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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일대가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9호인 영암 도갑사(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사찰여행/전라도 2019. 8. 12. 16:22
사찰 일대가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9호인 영암 도갑사
2019. 8. 12.
2019. 8. 11. 산빛어울림과 함께한 8월 삼사 사찰 순례는 영암의 도갑사, 강진의 무위사와 백련사 로 오늘은 남도 사찰 길 여행이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 영암의 도갑사 이다...
이제 고속도로에서 내려 영암 일반국도를 달려간다...
영암 도갑사 들어가는 길로 들어선다...
점점 월출산이 가까워 진다...
월출산국립공원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영암 도갑사 석장승을 만난다.
도갑사 사찰 입구 길 양편에 세워져 있던 사천왕이나 인왕처럼 잡귀를 쫓고 성역 곡간을 나타내기 위한 표지로 민간신앙과 불교와의 복합 현상으로도 여겨진다.
사각의 돌기둥을 거친 다듬질하여 얼굴과 수염만을 뚜렷이 조각하였고, 하체는 생략하였다. 조각 수법은 약간의 돋을새김으로 심한 굴곡을 주지 않았음에도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도드라진 이마나 축 늘어진 귓볼, 얼굴에 비해 과장되게 표현한 S자형 수염은 이들 장승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혹자는 이들 장승을 비석 또는 팔만대장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장승과 관련된 의식은 별반 없는 듯하다.
장승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수호신으로서 인면형 장승임을 감안할 때 18세기 말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강석을 이용한 이들 장승은 높이가 각각 178㎝, 185㎝이며, 둘레는 115㎝, 222㎝이다.
도갑사 석장승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주차요금 매표소를 만난다.
주차요금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주차장으로 1.2 주차장이 있다... 06:30 포항을 출발하여 중간에 아침식사와 2번의 휴게소를 들려 4:30분 걸려 도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요일인데도 주차장이 한산하다.
도갑사 일주문 주변의 팽나무
도갑사 입구의 수령 490년 된 보호수 팽나무의 멋진 노목들...
오래된 팽나무가 일주문 바로 옆에서 마치 도갑사를 지키는 수문장 마냥 서 있는 모습이 장엄하기 까지 하다.
도갑사 일주문은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안내도
도갑사 일주문에는 '월출산 도갑사' 편액을 달고 있다... 도갑사는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 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도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다시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으며,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456년(세조 2) 신미(信眉)와 수미(守眉)가 중건하여 전부 966칸에 달하는 당우가 들어섰으며, 부속암자로 상동암(上東庵)·하동암·남암(南庵)·서부도암(西浮屠庵)·동부도암·미륵암(彌勒庵)·비전암(碑殿庵)·봉선암(鳳仙庵)·대적암(大寂癌)·상견암(上見庵)·중견암·하견암 등이 있었다.
최근에는 1977년 명부전과 해탈문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점차 옛 전각에 대한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大雄寶殿)·명부전(冥府殿)·미륵전(彌勒殿)·국사전(國師殿)·해탈문(解脫門)·일주문 및 요사인 세진당(洗塵堂)이 있다.
측면에서 본 도갑사 일주문
안쪽에서 본 도갑사 일주문
도갑사 일주문 뒷편에는 '국중제일선종 대찰, 덕해문'의 편액이 걸려 있다.
도갑사 입구에 있는 오래된 고목
도갑사 매표소를 지난다.
도갑사 들어가다가 뒤돌아본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 개울가를 조금만 지나면 도갑사를 오르는 계단길이 보인다.
옆 계곡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왼편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하면 도갑사로..
유물전시관 앞쪽에 잘려나간 나무 밑둥이 이채롭게 보여서...
절에 들어가기 전 중간쯤에 왼쪽으로 도갑사 사적비가 있다.
사적비에서 바라본 성보박물관
다시 몇 걸음을 걷다보면.... 드디어 만나는 도삽사 해탈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 근심없는 부처님 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월출산 도갑사 해탈문(月出山 道岬寺 解脫門)는 국보 제50호 이다.
혜탈문 석계와 소맷돌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후대에 넓혀져 기단이 두 부분으로 된 것으로 추정되며 태극무늬는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를 이르는 말로‘만다라’를 뜻한다.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조선시대에 세워진 도갑사의 정문.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주심포 형식의 단층건물이다.
1960년 5월 해체보수 때 종도리 밑의 장여(長舌) 윗면에서 묵서명이 발견되어, 1457년 중건을 착수하여 1473년 완공되었음이 밝혀졌다.
해탈문 현판 안쪽에 또 다른 해탈문 글씨는 고 박정희대통령의 친필 이었는데 지금은 보이지를 않는다.
입구에는 해탈문 현판이 걸려 있다.
나라연 금강역사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 해탈문은 1473년(성종 4)에 중건하였으며,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밀적금강역사
문수보현동자와 금강역사 상이 해탈문 좌우에 있다.
보현동자상
문수동자상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동자상(보물 제1134호)은 지금은 도선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라 한다. 지금 이것은 가품이다...
해탈문에서 바라본 광제루
도갑사의 불이문 격인 광제루 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중층 누각건물이다. 광제루에 인접해 좌우로 각 8칸과 10칸의 길다란 건물이 늘어서 있다.
해탈문 안쪽에는 '월출산도갑사' 현판을 달고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널찍한 공간 너머로 광제루가 보인다.
해탈문에서 보는 도갑사 경내
광제루 서편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광제루 좌측 건물이 다각실과 서쪽으로 성보박물관이다.
광제루 우측 건물이 종무소이고 그 옆으로 월출산 도갑사 범종각이 있다.
광제루 입구... 대웅전 앞 전경으로 안쪽에 오층석탑과 대웅보전이... 광제루는 근래에 새로 지었으며 ‘광제’란 ‘널리 중생을 제도 한다‘ 는 뜻이다.
광제루 아래로 들어서니 좀처럼 보기 어려운 부평초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광제루 입구에서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 대웅보전과 오층석탑... 절 마당에서 바라본 광제루, 광제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뻗은 건물
광제루 들어서서 우측 건물이 다각실로 템플스테이 때 숙소로 사용한다..
광제루 들어서서 좌측 건물이 종무소이다.
영암 도갑사 석조(靈岩 道岬寺 石槽)로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0호 이다.
도갑사에 있는 석조이다.
석조는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는 일종의 돌그릇이며, 물을 채워 연꽃을 심는 그릇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석조는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작은 통나무배와 같은 모양으로,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배수구를 갖추었다.
크기는 길이 467cm, 폭 116cm, 높이 85cm이다. 특히 ‘강희 21년 임술’이라 새겨진 글자는 석조를 만든 시기가 숙종 8년(1682)임을 알려 주고 있다.
월출산 도갑사 범종각은 2007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도갑사 법고 받침대
도갑사 넓은 마당에는 대웅보전과 오층석탑, 근래에 조성한 2기의 석등과 오래된 노거수가 있고 대웅보전 좌우로 심검당과 미소당이 자리하고 있다.
향 대웅보전 우측으로 자리한 심검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현제 템플스테이 사랑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6년 복원한 심검당은 ‘마음을 여는 곳’이라는 뜻이다.
심검당 뒷편으로 공양간인 지혜당이 있다...
향 대웅보전 좌측으로 도갑사 미소당이 있다.
들어 가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미소당’
미소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현재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소당 옆에는 도갑사 주지스님의 거처인 香茶閣 (향다각)이 있다.
대웅보전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보전과 오층석탑
도갑사 마당에는 커다란 노거수가 있어 그늘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다른 전각들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든다...
월출산 도갑사 5층석탑은 보물 제1433호 이다.
현재 도갑사 대웅보전과 해탈문 사이 앞마당에 있는 석탑으로 중축선에서 약간 동쪽으로 비껴 있다. 동남쪽으로 오래된 큰 나무가 있어 탑이 후대에 이곳으로 옮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이전에는 기단 하부가 지하에 매몰되어 있었으나 목포대학교에 의해 이루어진 4차 발굴기간인 1999년 9월에 세진당 뒤편에서 일제시대 도면에 있었던 석탑 자리를 확인하였으며 그곳에서 하층기단과 하대갑석을 수습하였다. 조사 내용에 의하면 이곳도 원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2002년 2월에 발견부재를 보강하여 2중 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규모가 큰데 비해 상, 하층 기단과 탑신의 결구법이 서로 다르고 전체적으로 투박하며 소박하다.
비교적 큰 규모임에도 전체적인 체감률이 자연스러워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각 부재가 투박하고 결구법이 균제되지 않았으며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비중이 낮아진 점은 시대적 하강을 보인다. 각 구성 부재가 비교적 온존하여 도갑사의 고려시대 역사를 알려 주고 있다.
8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고 있는 석등으로 대웅보전 앞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1981년 복원한 대웅보전의 정면... 1977년 참배객의 부주의로 화재발생. 대웅보전이 소실되었다가 재건하였다.
대웅전의 꽃창살과 창살아래 십이지신의 조각이 눈길을 끈다.
250여㎡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건축형태는 와부중층, 내부통층, 온칸 몰림 방식에 건축양식은 조선 초기 다포식 팔짝지붕에 막새기와를 얹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뤘다.
도갑사 대웅보전의 내부 법당 안에는 높이 3m 크기의 삼불상을 봉안했다.
중앙은 석가여래좌상, 향 불단 좌측의 아미타여래좌상, 향 불단 우측의 약사여래좌상의 삼불상이다.
석가모니불은 현재를 약사불은 과거를 아미타불은 미래를 상징하며 이 삼세불 신앙은 무병장수를 기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삼불상 뒤로는 홍송으로 조성된 높이 6m 폭이 1m 규모의 목조 후불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목조로 제작된 후불탱화를 모셔 복원의 의미를 더했다.
대웅보전 목각신중탱
법당 좌측 벽면에 봉안된 신중탱(神衆幀)은 거대한 향나무 판에 목각으로 새긴 목각탱이다. 이것도 200년 정도 이전에 조성된 것이라면 국보 자리 하나는 꿰찰 수 있었을 듯하다.
영가단의 목각탱
삼불상 뒤로 종과 북도 있다.
삼불상 불단 뒤의 모습으로 후벽에는 창문 2개와 여닫이 문도 있다.
불단위로 장엄한 닫집
대웅전 공포
대웅전에서 바라본 도갑사 전경이다.
도갑사 대보보전 측면 모습과 천불전
대웅보전 꽃살문과 외부벽화
대웅전의 고운 꽃창살
대웅보전 우측으로 국사각과 수미왕사 비각이 보인다.
대웅보전의 후면과 측면
대웅보전 후면의 모습으로 후벽에는 창문 2개와 여닫이 문도 있다.
후벽의 중앙에 여닫이 문이 있고
여닫이문 좌우로 창무니 2개 있다.
대웅보전 측면에서 바라본 국사전과 수미왕사 비각
대웅보전 측면에서 바라본 심검당과 광제루 동편 건물인 종무소도 보인다.
대웅보전 우측의 국사전으로 향해본다.
국사전(國師殿)과 수미왕사 비각
대웅보전 우측 후면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건물인 국사전(國師殿)이다. 국사전 안에는 도선국사와 수미왕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도갑사 수미왕사 진영(靈岩 道岬寺 守眉王師 眞影)
풍수지리를 집대성한 영암 도갑사 창건주 도선국사 진영(靈岩 道岬寺 道詵國師眞影)
도선국사 위폐
수미왕사와 도선국사의 진영 원본은 도갑사 성보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진본이 아니다.
도선국사 진영
국사전 우측의 수미왕사 비각
대웅전 동쪽 뒤편 국사각 옆으로 조선세조때 왕사로 책봉되었던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팔작집인 수미왕사비각이 있다.
대웅보전 뒤쪽 빈터에 있는 수미왕사비는 도갑사의 오늘을 있게 한 중창주 수미대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비의 건립은 1629년(인조 7)에 시작하여 1633년 (인조 11)에 완성하였다.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역을 적은 비로 비석의 높이만 2m, 총 높이는 3.5m 이다.
도갑사 수미왕사비는 영암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이 기록된 비인데, 비문에 따르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때의 승려로 13세에 도갑사에서 출가했으며, 그 후 법주사 등으로 다니며 경전공부를 하다가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한 절을 중창했고 불경언해 기구인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고, 이 후 세조는 그에게 묘각이라는 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했다고 한다.
수미왕사 비각에서 바라본 대웅보전의 모습
대웅전 뒤로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바로 뒷쪽 축대 위에는 천불전(千佛殿)이 있다.
이 천불전은 1977년 대 화재 이후에 복원된 옛 대웅전 건물이었으나, 2009년에 중층의 대웅전 건물을 신축한 이후 천불전으로 바뀌게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천불전 법당에도 옛 대웅전에 있던 약사여래. 석가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석가모니 3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삼존불 뒤로 은행나무로 조각한 1,000 분의 작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있다.
향 불단 우측 탱화
향 불단 좌측 탱화
천분의 부처님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전’
천불전 후면
천불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천불전 앞에 있는데 공양간에와서 점심공양 부터 해달라는 전갈이 와서...
신검당 옆의 공양간으로 향한다...
지혜당 현판을 달고 있는 도갑사 공양간
수미왕사 비각 쪽에서 바라본 지혜당
공양 후 다시 천불전을 지나면서....
바라본 천불전 앞 풍경이다.
천불전 옆으로 산신각 앞에는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은 정면 4컨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보전 뒤쪽 1단 높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1년에 정비된 것이다.
‘명’이란 보고 들을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명부’란 지옥을 의미하므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전각을 ‘명부전’이라 한다.
명부전 향 불단 우측의 시왕들...
명부전 향 불단 우측의 금강역사와 소종
명부전 향 불단 좌측의 시왕들...
명부전 향 불단 좌측의 금강역사
명부전 안에는 명부세계의 주인공인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10구의 시왕상. 판관. 녹사. 사다. 금강역사 상을 2체씩 봉안했다.
삼층석탑
대웅전 왼편의 천불전 후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집인 산신각이 있다.
2006년 산신각을 건립했다. 산신각은 월출산의 영험한 정기를 다스린다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산신각 내부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1936년에 조성된 산신탱화가 걸려 있다. 여러 사찰에서 본 산신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산신의 얼굴도 인자해 보인다.
산신탱 좌우로 멋진 나무 뿌리로 만든 목각 부처님이....
대웅전을 왼편 뒤로 돌아서면 명부전과 산신각 사이로 이처럼 아담하게 꾸며 놓은 '도갑 탐방로'가 나온다. 이 길은 도갑사에서 출발하는 월출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입구이기도 하다.
대웅보전 뒤편을 지나 미륵전으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나무가 자리 자라있는 기분 좋게 걷기 좋은 숲속길이다.
등산로를 따라서 조금 들어가면 왼쪽 언덕 아래에 운치 있는 작은 정자가 있다. 용수폭포 옆 벽간정
정자에 붙어 있는 ‘푸른 산골 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벽간정(碧澗亭)이라는 작은 편액이 운치를 더해 준다.
부채꼴모양 정자 벽간정(碧澗亭)
벽간정(碧澗亭) 안에서 보이는 탐방로 입구
벽간정이라는 이름의,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눈에 익은 듯해서 기억을 되살려 보니 창덕궁 후원에 있는 관람정(觀纜亭)과 크기나 모양이 비슷했다.
용수폭포
울창한 숲이 주위를 애워 싸고 있고 난간 아래로는 깊은 계곡이 있고, 사시사철 물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용수폭포가 있는데,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만들어 한여름에는 시원하다 못해 추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피서지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용수폭포를 지나 미륵전으로 가는 향하는 길목에 있는 용화교 다리를 건너면....
벽간정을 지나 계곡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조금 뒤에 만나는 갈림길... 왼쪽으로 돌아가면...
왼쪽으로 미륵전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 나는데
올라가는 돌계단 그 끝에 용화문(龍華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아담한 문이 나타난다. 미륵전 입구이다.
용화문은 미륵전 앞에 세워진 문으로 미륵세게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한다. ‘용화’란 ‘미륵정토’를 의미한다. 따라서 용화문은 미륵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수 있다.
미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전각이다. 전각의 4방으로 다양한 불화들이 그려져 있고, 단청이 화려한 아름다운 전각이다..
미륵전 전면에 걸린 현판 글씨는 호남 일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학정 이돈흥 선생의 글씨다. 서체가 강하면서도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석불좌상(보물 제89호)
도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은 높이 300cm.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석조불상이었으나 현재는 대좌부분이 남아 있지 않다. 머리와 그 위에 있는 큼직한 육계는 나발로 표현되었고 얼굴은 비교적 둥근 편이며 반쯤 뜬 눈과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이 특징이다.
어깨 폭은 좁고 위축되어 있으며 몸체는 길게 표현되었다. 편평한 가슴 위로는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특히 왼쪽 어깨에서 옷 끝단이 접혀져서 여러 겹의 주름으로 처리되어 있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나 양쪽 팔에 힘이 빠져서 생동감이 없으며 조각기법도 역시 둔화되었다.
광배는 주형광배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고, 광배 정상부와 머리 양 옆으로 화불이 있고 그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다. 이 불상은 얼굴의 세부표현이 예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평면성이 강조된 신체표현 등에서 고려 초기의 철불좌상이나 마애불좌상과 양식적으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뒷 광배에도 부처상이 새겨져 있다.
미륵전에는 1986년에 조성된 신중탱이 있다.
석불좌상이 있는 미륵전 본당의 문살도 아름답다.
미륵전을 관리하는 전각
용화문을 나와서...
미륵전에서 내려와
계곡을 따라 산 쪽으로 200여 m를 올라가면
왼쪽 널찍한 터에 부도전과 '도선국사비각'(道詵守眉碑閣)이 나타난다.
도선국사비의 앞 전경
제작하는데 18년 걸린 도선국사비 (보물 제1395호)
도선국사는 도갑사 부도전(浮屠殿)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 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인 도선국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한 석비이다.
비신은 화강암이며 전후 면에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측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매우 생동감 있고 힘차게 표현되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면의 운룡문(雲龍紋)이 특히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록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했으며, 높이 517cm 규모의 석비이다.
도선대사 비는 비문에 의하면 1636년(인조 14)에 건립을 시작하여 1653년(효종 4)에 완성한 것으로 18년간 걸린,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하여 주목을 끈다.
보통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곳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살딱 돌린채 고개를 들어 절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성의 거북머리이다.
앞뒷발에는 고기의 비늘과 같은 문양을 새겼다.
비석머리에는 머리를 양옆으로 처든채 뒤얽힌 용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크게 전면의 비문과 후면의 음기로 구분되는데 전면의 비문은 찬자(撰者)와 서자(書者)가 각각 다른 두 개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 전면 상단에는 전서체로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제액을 만들었으며, 당시 형조판서인 김광욱(金光煜)이 썼다.
비의 좌측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지었으며, 글씨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이 썼다. 이 비문은 총 16행 714자(자경 4∼5㎝)이며 비제(碑題)는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幷序)”이다. 전면 우측의 비문은 총 10행 512자(자경 2∼3㎝)로서 비면 상하를 모두 채운 것이 아니고 비면 중간에서 시작하였다. 찬자는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인 이경석(李景奭)이며, 글씨는 홍문관 제학 오준(吳竣)이 썼다. 좌면의 비문과 음기의 찬자는 각각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다.
월출산하 도선국사 비는 거북의 등 위에 연꽃대신 연잎을 새겨 놓았으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비지만 규모가 장대하고 조각이 섬세하다,
돌거북의 도톰한 등에는 가장 자리가 말린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비신 옆에 새겨진 운용문
보통 비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이 비는 비명이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주로 도선국사에 관한 것이며, 수미선사에 대해서는 천순(天順) 원년(1457)에 도갑사를 중창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이 비는 이만한 거대한 규모의 비를 만드는 데 18년이 소요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 서예와 조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도선국사비 옆에는 도갑사 부도전이 있다.
도선국사비 옆의 부도전 입구의 출입문인 진화문
큰 스님들이 입적한 후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곳으로 도갑사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1985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여 부도전을 조성하였다.
도갑사 부도전으로 부도탑들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형태는 종형과 팔각원당형이 있는데 양식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절을 거쳐간 고승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부 11기의 부도 가운데에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것은 영백당과 서령당 부도 뿐이다.
도선국사비와 부도전을 보고 도갑사로 내려 가는 길......
아까 미륵전으로 오르던 용화교가 아치형태로
계곡과 나무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
다시 만나는 월출사 오르는 숲길 입구를 지나 도갑사로 내려온다.
명부전과 천불전 사이로 난 출입문에서....
멋진 도갑사 풍광을 바라본다.
다시 대웅전 앞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한참을 도갑사에 머물다가 종무소에 가서 성보박물관을 보여 주십사고 정중히 부탁드려 성보박물관을 보러 이동한다.
도선국사 성보박물관으로 향해본다.... 도선국사 성보박물관으로 향하다가 바라본 광제루 좌측 건물 다각실과 광제루 그리고 광제루 우측 건물이 종무소이고 범종각도 우측으로 보인다.
도선국사 성보박물관 우측의 수장고
좌측은 도갑사문화관 우측은 도선국사 성보박물관 그 옆은 수장고이다.
도선국사 성보박물관에는 보물 제1134호인 문수·보현보살상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76호와 177호인 도선 국사와 수미 왕사의 진영, 미얀마에서 온 패엽경 2점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도선국사 성보박물관 들어오면 첫번째로 만나는 문화재는 고려시대 문화재로 우로부터 청동주형 광배, 청동판불입상, 청동문수동자상, 청동 소턉의 조각들이다.
이것도 고려시대 문화재로 우로부터 청자편, 칠화 청자편 , 칠화유병, 토제등잔 등이 있다.
1977년 참배객의 부주의한 화재발생으로 소실된 당시 대웅전의 모습이다.
관음삼십이응신도
일본 쿄토의 지은원에는 조선시대 이자실이 그린 관음삼십이응신도가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조선 명종 6년 (1550)에 인종의 비가 인종의 명복을 빌기위해 그리게 해서 도갑사 금당에 봉안한다는 화제가 적혀있다. 도갑사 금당에 있던 것이 어떤 경로로 일본에 갔는지 알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일한 ‘관음삼십이응신도’로 16세기 불화의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1977년 참배객의 부주의로 화재발생시 소실된 대웅전 안에 있던 당시의 부처님 모습이다.
언제 부턴가 없어진 과거 도갑사에 있었던 부처님들 사진이다..
2001년 개관한 도선국사 성보관에는 1995년 부터 2001년까지 4차에 걸쳐 목포대학에서 주관하여 진행한 사지 발굴 작업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매장문화재가 발굴될 때는 국가 소유로 한다' 는 규정 때문에 아직도 많은 성보문화재가 국가소유로 되어 절이 아닌 목포대학 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목조 보현동자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 해탈문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 각각 그 옆으로 보물 제1134호로 지정된 도갑사소장 동자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갑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해탈문의 뒤쪽 좌우 칸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상과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이 대칭적으로 놓여 있었다. 보통 이러한 형식의 문수· 보현 동자상은 석가나 비로자나불 좌우에서 협시하거나 금강문의 금강역사상과 나란히 안치된다. 진리를 찾아 순례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현 동자상은 문수 동자상과 마찬가지로 코끼리상 위에 걸터앉은 자세이다. 무릎이 내려져 있어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전반적인 얼굴이나 체구는 문수동자상과 흡사하며 양식적 특징도 같아서 같은 작가에 의하여 조성된 상으로 여겨진다.
목조문수동자
문수동자상은 사자상 위에 두 다리를 나란히 모아 앉아 있는 자세를 보여 준다. 머리는 좌우로 묶은 쌍계 머리, 통칭 동자 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복스러우며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어서 동자로서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체구는 작고 둥글며 자연스러운데 두꺼운 옷 때문에 세부 양감은 표현되지 않았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손바닥을 위로(上掌)하여 놓았고 왼손은 들어 역시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사자 위에 앉아 있는 다리가 유난히 큼직하여 통나무를 깎아 놓은 것처럼 비사실적이다. 그리고 종아리의 바지를 묶어 독특하게 주름져 있는데, 시대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옷은 다소 두껍게 처리되었고 그 위에 천의 자락이 휘감겨 있다. 채색은 적·녹의 중간색으로 은은하게 칠해져 있다. 약간 낡아 고격(古格)하게 보인다. 사자는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조각 솜씨는 범상하지 않아 사자로서의 면모를 그런 대로 보여 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자상 조각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동자상은 보물 제1134호 이다...
좌로 부터 수미왕사와 도선국사의 진영 원본
도갑사 수미왕사진영(靈岩 道岬寺 守眉王師眞影)-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77
조선 세조 대의 승려인 수미왕사의 초상화이다.
수미는 세조의 왕사(王師)이며 15세기 중엽에 도갑사를 크게 중창한 승려로서, 당시 선종판사가 되어 황폐한 불교를 부흥시켰다.
초상화에는 약간 왼쪽을 향한 자세에 불교용구인 불수를 들고 두 다리를 가부좌하여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았으며, 화폭의 오른쪽 윗부분에 '수미왕사진영'이라는 그림제목을 써 놓았다. 조선 인조 11년(1633)에 제작된 것으로 전하는데 그의 비를 건립한 시기와 같다.
함께 보존되어 있는 도선국사진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6호)과 인물의 표현법이나 의복의 음영처리 기법이 같다. 화문석 돗자리의 무늬 등 여러 가지 표현형식이 또한 비슷하여 19세기 초반에 도선의 초상화와 함께 옮겨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고 조선 후기에 불화를 그리던 물감을 사용하는 등 불교 회화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풍수지리를 집대성한 영암 도갑사 창건주 도선국사 진영(靈岩 道岬寺 道詵國師眞影)-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76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도선국사(827∼898)의 초상화이다.
도선은 주로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약했으며 비기(秘記:신기한 기록)나 풍수지리설과 연관되어 있어 실재 인물이라기보다 신화적 존재로 파악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기도 하여 태조 이후 고려의 왕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초상화는 불교의 의식 때에 왕사나 대사 등이 손에 드는 장자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상으로, 화폭의 윗부분에 ‘도선국사진영’이라는 제목을 써 놓았다.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는 도선의 초상화는 세조 2년(1456)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왕사의 제안으로 처음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이후 다시 옮겨 그린 것으로,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려 놓았다.
현재 도선의 초상화는 순천 선암사에도 1점이 보존되어 오는데 그림의 윗부분에 쓰인 글로 보아, 순조 5년(1805)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암사의 초상화와 비교할 때 인물의 표현방법이나 의복에 가해진 음영의 처리와 바닥에 깔린 돗자리무늬 등이 서로 비슷하여, 선암사의 상과 같은 시기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단순화된 복장과 옷깃의 끝머리가 안으로 접혀든 점, 의자의 양쪽에 꽃무늬 띠 등은 선암사의 상보다 약간 후대의 작품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승려 초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탈문 현판 안쪽에 또 다른 해탈문 글씨는 고 박정희대통령의 친필 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었다.
해탈문 현판 후면
도선국사 성보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광제루 좌측 건물 다각실과 중앙의 광제루 그리고 광제루 우측 건물이 종무소이고 범종각도 우측으로 보인다.
해탈문을 지나
일주문을 향해 내려간다.
일주문을 지나면 다시 사바의 세상으로....
다리를 건너 나오면서
도갑사 입구의 고목을 다시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넓직한 도갑사 2주창....
2012년 도갑사를 다녀 갔으니 7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인지 도갑사도 많이 변해 있었다. 끝없는 불사로 조금은 낮설기도 했지만 불교의 발전이라 애써 위로 받으며 오늘도 산사에서의 충분한 힐링을 하며 앞으로 살아 갈 사바세계에서 큰 힘을 얻어본다.
늘 부처님 품안에 함께할수 있어 많이 행복한 불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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