집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조각보를 본 어느 외국 예술가가 그 조각보를 만든 한국의 예술가를 꼭 좀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조각보처럼 갈피마다 생활미가 묻은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마을의 시곗바늘에 우리의 시간을 맞출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말이다.

     

     

     

     

    제주 한옥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정살문,  주인은 먼 곳으로 마실을 간 듯하다. 정낭 세 개가 모두 정주석에 걸려 있다.

     

    성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읍치 (고을 수령이 사무를 관장하던 관아가 있던 장소)가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정의현의 중심이 되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성을 축성 하였었으나, 읍치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으로 부터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안무사 전관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현의 읍치)를 옮기게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이라고도 불리었던 정의성은 축성을 시작한지 5일 만인 세종 5년 정월 13일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의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는 동서남으로 세 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었다.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정의현의 당시 민가 호수가 1,436호, 전답이 140결, 성수비군이 664명, 말 1,178필, 흑우 228수를 보유할 정도의 상당히 번성하였던 읍성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1423년 이후부터는 약 5세기 동안 정의현의 읍치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1915년 5월 1일부로 제주도제가 시행되면서 표선면 면소재지로 격하되었다. (지금의 표선면은 1935년 동중면이 개칭된 이름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마을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문화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총 1,425필지 3,191,711㎡의 면적이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필지(790,747㎡)로 축소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주 한옥은 육지 한옥과 같은 듯 다르다.   환경의 척박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시간의 층이 훨씬 두툼하다.   제주 한옥에는 원시 시대에 쓰던 화덕에서부터 우리 고유의 구들은 물론이고 최신 가스레인지까지 나란히 등장한다.

     

    인류가 발전시킨 불의 역사가 지층처럼 쌓여 있다.   그 시간의 결을 찬찬히 읽어 내는 동안 황금빛 햇살이 동행할 것이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에서 제주 한옥만이 가지는 특별함과 경이로움을 만나 보자.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제주 한옥은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부터 특별하다.

    육지의 대문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문(간)과 정살문이 있다.   이문이 육지의 대문처럼 생긴 것이라면,  정살문은 제주만의 특별한 대문이다.

    정살문의 정주석에 거는 통나무인 정낭의 개수를 조정하여 주인은 자신이 집에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먼 곳에 마실 나갔는지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통나무 세 개가 정주석에 모두 꽂혀 있으면 먼 곳에 갔으니 기다리지 말라는 의미고,   하나가 꽂혀 있으면 가까운 곳에 '마실'을 나갔으니 곧 돌아온다는 뜻이다.   

     

     

     

    점심을 마무리하고 성읍마을에 들어섰다.

    기분 때문일까?   하늘은 회벽처럼 희고 딱딱해 보였다.   그리고 그 한참 아래 바로 눈앞에서는 빗줄기가 느낌표처럼 한 줄기씩 떨어지며 불안한 마음을 일으키더니 달려온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회벽 같은 하늘도 더는 바람을 마다하지 못하고, 구름을 흩뜨려 이따금 푸른 살을 내비쳤다.  사물을 보는 시선이 섬세해진다.  이내 하늘은 맑아질 것이다.   그리고 황금빛 햇살을 폭우처럼 퍼부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제주도의 자연은 많은 신화를 창조하고, 제주도민을 신화 속의 신민(神民)으로 살게 했다. 신화 속의 주민들이 살던 집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동구에서 발을 옮겨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눈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 현무암이 지천이다.   그 많은 돌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려 성벽이 되고 마을로 이어져 길이 되더니 이내 담장이 되어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나 어느새 멈춘 듯한 발길을 움직여 담장 안으로 들어가 집이 되어 생명을 담는 그릇을 만들고서야 움직임을 오롯이 멈춘다.   독특한 질감의 돌이 주는 조형미에 덧붙여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담벼락은 제주도 한옥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현무암은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다.   땅이 제 몸뚱이를 부수어 만든 신성(神聖)이 담긴 살의 일부이고, 그 신성으로 몸을 두른 집이 제주도의 한옥이다.   그것이 성읍민속마을 전체를 중요민속문화재 제188호로 지정한 까닭일 것이다. 

     

    이 보물 같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장방형의 성(城)은 길이가 900m, 높이가 4m 정도다.   세종 때 성을 쌓고 동헌을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성읍마을은 정의현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20세기 들어서 그 규모가 급격하게 축소되어 작은 시골 마을이 되었다.   성안에는 현재 90여 채의 한옥이 있지만, 생활의 제약 때문에 적지 않은 집이 빈 채로 사람을 맞는다.

     

     

     

     

    때로는 담장을 높이 쌓아 바람의 눈길을 피하다

    이 마을의 원래 주인은 어쩌면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바람이 먼저 들고 땅이 솟아나 바람의 다스림을 받았을 것이다.  벽랑국의 세 공주를 여기까지 모셔와 탐라국을 세운 것도 아마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한옥은 이 땅의 주재자인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다.  지붕을 낮추어 바람에 머리를 조아리고, 때로는 담장을 높이 쌓아 바람의 눈길을 피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신국의 주민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올 수 있었다.   땅과 하늘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는 이곳 샤머니즘의 오랜 전통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은 제주도의 샤머니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를 기록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 이에게 제주도는 성지 같은 곳이다.

     

    넓은 마을 안길은 일본의 강점이 남겨 놓은 유쾌하지 않은 흔적이다. 원래라면 바람 많은 마을에 저렇게 큰 바람이 내달릴 수 있게 길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먼 바다를 지나온 바람이라고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 안길을 따서 만든 좁은 골목길은 따지고 보면 사람만이 살자고 만든 것이 아니다.  먼 길을 달려온 바람이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길로 들어서야 제주 한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돌이 만든 세상에서 바람과 가축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정겨운 장독대에서는 오미자가 3년 넘게 숙성되어 간다고 한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억새풀로 지붕을 꽁꽁 동여맸다

     

     

     

     

    사람처럼 돼지도 집을 현무암으로 둘렀다.   왼쪽에 솟은 건물이 통시고 둥글게 현무암을 두른 곳이 우리다.

     

     

     

     

     규모가 작은 집에는 통시 건물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짚으로 덮은 곳이 통시다.

     

     

     

     

     

     

     

     

     

     

    제주도는 물이 귀한 곳이어서 빗물과 이슬을 받아썼다.   나무로 흐른 물이 짚을 타고 내려와 항아리에 모인다.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성읍민속마을에서 한참을 쉬어 다음 여행지인 혼인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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