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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중 별천지에 드리운 호국의 염원, 무주 적성산 안국사
    사찰여행/전라도 2014. 7. 15. 12:35

    산중 별천지에 드리운 호국의 염원, 무주 적성산 안국사 

     

     

     

     

     

     

     

    2014.  7.  15.

     

     

     

     

    2014.  7.  13. 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무주 적성산 안국사  ........

     

     

    포항출발(06:00)  →  청통휴게소 (아침식사)  →  대구  →  김천  →  영동  →  무주  →  적상호 전망대  → 안국사 주차장(11:00) 도착 후 적성산  산행 후 덤으로 가 볼수 있었던 안국사....

     

     

     

    ◯  안국사 가는 길

     

     

     

      

     

     

     

    적산전망대 휴게소를 떠나 안국사 주차장으로 향한다...

      

     

     

     

     

     

    안국사로 올라가는 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어서 솔향내를 마음껏 맡을 수 있다. 또 차량을 이용할 경우 굽이굽이 돌아서 산을 오르는 길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  안국사 일주문

     

     

     

     

     

    일주문에는 1992년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쓴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안국사의 초입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건물인 일주문이 있다.

    낮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2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운 뒤 창방과 평방을 얹고 그 위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다포로 장엄하였다.

     

     

     

     

     

     

    1995년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이 쓴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라는 편액

     

    무학대사가 이곳을 ‘국중제일의 길지’라고 한 설화에서 유래한 편액으로, ‘안국(安國)’과 ‘정토(淨土)’를 바라는 안국사의 염원을 담고 있다.

     

     

     

     

    ◯  적상산성

     

     

     

     

     

    원형 그대로의 적상산성이

     

     

     

     

     

     

     

     

     

     

     

     

     

     

    적상산의 고갯길을 한 고개 두 고개 굽이돌아 정상에 다다르면, 구름 위로 두둥실 떠 있는 안국사를 만날 수 있다. 안국사는 고려 말에 월인(月印) 스님이 창건한 후 조선 초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국중제일의 길지(吉地)’라 예언하며 중건한 사찰로, 이후 나라에서 산세의 견고하고 험준함을 생각하여 산성을 쌓고 사고(史庫)를 지은 후, 사고 수호사찰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절 이름을 안국(安國)이라고 한 것은 비록 작은 절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큰일을 하는 절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과 함께, 사찰의 역사적 위상을 짐작케 한다. 

     

     

     

     

     

     

     

     

    갈림길에서 안국사로 들어선다...

     

     

     

     

    안국사 가는 길은 정말 험난했다. 적성산을 꼴깍 너머 어느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구름 속에 갇힌 절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안국사(安國寺)

     

    안국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934번지 적상산정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예부터 적상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 중의 하나였다.   산성 안에는 산성사,  보경사,  상원사,  중원사,  호국사,  안국사 등이 있었고,  산성 밖에는 고경사, 삼일암등의 절이 있었다고 옛 기록은 전하고 있다.

    현재는 모두 사라져 없어졌고 단지 안국사 하나만이 유일하다.   이 안국사마저 원래의 위치가 아니고 이름만 유지되고 있을뿐이다. 현  재 안국사 자리는 예전에 호국사가 있던 곳이었다.   호국사는 1949년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었으며 안국사는 무주 양수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수몰지구 안에 포함되었기에 1991년 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현재의 위치인 예전의 호국사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생겨난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고 소멸된 자리에는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남이 자연의 순리임 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무주읍지인 적성지의 적성산안국사기에 따르면 고려시대인 1277년 충렬왕 3년에 월인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고, 조선 초기에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국가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성을 쌓게 하고 절을 고쳐 짓게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 묘향산의 사고사 이곳으로 옮기게 됨으로 호국사와 더불어 사고의 수호사찰로 정해지고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사와 더불어 사고의 수호사찰이었던 호국사는 어렵게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49년 추석날 일어난 화재로 인해 터만 남기고 사라지게 되었다.  그 불탄 자리에 안국사가 무주양수댐건설로 인해 옮겨오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건물이 새로 짓게 되고 혹은 옮겨 오게 되어 한 자리에서 오래된 묵은 맛은 없다.  어딘지 어색하게 보이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안국사의 천불전은 사고의 선원각이 옮겨 온 것인데 선원각은 왕실의 족보를 보존하던 곳이었으니 사고 건물의 한 양식을 살필 수 있어 의미있는 건물이라 하겠다. 앞면과 뒷면에 두른 널벽, 앞 뒤로 붙인 여러 개의 교창, 마루로 위층과 아래층이 분리된 중층구조 등 사고 건물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전각이다.

     

     

     

     

     

    ◯  안국사 청하루

     

     

     

     

     

     

    계단 끝에 청하루가 자리하고 있

     

     

     

     

     

     

    적상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古刹)인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광해군 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돼 적상산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됐다. 이때 사고를 지키기 위해 호국사를 지었다.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돼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적상산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복원됐다.  

     

     

    측면에서 바라본 청하루 

     

     

     

     

     

     

    청하루 밑으로 법당가는 길이다.

     

    청하루(淸霞樓)는  1990년대 적상호의 수몰로 인해 안국사 옛터에 있던 누각을 해체한 후 1992년에 복원한 것으로,   현재 불교용품점과 무주 33경의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외부는 이중구조로 누각 아래로 출입하며,   건물 내부에는 ‘석실비장(石室秘藏)’ㆍ‘청하루(淸霞樓)’ㆍ‘극락전(極樂殿)’ㆍ‘산신각(山神閣)’ 등 수몰되기 전 안국사에 있던 현판들이 걸려 있다.   특히 이 가운데 현판 ‘淸霞樓’는 송석(松石) 이도익(李都翼)의 글씨로 1859년에 쓴 것으로,   가로 165㎝, 세로 55㎝의 장방형 목판에 활달한 필체로 양각되어 있다

     

     

     

     

     극락전 마당에서 바라본 청하루

     

     

     

     

    ◯  안국사 극락전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2호 )

     

    정묘호란 때에도 사고의 장서들을 인근의 석굴로 모두 옮겨 보관함으로써 전쟁의 화마를 피할 수 있었으며, 1910년 서울의 규장각으로 장서를 옮겨갈 때까지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의 사고로서, 안국사는 이러한 사고 수호사찰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이처럼 산중의 별천지에 자리한 안국사는 무학대사가 예언한 천하의 길지로 안국사가 번창하면 나라가 번창하고,  안국사가 쇠하면 나라가 쇠한다는 비보를 지니며, 고찰의 옛 모습을 가꾸며 호국과 민안(民安)을 기원하던 옛 스승들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누각 밑을 지나 뜰로 가니 1000m 높이에 있는 큰 법당인 극락전이 보인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건물로, 1991년 원행(圓行) 스님이 옛 안국사 터에서 옮겨지은 것이다. 잘 다듬어진 자연석 축대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정면 3칸에는 꽃빗살문을 칸마다 설치하였다.  정면은 4분합이나  좌측과 우측은 2분합으로 협칸의 구조가 특이한 평면을 보여준다.

     

     

     

     

     

     

     

     

     

     

     

     

     

     

     

     

     

     

     

     

     

     

     

     

     

     

     

     

     

     

     

     

     

     

     

     

     

     

     

     

     

     

     

     

     

     

     

     

     

     

     

     

     

     

     

     

     

     

     

     

     

    고려때 창건된 이 절에 남은 유일한 고건축물인데, 고종1년에 중수했다는 것이 최근 기록이다.

    다포계열의 맛배지붕을 이어서 안그래도 무거워 보이는데 세칸짜리 정면 기둥 간격이 다소 좁아서 위태롭게 보인다.

     

     

     

     

     

     

     

     

     

     

     

     

     

     

     

     

    극락전 내부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탱화로는 1994년 불모(佛母) 혜원(慧園)이 그린 아미타후불탱

     

     

     

     

     

     

    부처님을 두마리의 용이 호위하고 있다...

     

     

     

     

     

     

    불단 좌우의 코끼리

     

     

     

     

     

     

     

     

     

     

     

     

    1965년 금어 남춘인(南春仁)이 그린 극락전 신중탱

     

     

     

     

     

    불단 뒷벽에는 이 지역의 신앙물로 천재지변을 몰아낸다고 전해지는 길이 10.75미터, 폭 7미터의 1728년 조성된 보물 제1267호인 괘불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 내부 벽화들이다...

     

     

     

     

     

     

     

     

     

     

     

     

     

     

     

     

     

     

     

     

     

     

     

    예전에는 ‘온통 학이 노닐었다’고 할 만큼 극락전에 학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천장을 빙 둘러 날고 있는 학문양이 적지 않으니, 옛 이야기를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해가고 있다...

     

     

     

     

     

     

     

     

     

     

     

     

     

     

     

    외부의 용두에 내부의 용미가 연결되어 있었다...

     

     

     

     

     

     

     

     

     

     

     

     

    극락전 우측창방 쪽에는 안국사의 설화를 입증하듯 딱 하루만큼 단청할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안국사 극락전 추녀 밑의 단청을 하다만 자리는 노승으로 변한 학이 단청을 하다 그친 자리로, 이후 그 노승을 학대사라 부르게 되었다.

     

    안국사 극락전 단청 설화...

    안국사의 주 법당으로 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제가 지금부터 100일 동안 단청을 할 테니 극락전에 하얀 막을 치고 물 한 그릇만 넣어 주되 절대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마시오”라고 말하였다.

    스님은 범상치 않은 노인을 말을 깊이 새기며 궁금증을 억누른 채 단청불사가 무사히 끝나기를 부처님께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 구름이 걷히고 단풍이 떨어질 무렵의 어느 날, 스님은 천막 속의 단청불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함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단청이 시작된 지 99일째 되던 날 그 호기심에 하루를 참지 못하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막 안에 노인은 온데간데  없고,  붓을 입에 문 흰 학이 단청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눈치 챈 학은 완성하지 못한 단청 일을 남겨 놓은 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인지 안국사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분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뭇결을 드러내고 있다.

     

     

     

     

     

     

     

     

     

     

     

     

    건물 외부는 정면과 배면에 다포계양식의 공포를 설치하였는데, 외부는 3출목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는 4출목으로 쇠서는 연봉으로 장엄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건물 외벽은 삼면에 심우도(尋牛圖)를 비롯하여 석가탄생도 등 다양한 설화적 도상을 표현하였으며, 단청은 얼금모로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극락전 앞에 서면 덕유산이 보인다는데 비가 내리고 운무로 청하루와  종각만 보인다.

     

     

     

    ◯  안국사 지장전

     

     

     

     

     

    극락전의 동쪽에는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일중거사(一中居士)가 쓴 지장전 편액

     

     

     

     

     

     

     

    건물 내부는 육엽연화문으로 단청된 우물천장과 불단으로 구성되며,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ㆍ무독귀왕 및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ㆍ무독귀왕 좌우의 시왕들...

     

     

     

     

     

     

     

     

     

     

     

     

     

    1992년에 원행(圓行) 스님이 극락전 아래 세운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낮은 단층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운 주심포계 건물로, 평방 없이 창방 위에 익공식 연화공포가 도출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2ㆍ4분합의 빗살창호와 4기의 주련이 걸려 있으며, 어칸 상부에는 일중거사(一中居士)가 쓴 지장전 편액이 양각되어 있다.

     

     

     

    ◯  안국사 천불전

     

     

     

    삼성각 앞에 천불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 극락전 우측 축대 아래에 있다. 1991년 옛 사고(史庫) 터에 있던 선원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란의 화마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사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중간에 가로로 방(枋)을 쳐서 중층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하부는 사고를 수장한 창고를 겸하며 상부는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강암(剛菴) 선생이 쓴 ‘千佛殿’ 편액)

     

     

     

     

     

     

     

    내부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보조단이 있으며, 1995년 합성수지로 만든 석가여래좌상과 문수ㆍ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석고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은 붉은 바탕에 금니로 출초한 홍탱으로 금어 남인식(南仁植)이 1969년에 조성한 것이다.

     

     

     

     

     

     

     

     

     

     

     

     

     

     

     

     

     

     

     

     

     

     

     

     

     

     

     

     

     

     

     

     

     

     안국사의 천불전은 사고의 선원각이 옮겨 온 것인데 선원각은 왕실의 족보를 보존하던 곳이었으니 사고 건물의 한 양식을 살필 수 있어 의미있는 건물이라 하겠다.   앞면과 뒷면에 두른 널벽, 앞 뒤로 붙인 여러 개의 교창, 마루로 위층과 아래층이 분리된 중층구조 등 사고 건물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전각이다.

     

     

     

     

     

     

    정면 어칸에는 4분합의 빗살문과 강암(剛菴) 선생이 쓴 ‘千佛殿’ 편액이 걸려 있으며, 좌우 측면에는 내부에 채광을 공급하는 특이한 교창이 있다.

     

     

     

     

     

     

     

     

     

     

     

     

     

     

     

    ◯  안국사 삼성각

     

     

    극락전 뒤편 언덕에 있는 삼성각은 1992년 원행(圓行) 스님이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건물이다.   건물외부는 주로 녹청을 사용하여 단청하였으며,  4분합의 어칸 띠살문 상부에는 소남(素南) 이규진(李圭鎭)이 쓴 ‘三聖閣’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내부는 불단 위로 1899년에 조성된 칠성탱과 근래 조성된 산신탱ㆍ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 뒤에 축대 위에 삼성각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다.

     

     

      

     

     

     

     

    소남(素南) 이규진(李圭鎭)이 쓴 ‘三聖閣’ 편액

     

     

     

     

     

     

     

     

    칠성탱은 금어 우송상수(友松爽洙) 스님이 1899년 김천 봉곡사(鳳谷寺) 극락암에서 조성한 것을 옮겨온 것으로,  장방형의 화폭에 중앙의 치성광여래와 좌우에 일광ㆍ월광보살 및 삼태육성과 이십팔수 등 여러 권속을 배치한 모습이다.

    이 탱화는 인근 북고사에도 똑같은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김천지방의 금어인 우송스님이 무주지역의 불화 불사에 참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근래 조성된 독성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  안국사 요사

     

     

     

     

     

     

    지장전 앞으로 돌아오니 대나무 울타리 뒤로 요사채가 있다.

     

     

     

     

     

     

     

     

     

    ◯  안국사 성보박물관

     

     

     

     

     

     

    안국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정면 3칸 측면 7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1998년 세계 각국의 불상들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 되었다.   현재 측면 5칸은 성보박물관으로 활용되며,   내부에 중국ㆍ일본ㆍ네팔ㆍ티베트 등 동남아시아와 파키스탄ㆍ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에서 수집한 불상 및 다기류 300점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은 주지 원행(圓行) 스님이 15년간 전 세계의 불교국가를 다니며 수집한 것으로, 무주 유일의 보물인 괘불이 사진으로 모사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특히 안국사의 성보박물관은 독보적이다. 다른 박물관이 인근 불교유물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면 성보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불상 등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문화재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등이 있다.

     

     

     

     

     

     

     

     

     

     

     

     

     

     

     

     

     

     

     

     

     

     

     

     

     

     

    내부에는 300여점의 세계 각국 불상들과 200여점의 불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성보는 길이 10.75미터, 폭 7미터의 괘불이다.   큰 화면 가득히 석가여래가 입상으로 서 계신다. 거의 화면을 다 채운다.

    석가여래의 좌우 귀퉁이로 윗부분에서 중간부분까지 왼쪽에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오른쪽에 다보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내용상 7존도이나 한눈에 보이는 것은 석가여래 독존도처럼 보인다.

    주존인 석가여래는 가슴을 들어낸 채 통견의 법의를 걸쳤으며, 오른팔은 길게 늘어뜨리고, 왼팔은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하여 가슴부근까지 올리고 법의를 걸치고 있다. 양쪽의 여섯 불보살은 구름에 둘러싸여 중앙의 주존을 향하여 합장하고 선 자세이다. 주존불 두광이 좌우에 구름을 탄 천년가 몸을 기울이며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정적인 느낌과 동적인 느낌을 동시에 주고 있다. 독존불의 얼굴이 크고 양 어깨가 지나치게 넓고 각이 져 있다. 늘어뜨린 팔은 길다는 느낌과 몸통과 다리는 짧게 그려져 있다.

    이 괘불이 제작된 연도는 1728년 아니면 1741년으로 추정된다. 화기에 □□6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옹정 6년(1728), 혹은 건륭 6년(1741)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원은 의겸을 비롯한 여섯명의 스님이다. 의겸스님은 18세기 중반에 활약한 금어로 의겸화파라 불리어 질 정도로 불화에서는 일세를 풍미한 대표적 화승이다. 그 후 1792년 후배지를 새로 대는 중수가, 1809년에 다시 중수가, 그 후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고, 1939년 당시 주지인 김용봉 스님에 의해 보수가 되었다.

     

    안국사 괘불은 가뭄이 들었을 때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여 그 영험함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괘불의 뒷면에 기우축원문등의 축원문과 송덕문 수십장이 붙어 있어 그 말이 헛되지 않음을 증거하고 있다.

     

     

     

     

     

     

     

     괘불이 사진으로 모사되어 있다.

     

     

     

     

     

     

     

    안국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부처님 모습

     

     

     

     

     

     

     

     

     

     

     

     

     

     

     

     

     

     

     

     

     

     

     

     

     

    ◯  안국사 찻집

     

     

     

     

     

     

     

    박물관의 측면 2칸은 안국사를 찾는 이들이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찻집 ‘운상(雲裳)’으로 이용되고 있어, 지역민들의 문화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찻집에는 항상 구름이 걸려 있어 감미로운 차 한 잔을 들면 절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 같아, 이곳이 안국(安國)임을 되새기게 한다.

     

     

     

     

     

     

    ◯  안국사 괘불대

     

     

     

     

     

     

    극락전 앞의 괘불대는 가공되지 않은 한쌍의 자연석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높이가 1미터 60센티미터이다. 중간에 간목을 걸 수 있는 구멍이 있고 한쪽 지주 앞면의 명문을 통해 영조 6년(1730)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괘불대도 안국사가 이전할 때 옮겨온 것이다.

     

     

     

     

      

     

     

    ◯  안국사 범종각

     

     

     

     

     

    일중(一中) 거사가 쓴 범종각(梵鐘閣 편액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청하루 우측에 있다. 1994년 원행(圓行) 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안국사의 옛 범종과 대화합의 범종을 봉안하기 위한 것이다. 단층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사면에 홍살을 세운 범종각은 청하루의 기왓골과 수평을 이루며 안국의 염원과 국민 대화합을 바라는 범음을 전하고 있다. 현재 어칸에 일중(一中) 거사가 쓴 편액과 1996년 조성한 대화합의 범종 및 운판이 있으며,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안국사의 동종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안국사의 동종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  안국사 선원

     

     

     

     

     

     

     

     

     

     

     

     

     

     

     

     

     

     

     

     

     

     

     

     

     

    산중 별천지에 드리운 호국의 염원,  무주 적성산 안국사를 뒤로 하고....

     

     

      

     

     

     

     

     

     

     

     

     

    청하루를 내려 간다...

     

     

     

     

     

     

     

     

    우물도 만난다..

     

     

     

     

     

     

     

     

     

    안국사 일주문을 나선다...

     

     

     

     

     

     

     

     

     

     

     

     

     

     

    안국사 일주문을 나와 안국사 주차장으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어서 솔향내를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안국사와 적상산을 뒤로하고 영동의 영국사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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