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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 (塔寺 ) 갔다가 들러본 탑사 입구의 금당사(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41번지)사찰여행/전라도 2016. 4. 1. 07:10
탑사 ( 塔寺 ) 갔다가 들러본 탑사 입구의 금당사
2016. 4. 1.
2016. 3. 28.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108순례로 이번에는 전라북도 완주의 위봉사. 송광사와 진안의 탑사로 나들이 기도를 출발하여 한다.
첫번째 순례지 전북 완주군의 비구니 도량 위봉사를 본 후 인근의 10분 거리의 전남 순천의 송광사와 이름이 같은 전북 완주군의 종남산 송광사에서 공양도 하고 순례도 한 후에 12:40에 진안 마이산 탑사로 이동 후 탑사 남부정류장에 도착하여 주차 후, 1.6km를 걸어 마이산 탑사로 가서 탑사도 순례후 내려가면서 들러본 탑사 입구의 금당사 이다...
이제 탑사를 나와 탑사 남부주차장으로 향한다.
탑영제도 지나고..
금당사 입구 도착이다..
탑사에서 내려오며 금당사 입구 불교용품점 옆 길로 금당서에 들어 선다.
불교용품점 담장에는 포항에는 벌써 지고 없는 산수유가 이제야 절정이다....
금당사(金塘寺)는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41번지 마이산에 자리잡고 있다.
1300년의 전통을 지닌 금당사는 원래 열반종 계송의 절이었으나 지금은 조계종 말사이다. 고려말 나옹스님이 이곳 금당사에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금당사(金塘寺)는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금당사 대웅보전과 요사
금당사 대웅보전 오른쪽 출입구쪽..
금당사 대웅보전 삼존불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인 금당사 목불좌상(木佛坐像)..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깎아서 만든 높이 1.69m로 대웅보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중 본존불만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치 칼로 빚어낸 듯 경직된 조선시대의 목조여래좌상으로 머리와 상체·하체가 벽돌을 쌓듯 비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순박하고 투박한 조선 후기의 조각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머리는 예리하고 촘촘한 나발(螺髮)이지만 육계(肉髻)의 윤곽이 불분명하며 중앙계주(中央髻珠)와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솟아 있다.
넓적한 얼굴은 날카로운 눈과 직선적인 코, 꽉다문 작고 얇은 입으로 무표정하며 목에는 좁은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친 신체는 신체 볼륨이 약화되어 사각형의 둔중한 형태미를 나타낸다.
직선적으로 넓게 트인 옷깃, 밋밋한 가슴, 가슴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군의(裙衣) 주름, 양팔에 걸쳐진 폭이 넓은 옷자락은 평판적으로 도식화되었으며, 오른쪽 겨드랑이를 따라 드리워진 옷자락은 반전하여 복부의 옷자락 속으로 여며져 있다.
따로 만들어 끼운 양손은 각각 엄지와 장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수인을 맺고 있어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부 형식과 함께 판에 박은 듯 경직된 얼굴과 신체, 폭이 넓고 단순화된 평판적인 옷주름 등은 경상북도 상주의 용흥사(龍興寺) 목조아미타불좌상(1647년 추정)이나 예천의 용문사(龍門寺) 목불좌상(1684)과 같은 17세기 불상 양식과 흡사하다.
원래는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불좌상을 현재 대웅전으로 옮겨 모셔 놓았다.17세기 후반의 조성으로 추정되며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 통나무를 조각한 것이라 하며 조선 초기에 새 왕조의 창업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인이 조성한 것이라 전한다.
현재의 금당사 지장전은 1675년(숙종 1년) 당시의 대웅전이었으며 중건한 것으로 양식상 이 목불좌상도 대웅전 중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난당했다가 되돌아온 영험한 부처님이다.
좌우의 협시보살(높이 1.42m, 1.28m)은 모두 손에 연꽃 줄기를 쥐었다..
금당사 대웅전 신중탱
금당사 대웅보전 내부에는 후불탱도 다른 탱화도 단청도 불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웅보전 밖의 용두와 연결된 한마리의 대웅보전 안의 용꼬리
'대웅보전' 편액에 '고당'이란 관지가 보인다. 고당 엄찬성이 쓴 글씨이다.
대웅보전의 꽃살문과 단청이 장엄하다.
대웅보전 오른쪽 출입구 돌계단 밑에 있는 거북이 한쌍
대웅보전에서 바라보니 산허리 중간쯤에 고금당터를 배경으로 금당사 가람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금당사 전경이다.
금당사 대웅보전은 정면5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지붕 건물이다..
금당사는 매우 쇄락하여 1978년에 지장전을 중건하고 뒤이어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금당사 대웅보전 우측으로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 앞에도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금당사 지장전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78년에 지장전을 중건하였다..
76년이후 각종 기록에서 사라진 대웅전은 지장전 이축과정에서 현재의 지장전으로 이름이 바뀌어 보존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 지장전 건물이 대웅전 건물과 동일한 건물임을 확인했다”면서 “우물 井자 천장과 싸리나무 기둥· 문짝· 대들보의 휘어짐까지 일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금당사 지장전 내부 모습이다.
지장전 그리고 요사채와 삼층탑
금당사 대웅보전 좌측으로 극락전과 괘불을 보관하는 전걱 그리고 삼성각이 있다.
금당사 대웅보전 좌측이 극락전 내부 모습이다.
금당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금당사 전경이다.
금당사 극락전은 1990년에 조성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극락전 좌측의 아무런 현판도 달지 않았는데 괘불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건물 안에는 영인본을 공개하고 있는데 진본은 건물뒤에 제습. 화재예방 조치가된 공간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가로 5m, 세로 9m 크기의 괘불탱화(보물 1266호)가 있다. 이 괘불탱화는 단독의 관음보살입상이 그려져 있으며 표현양식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 괘불탱화 등과 함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가뭄이 심한 아주 오래전 어느 해 봄, 사람들은 금당사 스님을 찾아 가뭄을 해갈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했다 한다.
간곡한 그들의 부탁에 주재하는 스님은 기우제를 올리도록 하자고 하고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가 사흘 만에 와서는 절 뒷마당에 사람형상을 그리더니 그곳을 백자만 파라고 했다. 왜 하필 땅을 파라고 할까 궁금하면서도 예사 스님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곳을 파보니 한 폭의 괘불이 묻혀 있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꺼내어 걸고 기우제를 올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전설을 가진, 절의 큰 행사 때 많은 사람이 법당에서 법회를 가질 수 없는 경우 야외에 걸고 행하는 것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크게 그려진 부처님의 그림이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을 빌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불화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일 뿐, 이 탱화는 명원과 허헌 . 치헌과 위청이라는 화원과 1692년(조선숙종 19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확실한 보물이다.
석가가 깨달음의 표시로 말없이 연꽃가지를 들었을 때 열두 제자 중 가섭만이 빙긋 미소로 답을 했다는 염화시중의 이야기를 들어 이 보살을 석가라고도 하고, 화신보살과 봉황이 그려져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보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재미난 것은 분명 조선 중기에 그렸는데 고려시대에 불렸다는 용출산 금당사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의 옛 어르신들이 아직도 속금산이라 하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안정된 시기가 되자 그 전에 희생된 많은 사람의 혼령을 달래는 법회가 많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많은 괘불이 제작되었는데 이 괘불 역시 마찬가지로 숙종 때 장희빈이 중전으로 있을 때 제작된 것이라 하면 오래 기억이 되겠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 소장된 괘불은 51점으로 국보 7점과 보물 19점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당사 괘불은 작품형태나 보관상태가 좋아 양산 통도사 괘불, 부여 무량사 괘불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괘불로 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괘불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괘불을 모신 전각을 극락전 옆에 새로 마련하고 2분의 1 모사본을 걸어 놓아 원하는 누구라도 볼 수 있다.
훨훨 날아갈 것 같은 팔작지붕아래 단아하게 자리한 전각 중앙에 걸린 괘불은 원본의 신비스럽고 안정감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활짝 열린 문으로 환한 볕 찾아들면 꽃을 든 남자의 중후하면서도 위엄 있는 얼굴에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부처님의 미소가 번지는 또 다른 신비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금당사 괘불각에서 바라본 대웅보전과 삼성각
삼성각과 금당영지(金堂靈地) 석비
삼성각은 1978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이고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삼성각 내부에는 좌로부터 용왕탱. 칠성탱.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독성탱 대신 용왕탱을 모신것이 의외였다..
대웅보전 마당에새로 조성한 듯된 다층석탑이 서 있다.
다층석탑 뒤로 금당사의 요사가 보인다.
대웅보전 쪽에서 바라본 요사 모습이다.
대웅보전 앞 마당 쪽에서 바라본 요사 모습이다.
금당사 전경으로 좌로부터 괘불각. 극락전. 삼성각. 법고. 대웅보전이다.
금당사 법고
금당사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항일운동 결사체인 '창의동맹' 진원지가 되었고 당시 주지 김대완 스님은 비말 장부인 동맹록을 제작해서 배포했다.
또, 임실출신 이석용 장군은 금당사 경내에서 1천여명의 의병을 결성 무장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창의동맹군의 의병활동시 사용했던 '법고'는 높이1m, 지름60cm의 크기이다.
금당사 전경으로 좌로부터 대웅보전과 다층석탑. 지장전. 요사이다.
금당사 연지 뒷편에 1985년 봉안된 '미륵불입상'과 미륵불 조성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미륵불 조성 방명비가 있다.
1985년 봉안된 '석조미륵불입상'과은 조각장 권노달이 조성한 것이다.
금당사 연지에도 작은 석탑이...
금당사에는 새로운 건축물과 석탑 등이 산재해 있어서 다소 정돈되지 못한 인상을 받았다.
금당사 오층석탑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2호)
고려후기에 세워진 금당사 오층석탑은 원래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오층석탑이지만 일제강점기에 도굴로 인해 변형되어, 현재의 모습은 기단부와 상륜부가 결실된 불완전한 형태이다.
전라도지역에서 볼 수 있는 소형석탑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재료는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粘板巖)으로 조성된 특이한 모습이다.
기단부는 가운데 중석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그 상부로 5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보충한 것으로 전체가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주위의 미륵불입상과 함께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당사는 과거와 현재의 조각상들이 많이 혼재되어 있다. 이부분들이 잘 어울리기도 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준다.
금당사는 조선 배불정책으로 쇠퇴하다가 1657년 이곳에 다시 중건을 하여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금당사를 나와서 상가를 지나
금당사 통일기원 약사여래불이 보이는 탑사 남부주차장 도착이다...
마이산금당사(馬耳山金堂寺)의 일주문 주변에 주차장과 남부매표소가 있다.
과거에는 "못 당(塘)" 자를 쓴 "金塘寺"로 불렸으나 지금은 "집 당(堂)"자를 써서 "金堂寺"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마이산 남부주차장은 금당사 소유라고 한다.
일주문이란 ‘여기서 부터 사찰의 경내’라는 안내를 하는 건조물인데, 고당 엄찬성이 쓴 ‘馬耳山金堂寺’라고 편액이 걸린 일주문 뒤로 금당사 통일기원 약사여래불이 하필 주차장 경내에 서 있을까?.....
오늘은 108순례로 전라북도 완주군의 위봉사. 송광사 그리고 진안의 탑사 3사를 순례하면서 덤으로 볼수 있었던 마이산 금당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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