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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의 설경에 취해서..
    기행문·수필, 그리고 다른 글들.. 2016. 1. 30. 13:02

    태백산의 설경에 취해서..    

     

     

     

     

     

    2016. 1. 30.

     

     

     

     

     

          

     

     

     

     

     

     

    태초부터 산은 자유다.  올라가라 내려가라 말이없다.  산은 평등하다.

    산을 찾는이의 직업도 귀천도 빈부도 남녀노소도 차별하지 않는다. 산의 품에 안기려면 오르지 자신의 발걸음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행위는 걷기다.  얼그러진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치유의 힘은 결국 길위에 있는 것이다.  등고자비(登高自卑.높은곳을 오르려면 스스로 낮은곳에서부터 출발한다.)

     

    태백산은 육산이다.

    웅장하고 호방한 능선이 있지만 보기에 따라선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산일 수도 있다. 기암괴봉이 있거나 보기에도 시원한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대한 산자락의 밋밋한 능선을 따라 오를 뿐이다.  태백산은 한마디로 남성적 산이다.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침묵의 산이다.  그러면서도 속살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것이 태백산이 갖는 매력인지도 모른다.

    태백산(太白山)을 이름 그대로 풀이하자면 '크게 밝은 산'이다.  예로부터 한반도에는 태백산이라 불리던 산이 셋 있었는데 첫째는 백두산,  둘째는 묘향산,  셋째는 강원도 태백산이며, 오늘날까지 태백산이란 이름을 간직한 곳은 강원도 태백산 뿐이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영산 태백산은 국립공원이 아니다.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국립공원이란「명함」을 내밀지만 태백산만은 아직 도립공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태백」하면 한국의 기네스북에 오를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해발 855m)이 있고,  포장도로로 가장 높은 만항재(1,340m)가 있다.  하루에 5천톤의 물을 쏟아 내는 낙동강 1천3백리의 첫 여울인 황지가 있고,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도 태백에 있다.

    태백산 천제단에 오르는 등산길은 다섯가지가 있다.

    제1코스인  유일사에 오르른 8.4km 거리와  제2코스인 백단사에서 오르는 길은 약 4km로 2시간 정도 걸리며,   제3코스인 당골광장에서 반재로 해서 오르는 약 4.4km의 길과,   제4코스는 같은 당골광장에서 출발하여 문수봉을 거쳐 오르는 약 7km의 비교적 먼 길이 있고,   제5코스인 금천계곡에서 문수봉으로 해서 천제단까지 약 7.8km는 4시간이 걸리는 가장 먼 등산로다.

     

    그중 그래도 오르기  쉬운 코스가 유일사 코스다.

    유일사 매표소(10:00)  → 유일사 쉼터 → 주목군락지  →  장군봉  →  천제단  → 단종비각 →  만경사  →  반재  →  단군성전 →  당골  → 석탄박물관입구  →  당골광장 (8.4km, 5시간)이 우리가 갈 길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 배정은 평균인의 속도에 맞추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산에 올라보면 풍광에 취해 사진찍다가 아니면 즐기다가 이렇게 예정해 놓은 시간보다 언제나 훨씬 더 걸린 6시간이 소요되었다.

     

    지금 강원도는 설국(雪國)이다. 금조미명(今朝未明).이른새벽 설국에 묻힌 '민족의 영산(靈山)' 태백산을 오르기 위해 산빛어울림 산악회(회장 조선자) 회원 38 여명은 6시출발. 10시 유일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  장군봉과 천제단을 향해 오른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군무를 이루고 하얀 이불을 뒤집어쓴채 반긴다.

    무릎까지 빠지는 순백의 세상. 눈꽃 엽서에 또다른 추억을 담는 시간이 시작된다.  나목(裸木)사이로 구불구불 오색단장하고 수백명이 인간띠를 형성하며 묵묵히 걷고 있는 모습은 순례의 길이며 어느꽃보다도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꽃이다.

    1시간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니 유일사 쉼터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눈부신 경관이 환상이다.

    조선시대 화가 이인상(1710~1760)은 1735년 겨울 사흘동안 눈 쌓인 태백산에 오른뒤 말했다. "태백산은 작은흙이 쌓여 크게 봉우리를 이루었다. 그 깊이는 헤아릴수 없고 차차 높아져서 100리에 이른다.  결코 그 공덕을 드러내지 않으니 마치 대인의 덕을 지닌것과 같구나." 라고  했다.

    태백산(太白山 1.567M)은 옛부터 삼한의 명산으로 전국 12대 명산이라 하여 '민족의영산(靈山)'이라 불렀다. 태백산은 한반도 등뼈인 백두대간의 허리다.  허리뼈가 곧추서야 똑바로 걸을수 있다.

    첨성단이 있는 강화도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이다. '한반도의 명치'다. 명치가 막히면 기(氣)가 막혀 살수없다. 두곳모두 '한민족의 혈처'인것이다.

    태백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제단(천왕단)이 3곳있다.  신라때 왕이 이곳에 올라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가운데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  그 아래 하단이 그렇다.   신라시대 태백산 천제단에서 천신(天神).즉 단군과 산신(山神)을 아울러 모셨다.   유교국가 조선전기에는 산신도 빠지고 '천왕(天王)'을 모셨다. '신(神)'이 '왕(王)'으로 격하된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 이후 다시 '천신(天神)'으로 직위가 올라 갔다. 나라가 바람앞에 등불같은 신세가 되자 단군 할아버지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와~우~와~ 환상의 주목(朱木) 군락지다.

    생천사천(生千死千)한다는 천년 주목나무에 얼음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수정처럼 빛난다.  주목나무가 자신을 주목(注目) 하라는 듯이 수백명의 등산객이 몰려 줄을서며 인증샷에 바쁘다.

    신목(神木)은 눈을 부릎뜨고 길손들에게 일갈(一喝)한다.   항상 하심(下心)으로 살며 속세에 때묻은 손으로 우릴 만지지 말고 가거라.  세상 근심 다 씻을듯한 설국의 이 아름다운 풍경.  우물쭈물 '딴청' 피우다 안왔으면 어찌했을까?   오기를 참 잘왔다.

    태백산 보호 주목은 모두 3.928 그루이다.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주목보다 잘생겼다.  붉은 근육질 몸매가 탄탄하다.

    붉은열매 붉은 껍질에 늘 푸른 뾰족 바늘잎에 하얀꽃을 피워 몽환적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제단에 오르니 전국에서 모인 산객들로 줄을서야 인증샷을 한다.

    천재단에서 산빛어울림 산악회 이름을 걸고 고운 마음을 한데 모아 정성껏 시산제를 올린 후 우리도 산객들 틈에 끼어 단체 사진도 찍어 본다.

    태백산은 눈밟는 재미로 오른다.  높으면서도 험하지  않고 웅장하면서도 후덕하고 아늑하다.  역시 '큰 밝음의 산' 이다.

    정상에서 둘러보니 함백산.  금대봉.  은대봉.  두타산.  매봉산.  구룡산.  면산.  백병산.  응봉산 등 봉우리들이 설경에 잠겨 있는 모습은 웅장하며 힘찬 수묵산수의 걸작이다.

    호사스러운 풍경들을 만끽하고  망경사(望鏡寺)로 내려오니 조선6대임금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 비각은 1955년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하였고 조선국태백산 단종대왕지비(朝蘚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 라고 쓴 비문(碑文)이 있다.  비문과 현판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탄허 스님의 친필로 힘차며 단아한 필치다.

    조금 더 내려가니 태백산 정상 동쪽 아래의 그림같은 사찰 망경사가 펼쳐진다.

    망경사(望景寺) 요사채는 늘 소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절집이다.  절집이 갖추어야할 위엄인 일주문도 사천문왕도 없다.  더구나 등산객이 쉬어 가는 곳이라 그런지 공중전화에 커피 음료수 자판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비치되어 있어 약간은 산장같은 분위기로 친밀감마져 느껴진다고나 할까...

     망경사 경내 왼쪽으로 손이 시리도록 차갑고 맛좋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그 앞에 돌로 새겨진 용정(龍井)이란 글씨가 뚜렸하다. 우리나라 100대 명수의 하나로 꼽히는 용정 글씨 옆에는 용왕당이라는 수각을 세워 물을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등산객은 그 용왕당 옆의 식수대에서 물을 마셔야 한다. 이렇게 높은 산에 이토록 맑고 시원한 물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 용정의 물은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고 하니, 태백산이 민족의 영산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아, 태백산 정상아래 이 곳 용정에서 맛보는 한 잔의 물맛!

    나는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한 착각속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용정의 물맛을 느껴본다.

     

    망경사 돌담아래 눈밭에 자리펴서 중식후 반재를 거쳐 당골로 하산길이다.  길옆으로는 은빛 자작나무가 군무를 이루어 하늘을 가린다.   겨울 자작나무는 '순백의정령'이다.  '하얗고 긴 종아리가 슬픈 여자 (최장균 시인)'다.  뽀얀 우유빛 살결이 우아하다. 기품 있고 정갈하다.

    자작나무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꿋꿋하게 칼바람을 견딘다.  주목과 노송, 은빛자작나무가 어울려 한세기 풍파를 고스란이 이겨내며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   자작나무와 솔가지가 설해(雪害)로 우직끈 부러진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내리는 죽비소리다.

     

    눈 쌓인 하산길은 넓다. 아이들은 임시 비닐봉지 썰매타고 깔깔대며 잘도 미끄러진다.  여성들은 조마조마 엉금엉금 내 딛는다.  

    반재에는 쉴 수 있도록 나무의자를 만들어 두었다.   산의 중간 쯤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반재라고 불러왔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반재는 천재단까지 오르는 절반쯤의 거리에 있었다.

    반재에서 당골광장으로 내려서니 신(神)이 빚어 놓은 기암절벽  곳곳에는 천상의 분재 전시장이다. 절벽 밑으로 거울같이 맑은 살얼음속 흐르는 물소리는 봄이 오는 소리다.

    2016년 병신년 새해 맞이  5시간의 멋진 태백산 명품 겨울산행은 세월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다.

    내 가슴에 하얀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진 태백산행 정녕 내 마음은 그곳에 머물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산 후 따뜻한 떡국으로 몸을 풀고 무사히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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