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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속에 빛나는 구례 사성암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186번지)사찰여행/전라도 2016. 11. 9. 17:53
기암절벽속에 빛나는 구례 사성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 33 호)
2016. 11. 9.
2016. 11 . 7. 한국불교대학 10기 도반들과 함께 떠나 사성암. 화엄사. 화엄사 산내암자 구층암. 천은사 . 지리산 노고단을 차례로 밟으며 전남 구례지역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
해발 500m의 오산에 있는 암자로 고승들이 수도 하던 곳으로 오산 꼭대기에 있는데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네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 한다.
사성암은 SBS드라마 <토지>에서 서희와 길상이가 불공을 드린 촬영장소 이며, 또한 KBS드라마 <추노> 에도 나왔던 암자로 널리 알려져 많은 참배 불자들과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사성암에 오르는 길은 편도선이기 때문에 도로가 좁다.. 가빠른 언덕길에 피할 곳이라고는 좁은 공간. 봉고차가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승용차로 암자까지는 올라갈수 없고(통제) 전용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왕복 버스요금은 3천원이었다....
사성암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25인승 콤비버스와 봉고차 등 사찰로 올라가는 전용차가 있다.
그 전용차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버스는 아주 경사지고 험한 산길을 마치 오프로드 하듯이 달리는데 생각지 못한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사찰까지 경사진 길을 걸어올라 가는데 가까워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버스에서 내려 입구의 찻집을 지나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사성암으로 향한다...
다른 아픈 도반들과 보조를 마추며 유유자적 노닥거리며 사진도 찍으며 그렇게 아주 천천히 사성암으로 오른다...
가을꽃의 대표격인 국화로 온 사찰을 장엄했다...
사성암 오르는 길 입구에 사성암을 사계를 담은 작가들의 멋진사진들이 나그네를 맞아준다..
도로옆 철책에 붙여 진열된 사진 아래로 올라올때 보았던 찻집과 섬진강이 내려다 보인다...
굽이 굽이 섬진강변의 전경이 일품이다.....
구례 사성암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사성암을 들어서면 입구 담장 위로 새로 불사한 1층은 공양간과 2층은 요사이다..
절실하게 소망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처럼 섣부른 발길을 거부라도 하는듯, 구도자들의 몫으로 길이 나있는듯, 차를 타고도 한참만에 모습을 드러낸 서성암 절벽위에 참 힘겹게 앉아있는 풍경이 그래도 장엄하다.
야! 기가 막히다.
한 발 앞은 낭떠러지고 한 발 뒤는 절벽. 오산의 사성암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허공에 매달린 암자! 그렇다고 아슬아슬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오르려는, 유유히 흐르는 구름도 단박에 움켜잡아 이리저리 흔들어 보려는양 당찬 위용을 뿜어내고 있다....
절벽과 절벽사이에 절묘하게 앉아있는 사성암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신비롭기도 하다. 어떻게 저런곳에다 암자를 지었을까?
구례사성암에 도착하면 어느 누구라도 탄성을 자아내게 할만큼 빼어난 경치가 장관이다. 뒤을 돌아보면 깍아지른 절벽위에 우뚝솟은 사성암이 구례여행의 진미를 느낄수 있다.
먼저 유리광전으로 향한다...
유리광전으로 향하다 유리광전 입구 마당의 불교용품 판내점과 오른쪽 스님생활공간 요사이다..
사성암은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로 지정되었으며 건축양식은 금강산 보덕암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나마 다채로운 가을풍경을 만났다.
멀리서 찾은 이방인을 반기듯 곱게도 물든 단풍들이 어여쁘다.
사성암의 모든 것들은 절벽으로 몸을 박고 하늘을 이고 먼 세상을 향해 침묵하는 유배지의 절간 갔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암절벽 오묘하게 자리하고 ~ 형형색색의 단풍잎으로 둘러쌓인 법당~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유리광전"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한 단아한 지장전 옆이 요사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입구쪽에 있는 약사전 누각은 한두 뼘 정도만 바위 위에 있고 건물의 대부분이 기둥에 받쳐 허공에 떠 있다. 기둥에 새겨진 약사여래불 주위로 건물을 지어서 실내에서 예불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발 530m의 오산에 있는 암자로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이다.
오산 꼭대기에 있는데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등 네 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하여 ‘사성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암자 근처 암벽에 고려시대 초기 작품인 음각마애여래입상이 있어 창건 내력을 짐작한다.
현재 이 암자는 작은 규모의 목조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유리광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옆의 사성암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20호) 표시판이다.
약사암을 오르는 돌담길.....
회색과 적갈색의 막돌이 자아낸 돌담과 계단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시켜 이국의 풍미마저 더해준다. 고졸한 돌계단 밟아가며 하늘을 올라보자!
유리광전으로 돌계단 오르며 내려다 본 전경이다..
유리광전으로 돌계단 오르며 올려다 본 전경이다..
육칠계단 오르기전 속세마음 내려놓고 쉬엄 쉬엄 올라가세
삼분찰나 정신일도 삼배합장 마음공양 지은공덕 영구하리..
유리광전(약사전)으로 향한 길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 시킨다.
절벽에 걸터앉은 유리광전. 하늘로 쭉 뻗어 올라간 모양이 금강산 보덕암을 보는 듯하다.
기암절벽에 내려 앉은 천년고찰 수많은 불자들의 기원 울림이 퍼지고 ~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섬진강 줄기따라 구비구비 열두폭 치마폭에 휘감긴듯한 아름다운 산새에 또한번 감탄에 감탄을 ~
오산(鼇山)이라했으니 ‘자라뫼’다. 백운산에서 시작된 산줄기 이곳 구례 땅에 닿아서는 지리산 풍광에 놀란 듯 멈췄다. 구름타고 내려다 보면 강물 들이키는 자라처럼 보일 법 하니 오산이라 할 만하다. 그 언제가 처음 여기에 앉았던 암자 이름도 원래 오산암이었다.
유리광전(약사전)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요, 서정시다.
산에서 내려 보낸 물을 더해 섬진강을 풍요롭게 했고, 산에서 내려 보낸 씨앗 더해 벚꽃 길도 내었다. 가을빛 머금은 강이 저토록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더랬다.
길가에 늘어선 벚꽃은 이제 지고 없지만... 바람결에 고운 단풍 날린 붉은 낙엽도 저 강에 내려앉아 물길 따라 흐를 터! 섬진강이 피워낸 새 생명 움트는 소리에 구례의 가을이 깨어난다.
유리광전 마애여래불, 이토록 멋진 풍경을 묵묵히 내려 보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암자도 기묘하지만 암자에서 내려다본 구례마을과 섬진강,곡성평야의 전경은 그야말로 세속의 티끌마저 날려버릴 정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530m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해발 800m가 넘는 듯한 느낌이였다. 아무 생각없는 無想無念이랄까....
부처님 뒷편으로 보이는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20호)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사성암의 불가사의한 전설이자 자랑이다..
약 25m의 기암절벽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왼손에는 애민중생을 위해 약사발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리광전 약사여래마애불의 섬세한 선각은 일품이다. 언뜻 보아도 입불 전체 화면 새겨진 선각이 맵시 있다.
원효대사가 선정에 든 상태에서 손톱으로 그어 조성했다지? 이 또한 사실일까? 믿고 안 믿고는 참배객 선택사항이다. 분명한 건 사성암 마애불의 기도효험 명성이 전국에 퍼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도객의 정성이 자아 낸 결과이겠지만 말이다.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전경이다..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 시키는 돌길을 내려간다...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요사이다...
무량수전을 내려와 지장전 오르기전 공양간 옆의 마당을 가로 질러 소원바위쪽으로 향한다...
사성암은 여기 저기 온통 국화로 장엄되어 사성암의 풍광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구례· 하동 사람들 산속의 암자 ‘오산암’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그 옛날 원효, 의상도 이 멋진 산 한 번 보고는 가던 길 멈추고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라 상상했을 터. 그 뒤를 이어 도선과 진각국사가 이 산에서 정진했으니 네 명의 성인을 배출한 명문 암자라 ‘사성암(四聖庵)’이란 이름은 제격이다.
천천히 유리광전 옆으로 난 또 다른 돌 겨단길에 오른다.
지장전과 소원바위를 오르는 돌담길.....
돌계단 좌측으로.. 800년이나 된 귀목나무도 지난다..
절이 전하는 창건 설에 따르면 원효보다 앞서 이곳에 머문 스님이 있었다. 인도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미스터리한 인물. 화엄사와 대원사, 법계사, 연곡사를 창건했다는 연기조사다. 사성암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데 화엄사 창건(544년) 연대와 같다. 사실일까?
정확한 건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신라 경덕왕(742~765년) 때 만들어진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사경(국보 196호, 754~755년 제작)이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제작됐다는 기록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무려 200년의 차이가 나는 만큼 사성암과 화엄사의 연기조사 창건 설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창건 설을 근거 없다 배제할 수만은 없다. 500년대의 연기조사와 700년대의 연기조사가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돌계단 오르며 바라본 지장전 이다...
공부중이라 통제 지역도 가끔은 보인다...
지장전 축대가 부처님 뵈러 가는 길 만큼이나 엄청 높다..
좌측의 바위와 지장전 돌담 사이로 난 길을 들어서면 지장전이다... 지장전 돌담 위에 쌓아둔 불자들이 불사한 기와장 조차도 멋스럽고....
얼마전 까지만해도 극락전이란 편액을 달고 있던 전각이 지장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사성암 지장전 내부 모습이다...
지장전 뒤를 돌아서 지장전 뒤의 바위에는 이런것도...
지장전 뒤로 돌아 돌계단을 올라 산왕전으로 오른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지어진 새로이 불사한 산왕전(山王殿) 자리에는 이름표도 달지 않은 전각이 문고리도 잠긴채 자리하고 있다...
암벽사이에 꽉끼인 형태로 지어진 작은 전각이 산왕각은 일반 사찰에서 보았던 산신각이라 생각하면 된다. 산왕각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왼쪽에 도선굴, 오른쪽에 관음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불사한 산왕전을 지그시 바라보고 계시는 오른쪽 바위 자연 '관세음보살 바위'
산신각 주변은 온통 암벽이다.
돌 천지로 이루어진 곳,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따뜻하다.
자연은 사람과 어우러져야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본다. 그 또한 나만의 생각일진데...
때로는 사람들로 인해 몸살앓은 자연이 안스러울때도 있다. 모든것은 적당할때 아름답고 조화를 이루었을때 평화롭다.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
산왕전(山王殿)옆의 작은동굴은 실제로 도선국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며 KBS드라‘추노’에서 태하가 혜원에게 치료를 받은 곳이다.
산왕전 곁에는 도선굴이 있다.
한 사람 겨우 들어설 수 있는 자연굴 안에는 딱 한 사람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도선국사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큰 바위 속 작은 공간에 서 있으니 1000년 전 도선국사가 전하는 밀어가 들려오는 듯하다. ‘정진하고 정진하라!’
배례석 지나 산왕전을 돌아 돌길 오르니
도선굴 뒷쪽에 설치된 관망도...
오산 정상으로 향하는길... 절벽 옆으로 한사람이 겨우 통과 할 수 있게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을 오르면 제법 넓은 평평한 공간이 나오고 섬진강과 구례평야를 조망할수 있는 전망대도 보인다...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
오산 정상 정자
오산 정상에는 활궁장이 있어 구례평야를 가볍게 내려앉울 수 있다..
이 정자는 문화재가 아니지만 꼭 봐야 한다. 정자에 올라 내려다 보는 섬진강 풍경이 멋지기 때문이다.
도선, 진각 국사가 앉아 정진했다는 좌선대를 비롯한 신선대, 풍월대, 낙조대 등 12 비경이 정상 오르는 길 주변에 펼쳐져 있다. 단언컨대 사성암을 참배하고도 이곳에 오르지 않았다면 오산의 반만 본 것이다.
오산(542m)은 정수리 암봉이 자라의 머리모양과 흡사해서 자라 ( 鰲 ) 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고요히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와 곡성평야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오고 산 꼭대기에서 보면 지리산의 노고단과 천황봉 자락이 한눈에 들어와 가을이면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단다....
섬진강과 지리산을 품은 구례 전경
오산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한 반달 모양의 섬진강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구례마을이 확연하게 보이고, 저 멀리의 성삼재도 어렴풋하게 보인다. 저기가 화엄사이니 저기 암자는 연기암일 터. 그 산길 끝이 노고단이다. 반야봉도 보이고 고개 내민 천왕봉도 보인다.
산자락 아래에 펼쳐진 마을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정토는 오산과 지리산이 아니라 저 마을인 듯싶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처럼 살아가는 섬진강 사람들. 다소 버겁겠지만 자연서 체득한 지혜로 생을 이어가는 저 곳이 정토 아닌가!
그러니 우리도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처럼 ‘
버릴것 다 버리고 / 버릴것 하나 없는 / 가난한 눈빛 하나로 / 어둑거리는 강물에 /
가물가물 살아나 / 밤 깊어질수록 /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 별들 같이 눈 떠 있고 /
짜내도 짜내도 / 기름기 하나없는 / 짧은 심지 하나 / 강 깊은데 박고’ 살아갈 일이다.
다시 오산 정상을 내려 간다...
소원바위 지날 무렵 작은 배례석이 눈에 띈다. 그 언제가부터 사성암 스님들은 이 자리서 화엄사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렸다고 한다. 법등을 잇겠다는 발원과 함께 저 예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온도 함께 담은 절이었을 게다.
상왕전앞을 지나 소원바위로 향한다...
땟목을 팔려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음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은 소원바위!!
그 내력도 슬픈사연이다.
소원바위에 소망은 놓아 두기엔 내 기도가 너무 사치스럽다.
그러기에 감사함만...
소원바위 앞에 세워져 있는 청동부조물
아마도 부처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서벙정토와 사성암을 부조해둔듯 하다.
청동에 새겨진 사성암 풍광이 볼 만하다. 마음을 비운 순간 청동판과 어우러진 부처님 미소도 볼 수 있다. 작은 소원 하나 적어 매달고 합장해 보라.
바위 모습이 부처님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소원바위
사성암은 어느절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다.
대신 가파르게 올라가는 돌계단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바위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법의처럼 암자 아래로 구레,곡성 평야가 한눈에 펼쳐지고 멀리 지리산이 발꿈치 아래 놓인듯 하다. 무슨 소원이 그리 많을까? 가족 염원을 비는 소박한 염원,사업 번창을 담은 내용들-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소원바위(뜀바위) -소원바위 설명문 중에서-
소원바위를 내려와 지장전도 지나 다시 돌계단을 내려선다...
돌계단 내려서며 돌계단 우측으로.. 800년이나 된 귀목나무도 지난다..
다시 돌아와 사성암 마당에 선다....
습기먹은 이끼위와 어루러진 단풍들의 투신이 아름답다. 그래 그렇게 저무는거야. 그렇게 사라지는것야
누군가 알아주는 이 없어도 다음을 위한 약속처럼...
함께해주신 한국불교대학 포항도량 10기 도반들께 감사드립니다.함께라서 행복했고 함께라서 아름다운 가을길이였습니다.
이제 사성암을 순례후 천천히 하산하기 위해 미니버스를 타러 이동한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돌탑도 뒤로하고...
그렇게 사성암을 내려왔다...
사성암을 찾아가는 길은 힘겹다. 그만큼 길이 가파르다. 산꼭대기 절벽 끝 바위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았다. 바위를 병풍 삼아 암자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어떻게 지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절벽에 붙은 모습이 신기하다.
사성암은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멋스러운 암자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했다는 이 암자의 원래 이름은 오산암. 이후 의상대사를 비롯해 원효, 도선, 진각 등 4인의 명승이 수도를 했다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 불리게 됐다. 6채가 올망졸망 들어서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살포시 모습을 감추고 수줍게 고개만 내민 시골처녀 같다.
사성암은 여느 절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다. 대신 가파른 돌계단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양 옆으로 1m 높이의 돌담을 쌓아 놓았다. 돌담 위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기원하며 이름을 적어놓은 기왓장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주소지도 전국 곳곳이다. 멀리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도, 제주도, 그리고 경북, 대구 주소도 보인다. 계단 하나하나가 기원의 계단 같다. 무슨 소원이 그리 많을까? 언뜻 보니 가족 건강을 비는 소박한 염원을 담은 내용들이 많다.
그 계단을 올라 약사전에 오르면 곡성 쪽에서 흘러와 한 굽이 꺾이며 구례 쪽으로 내닫는 섬진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잡힌다. 아늑하고 다소곳한 섬진강 물결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남도의 숨결인 듯 푸근하다.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에는 4m 높이의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돼 있다. 원효대사가 수행 중 손톱으로 긁어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마애불이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약사전 안으로 들어가야 유리벽을 통해 자비로운 미소로 서 있는 부처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은근히 신비감이 비쳐지는 마애불이다.
지장전으로 가는 길도 정성이 가득한 돌계단이다. 108계단이다. 지장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나오면 갑자기 세상이 환해진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내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멀리로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아래 너른 벌판 한 가운데 구례읍내가 손바닥만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섬진강은 가까이서 볼 때도 좋지만 멀리서 볼 때 더 섬진강답다. 한 폭의 동양화다.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변에 촌락을 이룬 농가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섬진강은 여인의 어깨선처럼 부드럽다. 지리산의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푸른빛의 강줄기가 마치 밥짓는 연기처럼 아스라하다. 강이 들판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하는 도선굴. 한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통로를 걸어가 허리를 굽혀 굴속으로 들어가니 촛불이 켜져 있다. 천장은 커다란 돌이 바위와 바위 위에 얹혀 있는 모양으로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옆 바위틈으로 아래 세상이 훤하게 보인다.
발 아래로 섬진강 드라이브길과 하동의 넓은 악양벌이 한눈에 펼쳐진다. 무등산까지 이어지는 산자락과 지리산 연봉도 내려다 보인다. 지리산 높은 봉우리는 단풍으로 울긋불긋 고운옷을 차려입고 있다
또 다시 인연이 주어지면 다시 와 보고 싶은 사성암을 고이 뒤로 한채 우리는 그렇게 사성암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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