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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이삭 성당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2016. 6. 19. 14:08

    성이삭 성당  

     

     

    2016.    6.   19.

     

     

     

    2016.  5.  20 ~ 6. 1.(11박 13일)  러시아 + 북유럽 4개국 여행에서   5.  23.  4일째의 여행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오전 일정 상트페테르부르크 운하와 네바당 크루즈를 타고  버스로 이동 후 성아삭성당을 보고 오전만 여행하고 점심 식사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르 떠나 열차로 헬싱키를 떠나는   일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르의 마지막 여행지 성이삭 성당으로 이동한다.

     

     

     

     

     

     

     

    포시즌즈호텔 옆엔 한꺼번에 14천명이 들어가는 페테르부르크 최대 성당 러시아정교회 성이삭대성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전면 너비 111m, 측면 길이 98m, 돔 높이 101m에 이른다.

     지름이 25m에 이르러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런던 세인트폴 성당, 피렌체 꽃의 성모성당(산타마리아 델 피오레)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알렉산드르1세의 명에 따라 1818년 착공해 40년 만인 1858년 완공 했다.

    지반이 무른 습지여서 기초를 다지려고 박은 말뚝만 25천개나 된다고 한다.

    일찌기 러시아가 받아들인 비잔틴 양식 전통에 따라 지은 신고전주의 건물로 전체적 구조가 이탈리아 북부 비첸자에 있는 16세기 저택 '빌라 라 로톤다'를 닮았다고 한다.

     

     

     

     

     

     

     

     황금 돔형의 성 이삭 성당은 도시의 스카이 라인을 지배한다.

     

     

    표트르 대제 시대에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최초의 성 이삭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 뒤 1717년에 원로원 광장(현재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이전했지만 연약한 지반 탓에 낙뢰로 소실되었다. 그 후 예카테리나 대제의 칙명에 따라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안토니오 리날디의 감독 아래 재건 사업에 들어갔지만, 미완성으로 끝나고, 파벨 1세가 그녀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시 재건에 참여했으나 완성을 못 보다가 알렉산드르 1세 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프랑스 출신 궁정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의 설계에 따른 것이다몽페랑은  1818년부터 1858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을 지은 것이다.

     

    이후에도 권좌에 오른 황제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 이삭 성당을 증축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 이삭 성당은 4번에 걸쳐 확장, 재건축되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건축, 공학, 미술, 장식 등의 예술작품과 관련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후세에 문화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황 금  돔 ~~  황금 100Kg으로 돔을 완성하였다 한다.

     

    이 성당 주인 이름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니다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믿음의 조상의 아들이지 그리스정교나 동방정교, 혹은 카돌릭에서 말하는 성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 이삭은 이삭 달마시안이라고도 불리우는 지중해 북동쪽의 작은 나라 달마시아의 성인인 것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그 먼 곳의 성인의 이름을 이 성당에다가 가져다 붙였을까

    성 이삭의 축일이 530일이었는데 바로 그 날이 표트르 대제의 생일이기 때문이란다. 표면적으로는 정교 성인을 위한 성당을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지었지만 그 저의에는 그 당시 막강한 권력의 정점에 있던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이 성당 역시 표트르대제에게 바치는 기념물로 표트르가 태어난 530일이 성 이삭의 축일 이어서 성 이삭을 자신과 로마노프 왕조의 수호 성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당 이름도 이삭이 됐다.

    성 이삭은 4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달마티안 수도원을 세운 성인이어서 달마티아의 이삭이라고도 부른다.

     

     

     

     

     

     

     

    이삭성당도 바로 옆 포시즌호텔이 된 궁과 궁전광장 원주를 설계한 오귀스트 드 몽페랑 작품으로 그의 설계는 너무 뻔해서 싫증나는 졸작이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그를 아끼는 알렉산드르1세기가 밑어 붙여 논란을 잠재웠다고 한다.

    돔을 세 개 또는 다섯 개 세우는 러시아정교회 양식에 따라 중앙에 황금 돔을 두고 사방 종탑 위에 작은 황금빛 돔 넷을 뒀다.

     

     

     

     

     

     

     

    네 귀퉁이에 ​천사상과 불 밝히는 받침대를 세웠다.

     

     

     

     

     

     

     

    4면 박공마다 부조상을 새겼는데 동쪽 박공은 성 이삭이 4세기 로마황제 발렌스를 가로막고 서서 계속 가면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말리는 장면이다. 

     

     

     

     

     

     

    정면에 선 코린트식 기둥이 웅장하다.    한 개 무게가 많게는 114톤이나 되는 붉은 화강암 기둥을 모두 112 썼다.​    중앙 돔은 순금을 입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돔 성당으로는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과 함께 세계 3대 성당에 꼽힌다고 한다.

     

     

     

     

     

     

     

    붉은 화강암의 굵은 원주들이 받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흔적으로 곳곳에 총알과 포탄 자국이 있다.

     

     

     

     

     

     

     

     

     

     

     

     

    머리만 보이지만 12천사가 돔 아랫부분을 에워싸고 있다. 이 천사상은 거푸집에 지어부어 만드는 전통적 청동 주물 방식이 아니라전기 도금법을 응용해 정밀하게 뜨는 전기주물(electrotyping) 방식을 처음 적용한 동상이라고 한다.

    돔에 금을 입힐 때도 당시로는 첨단 방식인 스프레이 페인팅을 했는데 금 녹이는 용해액에 수은이 함유돼 금물을 뿌리던 인부 60명이 수은 증기를 쐬고 중독돼 죽었다 한다.

    2차대전 때는 독일군 공습의 표적이 되지 않게 하려고 돔에 잿빛 칠을 했다

    돔 아래 둥글게 난간을 두른 곳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전망대 이다.

     

     

     

     

     

     

     

     

     

    네바강 쪽에서 바라보는 북쪽 박공에 새긴 부조상의 주제는 조각가 레 무아그리스도의 부활’을 담고 있다

    아래 길게 새긴 글귀는 "신이여, 왕이 당신의 권능 안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이다. ''은 표트르대제를 가리키는 것 같다.

     

     

     

     

     

     

    박공 위엔 세례 요한의 제자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쓰고 있다.  곁에 있는 독수리는 요한복음을 상징 한다.

      

     

     

     

     4면 박공을 따라 나머지 열한 명 사도상이 서 있는데 사진 왼쪽이 베드로, 오른쪽이 바울이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다.

     

     

     

     

     

     

    성당 안팎에 들어간 황금이 400kg, 청동이 1천톤에 이른다.

     

     

     

     

     

     

    성이삭 대성당 들어가는 문인데 성경을 장식한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출입문은 9톤의 청동주물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안에 조감도와 모형도가 있다.

     

     

     

     

     

     

     

     

     

     

     

     

     

     

      성당을 만들때의 목재틀

     

    늪지대 위에 대규모 성당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를 튼튼히 해야 했다. 24천개의 말뚝을 성당 밑에 박고

    성당을 올렸는데  그 이유는 원래 이곳이 늪지대였기 때문에 기초을 다지기 위하여 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40만명이 동원되어 40년만에 완공되었다.

     

     

     

     

     

     

    표트르 대제

     

     

     

     

    몽페랑 흉상

     

    이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 감독한 프랑스인 몽펠랑은 약관의 20대에 전 유럽인이 참가한 콩쿨에서

    입상하여 40년간 러시아에서 이 성당 및 성당주위의 마린스키 궁전등 건물과 겨울궁전 내 지금의 1호 전시실인 표트르 대제의 방, 궁전광장등을 꾸미는데도 참여하고 러시아에서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러시아에 묻히길 원했지만 당시는 이미 다른 황제인 알렉산드로2세는 그의 시신을 그의 조국 파리로

    돌려 보냈다고 한다.

     

     

     

     

    성이삭 성당 입구의 천장. 고개를 휫 젖히고 아주 높은 곳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바라본다.

     

     

     

     

    성당 내부에는 사용된 64개에 이르는 원통 대리석은 이탈리아에서 가져 온 것이다.

     

     

     

     

    그 웅장함이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 ( 건물의 가운데 부분 벽쪽)

     

     

     

     

     

     

     

     

     

    내부는 역시 동방정교회 성당답게 화려함의 극치였다.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성당중에 가장 큰것 같기도 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화려하다.

     

     

     

     

     

     

     

     

    성이삭 성당의 중앙 돔의 정 가운데에서 올려다 본 모습.   웅장한 성화와 조각상들..

     

     

     

     

     비둘기 문양이  있는 곳이  이  성당의  중앙 부분 이다.

     

     

     

     

     

     

     

    성이삭 대성당 황금빛 돔 실내는 멋진 조각과 그림을 그려 놓았다.

     

     

     

     

      빠질 수 없었던 돔 천장

     

     

     

     

     

     

     

     

     

     

     

     

     

     

     

     

     

     

     

     

     

     

     

     

    천장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와 은으로 만든 섬세한 장식

     

     

     

     

     

     

     

     

     

     

     

     

    내부에는 중앙에 있는 카를 브리쵸프의 작품을 비롯하여 성경의 내용과 성인들을 묘사한 예술가들의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 그밖에도 수백점의 동상과 부조가 있다.

     

     

     

     

     

     

     

     

    14000명을 수용할  있는 규모라니 ..   내부가 너무커서 오히려 조명들이 내부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성당 내부에는 성서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러시아 저명한 22명의 화가들의 회화 작품 및 조각품이 150점 넘게 전시되어 있고, 62점의 독특한 모자이크 프레스코화도 전시되어 있다.

     

     

     

     

     

    러시아 성당에 석물대신 이콘화가 있다. 이콘화는 종교.신화등의 관념체계를 바탕으로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한 미술양식 혹은 작품을 말한다.

    러시아 정교의 콘텐츠 (이콘 =그리스도 이미지상)을 뜻하는 이콘'은 목판에 색깔있는 밀랍을 뜨거운 쇠막대기로 녹여 칠하는 방식으로 그리는데 안료는 동물성.식물성 등이 다양하게 쓰인다.

    먼저 짙은 색을 넓게 바른 뒤 하이라이트 부분을 환하게 덧칠해 입체감을 부여 한다. 그림의 내용은 주로 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일생. 부활이 중심이다.

     

     

     

     

     

     

     

     

    아주 작은 돌들을 색깔별로 붙여서 만든 성화로 독특한 모자이크 프레스코화가 전시되어 있다.

     

     

     

     

     

     

     

     

     

     

    중앙 통로 부분 ~~ 예수님 상과  중앙부분 그리고  찬란함에  발길을  모두 멈추는 곳 !!

     

     

     

     

     

     

     

    2~3m 정도 되어 보이는 공작석 기둥 돌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상은 이곳 성당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스테인드그라스 이다. 이 모든 것들이 수공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818년 프랑스 건축가 몽 펠라에 의해 설계된 이삭성당은 러시아 건축과 신고전주의 프랑스 건축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러시아 교회 건축에서 가장 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특히 희귀석을 갈아서 붙인 컬러모자이크 성화는 변화지 않는 생생함으로 신비로움을 준다.

     

     

     

     

    스테인드그라스도 크게 만들어 놓아 자연채광 될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벽면은 성서 내용의 그림들로 가득하다.

     

     

     

     

    내부의 화려함이 바티칸 성당과 비교 할 만 하다.

     

     

     

     

     

     

     

     

    2~3m 정도 되어 보이는 공작석 기둥 돌을 가까이서 크게 찍은 공작석의 결이다.

     

     

     

     

     

     

     

     

     

    밖으로 나와 성이삭 성당 돔으로 이어진 원형계단을 올라간다. 200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올라오니 페테르부르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43m 높이의 성당 전망대에 오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이삭 성당 돔 원형계단을 내려 간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른 건물들처럼 소실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폭격은 피할 수가 있었다.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는 성 이삭 성당의 황금 돔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독일군에게 표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측은 성당의 돔을 회색으로 덧칠 하였다

    과연 그렇다고 그 큰 성당이 폭격기의 눈에 띄이지 않았을까아마도 이곳의 군 사령관도 불란서 침공을 지휘한 군 사령관처럼 종교적인, 예술적인 건물의 파괴를 피하고 싶어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소련 정권 아래에서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가 소련 정권이 붕괴한 후에는 다시 종교 건물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이삭성당 근처의 알렉산드르정원 이다.

     

     

     

     

    알렉산드르정원은 1805년 스위스계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지 루스카가 설계하고 영국 정원사 윌리엄 굴드가  꾸민 영국식 공원이다.

    1842년 알렉산드르 2세가 나무 52그루를 심으라고 명 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방형 해군본부 건물 앞으로 역시 장방형으로 나 있는 공원이다.

    키 큰 나무와 녹지 사이로 세 길이 길게 나 있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 2세기 로마 대리석상 '파르네스의 헤라클레스'의 복제품이 서 있다.

    조금 지친듯한 헤라클레스가 사자 가죽을 씌운 자기 몽둥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공원엔 고골리부터 글린카, 고르바초프에 이르는 여러 작가, 정치인의 조각상도 있다고 하니까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공원을 벗어나 네바강 쪽으로 나가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세나츠카야 광장 복판에 표트르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성당을 마주 보며 세워져 있다.

    세나츠카야는 영어 Senate에 해당하니까 원로원이라는 뜻이다.

     

    182512월 귀족층 개혁 청년 장교들이 실패한 쿠데타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일으켰던 곳이어서 소련 시절 '데카브리스트(12) 광장'이 됐다가 2008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옛 원로원이 있던 곳에 2009년 푸틴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 이름을 따 세운 국립 '보리스 옐친 대통령 도서관'이다.

    장서보다 디지털 책과 자료에 집중하는 전자도서관이라고 한다

     

     

     

     

     

      

     

    오늘의 대국 러시아는 표트르대제가 있어서 가능했다.

    손자며느리 예카테리나 2(1729~1796)가 이 위대한 개혁군주를 기려 1782년에 세운 청동 기마상이 '청동 기사' 이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이 1833년 동상 앞에서 읊은 표트르 찬가 '청동 기사'가 동상의 고유명사로 굳었다.

    청동 기사에서 조각상 자체보다 유명한 것이 '천둥돌'이라고 부르는 받침돌 좌대 이다.

    인간이 인류사에서 기계나 짐승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옮긴 한 덩어리 돌 중에 제일 커서 1500톤 화강암 자연석을 9개월 동안 운반해 오는 사이 1250톤으로 쪼았다.

    천둥돌 높이만 7m에 이르러 청동상 6m보다 높다.

     

    천둥돌은 핀란드만에서 내륙으로 6km 떨어진 라흐타라는 곳에서 찾았다.

    천둥이 내리쳐 쪼개지면서 생긴 돌이라는 지역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그리스 출신 러시아군 중령 카르부리스가 운반을 지휘했다.

    그는 겨울이 되기를 기다려 땅이 얼자 반쯤 묻힌 돌을 파낸 뒤 언 땅 위로 끌어 바닷가까지 간 뒤 바지선으로 싣고 네바강변까지 왔다.

    육로로 옮길 땐 청동 공 위에 금속 판을 얹고 그 위에 돌을 올려 끌었고 바다에선 별도 바지선을 만들고 대형 전함 둘이 양쪽에서 받치고 끌게 했다.

    돌을 처음 발견한 뒤 이곳 광장까지 오는 데 400명이 2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기마상 조각은 프랑스 조각가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를 불러와 맡긴 지 3년 만에 완성했다.

    표트르를 태운 말이 뒷발로 뱀을 밟은 채 두 발을 들고 울부짖는 모습이 생동감 넘친다.

    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악()과 배신표트르와 개혁에 반대하는 ()들이.

    뱀을 짓밟고 선 말은 인민이며 말을 탄 표트르는 문화와 이성과 인간 의지의 승리를 상징 한다.

     

    천둥돌에는 '예카테리나 2세가 표트르 1세에게'라는 글귀를 붙였다.

    독일에서 시집 온 예카테리나는 주정뱅이였던 남편, 표트르의 손자가 의문사 하자 권좌에 오른다.

    역사가들은 그녀가 남편을 죽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녀는 독일인이었고 궁정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기에 짜르로서 정통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이 표트르의 정당한 상속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운 것이 '청동 기사' 이다.

    예카테리나는 1762년부터 34년 동안 러시아를 다스리며 더 크고 강한 대국이자 융성한 문화예술 강국으로 키워낸다.

    러시아 역사에서 표트르와 그녀만이 '대제'라는 칭호로 불린다

     

    청동 기사는 230년 넘게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자유의 여신상을 뉴욕 시민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2차대전 때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소련 시절 이름) 봉쇄되는 동안 독일군 공습과 포격으로부터 청동 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모래 주머니를 쌓고 나무집을 지었다.

    시민의 바람대로 청동 기사는 900일 봉쇄를 무사히 버텨냈다.

     

     

     

     

     

     

     

     

    2m 4cm 거한 표토르는유럽 순방을 순회하며 배우던 1698년 이복 누나 소피아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그간 모은 기술자 750명을 이끌고 급히 귀국 한다. 군부의 지지를 받은 그는 누나를 유배시키고 역도들의 목을  직접 쳤다그때부터 그는 모든 삶을 은둔의 봉건 농업국을 서구식으로 개혁하고 유럽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바쳤다

     

    그는 뿌리 깊은 봉건 관습에 가위를 대고 싹둑싹둑 잘라 버렸다.

    귀족들을 만찬에 불러 긴 수염을 붙잡고 가차없이 가위질을 해댔다.

    땅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수염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귀족에겐 수염세를 물렸는데 1년 동안 걷은 수염 세금이 새 함대를 건설할 돈이었다고 한다.

    그는 의복,   달력,   교육,   교회까지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개혁했다

     

    그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 네바강변 황량한 늪지로 옮기고  운하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해 유럽으로 가는 교두보이자 전진기지로 삼았다.

    군대와 전함과 무기를 키워 강국 스웨덴과 10'북방전쟁'을 치러 스웨덴을 누르고 발트해와 동유럽으로 진출했고 소원하던 유럽의 새 강자로 올라선다.

    1721년 원로원은 그에게 임페라톨(황제)라는 칭호를 바치고 '대제'라고 부른다. 10월혁명까지 200년을  가는 러시아 절대주의 왕정이 그렇게 출발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노동자들이 늪지에 일일이 손으로 돌을 쌓아올린 인공 도시였다.

    돌과 함께 숱한 노동자들의 피와 살과 뼈가 묻혔다.

    도시 건설에 15~20만 백성이 죽었다고 짐작한다.

    그는 위대한 개혁군주였지만 이미 그때 뿌린 민중의 피가  200년 뒤 러시아혁명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성당 앞쪽으로 보이는 시청건물도 고풍스럽다.

     

     

     

     

     

     

     

     

     

    이삭성당도 충분히 보고 이제 바라다 보이는 프랑스가 만들어 러시아에 선물했다는  성삼위일체 다리도 지나 점심식사하러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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