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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화스님의 향기따라 전남 곡성 성륜사(전남 곡성군 옥과면 미술관로 287 옥과면 옥과리 650--8)
    사찰여행/전라도 2019. 5. 30. 12:13

    청화스님의 향기따라 전남 곡성  성륜 

      

     

    2019.     5.    30. 

       

      

    2019.   5.   26.  청정심원 108 순례단인 '달마야 놀자' 에서 다녀온 전남 곡성의 도림사. 태안사 . 성륜사의  삼사 순례 이다 ........

     

    07:00 포항을 출발해  휴게소 두 군대 들러  제일 먼저 전남 순천 도림사를 그리고 태안사를 순래후 성륜사 입구  도착   돌아보며 휠링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곡성여행 남도의 고승 청화스님이 머무셨던 도량 성륜사를 찾아서...

    청화스님은 성철스님과 쌍벽을 이루는 고승이자 한국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어른으로 칭송받는 분이다. 그분의 향기를 찾아 성륜사로 향한다.

     

    성륜사는 청화스님이 출가하여 무려 40년간 장좌불와 눕지 않고 용맹정진 수행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대단한 선승이다.


    청하스님께 감복한 조방원 선생이 10만평에 이르는 땅을 내놓고 대상그룹의 임창욱 명예회장이 거액을 시주하여 1988년부터 시작하여 1990년 성륜사가 창건되었다고 한다.


    성륜사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성륜사로 올라가는 길... 성륜사로 가는 동안 양 옆으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설산 주차장을 시작으로 일주문이 시작된다.

    설령산 성륜사현판이 붙은 일주문, 설령산 영험한 산이라는 뜻, 청하스님은 서화에도 능하셨던 분으로 1992년 건립된 일주문 현판을 비롯해 성륜사 대부분의 현판을 직접 쓰셨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2000년 조성된 금강문





    성륜사는 오래  절집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에 중창불사를 시작한 절집이다하루  끼를 공양하면서,  40 년간 눕지 않고 좌선을 했던 장좌불와(長坐不臥) 실천했던 청화(19242003) 큰스님과 남종화의 거목 아산 조방원(19262014) 선생의 인연으로 불사를  절집이다절터도 예부터 ‘절골 불리던고려시대에 나암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서 있다.





    금강문 앞에 '근고청중


    금강문 앞에는 전 주지 대만스님께서 불사해 놓으신 청화스님이 대중에게 고하는 법문이 새겨져 있다.

    큰스님이 계시는 곳에는 늘 써 놓았다는 "근고청중(삼가 청정 대중에게 고함)"이라 써진 글 앞에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근고청중(謹告淸衆) 삼가 청정대중에게 고함

    '생사사대(生死事大) 삶과 죽음이 가장큰일인데

    무상신속(無常迅速) 덗 없는 세월은 빨리 가버리니

    촌음가석(寸陰可惜)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신물방일(愼勿放逸) 방심하고 게으리지 말라'  는 글귀가 한해의 절반을 지나 5월 하순을 향하는 시점에 많은 생각들로 뒤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일주문 옆 '근고청중 뒷면에 씌여진 글...


    약중생심((衆生心) 억불염불(憶佛念佛) 만약중생(衆生)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외우면

    현생당래(現生當來) 필정견불(必定見佛) 현생(現生)과 래세(來世)에 반드시 결정코 부처님을 뵈오리라.

    능엄경(楞嚴經


    뒷면 글은 큰스님께서 자주 인용하시고 대중분들에게 손수 써주신 글이다.   잊혀져가는 염불수행을 평생을 법문하시면서 일깨워주신 것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성륜사(聖輪寺)는 옥과의 진산인 설산(雪山)의 남쪽 설령골에 위치하였으며, 198864일부터 중창불사 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주변으로 괘일산과 갈산 등이 자리를 잡고, 설산에서 발원한 작은 계곡들이 흘러 안으로 굽은 산세가 성륜사를 외호(外護)하고 있다. 성륜사는 고려시대 사찰이었던나암사(羅巖寺)’의 맥을 잇는 터에 자리를 잡았다. 나암사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 기록되어 있으며,동여비고(東輿備考)옥과현 지도에 나타난 나암사의 위치를 보면 지리적으로 현재 성륜사가 위치한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는 사찰이 폐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나, 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현재 성륜사의 자리가 절골로 불렸다는 점, 성륜사에서 고려시대 기와와 조선시대 기와가 수집되었다는 점에서 현 성륜사 터에서 법등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성륜사는 1986년 청화 대종사(淸華 大宗師)와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거사와의 인연으로, 10만평의 땅을 시주 받으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었다.








    금강문에서 바라본 성륜사 전경...     금강문 안에는 사천왕이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성륜ㅅ 사천왕은 목조각장 목아 박찬수(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08) 선생이 미국에서 수입한 홍송을 사용해 2001년 건립하였다고 한다.









     금강문 들어서서 첫 건물인 2000년 불사된 종무소로 성륜사 찾는이 없는 너무나 조용했다...




    마치 잘 닦인 유리창처럼 깨어질듯 하늘은 파랗고  햇살아래 조용한 산사는 너무나 아름답다.





    청화스님의 말씀과 향기가 성륜사 곳곳에 스며있다...








    금강문과 종무사무소를 지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사찰 내로 들어섰다범종각 뒤로 법성당,  법성당 앞으로 안심당과 육화당이 있다.





    범종각





    범종각은 절의 한 가운데 위치하여 타종을 하면 사찰 안에 그윽하게 울려 퍼질 것 같다.





    대나무와 잘 어우러진 범종각




    잔디를 심어 걸음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골목길을 돌아 조용히 걸었다.





    당우도 당우지만, 성륜사에서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따로 있다. 육화당, 안심당, 벽련당이다. 1920년대 구례에 지어졌던 집을 1986년에 고스란히 옮겨 지은 것이다.








    성륜사 경내에 자리 잡은 아산 조방원 선생 기념비


    한국남종화의 완성자이자 유불선을 추구한 구도자  아산 조방원(1926~2014) 화백은 남농 허건에게 사사 받고 유불선을 추구한 구도자의 길을 통하여 남종화 기법에 북종화 기법을 가미한 독특한 수묵(아산준법)의 일가를 이룬 한국 남종화의 완성자다. 대자연의 기운 생동과 불교의 선미(禪味), 도교적 무위자연의 유현미(幽玄味)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아산은 청화 큰스님에게 성령동 땅 11만평을 기증하여 현재의 성륜사가 건립되었다.





    옛집의 사랑채였던 육화당과 안채였던 안심당은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에 있던 국포 김택균(18721945)의 집이었다.

    아산이 구입해서 여기로 옮겨와 예술활동 공간으로 쓰다가, 성륜사에 시주해 종교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옛집의 주인 김택균은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을 했던 인물이다. 고아원(홍제원)을 운영했다.

    출산을 한 주민에게는 쌀과 미역을, 상을 당한 사람한테는 옷감과 나무관을 보냈다.

    화재나 풍수해를 입은 주민도 도왔다

    이 집이 곡성으로 옮겨진 뒤에는  아산에 의해서 예술 창작과 후학 양성공간으로 활용됐다.

    소유자가 절집으로 바뀐 뒤에는 중생 구제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사회 구제도, 문화 향수도, 중생 제도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정신이다.

    이 집은 현재 근대문화재로 지정 신청돼 있다.

    이 건물로 인해서 절집의 분위기가 다른 데와 차별화된,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성륜사 오지총관도


    육화당 마당 한 가운데 일반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비석이 보이는데 두꺼비 모양의 돌받침 위에 부적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성륜사 오지총관도라 하고 물방울() 반달() 삼각형() 원형() 네모()을 담고 있다.

    네모는 일체만유의 근본 바탕이 되는 단단한 기운을, 원형은 물 기운을, 삼각형은 불기운을, 반달은 움직이는 기운을, 물방울은 장애없는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몸을 구성하는 地水火風이 모두 하다는 듯으로 아래로부터 ,,,,을 나타내는 문양을 새겼다.





    어쩜 이리도 어여쁠수가 있을까?








    금강문 뒤쪽의 우측에는 스님들의 거처인 승방인 안심당과 육화당이 있다.



     작은 연못 위로 안심당과 육화당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1920년 구례 지역의 상류가옥인 국포고택(菊圃 김태균이 1920년대 건립)1987년 곡성으로 옮겨 지은 건축물이다. 전통한옥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근대 건축기법을 부분 적용해 한옥의 시대적 변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농 허건(19071987) 화백의 제자이자 남종화의 거장 아산 조방원(19222014)의 전통문화예술 교육과 창작을 위한 전승공간으로도 가치가 높다.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잘 보이는 안심당과 육화당








    안채였던 안심당과 옛집의 사랑채였던 육화당










     

     안채였던 안심당과 옛집의 사랑채였던 육화당



     안심당.육화당 마주보며 법성당





    엄청난 규모의 불사에서 청화스님의 원력에 감탄스러움을 자아낸다.





    법성당


    청화스님이 설법하시던 건물로 주말에는 청화불교대학 강의 용도로 사용된다. 청화스님 계실때는  매월 첫번째 일요일 이곳에서 조실 청화 큰스님의 원통불법이 베풀어 졌다고 한다.





    오지총관도 (五智總觀圖 )


    우리몸을 구성하는 地水火風이 모두 하다는 듯으로 아래로 부터 ,,,,을 나타내는 문양을 새겼다.








     벽에 걸린 청화큰스님의 사진





    성륜사 경내를 둘러 쌓은 돌담장, 그리 높지 않은 탓에 담장너머 그 안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녹음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돌담길... 역사는 오래지 않지만 전통과 조화를 잘 이룬듯... 아름다운 절집







     성륜사는 비교적 새 절이지만, 여기저기에 운치가 서려 있다.





    법성당을 지나 앞에 보이는 백련당 가는 길 주위에 토담 위에 핀 장미꽃의 늘어뜨림이 멋지기만 하다...





    백련당은 지장전과 대웅전을 오르는 오르막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백련당 입구에 걸려있는 목탁하나, 벽련당(碧蓮堂), 이곳은 성륜사 주지스님의 거처이다. 정숙하게 있는 듯 없는 듯  ~





    마음의 고향 같은 옛집 , 벽련당을 배경으로  꽃도 지금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돌담장 너머 그 모습은 또 어떨까?   궁금한 핑계로 살짝 들여다 보기...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거슬리는 것이 없는 듯 보였다.





    정운당


    정운당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재가자를 위한 선방. 기도처.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며 공양간도 이 건물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마냥 걷고 싶어지는 돌담장





    청화스님의 어록이 눈에 들어왔다.





    백련당을 지나 지장전과 대웅전 갈림길... 왼쪽은 대웅전 오르는 길...   오른쪽은 지장전 오르는 길...라가는 길도 돌로 정성드려 만들었다.





    먼저 들러서 살펴본 지장전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계단 두계단 오를 때 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누가 먼저 오르나 내기도 하고픈 길...





    돌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지장전





    지장단은 목각탱으로 되어 있다.






    1991년 세운 지장전(地藏殿)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시왕을 모신전각이다. 지장보살 목각탱화와 명부시왕을 봉안하였고 특이하게 지장전 내부에는 윤장대를 설치하였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공덕이 있다고 한다.   

    보통 운장대는 사찰 경내에 설치하는데 이곳은 지장전에 있는게 특이하다.  윤장대 안에는 경전이 아닌 원불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장전 꽃살문























    아름다운 돌담길 따라 대웅전 올라가는 길.......

    왼쪽길로 올라가면 대웅전이 나오는데 대웅전길과 지장전 길이 모두 돌계단과 잔디가 잘 어우러진 모습으로 조용한 가운데 참선하는 절집의 분위기와 기막히게 어울린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번잡한 절이라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것이 불가능했으리라......








    대웅전을 가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밟으며 쉬어가듯 잠시 되돌아보기. 느림이 가져다 주는 모처럼의 여유...





    지장전을 지나, 오르막과 계단을 올라서면 지장전 뒤편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1990년에 세운 건물로  대웅전의 외관도 장엄하다.





    사찰의 대부분의 편액과 주련은 청화스님이 직접 스셨다고 한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좌보처에 관세음보살, 우보처에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목각 신중탱을 모신 신중단





    지장탱화를 모신 영가단




     대웅전 외부벽화도 장엄했다.

















    문살의 아름다움도 대찰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문살이 아름답고 큰스님께서 쓰신 주련도 아름답자성미타무량수(自性彌陀無量壽)   응현개시진공상(應現皆是眞空相)











    설령각


    대웅전 뒤에는 설령각이 있다. 설령각은 다른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되는 전각이다.








    설령각 옆으로 난길을 따라가면 출입금지 구역의 금강선원 입구를 거쳐 청화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조선당으로 갈수 있다.

    성륜사 왼쪽 편으로 이어진 조선당과 청화스님 부도탑전 가는 길...





    청화 큰스님께서 살아 생전에 머무르시던 곳.  성륜사 조선당





    조선당 앞에서 큰스님이 사랑한 조선당 앞 연못을 배경으로...




     

    좌측 벽에 걸린 청화큰스님의 사진과 우측의 금타스님


    조선당 경내에는 지난 2003 입적한 청화스님이 살아 생전에 기거하시던 곳으로 열반하신 후에는 스님을 기리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 고행상을 봉안하고 우측으로 청화스님의 은사인 벽신당 금타스님

    (1898~1948) 의 진영과 왼쪽으로 무주당 청화스님(1923~2003)의 진영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큰스님을 친견하고 고구정령 일러주시는 법문을 들으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현재는 사진으로만 친견 하실 수 있는 곳, 혹시 성륜사에 오신다면 한 번 올라가서 청화큰스님을 친견해 보시길...


    청화 큰스님에 대하여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청화(淸華) 스님은 광주사범학교 졸업, 일본에 유학한뒤 고향에 사학을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해방 후 좌우(左右) 대립을 보며 심적 갈등을 겪고 출가를 결심했다.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金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50여 년간 대흥사,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백운산 사성암, 혜운사, 태안사 등 성지의 토굴에서 묵언, 일종식 및 장좌불와의 좌선으로 오로지 수행정진만 했 했으며 60세가 넘어서야 대중 설법을 시작했다. 1960년대 부터 곡성 태안사에 주석하며 복원불사를 시작했다. 이후 95년부터 99년까지는 팔스프링 금강선원에 주석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알렸다. 원통(圓通)불법을 선양하고, 엄정한 계율의 준수와 염불선을 주장하고 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염불선 수행을 해온 스님은 참선을 할 때는 심지어 석 달 열흘 동안 물만 먹고 정진하기도 했다. 스님은 늘 법문을 통해 참선을 잘 하면 내가 없고 네가 없고 미운 사람 좋은 사람도 없어지며 나날이 좋은 날이고 때때로 좋은 때이다라며 참선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고 했다. 그는 또 불교의 어느 종파의 가르침도 버리지 않고, 다양한 교법을 서로 걸림 없이 회통하는 원통불교(圓通佛敎)를 주장했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곡성 동리산 태안사를 1985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중창 복원,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1992년 말 미국에 금강선원을, 2002년 도봉산에 광륜사를 열었으며 정통선의 향훈’‘원통불법의 요체등의 저서를 남겼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입적 사실을 알리지 말고 최소한 간소하게 다비식을 치를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11월 세납 80, 법랍 56세로 입적했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이 세상 저 세상/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은혜를 값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此世他世間去來不相關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

     

    청화스님 오도송

    迷故三界城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
    悟故十方空 깨달으니 시방이 공 하네
    本來無東西 본래 동서가 본래 없나니
    何處有南北 어느 곳에 남북이 있으리오

     

    청화스님 열반송

    열반게涅槃偈 1

    此世他世間  차세타세간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거래불상관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夢恩大千界  몽은대천계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 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보은한세간은혜를 갚는 것은 산골물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열반게涅槃偈 2

    幻軀八十年 환구팔십년허깨비 같은 몸을 이끈지 80
    回憶思萬端 회억사만단 돌이켜 살펴보니 만감이 교차하도다
    永劫皆空寂 영겁개공적 무량한 세월이 모두 비어 분별할 것 없으니
    何有是與非 하유시여비어디에 옳고 그름 붙을 자리 있을 것인가





    조선당 내부 큰스님이 주석하는 곳으로 석가세존의 고행상과 우측으로 청화스님의 스승이신  금타화상 진영이 모셔져 있다...





    조사전 옆으로  금타(金陀)존사(尊師)님과 청화(淸華)큰스님의 부도탑이 있.


    성륜사 제일 높은 위치에 왼쪽은 청화 큰스님의 스승님이신 벽산당 금타화상의 탑비와 부도탑을 2000년에 조성했다. 청화큰스님은 은사스님에 대한 공경과 예를 탑비와 부도탑으로 후세에 남겼으니 이 또한 실천적 설법이라 생각된다.








    벽신당 금탑화상의 부도탑과 탑비 오른쪽으로 무주당 청화스님 부도탑과 탑비는 2007년에 조성하였다....








    아름다운 정원처럼 잘 가구어진 산사의 풍경. 휴일인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관게자들 외에 외부인이 별로 없어서 마음에 깃든 번뇌와 갈등은 경내를 산책하는 동안 깨끗이 씻겨 정화된 듯하다.




    조사당에서 내려오다 만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전면 3 측면 3, 59 규모로  건립된 2014년 초에 완공한 적멸보궁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봉안하였으며 그동안 설법전에서 임시로 모셔온 청화스님이 2001년에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상











    인적없이 고즈넉한 산사의 길, 그 길 따라 왔던 길 걷고 또 걸어 법종각 앞을 내려간다.











    금강문도 지나...








    성륜사 일주문을 나서면 주차장이다...





    성륜사 주차장에서 산중턱으로  옥과미술관 안내표시를 따라 가본다...

    인접한 곳에 아산 조방원 선생이 기증한 전라남도 옥과미술관이 있으니 연계해서 방문하기를 권장한다아산 조방원의 미술세계를 엿볼  있는 곳이다.




    옥과미술관입구의 야외 조각품



    남종화의 거목 아산 조방원의 미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남 옥과미술관


    옥과 미술관 이용 안내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하절기 ( 3~10) 0900 ~1800 
        동절기 ( 11~2) 0900 ~1700
        , 문닫는 시간 30분 전까지만 입장 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또는 미술관에서 정한 휴관일 



    한국화 화가 아산 조방원 선생이 자신의 작품을 포함하여 현대와 고대의 미술품문화재 등 무려 6,800점의 소장품을 전라남도에 기부한다.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그는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을 최고의 명당으로 여기고  명당의 기운 또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나눠야 된다며 부지 4300평까지 제공하였다.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당시 전라남도 유일의 도립미술관인 옥과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미술관 1층은 일반 작가들의 순회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미술관 1층에서 '탐매 그림으로 피우다 - 조현수 '

















    2층은 조방원 선생의 역작과 더불어 그가 수집한 귀한 컬렉션들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선이 굵고 거칠면서도, 삶의 정한이 듬뿍 담겨있는 선생의 작품과 마주하면 한국화에 문외한이라도, 어떤 그림은 개구쟁이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들고 또 어떤 그림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고향과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면서 콧날을 시큰하게 만든다
    남종화는 약간 난해한데다가,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주제 역시 현실 세계와는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아산 조방원 선생 사진과 생전에 쓰시던 문방사우




     

     옥과미술관에서 담아온 아산 조방원 선생 작품 몇 편








    선생의 붓끝에서 펼쳐지는 '먹산수'  우리가 겪었던 친근한 추억과 우리가 품고 있는 애절한 그리움을 되살려 준.   











    아울러 도립미술관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간문, 고종황제 친필 휘호, 목판 등 귀한 문화재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설산 포근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옥과미술관





     미술관 외부에 전시된 조각 작품들








    아산 조방원의 미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성륜사 옆에 위치한 전남 옥과미술관도 보고 성륜사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곡성이 고향은 아니지만 곡성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말년을 곡성에서 살다가 곡성에서 생을 마치신 청화 스님을 흠모하던 아산 조방원 선생!
    그가 뿌려 놓은 옥과미술관이라는 문화의 씨앗과 성륜사라는 정신의 씨앗은 장차 곡성이 인문학의 산실로 꽃피우고 결실을 맺게 만들 것이다


    곡성 성륜사는 나암사의 전통과 청화 대종사가 중창 불사한 실상염불선 수행의 맥을 있는 전통사찰이다.

    평생을 하루 한끼만 드셨고 40년을 눕지 않고 수행하였다는 청화스님의 행적에 비춰본 우리의 생활이 부끄러웠다.


    천년의 고찰은 아니지만 잘 가꾸어진 예쁜 정원이 있는 산사 곡성 성륜사를 찾아 청화 큰스님의 향기를 다시금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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