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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평화누리공원 & 임진각 관광지여행방/경기도 2019. 5. 20. 09:03
파주 평화누리공원 & 임진각 관광지
2019. 5. 20.
2019. 5. 19. 원래 2번째 일요일인 정기 행사를 두번째 일요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한주 미루어 세번째인 5.19. 포항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회원 35명과 함께한 경기도 파주시 평화누리공원 & 임진각, 임진강생태탐방로, 3땅굴- 도리전망대-도리산역-해마루촌을 두루 살펴보는 안보 여행길이다 .........
포항출발(04:00) → 선산구미휴게소 → 상주 → 이천 → 고양 → 파주 →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08:50 도착이다.
임진각 주차장에 내린 후 임진각평화누리공원 & 임진각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뒤 10:00 부터 임진각생태 탐방로를 탐방하기로 한다.....
미얀마 아웅산순국위령탑
임진각을 들어서면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망자들을 위한 아웅산 순국위령탑이 먼저 보인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 아웅산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이 아웅산 묘소는 버마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아웅산을 기리기 위한 일종의 사당같은 곳이었다. 1983년 10월 9일 10시 28분. 버마 아웅산 묘지에 전두환 대통령이 참배할 예정이라 기자단 및 대통령의 참모와 수행원들이 미리와 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도착하기 조금 전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원격조정 폭탄이 폭발했다. 외교사절 다수와 기자 등 총 17명이 순직했고, 많은 관료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대통령은 급히 전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버마는 우리 나라에 조문단을 파견하는 등 외교상의 예우를 다했고, 폭파범을 잡아 사형을 선고했으며, 이후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한다. 지난 2003년까지 폭탄 테러에 가담한 공작원이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미얀마의 1983년 당시 이름은 '버마'. 때문에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은 미얀마보다는 '버마'라는 명칭이 훨씬 귀에 익을 것이다. 미얀마라는 이름은 1988년 이 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을 무렵 신군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게 되고 이 군사정권은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미얀마 모습을 보면 이 나라 정말 심각해 보인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가택 연금이 풀렸네, 어쩌네... 아니면 수도 양곤에서 320km 떨어진 곳으로 국민들 몰래 정부 기관들을 이전해서 수도를 옮겼네 어쩌네...
임진각에 있는 아웅산 순국 위령탑은 잘 보면 17개의 날개 모양의 돌기(?)들이 있다. 이는 당시 순직한 17명을 뜻한다. 위령탑 아래에는 철주조물로 순국자의 당시 직함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평화누리 공원에 금방 도착했다.....
평화누리광장은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계기로 조성된 대형 잔디 언덕이다.
야외 공연장인 음악의 언덕과 수상 카페 ‘안녕’이 소소한 쉼터가 되어준다. 범퍼카, 바이킹 등 놀이시설을 갖춘 평화랜드와 평화누리광장 사이 바닥분수가 여름철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주변 잔디에 돗자리를 펼치고 머물 수 있다.
3만 평 규모의 푸른 잔디 언덕이 펼쳐지는 평화누리 공원은 사진 스팟으로 유명하다.
하늘과 맞닿은 언덕, 색색의 바람개비 앞에서 사진 속에 추억을 기록해가는 이들이 많다. 공원에 위치한 2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공연장과 수상 카페, 바람의 언덕에서 연중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에는 바람개비 3,000여 개가 돌아가고,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연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너른 공원에는 나무 그늘이 많지 않지만, 바닥분수 앞에서 평화의 바람을 선선히 즐기기 좋다.
멀리서 바라봐도 하늘의 잔잔한 구름과 함께 평화누리공원의 잔디밭이 평화롭기만 하다.
저기 보이는 건물은 카페다. 수상가옥 느낌의 도피오커피 뒤로는 카페 ‘안녕’의 브런치 버전인듯한 ‘디브런치 안녕.’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바람개비 언덕 위에 커다란 핀이 콕 박혀있다. 파란 잔디위에 빨락 바람개비와 함께 핀도 빨간색, 색감 참 조화롭다.
이광기 ‘평화의 시작이 이곳이다.’ 더 나아가서 표류하는 사회와 인류가 지금 서 있는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분단에서 통일로, 여기 평화의 핀을 고정한다. 핀이 조형물 자체로도 볼수록 매력있게 다가온다.
바람과 함께 세차게 돌아가는 알록달록한 바람개비들이 이쁘고 화려하게 느껴진다.
문득 모아이 석상을 떠오르게 하는 평화누리공원의 통일바라기 조각상
줄서서 점차 윤곽을 드러내면서 커지는 모양으로 나오는데 하늘과 함께 담은 모습이 묘하게 어울린다.
앞에 야외무대도 있어 행사장소로도 좋을만한 넓은 공간이다.
사람 키의 몇배는 될 것 같은... 통일바라기 조각상, 뭘 바라보고 있는지? 북한을 향해 있는 걸까?
바로 앞에서 보니 대나무로 엮은 조각상인데 실제 생각했던 것보다 그 크기가 대단하다.
다시 임진각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임진각 주차장으로 가다가 본 풍경들로 북한에 지원해줄 트렉타가 줄서서 진열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무력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에서 전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함께 피 흘려 싸웠다. 당시 1,300여명의 파주시 참전용사, 그리고 파주지역을 방어했던 1사단장 백선엽 장군과 병사들, 해병대 1전투단은 목숨을 걸고 국가를 수호했다.6.25 참전비
파주에 생생히 살아있는 살신성인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격전지였던 파주 임진각에 2011년 6월 26일 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비가 앞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국가 존립의 이유를 일깨우는 정신적 자산으로 널리 알려지고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참전비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상징물이다.
임진각을 알리는 조형물이 만들어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멋진 포토존으로 인기가 좋은 곳이다.
임진각 전망대로 이동한다...
임진각은 남한의 북쪽 끝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데 북측에 있는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위한 곳으로 마련된 장소다.
예전에는 임진각이 분단된 조국의 금지선이라는 슬픈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2005년 경기도 해를 맞아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고자 평화문화관광지로 거듭났다.임진각 전망대 입구의 아래쪽 벽면
임진각 관광지는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개발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 지점에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은 함경남도에서 시작해 황해북도와 경기도 파주 사이를 흘러 한강과 서해에 닿는다. 임진강과 민간인통제구역을 조망할 수 있는 임진각은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임진각 건물을 중심으로 임진각 1층에는 스마트 전시 시스템을 갖춘 DMZ종합홍보관 ‘DMZ NOW’가, 3층에는 임진강 건너 북한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실향민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건축된 임진각에는 기념품점, 편의점,음식점 및 카페와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하늘 마루 전망대에 오르면 민간인 통제 구역 마을인 통일촌과 DMZ, 임진강 철교가 내려다보인다.
망향의 노래비 맞은편으로 임진각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각의 전반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임진각 전망대가 있다. 각종 편의시설이 있는 임진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녘땅을 볼 수 있다.DMZ 구역을 볼 수 있는 DMZ 관광의 시작, 임진각(Imjingak) 전망대
1971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개발된 임진각 관광지는 매년 200만 내외국이 찾는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통일안보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임진각의 모습은 최근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임진각 전망대에 오르면 탁트인 시야에 임진강이 내려다 보인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해서 이 강 하류 유역에는 다른 강과는 다르게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임진각이 민통선 상에 있다. 때문에 임진각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가려해도 군인들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사실 이곳은 전망이 좋은 곳도 아니고, 도라전망대처럼 DMZ 철책에 있는 것도 아닌데...500원짜리 동전에 작동하는 망원경이 무료였으면 하는 바람도...
임진강 물을 먹고 자란 청정 쌀도 유명하지만 이곳에는 특히 장어와 참게 요리가 유명하다. 임진각 전망대를 오르다 보면 사회 각계 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통일염원 손도장이 있다.
임진각 전망대에서내려다 본 임진강 철교, 임진강 독개다리, 자유의 다리, 망배단....
임진각 전망대에 올라, 오천년을 저렇게 소리없이 유유히 흘렀을 임진강을 바라보니, 같은 민족끼리 50년간 서로 죽이겠다고 눈알을 부라리며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모습이 참으로 부질없어 보였다. 부질없어서 나중에 우리 후손이 보면 허탈한 웃음까지 지을만한 역사적 산물들이 이곳 임진각에 모여있다. 그래서 임진각을 소개하는 많은 자료에 이곳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곤 한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풍경
남북 분단 전 한반도 북쪽 끝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이곳에 멈추어 전시되고 있다.
임진철교는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는데 하행선은 전쟁 때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상행선은 남한에서 복구한 상태다.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평화누리공원 방향의 풍경
임진각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망향의 노래비. 가수 설운도씨가 부른 노래 잃어버린 30년 기념비.
망향 노래비에서 바라본 임진각 전경
망향노래비 옆에 위치한 망배단
자유의 다리 앞쪽으로 '망배단'이 보인다. 통일을 염원하며 실향민들이 북녘에 두고 온 부모, 형제 가족, 친지들을 위해 매년 명절이면 합동차례를 지내는 망배단
망배단은 설과 명절 때면 실향민들의 제사행렬로 북적인다. 북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는 실향민들... 뒤로는 돌병풍이 둘러져 있는데 한 폭 한 폭마다 북쪽의 명경을 부조해 놓았다. 천지, 개마공원, 금강산, 압록강, 대동강 을밀대, 구월산 밭갈이 모습 등등...
참전비 앞을 지나는 통일열차
철도 중단점과 경의선 철마 모형,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쟁 무기 등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전쟁 당시 사용했던 증기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는 곳, 경의선 철로를 재현해 놓은 철길 전시장 으로 향했다.
한국전쟁 당시 당시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운행하던 경의선 철도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DMZ내 장단역 부근에 버려져 있던 레일과 침목을 재활용하여 기찻길을 설치하였다.
침목 위에 황동 안내판에는 과거 증기기관차 운행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의미에서 경의선 주요 28개역(임진부터 신의주까지)의 역명과 소재지, 임진역부터의 운행거리를 설명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담벼락에는 실향민들의 각종 소원이 적혀있는 형형색색의 리본들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웬지 짠한 생각이 단다.
리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경의선 장단역 증기관차'라 이름 붙여진 오래된 증기기괸차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등록문화제 제78호로 지정된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제작년도는 알 수 없으며, 산악지형의 효율적인 장거리 화물 운송용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한국전쟁 중에 피폭• 탈선된 이후 반세기 2004년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한 후 녹슨 때를 벗겨 지금의 위치에 전시하고 있다. 기관차에 남아있는 1,020여 개의 총탄 자국과 휘어진 바퀴는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시속 80km/h, 길이 15m, 폭 3.5m, 높이 4m에 이른다고 안내문에 설명되어 있다.
이 기관차는 경의선 장단역에서 한국전쟁 당시 피폭된 후 탈선되어 그 자리에 멈춰선채 반세기 넘게 비무장 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남북분단의 상징물이다.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한 후 포스코의 지원으로 녹슨 때를 벗겨내고 역사 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증기기관차 뒤편으로 독개다리 스카이워크의 입출구가 있다.
독개다리는 105m 길이에 폭 5m규모로 이어진다. 객차 구간에서 스카이워크로 가는 길은 옛 철로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구간이다. 전쟁 중 다리 기둥에 새겨진 총탄 구멍 등을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로 꾸몄다. 1층에는 해설사가 상주하며 당시의 상황과 주변 경관, 다리 등 시설물에 대해 설명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임진강 건너 북한과 민간인통제구역 등 주변 풍광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좌우 풍경은 사진촬영 금지구역이고 다리 끝에서 내다보이는 앞쪽 방향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증기기관차를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증기 기괸차에서 자라던 뽕나무
기관차 잔해 옆으로는 뽕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뽕나무는 아무도 갈 수 없는 DMZ안에 피폭 탈선되어 방치되어 있던 장단역 증기기관차 위에 자라던 것을 증기기관차 공개 전시와 함께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각 기차역 이정표
철길에는 북한땅인 개성부터 갈수 있는 곳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이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의 증언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도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후진하여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통일 연못과 이를 가로지르는 측면에서 본 자유의 다리
자유의 다리는 허름하다. 포로 교환을 위해 임시로 지어진 탓에 중요 부분만 철재를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건축학적인 가치는 없지만 앞에서 언급했 듯이 우리나라 분단 현실의 상징이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유의 다리에서 1953년 7월에 한국전쟁이 휴전(전쟁을 잠시 쉬는 것)되면서 남북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다. 임진각에 있는 이 다리는 휴전 후 첫 포로 교환이 이루어진 다리로, 1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찾았다하여 이 다리 이름이 '자유의 다리'가 되었다.
1953년에 한국전쟁 포로 12,773명이 자유를 찾아 이 다리를 걸어서 남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뻤을까? 이 자유의 다리는 아마 그때 당시 희망과 행복을, 더 나아가 새 삶을 주는 보증수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단 현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 우리들 가슴 속 한 구석을 아프게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자유의 다리 서편은 가시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다.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슬픔은 무시무시한 가시철조망까지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는 리본으로 뒤덮어 놓았다. 이곳에 와서 헝겊 조각하나 묶어 놓는다고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오게 만드는 이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통일연못과 We are the onE
자유의 다리를 건너다 보면 임진각 전망대 쪽으로 한반도 모양의 연못과 연못 가운데 있는 타래과 같은 조형물이 하나 보인다. 우선 이 연못은 "통일연못"인데 가로 12m, 세로 36m, 바닥 면적만 116평에 달하는 한반도 모양의 연못으로, 한반도 모양을 한 연못 가운데 가장 큰 연못이라고 한다. 연못 위에는 타래과 모양의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We are the onE"이다. 흰색 막대기 같은 것이 각각 남과 북을 상징하고 팔자 매듭으로 묶어 놓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자유의 다리 입구의 모습
증기기관차 전시장을 나와 북측 군인과 남측 군인의 모양을 인형으로 만들어 지키게 하고 있는 자유의 다리로 향했다.
이곳은 예전 영화 '진돗개'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윤계상이 이곳에 적혀 있는 소원지의 내용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북으로 넘어가 소원을 들어준 내용을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임진각 통일기원 느린 우체통과 이산가족 우체통
태극기와 실향민들의 간절함이 적혀있는 자유의 다리 끝부분
경의선(서울~신의주)과 임진철교는 상행과 하행이 구분되는 복선 철교였다. 하지만 한국 전쟁 때 거의 폐허가 되고 지금 남은 것은 교각 뿐이다. 임진철교의 동편은 아직 교각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고 서편 철교는 포로 교환을 위해 임시로 복구했다. 자유의 다리와 만나는 이 임진철교를 사람들은 '독개다리'라고 부른다.
경의선은 일본에 의해 주도되어 1906년에 개통된 철로로서, 식민지 시대 일본의 전쟁물자 보급품 수송의 핵심이었다. 100년 전에도 경의선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 시작점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는데, 경의선의 역할은 무역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요즈음 더욱 부각되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이 경의선 개통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임진각국민관광지 자유의 다리 아래에 독개다리 스카이워크가 있다. 정식 명칭은 ‘내일의 기적소리’로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철교를 재현한 곳이다.
다시 임진각 앞으로 돌아와....
철길 전시장을 나와 평화의 종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광장 한켠으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안내소라는 것이 보인다.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안내소 앞에서 바라본 통일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종(Bell of Peace)
21세기 뉴밀레니엄을 맞아, 인류평화와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900만 경기도민의 의지를 모아 만든 종이다. 21세기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종 무게는 21톤(t)이며, 이곳을 오르는 계단 역시 21단이다. 지난 2000년 1월 1일에는 각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평화의 종을 21번 타종한 적이 있다.
일반인들도 원하면 평화의 종을 타종할 수 있다. 10시~17시 사이 매시 정각에 타종할 수 있는데, 타종을 원하면 관광안내소에 신청하고 팀당 10,000원을 내면 된다. 10,000원에 3번 타종할 수 있다.
무게 21톤, 높이 3.4m, 지름 2.2m에 달하는 거대한 종의 규모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평화의 종각 역시 그 외모가 범상치 않다. 지면 위에 기단석을 세우고 난간까지 둘렀으며, 보기 드문 다포계 사모지붕으로 이 종각의 화려함은 가히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하다.
여기서 사모지붕이란, 지붕이 사각뿔 모양일 때 부르는 말인데 우리 나라 목조 건축에서는 정자 건축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사원 건축에서는 불국사 관음전이 이 사모지붕으로 유명하다. 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우며 뜻도 모르고 이건 다포식, 저건 주심포식, 다포식은 화려, 주심포식은 소박하다...하며 무조건 외운 기억이 있다. 어떤 건축물을 보았을 때 기둥과 공포의 개수가 일치하면 주심포식, 기둥보다 공포가 많으면 다포식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기둥보다 공포가 많으니 겉에서 보기에 당연히 다포식 건물이 화려할 터....
평화의 종각을 돌아보는 것으로 임진각의 여행은 마무리를 짓고...
평화의 종각을 나와 광장 한켠으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안내소라는 것이 보인다.
부슬부슬 전국적으로 비가오는 가운데 이제 10:00 부터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안내소 앞에서 임진강변 생태탐방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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