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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동카 타고 후에 성 둘러보기
    베트남 다낭.후에 2018. 12. 30. 14:09

    전동카 타고 후에 성 둘러보기 

     

     

    2018.    12.    30.

     

     

    딸과  함께 배트남 다낭으로 2018. 12. 17 ~ 12. 21,   3박 5일 일정 여행이다.   다낭 세렌호텔 투숙 후  세째날 일정을 시작한다. 한국과 시차는 다낭이 2시간 늦는 편이다.

    오늘 네째날 일정은  후에에서 아침에 일어나 몬디알 호텔주변을 산책하고  후에의 후에 성, 티무엔 사원,  카이딘 왕릉,  후에를 떠나 랑코에서 점심 식사 후 하이반고개를 넘어 다낭으로 들어와서 까오다이교 사원,  다낭대성당,  손짜반도 영흥사를 두루 둘러보며 다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후에의 몬디알호텔에서 아침을 맞은 후 5일 일정중 4일 일정이 시작된다.........

    후에로 몬디알호텔에서 출발하여 들어와 오늘 첫번째 여행지인 후에 시내에 있는 후에 성을 전동 카 타고 둘러보기 위해 이동 한다... 

     




    아침에 후에 몬디알호텔에서 바라본 후에시내 모습이다.  유리창에 수증기로 히뿌옇다.





    아침에 기상 후 호텔 주변을 산책 할려고 로비로 내려와 본다.





    로비 안쪽의 작은 쇼핑점





    로비 입구의 포대화상


























    밖에서 본 호텔 입구





    후에에서 우리가 1박했던 몬디알 호텔 전경이다..





    찻집인가?  대형 다기 모양을 ...





    후에는 베트남 중부의 흐엉 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으며남 중국해와 매우 가깝다. 수도 하노이와는 540 km,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 시와는 644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베트남은 역사,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가 서로 별개의 과정을 거쳐왔는데, 북과 남을 가르는 기준점이 바로 이 후에이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9층의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가 묵은 몬디알 호텔 9층 식당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이다..


















    호텔 3층의 수영장도 보인다.. 





    수영장 옆의 체력단련실














    수영장도 보고





    그렇게 한참을 쉬다가





    체크 아웃하고





    후에의 몬디알 호텔을 나서








    에펠이 설게했다는 찡띠엔교 아래로 흐엉강  흐르는  곳을 지나...











    후에 성 주차장에 도착이다..





    둘레가 11km에 달하는 후에 왕궁을 둘러 보기 위해 전동카에 오른다.





    성이 너무 넓어서 후에 전동카를 선택관광으로 해서 인당 $20 성 입구까지 전동카를 타고 이동한다전동카를 타면 절반인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후에성 주차장 입구부터 흐엉강이 바라다 보인다...

    후에는 베트남 남부, 다낭에서 북쪽으로112km 떨어진 곳으로 1902년부터 응우엔 왕조의 수도로 지정이 되어 남부의 사이공으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인 1945년까지 베트남 중부의 구심점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왕궁, , 사원, 왕릉 등이 있어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왕궁 입구의 禮仁門으로 해자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왕궁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응오먼(오문, 午門)이 나온다.





    후에 황성(베트남어: Hoàng thành Huế)1802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약 143년간 응우옌 왕조의 궁궐 역할을 했던 곳이다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후에는 유적 전체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베트남 전쟁 당시 파괴된 유적들의 복원보존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선조의 영토를 회복한 1802년에 응우옌 푹아인(Nguyễn Phúc Ánh/ 阮福暎 완복영)은 스스로 자롱제로 등극했다그의 등극은 1804년 청나라에 의해 인지 되었다

    새로운 황궁과 성을 어디로 지어야 할 지 결정하는데는 지관과 오랜 상의를 거쳐야 했다. 지관이 후에에 적지를 정한 후에 1804년에 황궁 건축이 시작되었다. 자금성을 본 떠 똑같이 만들었다는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황궁은 외성에는 해자가 둘러있고 황궁 앞에는 좌우로 대포진지가 있고 멀리 잔디광장에 베트남의 국기가 펄럭인다규모는 대단하지만 성안으로 들어가면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쟁으로 인해 거의 다 허물어진 빈 성터로 현재 복원 작업 중이며, 남은 잔해의 모습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을 둘러 파 놓은 해자


    후에 왕궁은 사방 2km의 성곽으로 보호받고 있으며그 성곽 바깥은 다오 강(Dao River)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엄청나게 넓은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이 해자의 물은 왕궁 앞으로 흘러가는 흐엉 강(香江, Houng River)으로 부터 수문을 통해 끌어 들였다.





    후에 왕궁은 1789년 한때 멸망했던 응우웬 왕조의 후손인 응우웬 안이 중부 이남의 베트남을 통일한 이후, 1804년 중국의 승인을 받아 황제에 취임하면서 건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가, 세월이 흐른 후 2m 두께의 돌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당시 응우웬 왕조의 국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禮仁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구리로 만든 커다란 대포 몇 문이 나란히 서 있다.
    Tay Son 왕조와의 전쟁 후 왕에 오른 응우웬 왕조의 계승자 자롱(Gia Long)은 전쟁에 승리한 기념으로 1803년에서 1804년에 걸쳐 9문의 대포를 구리로 만들었.
    각 포신의 길이는 5,1m에 달했는데각각의 명칭으로는 '여름가을겨울' 오행인 ', '를 사용했다. '무적의 신의 선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자금성을 본 떠 똑같이 만들었다는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황궁은 외성에는 해자가 둘러있고 황궁 앞에는 좌우로 대포진지가 있고 멀리 잔디광장에 베트남의 국기가 펄럭인다.








    후에성 안에서 본 망고나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에의 왕궁은 응모문태화전, 자금성 등 여러 왕실과 사당, 문묘 등으로 건립되었으나 베트남 전쟁당시 대부분 손실되어 일부만 보존되어 있다.

    프랑스 점령 하에 있었기에 그런지 몰라도 중국식과 프랑스식 건축양식을 볼 수도 있다.

     

    후에 왕궁을 보다 보면 곳곳에 중국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베트남도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엔 왕조, 황제 13명이 나라를 다스렸던 후에왕궁은 베트남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을 정도로 후에가 자랑하는 유적지다.





    베트남에서 제일 큰 금성홍기가 후에 성에 있다. 1807년 쟈룡황제가 황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높이 38.4m의 깃발탑














    해자를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후에성으로 들어선다





    후에 왕궁에 도착하면 먼저 정문인 오문이 해자에 비친 모습이 감탄사를 불러 일으킨다.





    자를 끼고 옛것의 모습이 고이 간직된 멋진 왕궁의 모습이다.





    왕궁의 정문인 응오문(正午門)


    이 응오문(正午門)2대 민망왕때 축조된 높이 17m 정도의 3층 건물로 1층은 석재구조,  2층과 3층은 목조기와 집 구조로 지어진 우리나라 광화문 같은 문이다.











    5개의 문으로 되어 있는 입구 ~

    중간의 3개문중 가운데 문은 황제가 출입하는 문이고, 좌우 측에는 만조백관들이 출입하던 문으로 우측은 베트남 사람, 좌측은 외국 관광객이 입장할 수 있다맨 바깥쪽의 문은 병사들과 코끼리, 말 등이 출입하던 문이라고 한다.





    황궁은 중국의 자금성을 모티브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고 그래서 후에 황궁을 작은 자금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좌측 문으로 입성












     

    오문을 들어서자  중도교가 뻗어 있고 그 너머에 태화전이 보인다.   문짝이 없는 삼문 형태인 패방은 중국전통 양식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세워진 첫 번째 패루에는正直蕩平(정직탕평)’으로정직을 최선의 정책으로 하여 탕평책을 펼쳐라는 임금이 명심해야 할 신조로 보인다.











    중도교 옆의 연못












    '고명 유구라는 현판이 있는 패방 뒤에는 태화전이 있다.





    중도교를 지나 다시 연못을 가로 지르니 두 번째 패방에는고명 유구총명함이 영원하다’는 뜻의

      '고명유구(高明悠久)'라는 현판이 걸린 삼문을 지난다.





    왕궁의 정전인 태화전(太和殿) 전면의 양쪽에는 돌로 만든 해태상이 서 있.





    태화전 앞의 해태상





    태화전


    응우엔 왕조 13명의 황제가 즉위식을 하거나 공식 접견, 황실의례 등을 거행했던 정전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왕이 한 달에 두 번씩 조회를 하던 곳이기도 하고 왕좌와 옥쇄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태화전(太和殿)은 후에 황성의 정전이며, 국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태화전 앞 좌우측에 있는 나무로 만든  코끼리 모양의 나무가 있다.  코끼리는 정실 왕후 한사람만 코끼리를 탈수 있고 다른 후궁들은 탈수 없다고 한다. 





    황제의 집무실, 침실, 왕비의 처소가 있었지만, 전쟁 중에 없어졌다고 한다.








    가운데 용상이 보인다..





    태화전 내부엔 황금색으로 천 개를 두른 옥좌와 도자기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뒤편에는 왕궁 전체의 모습을 만들어 높은 모형이 있었다.









    베트남 최후의 왕가 응우옌 왕조의 왕궁이다.

    1802년에 첫 황제인 잘롱이 베트남을 최초로 통일한 다음에 후에를 수도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19458월에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호치민이 이끌던 혁명정부에게 왕조의 상징은 황금보검을 넘겨주면서 13명의 황제가 재위했던 응우옌 왕조가 막을 내렸다고 한다.

    황제와 가족들이 거처하고 정무를 보던 왕궁은 첫 황제와 두 번째 민망 황제가 1804년부터 1832년에 걸쳐 지어진 왕궁이라고 한다.





    태화전 앞의 품계석








    태화전의 계단과 기둥이 온통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태화전에서 바라 본 오문의 뒷 모습











    태화전 뒷편의 작은 방에








    절대권력을 손에 쥐었던 황제들의 모습이다...





    중앙의 제 12데 카이딘 황제와 4명의 고급 관료들








    황금으로 만든 황제의 옥쇄가 전시되어 있다....























    태화전 추녀 위의 치미







    태화전 용마루








    태화전의 뒷모습으로 광장을 지나면 넓은 후원(後苑)이 시작된.









     

    태화전을 지나면 넓은 뜰이 있다.

    근정전과 건성전 등 수 많은 왕궁 건물들이 있던 자리지만 치열했던 베트남 전쟁 당시 불타 버려 광장으로 변해버린 곳이다.





     태화전 뒷문을 들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좌우 양편으로 꼭 같은 모양과 크기의 아름다운 두 개의 빌딩이 서 있다. 당시의 한문 명칭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영문으로 된 Mandarin's Building 이라는 안내만 있다. 






     입궁한 문관이 머물던 침전으로 좌우 마주보고1쌍으로   우무





    입궁한 문관이 머물던 침전으로  좌무





    이 두 개의 전각은 아마도 국왕과 신하들이 국가 행정사무를 집행하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중국 스타일로 관리를 등용하는 과거시험도 이곳에서 보았다고 한다.  1977년에 복원된 우측 빌딩은 박물관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1990년 대에 뒤늦게 복원된 좌측 건물은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과거에 국왕이 사용하던 마차로 보존 상태가 조금은 불안스럽다.





      두 개의 침전 만다린 빌딩의 양쪽 벽면을 장식하는 장식이 무척 정교하고 아름답다.





    태화전 후면 광장 침전 앞의 큰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가마솥에 물이 잔뜩 담겨 있다. 
    이 가마솥은 '응우옌 푹 탄'(Nguyen Phuc Tan, 1648~1687) 국왕 재임시인 1660년에 왕의 권위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한 것이라 하고 무게가 1.5톤에 달하는 이 가마솥은  2015년에 베트남의 국가보물지정되었
    한다. 





    광장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후에 왕궁의 원상회복을 위해 유네스코에서 기금을 지원하여 지금도 하나하나 복원 공사 중에 있다고 한다.





    태화전과 후원 사이에 서 있는 석벽이베트남 전쟁 당시의 상흔인 듯군데군데  총알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   당시 남북 베트남의 경계선인 북위 17도 선에 접해 있던 후에는 북베트남 군의 공격으로 1968년 부터 오랜 기간 격전지가 되었.
    이 석벽을 지난 지역은 '뜨껌탄'(Tu Cam Thanh)이라고 하는데, '뜨껌탄'은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을 베트남 식으로 발음한 것이라고 한. 결국 석벽을 지난 공간은 왕과 왕실 가족의 사적 공간이라는 의미가 되겠다응우옌 왕조가 유교문화권의 국가이기는 했지만 이 나라의 중화(中華)에 대한 숭배는 조선에 뒤지지 않았던 것 같.





    당시 화려함을 엿볼 수 있는 근정전의 회랑


    근정전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인 회랑의 모습이다.

    길고 두터운 석벽 양쪽의 후원 안으로 길게  장랑(長廊, Long Corridor)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장랑 역시 중국의 궁궐 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장랑을 밖에서 바라보면 지붕 아래로 멋진 장식을 해 놓았다.





    장랑의 한쪽 벽에는 역대 왕들이 지은 한시(漢詩)들을 하이쫑(海中)이라는 명필이 써서 만든 편액들이 수도 없이 걸려 있었다. 응우옌 왕조의 역대 왕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읽고 시를 짓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과거 역사에 언뜻언뜻 나오는 베트남은 참 강하고 용맹한 나라였는데, 오랜 세월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특히 유교문화권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점차 문약(文弱)한 나라로 전락해 간 것 같다.





    베트남 전쟁 당시 파괴되어 폐허가 된 연수궁과 주변공터


    주춧돌들...  후에 왕궁의 최전성기에는 왕궁 안에 160여 동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흰개미나 태풍 등으로 인한 건물 피해도 없지 않았지만 , 1968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후에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면서 미군과의 사이에  대전투가 벌어졌다처음에는 미군들이 유적지 보호를 위해 대규모 공격을 제한 했으나북베트남군이 이를 역이용하는 전술을 펴자 결국 미국은 이 궁전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가한다
    그 바람에 그 많던 왕궁의 전각들이 태화전침전사당(Miew) 지역 건물 등 10여 동만 남기고 거의 파괴되어 버렸다 한다. 최근에는 복구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궁 반대쪽에서 태화전 방향을 바라보며 담은 왕궁 후원의 모습으로 참 멋진 정원이다.





    후원의 양쪽 구석에 서 있는 정자의 모습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향원정?





    후원의 뒷부분 가장 높은 축대 위에는 이처럼 멋진 황금 해태상이 서 있다.  경복궁의 해태상은 풍수상 남산으로 부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곳의 해태상은 어떤 용도로 세웠는지 궁금하다.  왕들이 사용하던 옥쇠모양이다..






    왕궁의 동북쪽 방향에는 타이빙라우(Thai Binh Lau, 太平樓)라는 전각이 서 있고, 그 주변을 아름다운 장방형의 후원과 연못이 둘러싸고 있다.





    타이빙라우는 1841년부터 1846년 사이에 티우 찌(Thiey Tri) 왕이 처음 건립했고, 1921년에 카이딘(Khai Dinh, 啓定) 왕이 중건을 했는데, 용도는 역대 왕들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장소였다고 한다.  왕궁 내의 수많은 전각들 가운데 프랑스와의 전쟁이나 남북 베트남 간의 전쟁 과정에서 거의 피해를 입지않은 보존된 유일한 전각이었다고 한다.





    이 넓은 정원을 꽉 채우고 있었을 전각들은 상당 부분 전쟁 과정에서 폐허가 돼 버리고 군데군데 기단만 남은 폐허들 위에 잡초들과 함께, 이름 모를 분홍색의 예쁜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난 날의 영화...  처연한 느낌이 든다.






    왕궁 관람을 마치고 다시 태와전 앞으로 돌아와





    동쪽의 출구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정일(精日)이라는 현판 위에 붉은 태양이 작열하는 조각을 올린 예쁜 패방이 서 있다.








    반대편인 서쪽의 패방의 현판글씨는 월영(月英)이다. 





    넓은 궁이라 전동차를 타고








    다시  이동하고 있다.



     

    미에오문(묘분)  현암각 입구문을 들어선다.









    묘문을 들어서니 3층짜리 임현각이 나타난다.

    현암각은 응우옌 왕조의 선조들의 명복을 빌거나 왕조를 창건하는데 공을 세운 공신들을 기리는 곳이다.








    임현각 현판

     




    3층으로 오르는 계단





    현암각 지붕의 장식






    임현각 1층 내부에서 바라본 세조묘





    임현각 뒷쪽 세조묘 방향의 용계단과 청동 솥











    임현각 건너 편에는 우리나라 종묘에 해당하는 세조묘가 있다.

















    현암각을 내려오며 미에오문(묘분)  현암각 입구문을 바라본다.





     미에오문(묘분)  현암각 입구문의 장식들....

     









    현암각 왼쪽으로 나 있는 숭공문으로 세조묘 입구이다.   왼쪽으로 북을 모셔 놓은 법고 누각이 눈에 들어오고....






    앞에 보이는 전각 왼쪽





    현암각 오른쪽 범종각이 있는 누각 아래로 세조묘를 들어간다.





    임현각 건물 앞에는 역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9개의 커다란 청동솥이 줄지어 서 있다이 청동 세발 솥의 무게는 2톤 내외라고 하는데 가장 무거운 것은 2.7톤이나 된다고 한다.








    세상의 만물을 상징하는 9개의 솥


    베트남 응우옌 왕조 2대 황제인 민망황제때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청동 솥에는 응우옌 왕조의 번영과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 . . . . 구름 등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단층으로 지어진 세조묘(世祖廟, Thế Tổ Miếu)는 조선의 종묘 같이 역대 응우옌 왕조 황제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세조묘 안의 중앙에 모셔진 초대 자룡황제 위폐








    응우엔 왕조 13명의 황제 중 폐위되어 일찍 세상을 떠난 5~ 6대 황제와 헤외에서 죽은 마지막 13대 바오다이 황제를 제외한 10명의 황제 위폐가 모셔져 있다.





























    베트남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 성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황궁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는 역사화 문화의 도시이다.





    세조묘에서 나와 다시 전동차로 이동한다...









    규모는 대단하지만 성안으로 들어가면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쟁으로 인해 거의 다 허물어진 빈 성터로 현재 복원 작업 중이며, 남은 잔해의 모습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총 길이 10km 넘는 높이 5m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을 가로 2km . 세로 2km 라고 한다.   찬란했던 과거의 일부만을 엿 볼수 있는 것이 아쉬웠다.














    후에 왕궁의 동문인 현인문(顯仁門)이다.  장식이 대단히 화려한 이 문은 현재는 왕궁 관광코스의 출구로 사용되고 있다.





    궁 남문으로 들어가서 동문으로 나간다...





    베트남 어디를 가나 만나는 오트바이 부대









    다시 돌아온 후에 왕궁 주차장이다...

    이제 후에 성을 보고 인근에 있는 오늘의 두번째 여행지인 티무엔 사원으로 5분정도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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