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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는 이도 없이 쓸쓸하기만 한 신라 43대 희강왕릉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경주 왕릉/43대 희강왕릉 2015. 7. 2. 08:00

    찾는 이도 없이 쓸쓸하기만 한 신라 43대 희강왕릉  ( 사적 제220호 )     

      

     

     

     

     

     

     

    2015.    7.    2.

     

     

    2015.  6.   28.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살아있어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그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하다

     

     

    오늘은 내남지구를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내남의 경덕왕릉 가다가 만난 최포공 효자비를 보고 경덕왕릉,  용산리 서원,안심리 암각화와 충의당을 보고 인근의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희강왕릉. 민애왕릉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여섯번째 일정으로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492번지에 위치한 충의당을  보고 조금 떨어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34번지에 위치한  골짜기로 신라 43대 희강왕릉을 찾아 나선다...

     

     

     

     

     

     

     

     

     

    경주시 내남면 율동 1838-1번지의 지번을 네비로 찍고 찍고....

    민애왕릉과 희강왕릉은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못(낙시터)안 마을 입구 도로변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희강왕릉 입구에 있는 들판

     

     

    희강왕릉은 경주 내남면 망성리의 야트막한 뒷산에 있다. 그 뒷산의 남쪽 일부가 움푹 들어간 곳에 있는 자그마한 들판의 모습이다.   희강왕릉은 왼쪽으로 가면 있고,   들판은 논밭이 되었다.

     

     

     

     

     

     

    희강왕릉으로 가는 입구는 마을의 뒷쪽 논밭 사이로 난 좁은 논둑길이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뒷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이 있다.

     

     

     

     

     

     

     

    마을안길을 지나서 산길을 따라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좌우로 민애왕릉과 희강왕릉 표지판이 있다.

     

     

     

     

     

     

     

    희강왕릉을 안내하는 표시판을 따라 왼쪽 산길로 올라서면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길이 이어진다. 이 산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250m) 희강왕릉이 있다.

     

     

     

     

     

     

     

     

     

     

     

     

    고개마루로 올라 서서 희강왕릉  쪽으로 길을 걷는다.

     

     

     

     

     

     

     

     

     

     

     

     

     

     

     

     

     

    소나무와 잡목이 뒤섞인 길을 250m쯤 가니..

     

     

     

     

     

     

     

     

     

     

     

     

    저만치 희강왕릉이 보인다.

     

     

     

     

     

     

     

     

     

     

     

     

    지름 14m,   높이 3.4m의 이 무덤은 얕은 구릉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흙을 쌓아 올린 둥근 무덤으로 높이에 비해 아랫부분이 넓은 편이다.   희강왕릉의 무덤이라고만 전해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희강왕릉으로 지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무덤은 크기만 일반인 보다 조금 클 뿐 일반 백성의 무덤과 비슷하며 특징은 없다.

     

     

     

     

     

     

     

     

     

     

     

     

    신라 43대 희강왕(836∼838)의 무덤이다. 그는 재위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업적은 보이지 않는다.

     

     

     

     

     

     

    희강왕릉은 소나무 숲속에 일반인의 무덤과 거의 비슷하게 되어 있다.  아마 봉분이라도 크지 않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왕릉이다.

     

     

     

     

     

     

    희강왕(僖康王, 재위 836~838년)의 이름은 김제륭(金悌隆)이며,  원성왕의 손자 이찬 김헌정(金憲貞)의 아들이다.   흥덕왕이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자, 이에 상대등 자리에 있던 그의 사촌 아우 김균정(金均貞)이 김양(金陽)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나아갔다.  그러자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던 시중 김명(金明)은 이에 반발하여 작은 매형인 김제륭을 부추겨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큰 매형인 김균정을 잡아 죽게 하였다.   김제륭은 김균정의 손아랫 동서이기도 했지만 친조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김제륭이 왕위에 오르니 희강왕이다.   김명의 야심을 간파하지 못한 희강왕은 김명을 상대등에 임명했다.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金祐徵)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처와 자식을 데리고 배를 타고 청해진으로 도망가 장보고에게 의탁하였다. 1년 후 상대등 김명이 시중 이홍(利弘)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왕의 측근들을 죽이자, 희강왕은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이에 김명이 왕위에 오르니 민애왕(閔哀王)이다.

    김명이 희강왕을 죽게 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김우징은 군왕을 시해한 역적을 친다는 명분으로 장보고에게 군사를 빌려서 민애왕을 공격했다. 이 싸움에서 대패한 민애왕은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김우징이 다음 왕위에 오르니 신무왕(神武王) 이다.

     

     

     

     

     

     

     

     

    신라 56대 왕릉 가운데 가장 작고 초라한 릉으로 신라 왕조실록에 의하면 희강왕은 애장왕을 제거하는데 가담한 자로서 흥덕왕의 조카면서 왕위를 찬탈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쿠테타에 의해 권좌에 올랐으나 장보고 군사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고 자신은 숨어있다 상황이 불리하자 자살하였으며 재위기간은 1년으로 왕노릇도 제대로 해 보지못하고 죽은 비운의 왕으로 기록 되어있다

     

     

     

     

     

     

     

    왕의 무덤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인 희강왕릉을 뒤로 하고

     

     

     

     

     

     

     

     

     

     

     

     

     

     

     

     

     

     

     

     

     

     

     

     

     

     

     

     

    신라 44대 민애왕릉으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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