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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화향기 속에 석불비상(石佛碑像)이 아름다운 순천 금둔사(金芚寺)
    사찰여행/전라도 2015. 3. 9. 23:05

    매화향기 속에 석불비상(石佛碑像)이 아름다운 순천 금둔사(金芚寺)

     

     

     

     

     2015.  3.  9.

     

     

     

     

    2015.  3.  8.  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전남 순천시 금전산 금둔사 ......... 

     

    포항출발 (06:00)  →  청통휴게소 (아침식사)  →  대구  →  함안   → 광양 →  순천 금둔사(10:20) 도착,   먼저 금둔사  사찰 순례 후 산행 하기로 하고   산행 입구 지점 옆의 금둔사로 길을 떠난다 ....  

     

     

    봄이 더디 온다.

    이제 완연한 봄인가 싶었는데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찾아왔다. 날씨가 널뛰기를 한다.

     

    하지만 봄은 그렇게 ‘밀당’하면서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와 있기 일쑤다

     

    그 봄을 찾아간다.

    순천이다.

    해마다 붉은 옷고름 휘날리며 달려와 봄소식을 전하는 홍매화가 먼저 피는 곳이다.

     

    그 중심에 절집 금둔사가 있다

     

    금둔사는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668m)이 품고 있다.

    백제 때 지어졌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지난 1983년부터 다시 지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대웅전과 설선당, 석탑과 석불이 단아하게 어우러져 있다.

     

     

     

     

    도로변에 있는 금둔사 입구,  메타세쿼이아 나무 줄지어 선 길을 따라 오른쪽 아스팔트길로 약 3-5분만 오르면 금둔사 일주문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30년(583)에 담혜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금둔사는 조선시대 까지 계속 사찰이 지속되다가 폐사가 되었으며, 순천 선암사 선원에 계시던 지허스님께서 폐사되어 논 밭으로 바뀌어 있던  이곳에 오셔서 1983년 부터 복원불사를 시작해 현재의 규모로 조성 되었다.

     

     

     

     

     

    '금둔선원' 이라 써 있는 금둔사 입구

     

    낙안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약 2km 떨어진 금전산의 무너진 절터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며『동국여지승람』에 “금전산에 금둔사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절터를 금둔사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는 조그마한 사찰이 지어져 금둔사의 명맥을 잇고 있

     

     

     

     

    금둔사에서 또 하나 좋은 것은 입구다. 다른 절에 비해 차도와 절에 이르는 길이 터무니없이 짧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를 키운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좋다.

     

     

     

     

    금둔사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목장승의 몸통에는 '호법선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목장승은 금둔사의 수호신 역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주문은 대부분 사찰의 입구에 있으며 여닫이 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열고 닫는 문짝은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반가이 맞이한다는 것이며 바로 중생을 걱정하는 부처의 마음이다

     

     

     

     

     

     

     

    일주문에 걸려 있는  금전산 금둔사(金錢山金芚寺)  편액

     

    도로변에서 약간 오르막 길을 약 150m쯤 걸어올라가면 다포식의 맞배지붕에 두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일주문이 있으며 처마 가운데에, 금전산 금둔사(金錢山金芚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소암 현중화 (素庵 玄中和, 1907~1997)선생이 반흘림체로 쓴 것이며, 

     

     

     

     

    일주문의 뒷면에는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이라는 추사의 현판이 걸려져 있다.

    "세계는 한송이 꽃이요,  여섯분의 조사는 그 잎이다"라는 뜻인데 세계는 부처를 의미하고, 여섯 잎은 달마로부터  6조 혜능스님까지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사찰의 일주문은 대승불교의 일승사상 (모든 진리는 그 근본이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 을 내포하며 기둥을 한쌍으로 하여 문을 만들어 놓고 부처의 세계와 속세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짧은 담장을 둘러놓은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산신상' 역시  절을 지켜 주는 수호신 역활을 하고 있는듯 하다.

     

     

     

     

     

    금둔사는 작은 절집이라고 하나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오밀조밀하지 않고 산의 형태를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결코 작다고 느껴지지 않는 절이다

     

     

     

    아름다운 무지개다리(홍예교)-방하교(放下橋)

     

    일주문을 지나면 길은 두갈래로 갈린다.  오른쪽 정면으로는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지며 금둔사의 보물인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으로 가는 길이며   왼쪽에는 대웅전과 선방, 요사로 넘어가는  돌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방하교(放下橋)이다.

    깊이 10m, 너비 20m에 이르는 계곡 위에 놓인 이 다리는 금둔사를 복원할 때 함께 복원을 했다고 하는데,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홍예를 만들고 자연석으로 주변을 채워넣은 아치형 무지개다리이다

     

    방하(放下)란 '속세의 번뇌와 고통을 내려 놓으라'는 뜻으로 다리를 건너면서 아직까지 남겨진 속세의 번뇌를 다리 아래 계곡에 떠내려 보낸다는 의미이다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를 닮은 ...    금둔사 홍교를 건너면 대웅전으로 갈 수 있다..

     

     

     

     

     

    일주문 들어서자마자 계곡 건너 왼쪽 대웅전 가는 다리 앞에 납월 홍매에 관한 안내문이 서 있다.

     

     

     

     

    먼 길 달려온 봄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돌다리를 넘어서 만난다. 봄바람이  절집 곳곳에서 홍매화를 피워냈다.

     

     

     

     

    지금은 죽고 말았지만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에는 600년을 살았던 매화나무 거목이 있었다.   엄동의 한가운데인 섣달(납월·臘月)에 피어난다고 해서 납월매란 이름으로 불리던 나무이다.   그 나무가 죽기 전인 30년 전쯤부터 지허스님이 씨앗을 받아다가 기른 여섯그루의 매화나무가 이곳 금둔사에 있다

     

     

     

    방하교에서 바라본 대웅전

     

     

     

     

    방하교를 건너면 바로 금둔사의 법당인 대웅전이다. 석가모니부처를 본전불로 봉안하고 신중단과 영단을 모시는 전통불교 양식의 대웅전은1984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가진 장엄하고 화려한 목조 건물이다.

    절의 중심 건물답게 장엄한 모습이며, 바깥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는 우현 송영방 화백이 그렸다.

     

     

     

     

     

     

     

    부처님 좌측으로 봉안된 신중단..

     

     

     

     

     

     

     

    대웅전의 본존불인 석가보니부처님...

     

     

     

     

    세부 표현이 섬세하고 전체적으로 장엄한 느낌을 주는 영산회상의 후불탱화는  동국대 손연칠 교수의 작품이다..

     

     

     

     

     

     

     

    부처님 우측으로  조사님의 존영들..

     

     

     

    부처님 우측으로 봉안된 영단..

     

     

     

     

     

     

     

    금둔사에 6그루 남아 있는 납월홍매 중에서 첫째나무

     

     

     

     

     

     

     

     

     

     

    가람배치는 1금당 1탑 형식이며, 건물 우측에는 범종각(梵鍾閣)과 조그만 네모모양의 연못이 있다

     

     

     

     

     팔각칠층석탑

    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전 대웅전 앞뜰에는 8각형을 띈 7층석탑이 늘씬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는데 대웅전을 지을 때 같이 만들어진 근래의 탑이다.

     

     

     

     

     

     

     

     

     

     

    금둔사 경내에는 홍매화 외에 청매, 백매가 꽃망울이 부풀고 있었다.   회색빛 겨울의 그림자 속에 한껏 부풀고 있는 청매화

     

     

     

     

    대웅전에서 요사채 오르는  길...

     

     

     

     

    대웅전에서 요사채 오르는 입구에 조그만 네모모양의 연못이 있다

     

     

     

     

    금둔사 주변의 야생 차나무와 약수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  맑은 물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시원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요사체 바로 뒤 언덕에 만개에 가까운 홍매 두 그루가 서 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벌들이 첫 매화가 반갑다는 듯 꽃을 탐하고 있다.

     

     

     

     

    금둔사는 차(茶)와 더불어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홍매화와 납월매가 피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홍매화는 말그대로 붉은 매화이며, 납월매(納月梅)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로 음력 12월(양력 3-4월)에 피어난다고 한다

     

     

     

     

    불가에선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12월 8일을 기념하여 음력 섣달 12월을 납월(臘月)이라 부르는데 섣달에 꽃망울을 틔우는 홍매화를 납매 또는 납월매라 부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겨울 풍경이 머물고 있는 금둔사에 납월홍매가 질 무렵이면,  섬진강변의 매화가 활짝 핀다고 할 정도로  이곳 금둔사의 납월매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피는 홍매화라고 한다

     

     

     

     

    금둔사 매화는 순수한 한국 토종이라서 흔히 보는 매화나무보다  꽃잎이 더 날렵하고 얇으나 꽃이 듬성듬성하게 피는 것이 흠이다.

     

     

     

     

     

     

     

     

     

    매화의 고상함이 불가의 기와지붕과 잘 어울린다..

     

     

     

     

     

     

     

     

     

     

     

     

    요즘 농장에서 재배하는 매화나무는 열매인 매실을 얻기 위하여 대개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일본 매화는 그윽한 향은 없으나 열매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매실 수확을 위하여 많이 재배하며 우리 토종매화는 향이 좋은 대신 열매가 적게 달린다

     

     

     

    금둔사 매화는 유난히 향이 진하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힘차게 올라오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매화의 고결한 기품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었기에 먼 길 온 보람이 있었다.

     

     

     

     

     

     

     

     

     

     

     

     

     

     

     

     

    ※ 국내의 매화는 3종류로 구분한다.

     

        1) 백매화 : 매화꽃은 연분홍빛을 띠는 하얀색이고  꽃받침이 팥죽색

        2) 청매화 : 꽃은 하얀색이나 꽃받침이 연한 초록색

        3) 홍매화 : 꽃도 붉고 꽃받침도 붉은색

           흑매화 : 홍매화품종인데 붉은색이 진하다 못해 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둔사 홍매는 토종매화로서 일본에서 건너온 왜매와 꽃을 피우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일시에 꽃을 피워 한꺼번에 꽃이 지지 않고, 몇송이 피었다가 추위에 사그러지면 다시 몇송이 꽃이 피는 식으로 피고지고,  또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납월매라고 한다

     

     

     

     

     

     

     

     

     

     

    금둔사에선 홍매가 지고 나면 백매가 피는데 태고선원 옆 백매 역시 꽃을 피우려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금둔사는 홍매로 유명하나 백매(白梅)와 청매(靑梅)가 더 많은데 100그루쯤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매화는 백매화와 청매화인데 꽃잎이 희거나 연분홍이다.

    백매와 청매의 구분은 꽃받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백매는 설매(雪梅)라고도 하는데 꽃받침이 팥죽색이며  청매는 꽃받침이 푸르고 연한 녹색이어서 구분이 된다

     금둔사에서는 홍매와 백매, 청매가 차례로 피며 홍매가 지기 시작할 무렵 백매와 청매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긴 기간동안 매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마애불 옆에는 산신(山神)을 모신 정면 1칸, 측면 1칸의 조촐한 산신각이 자리해 있다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은 석조마애비로사나불(石造磨崖毘盧舍那佛)과 산신각

     

     

     

     

    불조전을 둘러보고 다시 나와서 요사로 올라가면 조그만 차밭 너머로 바위에 새겨진 또다른 석조마애비로사나불이 나온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생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는 바위의 남쪽 면을 깎고 다듬어서 돋음새김으로 새겨졌다. 머리 뒤로 3중으로 처리된 동그란 두광(頭光)이, 몸 뒤로 신광(身光) 등 광배(光背)를 달아 부처의 광영을 나타내었다.  1983년 지허화상이 절을 짓기 위해 경작지가 되버린 이곳을 답사했는데, 금둔사의 옛 역사를 말해주듯, 묵묵히 서 있는 이 바위에 끌려 절을 중창하면서 마애불을 새겼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으로 쪼아 만들던 석공의 혼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마음을 끌지 못한다.

     

     

     

     

     

     

     

     

     

     

     

     

     

     

     

     

     

    불조마애여래좌상군

     

    선방을 지나면 세갈래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 끄트머리에 바위를 가득  메운 조그만 불상들의 보금자리가 나온다. 바로 근래에 조성한 불조마애여래좌상군이다.

    바위를 깎아 한 구씩 새겨놓았는데 불상의 모습이 작고 고졸한 것이 귀엽기는 하지만 기계톱을 사용하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여 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조각이다. 

    이 마애불은 불조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는 과거의 칠불(七佛)과 미래의 부처인 53불을 포함 60불의 불상을 모셨다.

    과거7불은 우주가 탄생하여 없어질 때까지 부처가 한명씩 나타난다고 하는데,  석가여래가 그 7불의 마지막이다.   또한 미래에는 미륵불(彌勒佛)을 비롯한 53분의 부처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의 마애불은 그들 부처를 모두 표현한 것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  (조선시대 문신 1566∼1628) 은 금둔사 매화를 이렇게 노래했다. 

     

    桐千年老恒臧曲  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변함없이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자기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 바탕은 변치 않고,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남쪽지방의 사찰에는 어느 곳이던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즐비하다 

     

    금둔사 주변에도  700년이 넘은 고목들이 자라고 있는 야생차밭이 2000여 평에 이르며, 1996년, 지허스님이  차씨를 심어 가꾼 9000여 평의 지현다원이 있다.   금둔사 차밭은 예나 지금이나 비료와 거름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다만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차나무 근방에 자란 잡초를 베어 깔아 자생을 돕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자란 차는 '지허스님의 차',  '아무도 말하지 않는 한국자생차 이야기'의 저자인 지허스님이 50년 동안 공들여 가꾼 것들이며 1979년부터는 '가마금잎차', '금화산잎차', '천강월잎차'란 상품으로 녹차를 생산하여 전화나 우편주문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태고선원

     

     

     

     

     금둔사 태고선원 뒷곁의 토종 동백나무

     

     

     

     

     

     

     

     대웅전 지붕

     

     

     

     

    설선당 돌담길을  따라가면  중간 쯤에 산신각,  마애 비로자나불,  그리고 납월매가 있으며 길이 끝나는 곳에 금둔사 태고선원이 있다.

     

     

     

     

     설선당의 돌담이 성곽처럼 고풍스러워 보인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양 옆으로 출임을 할 수 있다

     

     

     

     

     

     

     

     

     

     

    왼쪽 돌담 위에 얹혀진 다기(茶器)는 이곳이 다향(茶香)의 사찰 임을 잘 알게 해준다

     

     

     

     

     

     

     

     

     

     

    절 안 대웅전과 선방 사이 낮은 담장과 작은 오솔길도 푸근하다.   돌을 쌓고 기와로 덮고,  정돈되지 않은 흙과 풀이 자란 경내가 친근하다.   절 뒤 숲엔 호랑가시나무와 동백이 심겨겼다.

     

     

     

     

     

     

     

    용왕각

     

     

     

     

    납월매화를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얼룩식나무'의 푸르름이 겨울풍경을 활기있게 해주는 것 같다.

     

     

     

     

     

     돌계단을 따라 신라시대 보물을 만나러 간다...

     

     

     

      

    절 내에는 문화재가 두 개 있는데  다시 계곡을 건너면 산 위쪽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양쪽으로 기와를 얹은 얕은 돌담이 길게 이어져 있으며,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면 그 끝에 신라시대에 조성된 보물 금둔사지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이 있다.   금둔사의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돌담길을 올라가야 한다.   

     

     

     

     

     금둔사의 석불비상(보물 제946호)으로 이 석불입상은 비석과 같은 형식을 한 특이한 불상이다.

     

    삼층석탑의 뒤에는  암반을 배경으로 한 석불비상이 있다. 석불비상이라 함은 네모난 돌에 불상을 조각하고 비문(碑文)을 새긴 다음 개석(蓋石)을 덮은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비석처럼 생겼다하여 석불비상(石佛碑像) 이라 한다 

    보개(寶蓋)와 대좌(臺座)를 갖춘 이 석불입상은 독립상이 아닌 장방형의 대형 판석 전면에 불상이 양각되어 있어 마치 큰 비석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석불비상은 창녕의 인양사조성비 등 전국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불상이어서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소중한 자료이다 

     

    보개는 석탑의 옥개석(屋蓋石)과 같은 형태로서 아래에는 2단의 각형(角型) 층급이 있고 이 판석을 끼울 수 있는 홈을 파서 불상 판석을 끼웠다.

     

     

     

     

     

     

     

     

     

    낙수면(落水面)의 아래면은 수평이며 낙수면도 완만한 경사에 네 귀에서 가볍게 올려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옥개석과 같은 양감(量感)을 준다. 정상에는 2단의 각형(角形) 층급이 새겨져 있다

     

    전면의 불상은 원만한 상호이며  민머리의 정수리 부분에는 낮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솟아있고 얼굴은 원만한 형태이다. 이마에는 백호공(白毫孔)이 있고 목에는 3도(道)가 있으며 두광(頭光)이 선으로 새겨져 있다. 

    신체는 우아하게 굴곡이 있어 부피감이 느껴지며 단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평행의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군의(裙衣)는 무릎 부분에서 1단이 겹쳐있고 양 발끝이 노출(露出)되었다. 다. 양 손은 가슴 위로 올려 양 손의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설법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양감이 풍부하고 세부표현이 정교하나 다소 딱딱해진 인상,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9세기의 현실적인 사실주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배례석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육각형의 석불.

     

     

     

     

     

     

    3층석탑(보물 제 945)과 석불비상(보물 제 946)

     

     

     

     

     

    금둔사 삼층석탑(보물 제945호)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통양식을 그대로 따른 석탑이라고 한다.

     삼층석탑(보물 제945호)으로 신라 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비례가 잘 갖추어진 탑이다.

    다른 하나는 석불비상(보물 제946호)으로 탑과 마찬가지로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문화재이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불상 조각의 수법이 추상화되는 형태를 보이는데, 이곳의 석불은 추상화되기 이전의 신라의 사실적인 조각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다. 얼굴 모습과 옷의 조각에서 실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석탑의 뒷편(동편)에는 석불입상(石佛立像)이 있어 이들은 서로 연관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팔부중상과 공양상, 문비는 매우 깨끗하여 복원을 할 때 세척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층 답신석의 공양상

     

     

     

     

    석탑 양 옆면에는 불상을 향하여 다과를 공양하는 공양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석탑은 2중기단(二重基壇)의 3층석탑이다

    하층기단(下層基壇) 면석(面石)둘레에는 장대석(長臺石) 8매를 돌려 지대석(地臺石)을 이루고 있다.  하대중석(下臺中石)은 하대석(下臺石)과 한 몸으로 조성되었는데 5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 1주씩이 새겨져 있으며, 하대갑석은 4매로 구성되었으나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고 상면(上面)에는 원호(圓弧)와 각형(角形)의 상대중석받침이 있다.

     

     

     

     

     일층 탑신석의 문비

     

     

     

     

    상대중석은 4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1개씩 있으며 이들 기둥사이 즉 8면에는 8부중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상대갑석은 2매이며  하부에는 부상(副橡)이, 상부에는 각형(角形)의 2단 탑신받침이 있다.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1매석(枚石)으로 되어 있으며, 1층탑신은 우주가 있고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門扉)와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으며 좌우면에는 다과(茶菓)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양각(陽刻)으로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일층 탑신석에는 사천왕상이나 불상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 탑에는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공양을 드리는 공양상이 새겨져 있다

    2, 3층탑신은 우주만 있으며, 각 층의 옥개석(屋蓋石)은 층급받침이 각각 5단씩이며 낙수면(落水面)의 하단선은 수평으로 되어 있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경사를 지었으며 네 귀에서 반전(反轉)이 강하게 나타나 경쾌한 느낌을 준다.

     

    상면에는 각형 1단의 탑신받침이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얹혀 있으며 쇠로된 찰주공이 드러나 있다 .

    양화의 네 면에 연화문(蓮花文)이 양각된 것으로 보인다

     

    탑의 전체 높이는 약 4m로 통일신라시대 전형양식을 갖추고 있는 9세기경의 작품으로 석탑 각부의 비례가 안정적이며 조각 수법도 세련된 멋을 풍긴다. 특히 일층탑신 좌우면에 불상을 향하여 다과(茶菓)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양각(陽刻)되어 있어 특이한 예(例)로 주목이 되는 탑이다

    도굴이 되어 사리함은 없으며 탑재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79년 7월 10일 복원했으며, 2004년에 다시 해체 복원을 하였다.

     

     

     

     

     

     

     

     

     

     

     

     

     

     

     

     

    보물를 보고 내려 오는 길에 금둔사 주지스님인 지허 스님을 뵐수 있었는데 여전히 스님께서는 손수 도량을 가꾸고 계셨다...

     

     

     

     

     

     

     

     

     

     

    지허스님과 함께 귀한 흔적도 남기고 돌담길을 내려 온다...

     

     

     

     

     

     

     

    약사전이 가까이 있는 동림선원터 쪽으로 간다...

     

     

     

     

    약사전

     

    금둔사에는 돌축대가 매우 많다. 옛 절터에 남아있는 것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담장 역시 한결같이 돌담이며 돌담 위에는 기와를 쌓아서 얹힌 푸근한 모습이다.   약사전 앞에는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약수가 있다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때, 승려인 담혜화상이 554년 왕의 명으로 8명의 승려와 함께  왜국(倭國)에 파견되어 불교를 전파하고, 왜인 승려 10여 명을 양성했으며, 나중에 귀국하여 금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7세기 후반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절을 중창하고 부근에 금강암(金剛庵)을 지어 머물렀다고 하며, 9세기 초반에는 철감국사(澈鑒國師)와 그의 제자인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절을 중창하고 동림선원(桐林禪院)을 세워 육조의 선풍을 널리 알렸다고 하지만 백제 위덕왕 시절의 창건설과 의상대사의 중창건은 어디까지나 설화이거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與地勝覽) 낙안조(樂安條)의 기록과 절 뒤편의 금둔사지석불비상과 금둔사지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때로 추정해왔다.

     

     

     

     

     

     

    그러다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순천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지층 120∼150㎝에서 창건 당시 건물지 지층을 발견했으며,  유구층에서 4동의 건물지를 확인했고,   초석· 기단· 연화문 숫막새· 주름문늬병 등의 유물을 발굴했다.

    이 유물들을 토대로 금둔사는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1979년 7월10일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했으며 1984년에는 지허스님께서 대웅전,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 복원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남 순천 금둔사...   지허스님의 구중구곡 차맛이 일품인곳, 700년 야생 차밭이 있고 납월홍매화가 있는 그곳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를 빼놓고, 아직 봄 소식이 도착하기 전에 홍매화가 가장 먼저 핀다는 사찰 금둔사를 찾아서 전라남도 순천으로 봄마중 겸, 홍매화를 만나러 갔다.

    금둔사 중건 당시 낙안읍에서 홍매화 씨앗을 가져다 심으셨다는 지허스님도 뵈었고 납월(음력 12월)에 꽃이 피기 시작해서 3월까지 피고지고를 반복한다는 납월매도 보았기에 금둔사 산사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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