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산길 봄빛이 아름다운 진덕여왕릉 (경주시 현곡면 )
    경주 왕릉/28대 진덕여왕릉 2015. 5. 24. 10:31

    산길 봄빛이 아름다운 진덕여왕릉 (사적  제24호)  

      

      

     

     

     

    2015.   5.   24.

     

     

    2015.  5. 19.   나 혼자만의 신라 문화재 순례길에 오른다.........    08:45 포항을 출발...

     

     

    룰루랄라 CD음악 크게 틀고 경주 문화재 순례 나서는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다.  오늘 하루도 하늘과 강과 산,   바람.  구름만날수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금장대와 석장동암각화를 보고 경주 현곡면 지구 문화재를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남사리사지 삼층석탑,   남사리북삼층석탑,   남사저수지,    수운 최제우 태묘,    최제우 생가,   용담정,   손순 사당과 유허비,   오류동 등나무,    진덕여왕릉,  나원리 오층석탑과 나원사 등 왕릉 1군데와 문화재 11곳을 돌아 볼 예정이다.. 

     

    오늘 열한번째 여행지는 오류동 등나무를 보고 나서  1.1km를 달려 진덕여왕릉을 만나러 간다. ....

     

    삼거리 사이로 푸르게 보이는 숲이 오류등나무 인데  이 곳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복(中腹)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의 왕릉으로 사적 24호이며 오류마을의 뒤편에 있는 안태봉 중턱에 있다

     

     

     

     

     

     

     

    신라 진덕왕릉이라는 표지판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계속 직진을 하다 보면 제 1주차장이 나오게 된다.

    이 곳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00m 쯤 올라가면 제2주차장이 나오는데 제1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말고 제2주차장까지 게속 올라가는 것이 좋다..

     

     

     

     

     

     

    조그마한 저수지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진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걸어 간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산길을 따라 약 200m 쯤 올라가노라면 진덕여왕릉이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 ㅅ앞 소나무 숲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다...   등산객들도 보인다..

     

     

     

     

     

     

     

     

     

     

    진덕여왕릉은 주차장에서 200m도 안되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올라가는 소나무 숲은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 만큼 아름답다.

     

     

     

     

     

     

     

     

     

     

     

     

     

     

     

     

    은 더디게 왔다가 참 빨리 지나 간다.   봄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 거리에서 반팔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주 문화재 답사를 복잡하지 않는 평일을 택해  경주 외곽지역인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진덕여왕릉을 다시 찾았다. 주위가 소나무로 우거져 상쾌한 솔숲길이다.

     

     

     

     

     

     

    여기 왕릉은 경주 다른 왕릉과 마찬가지로 느낌이 좋다.   걸어 들어가는 둘레 솔숲도 멋지고 가로세로 지르며 이어지는 오솔길은 오히려 다른 어떤 왕릉보다 걷는 사람 기분을 좋게 해준다.

     

     

     

     

     

     

    오솔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윗쪽으로 조금더 올라가면 능선 중앙에 진덕여왕의 왕릉이 있다

     

     

     

     

     

    올라가는 능 앞쪽에서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 잘 생긴 소나무 숲 너머 언덕위에  진덕여왕의 왕릉이 태양의 조명을 받으며 당당하게 자리 하고 있다.

     

     

     

     

     

    맑은 하늘 아래 내려쬐는 햇살,  어둑어둑한 솔숲 그늘에서 바라보니 무덤 자리가 더없이 환하다.   한참 머물다 내려와도 좋은 자리였다.

     

     

     

     

     

     

     

     

     

     

     

     

    진덕여왕은 7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기르고 당나라와 적극적 외교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승만(勝曼)이다.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서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유언에 의해 즉위하였다.  진평왕(眞平王)의 친아우[同母弟]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月明夫人)박씨(朴氏)이다.  진덕여왕(眞德女王)은 자질이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무척 총명했다고 한다.

     

     

     

     

     

     

     

    즉위하던 해(647)에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毗曇)을 비롯한 30인을 붙잡아 처형하고,  알천(閼川)을 상대등(上大等)에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다.   그리고 사신을 파견해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지속시켰는데,   이것은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진덕여왕이 즉위하면서부터 계속적으로 신라를 침공해왔다.   이에 신라는 압독주(押督州: 지금의 경상북도 慶山) 군주(軍主)이던 김유신(金庾信)을 중심으로 백제의 공격을 막는 한편 648년(진덕여왕 2)에는 김춘추(金春秋)를 당나라에 보냈다.   이로써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청병외교(請兵外交)와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숙위외교(宿衛外交)를 전개하였다.

     

     

     

     

     

     

     

    또한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외교활동을 벌인 결과,   신라는 지금까지 신라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던 당나라 태종(太宗)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김춘추 일파의 주도 아래 당나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모방한 대규모 정치개혁이 단행되었다.   이것을 이른바 한화정책(漢化政策)이라고 한다.

     

     

     

     

     

     

     

    능을 보수하고 남은 돌들인가 뒷쪽켠에 모아 놓았다.

     

     

     

     

     

     

     

    먼저, 649년 의관을 중국식으로 하는 중조의관제(中朝衣冠制)를 실시하였다.   650년에는 즉위 직후부터 사용하던 독자적 연호인 태화(太和)를 버리고 당나라 고종(高宗)의 연호였던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의 관제(官制)와 연호(年號)의 사용은 김춘추의 건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당나라에 대한 신라의 정치적 예속도가 강화되었다는 부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651년에 백관(百官) 왕에 대해 행하는 정조하례제(正朝賀禮制)를 실시하였다.   또, 종래의 품주(稟主)를 개편(稟主)하여 국왕직속의 최고 관부로서 집사부(執事部)를 설치하고,   품주의 본래 기능은 신설된 창부(倉部)로 이관하였다.   파진찬(波珍湌) 죽지(竹旨)를 승진시켜 집사부의 수장 중시(中侍)를 삼고 기밀사무를 맡겼다.   이는 토착기반을 가진 귀족들의 정서를 인지하거나 주변국의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던 선덕여왕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귀족세력을 배제하고 김춘추를 포함한 여왕지지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정치개혁이었다.   또, 시위부(侍衛府)를 개편했는데,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김유신의 군사력이 주축이 되어 개편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듯 진덕여왕은 왕권안정을 위한 집사부 설치,  율령체제를 운영하는 좌이방부(左理方府)의 신설, 각 행정관부의 체계화 등 개혁을 통해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제를 지향했다. 그렇지만 진덕여왕대 김춘추에 의하여 주도된 내정개혁의 방향은 진덕여왕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김춘추 자신이 훗날 즉위할 경우에 대비한 정치 작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진덕왕릉은 원형봉토분으로 아래 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였고 둘레 돌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12개의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겼으며 그 위에는 긴 돌을 한 번 더 올려놓았으며 무덤 앞에는 이 외에 별다른 석조물은 없다 

     

     

     

     

     

     

     

    진덕여왕의 왕릉은 도굴꾼들이 4.5m정도 파 들어가 석실에 닿았으나 석실 안에 있던 흙을 모두파낼 엄두를 내지 못하여 도굴을 중단한 적이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75년에 수리 보수 된 왕릉의 모습이다 

     

     

     

     

     

     

    진덕여왕의 왕릉은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이고, 아래 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였으며 둘레돌 사이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12개의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겼다 

     

     

     

     

     

     

     

     

     

     

     

     

     

    왕릉에서 바라본 솔숲

     

     

     

     

     

     

     

    둘레돌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돌난간을 세운듯하나 지금은 거의 다 없어져 남아있지 않고 무덤 앞에는 이외에 별다른 석조물이 없고, 최근에 만든 통로와 축대가 있다

     

     

     

     

     

     

     

     

     

     

     

    진덕여왕릉을 본 느낌은 태고의 자연스러움과 신비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분은 참 순수한 분이셨겠구나.  돌아가시고 난뒤 능까지 이렇게 순수함을 간직한걸 보면..'

     

     

     

     

     

     

     

     

     

     

     

     

     

     

     

     

     

     

     

     

     

     

     

    내려가는 길도 정겹다

     

     

     

     

     

     

     

    세월을 느끼게 하는 능 앞쪽의 소나무들...

     

     

     

     

     

     

     

     

     

     

     

     

     

    진덕여왕릉까지 인공적인 개발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된 오솔길이다. 가파르지 않고 산림욕도 좋다..

     

     

     

     

     

     

     

    햇볕이 잘드는 산자락의 오솔길 좌우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상쾌하다..

     

     

     

     

     

     

    솔잎이 떨어져 쌓여있는 자연상태의 길을 밟는 기분은 참 상쾌했다..

     

     

     

     

     

     

     

     

     

     

    때마침  오후 햇살이 소나무숲을 뚫고 길 위로 내려앉는다.  햇살에 비친 신록의 푸름이 눈이 부시다.  우연히 만난 봄빛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솔숲길을 조금 걸어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다.

     

     

     

     

     

     

     

      

    밝은 햇살과 맑은 하늘, 싱그런 소나무 내음,  더 없이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고운 길을 내려와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나원리 5층석탑을 찾아 나선다.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