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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계절 아름다운 선암사(전남 순천시)
    사찰여행/전라도 2012. 9. 25. 11:14

    사계절 아름다운 선암사

     

     

    2012.   9 .  25.

        

     

    2012. 9. 23.  06:00 전라남도 순천으로 향한다.

    " 한국불교대학 관음사 포항도량 도솔산악회"에서  전라남도 순천의 선암사를 들어서서 조계산 천자암봉을 경유해서 천자암. 송광사를 거쳐 성철스님이 머무셨던 불일암도 들린다기에 9월산행도 함께  동행했다.

    06:00 포항 출발 현풍 휴게소에서 시락국에 밥말아서 김치랑 아침 먹고 한참 쉬고 섬진강 휴게소 한번 더 들러 10:20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  화장실. 기타 준비하고 10:30 선암사 들머리 들어서서 천자암봉 정상으로 다시 자암거쳐 9.1km를 걸어 15:30에 송광사에 도착 후 기도. 하산주 뒷풀이 후 17:20 포항으로 출발 21:10 포항에 도착 한다.

     

    불일암 들리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 다음으로 미루고 포항으로 돌아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다. 사적 제507호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다. 현재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서 종합수도도량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선암사 경내에 이르는 길의 조계산 계류에 놓인 승선교(昇仙橋)는 하나의 아취로 이루어진 석교로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선루(降仙樓)와 어울린 그림 같은 모습은 선암사의 상징이다. 그밖에 300년 된 산철쭉과 영산홍·고목동백·왕벚꽃·목련·부용·구봉화·화염물상봉 등의 아름다운 화원,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도 일품이다.

     

     

     

    선암사를 향하여

     


     

     

     

    주차장에서 5분정도 오르니 선암사초입이 나온다. 여기서 부터 선암사까지는 15분정도 걸어올라가면되는데 선암사까지 오르는길이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산림욕하는 기분이랄까 에너지가 모아지는 기분 공기좋고 물소리도 좋아 기분좋게 선암사를 향하여 올라 간다.

     

     

     

     

     

     

     

     

     

     

    선암사 입구의 계곡 - 울창한 숲길을 따라 가면 왼쪽으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암사 진입로를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운 숲길에서 만난 선암사 석주

     

     

     

     

     

     

    매표소에서 승선교 까지 이어지는 숲길.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 여름에 걸어도 시원할 만큼 그늘이 좋다. 그늘 짙으니 당연 온갖 새소리들이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고요한 길다. 그리고 단풍이 들면 그 정취 얼마나 좋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지만...

     

     

     

     

     

    선암사 들어가는 길 입구에 삼나무 숲이 있었다.

     

     

     

     

     

    선암사 지입로의 부도탑 - 시기별로 다양하다.

     

    눈길이 멈추는 곳은 네마리의 사자가 받들고 있는 사리탑이다. 전남 문화재자료 42호로 지정된 화산대사사리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구례화엄사의 3층사자석탑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사리탑의 기단은 1986년 도난당하여 현재 국제 인터폴에 수배 의뢰 중이다.


     

     

     

     

    부도탑 지나 선암사가는 길목에 순천전통 야생차 체험관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선암사 오르는 길에 만난 선암사 승선교

     

    어느정도 오르니 선암사에 다왔음을 알려주는 유명한 선암사 승선교가 보인다. 승선교는 무지개형 돌다리로 보물 400호로 유명한 다리로 아래로 내려와 계곡과 같이 보이는 강선루에 조화가 신선이 놀았다 했을정도의 곳으로 운치있는 곳이다.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호암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승선교는 게류를 건너기 위한 돌다리로 자연암반위에 무지개모형(홍예)으로 전체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강선루

     

    1층은 정면1칸 측면1칸이지만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각지붕 누각으로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이지만 속세에 찌든 사람들이 누각에 올라 앉으면 잠간이라도 신선이 되지 않을까? 자연은 우리에게 신선이 되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승선교를 지나 일주문 가는 길에 편백나무 숲이 있다.  시원스럽게 쭉쭉 뻗은 나무의 그늘이 시원해보인다.

     

     

     

     

    삼인당 연못 

     


    계란모양을 하고 있으며 계란노른자 위치에는 조그만 꽃무릇섬이 있다. '체행무상'  '제법무상'  '열반적정'을 뜻한다고 하는 이 인공연못은 선암사에서 사용한 생활배수를 게곡으로 흘러보내지 않고 이곳에 모아서 침전한뒤 흘러보낸다고 한다.  경내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모아 정화하는 곳이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댓가로 갈수록 환경이 파괴되는 요즘, 눈 여겨 볼 부분이다. 하수가 모인 연못의 꽃무릇 반영이 참 아름다웠다.

     


     

     

     

     

    꽃무릇의 꽃말은 '슬픈 운명'이라 한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애닯음이 진정 슬픈 운명 아닐런지?  아무리 구도의 길을 걷는다 해도 가슴 속에 어찌 그리움 없겠는가. 꽃무릇 너무 붉어 싸한 슬픔이 밀려온다.....

     

     

     

     

    번개맞은 나무

     

     

     

     

     

     선암사 일주문입구 왼쪽언덕에 있는 하마비

     

     

     

     

     

     

     

     

    선암사 일주문

     

     

     

     

    이 일주문은 누문인 강선루(降仙樓)를 지나 처음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

    <조계문창건상량문>에 의하면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당하였다가 1719년에 또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단충 맞배기와집(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으로 원형의 주춧돌위에 배흘림기둥(기둥의 중간이 굵고, 위 아래로가면서 가늘게 된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3군의 공포를 배치해 놓은 다포식(多包式) 건물이다.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일주문 기둥을 시작으로 양쪽에 담장을 쌓아 연결되었고 돌계단으로 층계를 연결한 형식이다.

     

    일주문 입구의 현판 글씨가 세로로 쓰여있는 것이 특징이고 '조계산선암사'라는 산명과 사찰명을 기록하고 있고 뒷면에 '고청량산해천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이 절의 옛 산명과 사찰명이 기록되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조계문(曹溪門)이라고도 하며 배흘림 기둥에 맞배지붕이다.

     

     

     

     

     

     

    범종루

     


    일주문을 들어서면 본당으로 가기 전 범종루 문을 지난다.  그 문을 통하여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현판이 눈에 띤다.



     

     

     

    '태고총림조게산선운사'라는 현판이 반겨 준다.

     

     

     

     

     

    범종루 옆에 범종각이 따로 세워져 있었다.

     

     

     

     

     

    만세루(萬歲樓)

     

     

    육조고사(六朝古寺)는 중국 선종의 최종 완성자라 할수 있는 6조혜능대사가 중국의 조계산에서 주석한 것을 모방하여 조계산의 선암사를 육조고사로 칭하고져 한것으로 추정되며 현판의 글씨는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의 부친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익겸(1614~1636)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건물의 앞면에는는 만세루(萬歲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만세루는 선암사의 강당 및 포행하는 공간에 해당하는 건물로서 수많은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을 하였던 건물이다.

    1824년에 대웅전과 함께 해붕, 눌암스님 등이 중창한 건물로 익공형의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치마 맞배지붕인 목조건물이다.

    원래 초기 가람의 배치형식에서 강당이 금당(金堂), 즉 대웅전의 뒤편에 있어야 할 위치이나 조선시대의 가람에서는 강당이 대웅전 앞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사찰에서는 주축선상에 누문(樓門)을 두고 이 누문의 밑으로 진입하여 대웅전 앞 중정(中庭)에 이르게 하나 선암사에서는 누하(樓下)로 진입하지 않고 누(樓)의 좌우로 돌아가게 하였다.


     

     

     

     


     

    선암사 대웅전

     

    만세루를 돌아 대웅전에 들어섰다.

     


     

      

    선암사 대웅전 (보물1311호) 

     


    사찰의 주불전으로 일주문과 범종루를 잇는 중심축에 위치한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흥망과 함께하여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경잠, 경준, 문정의 3대사가 주축이 되어 중수하였으나 1759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1760년에 상월, 서악 등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23년의 화재로 대웅전이 다시 타자 1824년 현재의 대웅전 건물을 중건하였다. 정유재란 이전에는 대웅전 자리에 2층의 미륵전이 존재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장엄하고 하려하다.

     


    조선 순조 때에 중창됐다는 기록이 있다. 기단은 막돌을 자연스럽게 쌓아 올렸으며, 그 위에 초석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창호는 모두 꽃살 무늬로 장식했으나 마모가 심하고 빛바랜 단청으로 고색이 창연하다. 대웅전 편액은 순조 당시 세도가인 안동 김씨인 김조순의 글씨인데 현수막에 가려 안보인다.

     

     

     

     

     


    대웅전 안에는 좌우의 협시보살이 없이 단독으로 목조로 조성된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위엄이 있어 보이고 양 볼은 두툼하다. 옷의 표현은 두텁고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이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본존불 뒤로는 주존인 석가불의 후불탱화로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상도가 그려져 있다. 화면 중앙에 크게 표현된 석가불은 머리 정상에 계주(珠)만 장식되었으며 비교적 둥근 얼굴에 가는 눈, 작은 입, 나선형의 콧수염 등에서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넓고 각이 진 어깨에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를 걸쳤는데 가슴부분이 많이 드러나고, 그 위로 주름 잡힌 승각기(僧脚崎)가 보인다. 광배는 약간 네모진 형태로 전신을 감싸고 있으며,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효과를 준다. 이 본존불의 주위에는 문수(文殊)·보현(普賢)의 협시보살상과 범천·제석천·사천왕·인왕 등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는데, 석가불에 비해 훨씬 작게 표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위로 올라갈수록 각 존상의 크기도 작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문양이 선명하다. 통문(通門)을 연결하는 대들보는 굵고 박공면에서 합각부분까지 용문양으로 장식하여 걸쳤다.

     

     

     

     

     

     

     

     

     

     

     

     

     

     

     

     

     

     


    높직한 다듬돌 기단위에 주좌가 뚜렷한 원형주석(圓形柱石)을 놓고 민흘림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배치하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는데 출목수는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 매우 화려하다. 

     

     

     

     

      

    대웅전 앞 당간지주 

     

     

        

     

    동·서 삼층석탑 




    대웅전 앞에는 2기의 3층석탑(보물 제 395호)이 세워져 있다.

    동서로 세워진 석탑은 서로 모양과 크기가 흡사한데 특징은 지붕돌 위에 호형과 각형 두단으로 이루어진 몸돌받침이 있다.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에에 하나씩의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3층의 굴곡을 이룬 괴임돌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고 밑받침은 각 층이 4단이다.

    지붕돌 정상에는 2층의 굴곡을 이룬 괴임이 있는데 지붕돌에 이와 같은 수법을 한 것은 희귀한 일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모라정삭받침)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다. 이 두 탑은 완전히동일한 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각 부에 다소의 손상을 입기는 했으나 규율성이 느껴진다.위와 아래의 비율도 건실하고 우아하며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잇다. 다만 기단의 다운데 기둥조각이 하나로 줄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도 각 4층으로 줄어 신라 중기 이후에 제작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심검당

     

     

     

     

     


    대웅전의 중심축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옛날에는 하선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며, 현재는 스님들의 강원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외부에서는 1층 건물로 보이나 내부 구조는 2층으로 살림직을 연상할 정도로 단출하다.


     

     

     

     


    1층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고 2층은 수장 공간으로 활용한다.

    원형기둥으로 익공 형식을 하였고 팔작지붕이 이어져 ㅁ자형을 이룬다. 마치 서울, 경기 지방의 양반집에서 안채를 이루는 기법과 같다. 내부는 조그마한 중정을 두어 개방적이나 외부는 창문과 벽으로 둘려져 페쇄적인 기능을 갖는 것이 흥미롭다. 이 건물은 1825년에 설선당과 함께 중건되었다.






      설선당

     

    사찰의 중심축에서 왼쪽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만일염불을 했던 염불원이 있었던 건물이며, 현재는 행자들의 교육과 생활을 하는 곳이다. 낮은 기단에 덤벙부초를 놓아 원형기둥을 세우고 초익공 형색을 한 단출한 건물이다.

    맞배지붕이 이어져 ㅁ자를 이루고 중앙의 조그마한 마당을 향해 건물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단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중층이다. 1층에는 스님들이 기거하고 2층은 수장(收藏)공간으로 활용한다. 내부는 조그마한 중정을 향하고 있어 개방적이고 위부로는 문이 별로 없어 다소 패쇄적인 성향을 갖는다. 설선당 상량문에 의하면 1824년에 대웅전을 복원하고 이듬해인 1825년에 심검당과 함께 중건했음을 적고 있다.

     

     

     

     

     

      지장전

     

    대웅전 바로 우측에 직각방향으로 앉아 있는 건물이다.

     

     

     


    대웅전과 직각으로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입니다. 순조23년(1823년) 불탄 것을 다음 해 해봉, 눌암, 익종 등 3대사가 합심하여 중건한 건물이라고 한다.

    지장전은 182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24년 제6창 불사 때 중건한 것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와 다듬은 원형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창방으로 잡고 그 위에 평방을 걸쳐 주두를 얹었다. 포 형식은 첨차와 소로를 결구하여 주심포형식을 하고 있으나 살미부분이 익공식을 하여 주심포에 익공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돌출된 외목도리는 8각형으로 특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선암사 경내에 있는 전각 중에 가장 화려한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명부의 시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팔상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 60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팔상도라 한다. 이 그림들을 모시고 석가여래를 기리는 불전이 팔상전이다.


     

     

     

     

    높게 쌓은 축대에 위치한 팔상전은 조사당, 불조전과 나란히 남서향하고 있다. 정면 5간 측면3간의 규모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가운데 3간 좌우와 후면에 불벽을 세워 전무와 후무로 공간을 나누었다.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지만, 양 측면의 네 기둥만 특이하게 각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사이는 창방으로 연결하고 창방위에 귀면화반을 두어 도리밑 장혀를 받치기 하고 있다. 천정이 반자로 마감되어 가구구성은 알 수 없으나, 기둥 윗부분은 첨차와 소로로 외1출목의 공포형식을 취하나 살미부분이 익공형식을 하고 있어 두형식이 혼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로 꾸몄다

     

     

     

     

     

     

     

     

     

     

     


    선암사의 팔상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시고 뒤에 화엄탱화가 있고 양 측면에는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33조사도가 모셔져 있다.

     


     


      불조전

     


     대웅전 뒤쪽의 중심축선상에 팔상전과 나란히 위치한다.선암사 대웅전 뒷편에 2단 높은 축대위에 있는 '불조전'이다.

     

     

     

     

     

     

     

    불조전은 과거칠불(過去七佛)과 미래억겁천불의 불조인 오십삼불(五十三佛), 즉 육십불(六十佛)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형식이 가미된 조선후기의 건물이다. 높은 축대로 대지를 형성하고 낮은 외벌 대기단을 이루었다. 덤벙주초와 잘 다듬어진 원형초석을 섞어쓰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사이는 창방으로 연결하였으며 창방 위에는 화반을 두지 않고 동자주를 세워 뜬 창방을 지지하고 있다.

    기둥머리에는 주두를 얹었고 벽면과 나란히 첨차와 소로로 이루어진 외1출목의 공포가 있어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직사각형의 살미첨차가 익공 형식을 하고 있어 이들 주심포와 익공의 두 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또한 외목도리는 1출목인 까닭에 벽면에서 약간 돌출하여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특히 팔작지붕에서 보이는 충량은 양측면에서 2개씩 안으로 오면서 크기를 줄여 설치하였다. 어칸은 4분합, 퇴칸은 2분합 빗살문이다.


     

     

     

     

     

    내부구조는 통칸으로 외진칸의 평주 위에 주두를 놓고 그 위에 직접 장혀받침 대들보를 걸쳤다. 대들보 위에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중앙부에는 동자주를 두어 한단을 높인 층단천장을 꾸몄다.

     

     

     

      조사당

     

     

     

     

     


    조사당에는 한국의 선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선승인 달마 · 혜능 · 의현 · 방회 · 청공과 태고 · 침굉스님 등 근현대 법맥을 이은 7명의 선조사(禪祖師)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중국 선종을 창시한 보리달마, 중국 6대 선종 혜능조사, 임제종으로 일컬어지는 간화선을 창종한 임제의현에 이어 오던 법맥이 고려말기의 승려 태고 보우는 1347년 중국에 건너가 석옥 청공의 법맥을 계승한 후 한국 임제종의 시조가 됐다. 선암사 중흥조인 침굉스님은 수행자들의 지표가 되는 수행가풍을 전했고 법명처럼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선정에 들곤 했다고 한다.


     


     

     

    장경각

     

     

    대웅전의 북서쪽에 있으며 건물의 명칭이 의미한데로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장경각은 1933년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2층이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단층이다. 즉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에 의하면 1층은 정면 3칸, 2층은 정면 1칸을 1층의 중앙 위에 그대로 올렸다. 또한 1층은 중앙칸에만 창호를 두었고 좌우측칸은 마루를 깔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층에는 난간을 돌렸다.


     

     


      응진당


     응진당은 선암사의 경역 내에서 가장 뒤쪽에 있는 별도로 설치된 일종의 새로운 조그마한 승원이다.

     

     

     

     

      

    응진당 영역 들어가는  입구 문 

     

     

     

     

    선방의 입구에는 '호남제일 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현판 아래 문으로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과 이를 둘러싼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북촌의 미음자 형 한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정면에는 불전인 응진전을 볼 수 있으며 한 칸 뒤 왼쪽에는 미타전이 있다. 동쪽에는 조사당인 진영각이, 맞은편인 서쪽에는 달마전이 보인다.

     

     

      

    응진당 영역 마당에서 바라본 전경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좌측에 달마전(達磨殿), 우측에 진영당(眞影堂)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맞배집이다. 깬돌을 교사 형식으로 높게 쌓고 그 위에 덤벙주초를 놓은 다음 원형기둥을 세웠다. 주심포 형식을 하면서 익공 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응진당 내부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좌측에 달마전(達磨殿)승방이다. 마당에서 보면 작은 한 채의 집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반전이 숨었다. 달마전 오른쪽으로 작은 문이 있는데, 잘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부엌이 나온다. 부엌에는 부엌의 신인 조왕신을 모시고 있고 바깥으로 나가는 출입문에는 주전자가 줄어 걸렸다. 대롱대롱 움직일 수 있는데, 스님들이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달마전(達磨殿) 옆 수행공간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우측에 진영당(眞影堂)이 배치되어 있다.두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기단 속에 주초가 묻혀 있고 원형기둥이 그 위에 서있다. 양측면 평보 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그 위에 동자기둥이 2개 세워져 중보를 받치고 있으며 위에 마루대공을 세운 다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응진당 우측에 중심축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는 건물로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셔다 놓은 곳이다. 조촐하고 조그마한 건물이다.


     

     

     

     

      

    응진 한 칸 뒤 왼쪽에는 미타전이 있다. 



     

     

     

      선암사 원통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원통전은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조선 현종 원년(1660)에 지어졌고,숙종24년(1698) 호암대사가 고쳐 세웠으며 순조24년(1824)에 다시 고친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선암사 원통각은 조선 현종 원년(1660)에 초창(初創)하여 숙종 때 중창(重唱)하였고 그 후에 순조 때 재중수한 건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조대왕이 후사가 없자 선암사 눌암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조임금을 얻게 되었는데 후에 순조임금이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殿)’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는데 현재 건물의 내부에 현판이 걸려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정면에 2개의 기둥과 2개의 활주를 내어 사찰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정자형 평면이 특이하게 주목되는 부분이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전면은 약 1m 정도 되는 축대를 쌓았고 양측면과 후면은 외벌대로 되어있다. 초석은 덤벙주초와 일부는 원형 다듬돌로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주두를 얹고 창방으로 걸었으며 창방과 장혀 사이에 화반, 동자주가 있다. 화반 위로는 장혀, 도리, 서까래 순으로 짜여져 있다.

     

     

    이 원통각의 꽃나무살문이 눈길을 끈다. 씨날과 빗살로 짠 문살이 만나는 점에 꽃무늬뿐만 아니라 꽃나무를 통째로 새겼다.


     

     

     

    선암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봉인되어있으며 보통 사찰에서 원통전이라고 불리는데 전(殿)보다 규모가 작을 경우 각(閣)이라고 한다. 원통전은 부불전(副佛殿)으로 보살단(菩薩壇)에 속하는 경우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의 협시로는 남순동자(南巡童子) 해상용왕(海上龍王)이 있으나 이들을 조각상으로 하지 않고 후불탱화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을 모든 고난에서 구제하고 해탈로 인도해주는 보살로 미륵신앙과 같이 염불을 수행방법으로 한다. 이러한 관음신앙을 반영한 불전을 관음전(觀音殿) 또는 원통전(圓通殿)이라 한다.

     

     

    특이한 모습인 원통전 지붕

     

     


     

    선암사 삼성각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가장 안쪽에 삼성각이라는 곳까지 발걸음이 닿았다. 선암사내의 가장 작은 목조건축인 이 건물은 한사람도 채 들어갈 수 없이 작았다. 불상대신 그림이 그러진 이 건축물 안에 공양하기 위해 놓은 천 원짜리 지폐들의 유혹은 청결한 불심이 아닌, CCTV가 지켜주고 있었다. 작지만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린모습은 다른 건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장 안쪽, 외진 이곳의 건물에도 정성을 소홀이 하지 않다니,  조계산 산신은 이 작은 건물이 그리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적묵당 - 현재 공양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적묵당'이다.

     

     

     

     

     


    적묵당은 T자형 건물로 절의 대중이 모여서 공양을 하는 곳이다. 1997년에 신건된 건물로 자연주초위에 원형기둥을 사용하여 홑처마로 지은 맞배집이다. 절에서는 공양간, 뒷간, 세면장을 삼묵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이나 일을 볼 때 씻을 때는 항상 엄숙해야 한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량수전과 와송

     

     

     

     

     

     

    가장 아쉬운 점은 풍경에 달린 바람에 흔들이는 물고기가 모두 떼어져 풍경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님들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란다....

     

     

     

     

      

    왼쪽건물 무량수전 , 오른쪽건물 삼성각,    천년을 살아가는 소나무 와송.



     

     

    원통전 후문의 600년 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

     

     꽃은 지고 없지만 자태만으로도 세월이 느껴지며 감탄이 나오는 선암매,

     

     

     

     

     

    무우전과 팔상전, 원통전,각황전 주변은 20여그루의 매화 중에 고목으로 자란 백매화와 홍매화 두그루는 아름다운 수형과 양호한 수세를 보이고 있으며 고려때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에 바로 옆의 와룡송과 함께 매화 관련 기록이 남아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나무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 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암사의 '태고종정'께서 주석하시고 계시다는 '무우전'

     

     

     

     

     

    선암사의 '태고종정'께서 주석하시고 계시다는  '무우전'으로들어가려면 이곳 "종정원'의 대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무우전'은 태고 종정이 주석하는 처소로서 선암사의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선원이다.

     


     

    선암사의 요사

     

     

     

      

    불교공부를 하러온 '여자 신도들이 머무는곳'이라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보니 일반 가정집처럼 편안해 보였다.

     

     

     

     

    문 발로 가려진 요사채의 뜨락에 노란국화가 벌써 피어 있다

     

     

     

    ○ 수행자의 공간

     

     

     

     

     

     

     

     

     


     

     

     

     

     

     

     

     

    조계산이 품은 순천 선암사에 와보니 사찰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관리가 잘되어 있다.


     

     

      

    자그마한 연못

     

     

     

     

     


     

     

     

     

     

    선암사 종무소

     

     

     


     

      선암사 측간(仙巖寺厠間)


     

    선암사 화장실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선암사 뒤깐'이다. 이 건물은 일주문과 범종루를 지나 대각암 가는 길에 있는 해천당 옆에 위치해 있다.

     

    '나의 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와 한국건축전공자이신 김봉렬교수가 극찬한 화장실

     

     


     

     


    앞면 6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바람을 막을 수 있는 풍판으로 처리되었다. 정(丁)자 모양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는 이 건물은 북쪽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입구에 설치된 풍판은 이 건물의 특징으로, 풍판 아래분의 가운데와 양 끝을 약간 들린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이렇게 곡선으로 처리된 입구의 모습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한편 드나드는 사람의 머리높이를 생각하여 배려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인상적이다. 뒷간은 변소이므로 해우소로 해야 정상일 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 옆으로 분리되어 있다.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300년 전에 지어진 사찰에 더구나 비구니 승도 없는 곳에서 남녀 화장실이 구분이 뚜렸한 데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좌우 앞뒤 입구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허리밑 (끝에 보이는 높이)이다.

     

     

     

     

    들어가면 4개의 칸(깐,간))이 앉으면 겨우 머리가 보일듯 말듯한 높이다.그러니 총 남녀16명이 대소변 구분없이 한꺼번에 볼 일을 볼수 있는 규모이다

     

     

     

     

    아래 높이는 4~5M 정도다.

    이렇게 높은 것은 볼 일을 보다가 튈 수도 있는 바닥의 오물 사고를 방지하고자 함 같다.또한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함도 ~~~

    그 높이를 표한 글 중에 기억이 나 옮겨본다.

    " 월초 하루날 변을 보면

    그 떨어지는 소리가 섣달 그믐날에 들리는 뒤깐이 선암사에 가면 있다"고.....

     

     

     

     

     

    볼 일을 보고자 앉아 있으면 눈 높이에서 약간 위로 꽤 두꺼운 나무창살이 빗살 엇비슷하게 나 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구조~`꼭 자동차 유리썬팅같다.안에서 바깥 세월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찰에 안에서 답답했을까?  아니면 볼일을 보면서도 세상이치를 깨우치고자 이리 했을까?

    우선 산능선이 걸쳐보이고 바람과 계절이 보인다.

    일을 보면서 더러움을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이 순간 마음도 맑아지니 평화로울 뿐 한티끌 더러움도 없는 곳이 이곳인 것을...

     


     

     

     

     

    화장실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된 곳이라는 표식이 있다. 화장실 뒤에는 톱밥인지 왕겨인지가 보관되어 있다.

     

    옛선인들의 통찰력으로 지어진 건물의 아름다움, 과학적인 설계와 친환경 생태학적 볼 일 보는 즐거움 끝 마무리까지 확실한 애프터 서비스 '돌확'(뒷간 앞에 물확이 있다.)  현대에서도 해결못하는 확실한 화장실 문화의 결정판이 "선암사 뒤깐"에 있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올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님의 선암사에서 > 가  생각났다...

     

     

     

     

     

     물확 

     

     

     



    뒤간을 나오면 앞에 깨끗한 물확이 눈에 뛰는데 비운 후 손도 닦으라는 선조의 지혜같다.  산사 물 한목음을 들으켜 본다 !


     

     

     

    선암사 전경

     

     



     

    선암사의 전각들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고풍스런 옛모습에 마음을 뺏길 정도이다.

     

     

     

     

      

     

     

     

     

    시간이 쌓이고- 담장 기와 한 장 한장에 시간이 쌓이고 싸여 시간이 흘러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선암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매화길 - 원통전에서 나와 우측으로 오면 매화나무가 길을 이루고 있는데 선암사는 3~4월사이에 매화가 피면 이길이 하얗게 수놓아진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운길.....

     

     

     

     

     

     

     

     

     

     

     

     

    선방은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수행중이니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팻말이나 “조용히 하세요”라는 글귀만 발견한다. 선방은 사찰의 핵심이다. 

     

     

     

     

     

     

      

    순천 조계산 선암사 선방은 일 년에 하루 개방된다. 매화축제 때다.  

     

     

     

     

      

    곳까지 오느라 목마른 분들은 잠시 쉬어가며 물을 마실수 있게 배려가 되어 있다.

     

     

     

     

     

    선암사에서 선방은 그 자체가 담으로 둘러진 작은 절집이다. 사방이 담으로 둘러져 있어 폐쇄적으로 다가온다.

     

     

     

     

     


     

     

     

     

     

     

     

     

     

     

     


    순천 선암사는 조경이 잘되어 임권택감독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취화선'의 촬영지인 이곳 선암사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절로 유명하여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으며 그 아름다움을 더 하는 곳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볼거리와 문화재들을 뒤로 하고 아쉬운듯 서운한듯 조계산 산행을 위해 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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