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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 승천하였다는 함평 용천사(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415)
    사찰여행/전라도 2017. 9. 11. 09:30

    용이 승천했다는 함평 용천사

      

      

    2017.     9.    11.

     

      

    2017.   9.     10  . 산빛어울림 불교산악회와 함께한 불갑산 산행하면서 들머리에서 들러본 용천사이다...

     


    함평 용천사는 한국의 백경 중 일경으로 수 십여 만평의 꽃무릇 군락과 산제비 나비, 그리고 꽃 무릇공원을 배경으로 매년 9월에 중순경 꽃무릇 큰잔치가 열리고 있다.   또한, 모악산 등산로와 용천사 진입로변에 꽃무릇 꽃길 조성이 이루어져 찾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꽃무릇의 고장을 실감의 탄성이 나올 수 있는 꽃길로 단장 되었다.






     

    꽃무릇이 멋진 용천사 입구의 인공 연못인인 광암저수지 이다...





    용천사 저수지 주변에 핀 용천사 꽃무릇도 아름답고 예쁘다....





    우리나라 3대 상사화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고창 선운사로 잘 알려져 있다.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가 비슷한 시기에 꽃무릇(상사화) 축제를 거의 같은 시기에 있는데 그 이유는 두 지역이 불갑산을 경계로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불갑산 앞쪽에 불갑사, 불갑산 뒤쪽 산 너머에는 용천사가 자리 잡고 있다.






    상사화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가다보면 꽃무릇 공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 주차를 해놓고 저수지를 따라 걸어가는 것도 괜찮다.


    함평 용천사 꽃무릇 자생 군락지는 용천사 주변으로 20만평이 형성돼  있다.   용천사 들머리 2주변에서부터 서성거리며 길손을 맞는다.   절 들머릿길 양쪽 산마루에 약 2천평씩의 군락지를 이루었고 절 뒤쪽 야생차밭과 왕대밭 속에 선홍빛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널려 있다.   그 꽃무릇 붉디붉은 머리칼들 위로 나비 고을의 상징 산제비 나비가 고색창연한 흑진주 드레스를 걸친 듯 날아 다니는 모습은 나비와 꽃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색깔 대비의 극치다.   꽃무릇 때문에 한국 100에 뽑힐 만큼 꽃무릇의 자연군락이 넓다.





    용천사 주차장에는 차들로 대만원 이다...







    저수지를 지나 용천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꽃무릇이 군락으로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장관을 이루지만 아직 봉우리라 아쉬움이 많다.



    '용천사' 주차장과 접근로 주변으로는 '꽃무릇 공원' 일대로서 자연생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보통 9~10월에 만개 상사화가 절정에 이르고,  9월 중순경으로 꽃무릇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올해는 2017. 9. 23.()~2017. 9.  24.()까지 용천사 꽃무릇공원(현 위치) 일원에서 제 18'꽃무릇큰잔치'가 진행된다고 한다.











    용천사 중창불사 회향비도 보인다..






    용천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넓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 오르면 용천사 들어가는 입구 좌측 산 아래로길 옆에 고승들의 사리를 모셔둔 부도군이 자리한다..







    법당을 찾아 오르는 길은 나무가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낮은 담이 쌓여져 숲을 보호하고 담 밑에는 꽃무릇이 곱게 피어 있었다.






    용천사 부도군은 꽃무릇 공원길을 따라 걷다보면 부도군이 보이는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옛 부도 6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사찰 경내 흩어져 있는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라 한다.





    최근에 조성된듯한 3기의 부도도 더해졌다..














    담장 아래 핀 꽃무릇도 아름답고 예쁘다..






    꽃무릇의 본래 이름은 석산화(石蒜花). 꽃무릇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꽃무릇은 여름에 잎이 다 말라죽고 난 후가을에 꽃이 피므로 그냥 상사화(相思花)로 잘못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꽃이다.   입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은 같다.   그러나 상사화는 칠월 칠석을 전후로 해서 피고, 꽃무릇은 백로와 추분(98~23) 사이에 핀다.

    꽃무릇은 불갑산, 내장산, 선운산 일대에 무리지어 자생하며, 서해안 중부지방에서도 볼 수 있다.   울창한 숲이나 계곡 등 습한 음지가 서식지다한두송이 피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이룰 만큼 무리지어 핀다.   

     

    특히 꽃무릇은 상사화나 개상사화, 백양꽃 등과 달리 꽃술이 꽃잎보다 훨씬 길어서 거의 두 배 정도 되는데, 마치 자그마한 새장을 연상케 한다꽃을 빙 둘러 싼 채 빨간 그 색을 보호하는 수호천사처럼 호위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해 보여서 살풋 미소를 띠게 한다.

     

    그러나 예쁜 꽃에는 가시가 있다고 했던가.  혼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무릇 역시 강한 독성을 품고 있다.  영광이나 함평에서는 꽃무릇을 '눈에피꽃'으로 부른다가까이 하면 '눈에서 피가 난다'는 뜻이다. 충청남도나 전라북도에서는 '상여꽃'이라 부르며 아이들이 가까이 하는 것을 막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600(무왕 1)에 행은존자(幸恩尊者)가 창건하였다.

     

    용천사라는 이름은 현재 대웅전 층계 밑에 있는 사방 1.2m 가량의 샘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이 샘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으며, 용천 옆에 지은 절이라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645(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였고, 1275(충렬왕 1) 각적국사(覺積國師)가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세조·명종 때의 중수를 거쳐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 그 뒤 1632(인조 16)에 중창하여 이전의 규모를 갖추었고, 1638년에는 쌍연(雙衍)이 중수하였다.

     

    1705(숙종 31)에는 중건한 뒤 단청기를 지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범우고(梵宇攷)·가람고(伽藍考)등의 지리서 및 사찰관련 문헌에 용천사의 이름이 보인다. 1938년에 다시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인민군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그 뒤 1964년에 금당(錦堂)이 옛 보광전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지으면서 중창하였다. 1996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등산객들과 용천사 꽃 무릇을 즐기려는 행락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주위의 덜핀 꽃무릇을 감상하며 용천사 입구에 도착했다.







    용천사 입구의 아름드리 나무가 눈길을 끈다.






    가파른 계단이 앞을 막았고 계단 중간에 사천왕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꽃무릇들이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성 간에 이룰 수 없는 애절한 한 스님과 여인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의 전설이 있는 꽃이다.









    꽃 무릇은 잎이 말라 죽고 없어진 후에 꽃이 피어 잎과 꽃이 서로 마주보지 못 한다고 해서 상사화라고도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문에는 불법을 수호하고 도량을 지키는 사대천왕이 모셔져 있.


    동방지국천황 : 선한이에게 복을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는 하늘의왕

    서방광목천왕 :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남방 증장천왕 : 만물을 소생시키며 덕을 베푼다.

    북방다문천왕 :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울창한 숲에 가려진 상사루이다..






    바로 고풍의 전각 상사루가 눈에 들어 온다..









    돌 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상사루 누각 아래를 지나며 바라라본 무수한 소원등과 소원 리본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상사루로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는 이 건물은 예불과 법요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쓰이는 곳이며 평소에는 강당으로 활용한다.










    상사루 누각에 올라 바라본 대웅전 모습이다..













    다시 상사루 돌계단을 오르니 대웅전이 반가이 맞아준다. 대웅전 뒤로는 산신각과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함평 용천사 대웅전과 좌로 종무소와 공양당으로 사용하는 적묵당이 보인.







    1996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시는 건물로서 대웅이란 위대한 영웅이란 뜻이다.






    용천사라는 이름은 현재 대웅전 층계 밑에 있는 사방 1.2m 가량의 샘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이 샘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으며, 용천 옆에 지은 절이라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연못을 볼 수 없고 현대식으로 밀폐되어 감로수를 마실수 있는 샘으로 만들어 졌다.






    용천사로 오르는 정면 돌계단인 소맷돌은 전쟁에도 남아 돌계단 난간에 새겨진 아름다운 연화문 조각은 역사의 흔적이 배여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아직도 선명하게 보존되어 지금도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아름다운 연화문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조선시대 목조불로 아미타부처님을 주전으로 석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셨다.

    주전불인 아미타 부처님은 높이 79cm로 조선 후기인 17~18세기 경 목재로 조성된 것으로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한다. 한창 사시예불중이고 지금 한창 천도재를 올리는 것 같아 대웅전 내부를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대웅전 옆에는 석등과 나란히 석탑 1기도 모셔져 있었다.





    함평 용천사 석등(전남 유형문화재 제 84호)



    쑥돌로 만든 높이 2.37m의 석등(石燈)1685(숙종 11) 6월에 만들었는데, 그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시대 석등으로서는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옥개석 네 귀에 조각한 거북은 간략한 수법이나 모양에 세련미가 있다.

     

    장방형 지대석에 하대석을 놓고 그 상단에 복련(覆蓮)을 하였으며 간석받침 상단 네 모서리에는 거북이 양각되어 있다.

     

    간석은 8각으로 전면에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康熙二十四年乙丑六月日(강희24년을축6월일)’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석등의 조성연대가 1685(숙종 11)임을 알 수 있다.

     

    8각상대석은 앙련(仰蓮)이 조식되어 있고, 화사석(火舍石 :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은 원형투창(圓形透窓)으로 그 주위에는 음각당초문을 새겨 놓았다.

     

    옥개석(屋蓋石)은 팔작지붕형으로 방형이다. 이 석등은 간주석까지는 전형양식인 팔각형식이나, 화사석과 옥개석에서 4각방형 및 팔작지붕형으로 변형되어 조선시대 석조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석등은 17세기 것으로 강희 24년에 세웠다는 글씨가 석등에 새겨져 있으며, 옥개석이 특이하게 팔작지붕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기둥엔 거북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석등 창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   눈높이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세상이다.










    대웅전 옆에는 석등과 나란히 석탑 1기도 모셔져 있는데 석탑은 석등과 조성연대가 같은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가 아름답다.






    자태가 곱다.  봉우리로 있어도...









    자태가 곱다.   홀로 있어도...







    대웅전 향 좌측면옆으로 산신각과 천불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 용천사의 문화재로 해시계는 석등과 동시대에 만든 것으로, 두께가 14, 가로 세로 39의 정사각형 중 반쪽만 남아 있다고 한다. 6·25전쟁 때 유실되었다가 1980년 경내의 흙더미 속에서 발견되어 보관중이며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부터 유시까지가 표시되어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는데 어디에 보관중인지 볼수가 없어 아쉬웠다...









    용천사 대웅보전  향 옆 좌측에 범종각 있다.





    대웅보전 뒤편에는 산신각과 천불전이 있다.




    산신각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후면이다..





    천개의 불상을 모신 천불전으로 천불전은 정면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측면의 천불전 편액





    정면의 천불전 편액





    정면 불단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가여래불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사면 전체에 천불을 모셨다..












    꽃무릇 붉디붉은 머리칼들 위로 나비고을의 상징 산제비나비가 고색창연한 흑진주 드레스를 걸친 듯 날아다니는 모습은 나비와 꽃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색깔 대비의 극치다.














    천불전 앞에서 바라본 용천사의 전경이다..









    대웅전 뒤로 천불전 옆의 산신각




    산신각 좌측 방문위에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집의 뜻을 가진 정심당편액이 걸려 있다.





    산신각 내부의 산신탱





    산신각에서 바라본 용천사의 전경이다..






    종무소로 사용 중인 상사루 좌측에 있는 정묵당












    상사루 우측에, 대웅보전 앞 좌측에 지장보살님을 모신 전각인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 앞에는 한쌍의 괘불석주가 보이는데 조성연대는 1688년으로 석등을 만들고 나서 3년 후에 만든 것이라 한다...









    지장보살과 지장탱

     




    지장보살 향 우측의 지장탱





    지장보살 향 좌측의 지장탱








     



    지장전과 지장전 뒤에 자리 잡은 요사가 보인다..






    지장전 뒤에 자리 잡은 요사





    용천사의 전경들...





    용천사 수각




    지장전 뒤로 해서 요사를 지나 꽃무릇 자생군락지를 보며 구수재를 거쳐 영실봉 올라 해불사를 거쳐 동백골로 해서 불갑사로 산행핳 계획이다..













    용천사를 잠시 둘러 보고 모악산 산책길을 따라 꽃무릇을 즐기려 나선다,





    상사화/이해인

     

    뒤숭숭한

    꿈자리 털고 일어나

    고운 아내가 챙겨준

    새벽밥 먹고

    일 나왔던 비계공 최씨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온 몸으로 꽃 피워놓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나뉜 사랑

    세상에 또 상사화로 핍니다.



    용천사를 바삐 둘러 보고 일행들과 함께 불갑산에 오른 후 불갑사로 하산 할 계획이다..   이제 천천히 산행길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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