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불은 성불의 지름길좋은글 2012. 12. 29. 16:49
염불은 성불의 지름길
♣ 1. 큰 바위도 물에 뜬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라는 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곧 가벼운 돌을 물에 던지면 가라앉아 버리지만 큰 바위라도 바다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염불은 마치 이와 같아서 바윗돌을 배에 실으면 능히 바다라도 건너가지만 작은 돌이라도 그대로 물에 던지면 가라앉는 것이니, 염불은 성불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작은 돌이라는 것은 인간의 십선(十善)과 같은 좋은 일을 많 이 하여 공덕을 닦는 선인(善因)이요,
바다 저편은 부처님의 세계다. 그러면 여기에서 인간이 아무리 수도를 하고 착한 일을 많이했다손 치더라도 덕행이 원만하신 부처님에 비하면 그 선공덕(善功德)은 보잘 것 없는 것으 로써,
그것은 마치 작은 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로 인간은 무시 이래로 오악중죄(五惡重罪)에 싸여서 살고 있다는 자각에 섰을 때에 나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알게 되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신앙심이 더욱 크게 일어난다.
실로 인간은 죄를 짓지 말고 살자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잘 살겠다는 생각이니, 명예를 높이고자 애쓰고, 돈을 많이 벌어서 호강하고 살겠다고 애쓰며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바둥대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도 선공덕을 성취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현실생활 속에서 성불할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자력수행(自力修行)을 정진하는 것은 소위 자력문(自力門)이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반성과 거룩하신 부처님의 모습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에, 타력(他力)의 정토문이 열리게 된다.
작은 돌은 바로 인간의 참된 모습으로서 제 스스로 닦아서 성불하려는 자다. 제아무리 닦는 다 해도 돌은 돌이다. 곧 인간은 인간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물에 넣으면 가라앉아 버린다. 그러나 그 돌을 어떻게 하면 저 언덕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배에 싣고 건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배란 무엇인가.
2. 배에 싣고 건넨다.
불교의 교리면으로 볼 때에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 승(乘)이라는 글자가 말 하고 있듯이 배를 타는 것과 같아, 소승은 적게 타는 것이요, 대승은 많이 타는 것이니, 대승은 많은 사람이 타는 큰배와도 같다고 한다,
그런데 흔히 대승 불교라는 것은 보살과 같이 나 자신이 성불하기보다는 모든 중생을 먼저 제도하겠다는 활동이라고 생각할 때에 대승 불교 전체가 큰배에 비유된다. 그러나 앞서 보인 《나선비구경》의 경우는 그 배라는 것은 바로 염불이라고 하여, 대승 불교의 다른 문인 성도문(聖道門)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용수보살도 이행문(易行門)에 염불을 두었고, 난행문(難行門)에 참선수도를 두었다. 그리하여 참선 수도하는 것은 마치 육로를 걸어서 저 언덕으로 가는 것에 비유했고, 염불은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서 가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와 같이 염불의 공덕은 《나선비구경》에서 최초로 설해졌다. 그러면 이 경에서 큰 바윗 돌이라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죄를 짓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 이 사바 세계에서도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인간이 이러한 존재인즉 비록 살인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대자 대비하신 서원(誓願)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부처님의 그 크신 서원을 믿고,
부처님의 나라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마치 배에 실린 돌과 같이 거뜬히 저 언덕으로 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교설이랴.
3. 성불의 조건.
♧인간적인 자각.
큰돌이 배에 실리기만 하면 반드시 저 언덕으로 갈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돌이 배에 실리지 않고 제 스스로 굴러가려고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여기에 염불에 있어서의 중요한 조건이 있으며 염불의 의의가 또한 있게 되는 것이다.
돌이 배에 실리거나 안 실리는 것은 돌 자신의 자유다. 돌이 자신의 됨됨이를 자각하여 자신의 질량이 심히 무거워서 물에 뜨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군소리 없이 배에 실릴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깊은 반성에서 오는 인간적인 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염불에는 먼저 인간적인 자각이 필요하다.
♧서원의 신락.
다음에 그 돌이 배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배에 자기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있다. 자기는 무거운 질량을 가졌으니, 저 배가 가라앉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면 배에 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는 아무리 무거운 돌이라도 싣게 되어 있다.
내가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으니 어찌 부처님인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성불케 하실까 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돌이 어떤 종류의 돌이건 간에 문제가 없다.남자건 여자건, 살인자건 선인이건 간에 모두 타기만 하면 즐겨 받는다. 악인정기(惡人正機)
라는 말이 있다. 오히려 부처님은 악인을 가장 불쌍히 여기시어 성불할 기회를 먼저 주신다.
근기가 부족한 인간일수록 부모는 더욱 불쌍히 여기는 것과 같다.
《무량수경》에 보면 과거 구원(久遠)한 옛적에 세자재왕으로 계셨던 법장비구가 세자재왕
에 의해서 불국토의 청정행을 성취하고 48의 큰 원을 발하니, 그 중에 "만일 내가 부처가
됨에 있어서, 시방(十方)의 중생이 지심(至心)으로 믿고 기뻐하여 나의 나라에 낳기를 바라
서, 내지 십념(十念)하되, 만일 낳지 않으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노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지심으로 이와 같은 큰 서원을 말하신 부처님이 저 극락세계에 계시어 우리 중생을 섭수하
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마음에 기뻐하여 저 세계로 가서 낳기를 바라서 일념 내지
십념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성불하여 서방정토에 낳게 하시는 것임을 믿고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돌이 배의 성능을 믿고 기꺼이 올라타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서원을 가지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정념(正念)염불.
다음에는 배에 실린 돌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 돌이 움직이면 배가 뒤집힐 염려
가 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 염불이라는 것은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부처
님이라는 것은 청정심(淸淨心)이며, 부전도심(不顚倒心)이며, 불란심(不亂心)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아미타경》제 10장에 "어떤 양가의 아들이나 혹은 양가의 딸이라도 저 세존 무량
수여래의 이름을 듣고, 그 후에 하룻밤 또는....... 칠야(七夜)를 산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작의
(作意)하는 자"라고도 하고, 또한 동 10장에서 ".....전도되지 않는 마음"이라고도 하고,"맑고
깨끗한 마음"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임종 때에 불. 보살이 오셔서 맞아 주시는 목적이 이러한 마음으로 극락에
오게 한다는 것이 되기도 하고,
또한 임종 때에 염불을 한 번 부르더라도 이러한 마음이 된다는 것도 된다.
그 배에 실린 돌이 임종에 임한 마름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과 산란하지 않고 전도되지 않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어야 그 배가 잘 가게 되니,
염불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한결같이 부처님의 서원을 믿고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부처
님을 불러야 한다. 이것이 정념이라는 것이다.
♧임종은 바로 무시(無時)의 찰나이다.
정토 신앙에서 흔히 임종내영(臨終來迎)을 말하고 임종 때에 부처님을 부르는 것을 매우 중
요시하는데, 임종이라는 것이 반드시 사람이 죽을 그때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무상하다. 언제 죽는다는 것을 기약할 수 없다. 생명은 찰나찰나에 생
명을 거듭하고 있다.
바로 이 순간에 죽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찰나 찰나가 임종임을 깨닫고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
무거운 돌을 실은 배가 망망한 바다를 건너고 있으므로, 저 언덕에 도달될 때까지는 생사를
면할 수 없으니, 항상 임종임을 깨닫고 일념으로 염불하여 믿음의 즐거움을 가져 한마음 속
에서 극락 세계를 얻어야 한다.
원효스님의 유심안락도에서 부처님의 서원을 믿고 한결같이 염불하면 그 공덕으로 극락정토
의 장엄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극락정토는 반드시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고 현세에서 바로 이 한마음에서 왕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효 스님도 예토(穢土)나 정토가 본래 일심(一心)이라고 하였다.
어찌 이러한 염불이 성불하는 첩경이 아니리오, 그러나 불. 보살의 서원을 믿고 즐거이 칭명
염불하는 그 한마음은 지극히 깊은 마음(深心)이요, 지극히 순결한 마음(至心)이니 또한 이
어찌 쉽게 얻어지리오.
그러나 오직 배를 타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가게 되는 것이니, 또한 어찌 쉬운 문이 아니며
또한 어찌 장엄한 세계가 아니리오.'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에 올 때의 몸가짐 (0) 2012.12.30 절하는 공덕 (0) 2012.12.30 신, 구, 의 삼업의 대해 (0) 2012.12.29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 (0) 2012.12.29 부처님을 믿는 마음 (0) 201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