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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 불회사(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다도면 마산리 999번지)
    사찰여행/전라도 2023. 11. 18. 12:12

    나주 불회사 

      

    2023.   11.   18. 

     

     

    2023.  11.  15.  가배와 함께한 거창 창포원 국화꽃과 화순 운주사  그리고 나주 불회사 올 마치막 단풍을  둘러 보는  여행길이다...

    오늘 두번째 여행지 늘 와봐도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고, 새로움을 느끼는 절로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의 기운을 받아올 수 있는 곳 이곳 운주사를 나와 10여분 거리의  오늘 세번째로  마지막  여행지인  불회사로 향해본다.

     

    덕룡산 에 위치한 불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 가운데 하나로 백제 침류왕(384년)때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茶道面) 마산리 덕룡산 남쪽에 있는 절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덕룡산의 중턱 온화한 산세속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창건 시기에  두 가지 기록이 전하는데   384년 백제 침류왕 때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창건 하였다는 설인데 백과사전을 확인하니 마라난타는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하였다는 인도의 승려이고 백제에 들어와 불법(佛法)을 크게 전파하였고. 이 때부터(침류왕) 백제에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회사는 가장 이른 시기에 불교가 전래된 도량이며  4계절 모두 아름다운 산수를 자랑하는 곳이다.

     

     

     

     

     

     

    불회사 일주문

    전형적인 일주문 형태로 불교가 맨 먼저 들어 온 곳이라는 뜻의 ‘초전성지 덕룡산 불회사’라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일주문 전면에 걸린 '초전성지 덕룡산 불회사'(初傳聖地德龍山佛會寺)라는 현판은 '불교를 최초로 전교한 성지 불회사'라는 의미이다.

    돌을 사용한 기단과 복련 형태의 연잎을 가득 새긴 초석을 놓았다.   측면 칸이 보통 일주문 보다 넓어 네모서리에는 활주로 받쳤는데 초석은 연화를 새긴 장초석을 썼다.

     

     

     

     

    일주문  현판

    이 '初傳聖地德龍山佛會寺' 현판은 안동출신의 대서예가 '초전 권창륜' 선생의 글씨이다.

    안동지역에서 활동하는 '초전' 선생이 불회사에 현판 글씨를 남겼다는 것은 초전 선생의 지명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회사 입구는 길가의 나뭇가지가 버스에 부딪힐 정도로 그리 넓지는 않으나 사찰에 도착하니 주차 공간이 꽤 넓다.   버스가 어찌 보면 절 경내까지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넓은 주차장에서 출발할때는  큰길을 버리고  냇가의 돌담길을 건너

     

     

     

     

     

     

     

    데크길을 이용해서 절로 오르기로 하고 내려올때는 큰 도로 길로 내려오기로 한다.

     

     

     

     

    오름길 나무 숲길 아래로는 상상화 꽃 나무와 야생녹차가 무척 많았다. 

     

    불회사의 녹차는 1600년 전 삼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스님께서 이곳 덕룡산에 오시어 불회사를 창건하고 차씨를 들여와 시배되었다.   차나무가 옛 모습 그대로 비자나무 아래에 자라고 있고자연 그대로의 찻잎으로 만들어지는 그 차의 이름을 비로다(榧露茶)라 하였다.   비로다는 덕룡산에서 옛날부터 자생하는 찻잎을 채취하여 선배 스님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적 제다법즉 아홉 번 덖어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지키며 만들고 있다.

     

     

     

     

     

     

     

    한참 이어지는 데크 오솔길에 아직은 남아 있는 가을이 있어 더 운치있고 좋다.   

     

     

     

     

    불회사가 있는 덕룡산 중턱까지 오르는 숲길은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길옆으로 하늘을 가리는 편백나무,  전나무,  비자나무 그리고 애기단풍까지 초록과 단풍의 하모니를 이루며 아늑한 터널을 만들어 준다.  이들이 뿜어내는 향과 주변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까지 좋아도 너무 좋다.

     

     

     

     

    이제 이 데크 목책 다리를 지나면 큰 길과 합쳐진다.

     

     

     

     

    메타세콰이어 나무 주변으로 미리 떨군 은행잎이 노란 융단길을 열어준다.

     

     

     

     

     

     

     

     

     

     

     

     

     

     

     

     

    요사채  사운당 옆에는 아직 애기단풍 나무에 가을이 많이 머물고 있었다.   우리들 인생도 황혼이 이리 아름 답기를 욕심부려 기대해 본다.

     

     

     

     

    불회사 오르는 길의 가장 큰 특징은 왼쪽 산으로 편백나무 숲과 비자나무 숲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곳에 있는 300~400년된 비자나무 숫자는2,324주라고  한다.  숲길을 걸으니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트 향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덕룡산 산자락에 자리한 불회사는 경사진 대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전각을 배치하여 개방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대양루와  요사 사운당

     

     

     

     

    불회사의 가을은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랫동안 볼 수 있어 인근의 나주호와 더불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불회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운흥사터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동진 태화 원년(366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고 희연조사 2창, 조선 태종 2년(1402) 원진국사가 3창하고, 정조 22년(1789) 큰 화재로 건물이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1800년 중건하였다.

    불회사라는 이름은 부처님의 회상이란 의미로, 불법승 삼보가 어우러져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불회사는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없지만, 호젓한 분위기로 사람을 붙잡는다.

     

     

     

     

    진여문

    회랑처럼 보이는 진여문은 정면1칸, 측면3칸의 주심포 팔작지붕의 건물로 세로로 긴 평면으로 측면을 통해 들어가는 특이한 구조이다. 진여문 뒤로 바로 붙여서 정면 3칸, 측면2칸의 천왕문을 덧붙여지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을 이룬 독특한 형태의 산문이다.

     

     

     

     

    이 건물은 정면에는 ‘덕용산 불회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중앙에 진여문과 천왕문이란 작은 편액이 붙어있다.

     

     

     

     

    '진여문'편액은 호남의 동국진체 학맥에서 이름을 떨쳤고, 국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목인(木人) 전종주(全鍾柱)'  선생의 글씨이다.

     

     

     

     

    천왕문 입구 진여문(眞如門)의 여닫이식 나무 대문에는 금강역사 2기가 그려져 있다. 이는 진여문이 곧 다른 사찰의 금강문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진여문과 바로 뒤로 붙어 이어진 천왕문은 2002년에 건립하였는데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 4위를 조각상이 아니라 탱화로 그려 봉안한 흔치 않은 방식이다.

    대다수의 사찰에는 목조 혹은 소조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유서 깊은 사찰에서 사천왕 탱화를 본 것은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문을 따라 불회사 경내로 들어간다.

     

     

     

     

     

     

     

     

     

     

     

     

     

     

     

     

     

     

     

     

     

     

     

     

     

     

     

     

    대양루 앞에서 바라본 천왕문

     

     

     

     

    비교적 근래에 중창된 불회사는 진여문과 천왕문, 그리고 안쪽의 대양루(大陽樓)와 주법당인 대웅전이 전통적 가람배치인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사천왕문을 벗어나면 정면에  ‘대양루’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 터에는 대양문이 있었으나 2000년에 지금 건물을 건축하였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전면은 2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단층이다.

     

     

     

     

    대양루는 아래쪽으로 출입을 하는 전형적인 누하 진입형(樓下進入形) 구조로 되어 있다.  전면에서는 2층이고, 후면에서는 1층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상층은 천수전,  하층은 가운데 칸을 열어 통로로 사용하고 우측 공간은 종무소,   좌측 공간은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비로 다경실이 있다.

     

     

     

     

     

     

     

    대양루의 현판 글씨는 고불총림 백양사의 방장(方長)을 지내고,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역임하고 백양사에서 2003년 다비식을 치른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이다.

    성철, 서암스님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으로 손꼽히는 서옹스님은 2003년 입적하실 당시 좌탈입망(坐脫立亡) 하셨다고 한다.

     

     

     

     

    11월 11일에는 가을음악를 했다고  한다.

     

    아홉 번 덖어 만든 자연 그대로의 찻잎 비로차(榧露茶)

    불회사의 녹차는 1600년 전 삼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스님께서 이곳 덕룡산에 오시어 불회사를 창건하고 차 씨를 들여와 시배된 것이다.   그리고 차나무가 옛 모습 그대로 비자나무 아래에서 이슬을 머금고 자라나고 있다.   그 어떠한 인공적 가미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찻잎으로 만들어지는 그 차의 이름을 비로차(榧露茶)라 하였다.  비로차는 덕룡산에서 옛날부터 자생하는 찻잎을 채취하여 선배 스님들로 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적 제다법,   즉 아홉 번 덖어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지키며 만들고 있다.

     

     

     

     

    하층은 가운데 칸을 열어 통로로 사용하고 우측 공간은 종무소,   좌측 공간은 비로 다경실(榧露茶經室)로 사용하고 있다.

     

     

     

     

    우측 공간의  종무소 공간

     

     

     

     

     

     

     

    좌측의  비로다경실 공간은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이다.

     

     

     

     

     

     

     

    대양루 아래의 누문을 통과하여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3단의 축대 위에 올라앉은 불회사의 주법당 대웅전 건물이 보인다.

     

     

     

     

    입구 쪽에는 대양루, 대웅전 쪽에서는 천수전 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전면은 2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단층이다.

     

    대양루를 안쪽에서 바라보면 단층 전각으로 '천수전'(千手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 법당에는 나무 통판에다 조각을 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돼 있다고 하며, '관음전' 겸 강당으로 사용되는 공간인 듯하다.

     

    천수전은 2000년대 들어와서 지어진 건물로서 대양루의 2층에 자리잡고 있다. 내부에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을 사천왕과 함께 통판을 조각하여 정 중앙에 모시고 있다.관세음보살은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며 중생의 고통을 잘 알고 연민과 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이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대웅전 마당  우측의 요사 사운당으로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전면 입구 쪽에서 보면 2층이지만 뒤쪽인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단층이다.

     

     

     

     

    천수전 바로 옆의 범종각

     

     

     

     

    범종각에는 불전 4물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동백 숲을 뒤에 두르고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으며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웅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소개해 본다.

     

    불회사는 몇 번의 화재로 전각이 소실되고 쇠락하였는데 절의 중창과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지는데 고려 말 참의벼슬을 지낸 조한용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들어서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여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표주박 하나와 누더기 한 벌만으로 구름처럼 흐르는 만행을 하던 스님은 이 곳에 이르게 되었고,  스님은 오랜 세월에 쇠락한 불회사를 복원하고자 원을 세우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탁발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절로 돌아오던 중 산길에서 울고자 하나 울지도 못하고 일어나고자 하나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났다.   호랑이는 스님을 보자 입을 크게 벌리고 눈물만 흘렸다.

    목에 걸려 있는 비녀를 본 스님은 호랑이가 아무 말도 못했지만 사람을 잡아먹다가 그렇게 된 것을 알았다. 

    스님은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비녀를 뽑아 주었다.

    그 해 겨울, 호랑이는 한 아리따운 귀한 집 아이로 보이는 처자를 물어다 절 마당에 내려놓고 갔는데 초 죽음이 된 처자를 구명한 스님은 그가 천리 밖 안동 만석꾼의 외동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처자가 기력을 회복한 후 남장을 시켜 스님과 함께 하루에 십리를 걷기도 하고 이십리를 걷기도 하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안동에 도착했다.

    김 상공은 딸을 살려 준 은인인 스님을 사랑에 모시고 며칠 동안 잘 모신 후 보답을 하고자 하니, 스님은 불회사 복원 불사에 시주하기를 청했다.

    그리고 지고 간 작은 걸망을 꺼내 시주 미를 담게 하니, 김 상공의 부인은 작은 걸망에 몇 되의 쌀이 들어갈 것인가를 염려했다. 

    스님은 걸망에 가득하면 충분하다 하고 가득 채울 것을 권했다.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이 들어가는 쌀을 보고, 부인은 곳간을 열고 스님에게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가져가시라 했다. 이에 스님께서는 신통으로 공양미를 이 곳에 보냈다고 한다.

    이때 수미산만큼이나 많은 쌀을 보관했던 곳이 지금의 화순 '중장터’라고 전한다.

    김 상공이 시주한 쌀로 거대한 불회사 대웅전을 지으며 좋은 날, 좋은 시간을 택하여 상량식을 올리려는데 일이 너무 장대하여 상량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스님은 뒷산 봉우리에 올라가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기를 “호법 선신중 이시여, 부처님의 대작불사가 해가 짧아 원만히 회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피를 드리워 주소서“  하니 해가 잠시 멈춰 상량식을 제시간에 원만히 마쳤다고 한다.

    그 뒤 스님께서 기도 드린 곳에 암자를 세우고 해를 멈추게 한 곳이라 하여 일봉암이라 하였으나 6.25전란으로 소실되고 지금은 샘터만이 남아 그 곳을 찾는 이들의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스님께서는 말년에 큰절 건너편에 남암(南庵)이라는 암자를 짓고 그 곳에서 말년을 보내시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까만 새가 날아와 뒤편에 있는 잣나무 가지에 앉아 스님과 대화를 했다하여 그 나무를 백수(柏樹)라 하지 않고 흑조수(黑鳥樹)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그 잣나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암터에 두 그루가 정정히 남아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몇 년 전 태풍으로 한 그루는 부러지고 지금은 단지 한 그루만 남아있다고 한다. 

     

     

     

     

    대웅전 앞 돌계단 양쪽에 괘불대 3기가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 3종류의 괘불대가 있는데 이것은 불회사의 오랜 역사와 이 지역에서 사찰로써의 역할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오른 쪽 풍상의 마모가 가장 많이 된 것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제일 먼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다음에 있는 가장 웅장하고 잘 조성된 것은 아마도 3창주 원진국사 시절에 이루어 졌으며, 그리고 네 짝으로 완전한 형태를 지닌 맨 왼 쪽의 것은 아마도 제 4창 당시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대웅전 뒤편에 괘불을 보관했던 함이 있는데 그 규모로 보아 그 당시에 불회사에 웅장한 괘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보물 제1310호)

    대웅전은 상량문 및 건축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식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 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화재를 입어 순조 8년(1808) 5월에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건물이라고 한다.

     

     

    모두 궁창 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인데 한국전쟁 이전에는 정면 어간문에는 통판으로 좌측에 수생동식물 우측에는 육상동식물들이 조각되어 있고, 양 측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으로 조성되어 있고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원래 대웅전 문짝은 두터운 통 판자로 짜서 창살무늬와 불상· 화조 등을 새긴 희귀한 것이었는데, 공비들이 그들의 소굴을 덮기 위하여 떼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이 만든  문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 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건칠비로자나불(보물1545호)을 본존으로 소조보살입상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67호)을 협시로 함께 봉안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로 매우 드문 것이다.

     

     

     

     

     

     

     

    대웅전의 건칠비로자나불좌상(보물 1545호)

    조성한 시대: 고려 말~ 조선 초기 불회사 대웅전에 봉안된 마와 창호지, 회를 섞어 만든 건칠상으로 오른손이 왼쪽 손을 감싸 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다.

    긴 신체 비례와 구부정한 자세 등에서 고려 말∼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불상 내부는 비워진 상태이다.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삼베와 칠을 6∼8겹 정도 겹으로 올려 옻칠을 한 건칠상으로, 눈동자와 백호는 수정을 끼워 넣었다.  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우고 철정으로 고정하였다.

    건칠불상은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제작되고 유행하였던 불상의 재료로서 현재 약 20구 정도 남아 있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지권인의 수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으로 무릎이 넓은 장대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신체 비례와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손 모습이나 군의를 묶은 띠 매듭, 대의 착의법 등은 고려 후기 특징인 반면 신체에 비해 큰 얼굴과 상체가 긴 신체 비례, 도식적인 옷자락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여말선초의 나주지역에서 제작된 건칠비로자나불좌상으로 건칠이라는 소재의 특수성과 여말선초 시기에 보기 드문 비로자나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건칠불상은 칠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하는 상으로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값이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운 단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작품 수가 많지 않고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불상의 재료이며 유난히 전남 나주,  남원지역에 많은 편이어서 불회사 불상의 자료적 가치는 높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여말선초기의 건칠불상과 비로자나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양옆의 두 협시 소조보살입상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소조(塑造)로 조성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이다.

     

     

     

     

     

     

     

    대세지보살

     

     

     

     

     

     

     

     

     

     

    건물의 내부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대량(기둥)에는 학과 기린 등이 부조되어 있고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대웅전 천장 주위에 22개의 각종 불교와 관련된 벽화를 그려 장엄미를 돋보이고 있다.

     

     

     

     

     

     

     

    불회사 대웅전 천장의 단청 용 한마리가 고기를 물고 있다.

     

     

     

     

    윤장대

     

     

     

     

    신중탱

     

     

     

     

     

     

     

     

     

     

     

     

     

     

    불회사의 전각들을 돌아보다가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의 기둥 아래 놓인 주춧돌들이 대부분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 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불회사가 유서가 깊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서민생활과 깊게 교감하는 사찰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대웅전 문짝은 두터운 통 판자로 짜서 창살무늬와 불상· 화조 등을 새긴 희귀한 것이었는데, 공비들이 그들의 소굴을 덮기 위하여 떼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이 만든  문이다.

     

     

     

     

     

     

     

    대웅전 뒷편 산기슭에는 '애기동백나무'  숲이 마치  '철갑을 두른 것처럼' 빽빽하게 차 있다.   장벽처럼 보이는 이 애기동백 숲은 거의가 수령이 300년을 넘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불회사 측이'방화벽' 처럼 조성해 온 숲이라고 한다.

     

     

     

     

    명부전

    불회사 대웅전 오른쪽으로 한단 낮은 축대에 자리잡고 있는 명부전은 1799년(정조23)에 나한전과 함께 지었으며 정면 3칸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명부전은 조선시대 후기에 크게 유행한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명부전 내부 법당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의 지장보살 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동자 2위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상, 그리고 한 쌍씩의판관, 녹사, 사자, 인왕상에 8구의 동자상, 금강역사상을 각각 양쪽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명부전 앞에서 내려다본 사운당 요사

     

     

     

     

    계곡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진여문을 들어서면 대양루가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이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남향으로 자리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같은 남향의 삼성각, 나한전이, 우측에는 서향으로 자리한 명부전이 있다. 나한전 좌측에는 응향각이 동향으로 자리 잡고, 주요 불전 영역보다 낮은 지대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심검당과 사운당이 각각 동향,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형을 적절히 다듬어 석축을 쌓고 건물을 세울 기단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곳곳에 계단을 두어 각각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대웅전 전면 왼쪽에 나한전과 삼성각 한 단 아래에 위치한  극락전(極樂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주심포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각이다.

     

     

     

     

    극락전 내부에는 협시불 없이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인 아미타불상만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은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한 영구위패를 모시기 위해 2013년도에 건립했다.

     

     

     

     

    범종각과  신검당. 극락전.  응향각. 나한전.  삼성각이 차례로....

     

     

     

     

    불회사를 감싸고 있는 덕룡산은 특별히 모난 산세는 아니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능선과 봉의 오르내림이 산의 깊이를 더 하고 있다.   대웅전 뒤편의 동백 숲에서 느끼는 가을 기운.....

     특히 5월쯤 연두빛으로 막 피어나는 둥그런 산 속에 들어앉은 대웅전의 모습은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불회사 대웅전 왼쪽으로 나한전과 대웅전 사이에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정조 23년(1799)에 건립되었다.

     

     

     

     

    삼성각에는 통상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시는 전각인데 불회사의 삼성각에는 독성 대신 용왕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1979년에 조성된 칠성탱화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1979년 제작된 산신탱화를 왼편에 1994년에 제작된 용왕탱화를 모셨다.

    칠성탱화는 중앙에 보륜을 들고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좌우 상단에 칠성여래를 나누어 묘사하였다.   좌우 협시보살의 주위로는 태상노군, 좌보필성, 우보필성 등의 성중들이 배치되었다.

    산신탱화는 중앙에 부채를 들고 있는 백발의 산신이 반가좌의 자세로 호랑이 등에 걸쳐 앉고, 그 오른편으로 처녀2분과 주전자를 받쳐 든 동자가 표현되었다.

    용왕탱화는 산신탱과 같은 크기로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을 용을 타고 있는 용왕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용왕탱

     

     

     

     

    범종각. 극락전과 응향각 그리고 측면의 삼성각

     

     

     

     

    응향각과 나한전

     

     

     

     

    나한전

    극락전 후면의 나한전(羅漢殿)에는부처의 500제자를 모신 나한전이 자리하고 있다.    1797년 (정조23)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되었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부처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때문에 나한은 불교 수행자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을 부르는 용어이다.

     

     

     

     

     

     

     

    나한전에는 부처님과 16나한상과 함께 우측면에는 '원진(圓眞)국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이는 고려 말기에 불회사를 중창하고 사세(寺勢)를 크게 떨친  '원진국사'를 나한에 준하는 반열로 예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한전 앞에서 바라본  삼성각 처마와 대웅전.  요사 사운당.  극락전.  범종각이 차례로....  

     

     

     

     

     응향각

     

     

     

     

    극락전 후면  응향각  앞 마당 축대 위의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두 갈래로 갈라진 매화나무 고목이 서 있다.​ 거꾸로 선 여덟 팔 자의 단풍나무가 참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 준다.

     

     

     

     

     여덟 팔 자의 단풍나무 옆에서 바라본  신검당.  제다실과 뒤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비로선원'(毘盧禪院)이 눈에들어오고 우측으로는  응향각이다.

     

     

     

     

    나주 불회사는  연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이다.  대웅전 마당 끝의 사운당과 천수전 그리고 범종각....

     

     

     

     

    여덟 팔 자의 단풍나무 옆에서 바라본  나한전과 뒷모습의 극락전 그리고 사운당

     

     

     

     

    나한전. 삼성각. 대웅전 극락전이 차례로....

     

     

     

     

    동백 숲의 한국의 재래종인 애기동백이 대웅전 뒤로 부채꼴로 펼쳐져 숲을 이루고 있다.  수령은 300~400년 정도이며   꽃망울을 머금은 동백은 3~4월에 꽃을 피운다.

     

     

     

     

    불회사의 후면 전경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여러 전각들의 지붕선이 무척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 온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비로선원'(毘盧禪院)이 눈에 들어온다.   호젓한 산언덕 아래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모습도 좋았지만, 선원과, 선원을 둘러싼  S 자형의 담장도 참 아름다웠다.

     

     

     

     

    비로선원에서 바라본 불회사 전경....   응향각. 신검당. 제다실 . 요사가 차례로....

     

    애기동백나무 옆으로 비자나무숲이 이어진다.

    보호림으로 지정된 비자림은 301,457제곱미터에 약 3천 그루가 자리하고 있으며, 수령은 300~400년 정도이다.

     

     

     

     

    비로선원에서 바라본 비로헌

     

     

     

     

    비로선원

    현재는 불사가 많이 이루어져 많은 전각들과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도량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비로선원에서 내려오며 바라본 비로선원. 응향각. 요사와 신검당

     

     

     

     

    대양루 옆에 서있는 불전 4물이 봉안되어 있는  2층 누각형의 범종각도 참 아름다웠다.

     

     

     

     

    인도스님 마라난타가 지금의 법성포에 첫 발을 디딘 후 영광에 사찰을 짓고, 그 이후 나주에 와 법회를 열었다고 전해지고 이야기가 백제불교 전파설이다.

    마라난타가 영광에 지은 사찰이 불갑사이고, 법회를 연 장소는 불회사(佛會寺)라고 한다.

    부처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곳이 바로 불회사이다.

     

     

     

     

     

     

     

    불회사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 본 풍경.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진여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대양루가 있고 거기를 거쳐야 대웅전 앞마당에 도달한다.

     

     

     

     

     

     

     

    불회사 산내암자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불회사에는 남암, 북암, 서암, 동암, 일봉암 등 총 5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는 일봉암만 2013년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왕문. 진여문을 지나 ....

     

     

     

    내려 올 때는 메인 도로 옆 계곡 쪽으로 난 편백나무 숲 사이를 걸었다.   정말 아름다운 편백나무 숲길이었다.

     

     

     

     

    절 입구에 이런 탑인지 부도인지가 있는 곳 근처에  도암당 부도 가는 길을 따르니 2기의 부도가 조성되어 있다.

     

     

     

     

    도암당 부도

    좌측의 석종형 탑신 위에 보주를 안치한 이 부도는 당호가 도암당으로 부조되어 있다. 이 부도는 방형의 대좌 위로 석종형의 탑신과 그 위에 옥개석 없이 바로 상륜인 보주를 안치하였다.   탑신에는 별 문양이 없으나 중앙에 ‘도암당’이라는 당호를 새겨 놓았다.   조성된 시기는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이런 형태의 부도는 조선 후기에 조성하던 방식이다.  

     

     

     

     

    암당 부도

    우측의 부도와 함께 탑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부도는 백양사 주지로 주석하셨던 청암당 학능스님의 부도로 조성 형태로 보아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조금더 내려서면 만나는  덕용산 불회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 사적비에는 366년  '마라난타' 스님이 불회사를 창건한 사실과,  고려 말엽에 원진국사가 불회사를 중창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까 주차장에서 절에 올때 오르던 나무목책 데크길이 참 이쁘다.

     

     

     

     

    오래된 편백나무 나이테인듯...

     

     

     

     

    나무목책 데크 갈림길 반대방향으로 사랑나무 연리목이 있다.

     

     

     

     

     

     

     

    연리지

    일명 사랑의 나무, 연리목(連理木). 연리(連理)는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 현상을 일컬어 말한다.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로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음양수인 불회사 연리목은 큰 나무뿌리 밑에서 자라난 두 나무가 바위 위에 누워 자라다가 한 몸이 되었고 한 몸이 된 나무는 네 갈래의 가지를 하늘로 뻗은 형상이다.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불회사로 오르는 길에는 나무의자도 있어 편안히 쉬어갈수 있다.

     

     

     

     

    데크 갈림길에서 아까 올라왔던 데크길이 아닌 편안한 흙길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강인한 생명,   자연의 순리에 경의를 표한다.

     

     

     

     

    아까 올라왔던 데크길 방향,  가을이 아직은 머물고 있었다.

     

     

     

     

     

     

     

     

     

     

    흙길에서 연꽃이 피어 오른 돌길로 바뀐다.   길 중앙에 박아놓은, 연꽃문양을 새긴 박석들이 불회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108개의 연화문 돌을 밟으며 108번뇌를 떨치려 노력해 본다.

     

     

     

     

    그러다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엔 이렇게 좌우에 퉁 방울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석장승이 마주보고  참배자를께  작별인사를 한다.

     

     

     

     

     

     

     

     

    주차장 방향으로 한동안 걷다 보면 길 양 옆에 세워져 호법상의 역할을 하는 그 유명한 불회사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1호)을 만나게 된다.  석장승은 익살스럽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어서 친근감이 넘친다.  할아버지 장승과 할머니 장승으로 보이는 한 쌍의 돌장승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17,8세기 세워졌을 것이라 추정되는 석장승이 서 있는 곳은 절과 일주문의 딱 중간지점이다.

     

    부부장승이라 한다.   누가 삿된 마음을 가지고 오는가,   부처가 되겠다고,  부처를 보겠다고 찾아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책을 하고 있다.

    어떤 때는 무섭게, 천진스럽게 보이는 장승부부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장승의 키는 2.3m, 할머니 장승은 1.7m이다.

     

     

     

     

    절 앞 300m 되는 지점의 길 양쪽으로 마주보고 서있는 불회사 석장승은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남·여의 모습으로 구별된다.

    석장승은 수염을 댕기처럼 꼬아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남자 장승이고 남장승은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시되었고  머리 위에서는 상투를 올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입가 자장자리에는 송곳니가 아래로 뽀족하게 돌출되었고 몸체에는 상원당 장군으로 남자 장승이다.   그런데 上자 위에 一가 첨가되어 있다.   ‘상원당장군(上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얕은 선으로 표현된 석장승은 부드러운 형상을 한 여자 장승이다.   미소 띤 얼굴에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 원래 명칭은 하원주장군(下元周將軍) 이란 이름이 있다.

     

    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리 뭉실한 주먹코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데 이 장승 역시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수문신상이다.

     

     

     

     

     

     

     

    불회사 오르는 길의 가장 큰 특징은 왼쪽 산으로 편백나무 숲과 비자나무 숲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곳에 있는 비자나무와 편백나무 숫자는 15,000 본을 넘는다고 한다.

    숲길을 걸으니 편백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트 향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번호를 부여 받은 늘씬한 편백나무들 ~

    비자나무와 측백나무 숲이 상쾌함을 더하고  절 주위의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등이 자리한 숲은 아늑하고 편안한 힐링의 숲이다.

     

     

     

     

     

    늘씬한 측백나무들의 옹위를 받으며  그 힐링 숲을 아끼면서 걸어오니 주차장 도착이다....  주차장 화장실 옆 나주 안내도 옆에는  절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다정다감한 할머니의 표정 그대로의 할머니 장승이 서있다...

     

    부처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장소, 부처가 모인다는 뜻을 가진 불회사(佛會寺) 주차장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이곳을 나와 열심히 달려 포항에 오니 11가 되어 있었다.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거창 창포원과 화순 운주사 그리고  나주 불회사 등  사찰 여행에서 부처님의 충만한 사랑을 듬뚝 담고 돌아온 행복한 하루였다...

    관세음보살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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