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방/충청도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충남 태안군 태안읍 성안1길 28-23, 태안읍 남문리 380-3)
꽃돼지.
2025. 2. 27. 11:49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2025. 2. 27.
2025. 2. 19 ~ 2. 21(2박 3일).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포항 출발하여 충남 서산으로 이동하여 서산 부석사만 들리고 안면도를 제외한 온통 태안만 둘러보는 일정으로
25. 2. 21. 3일 여행은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관, 홍주사 & 태안동문리 마애삼존불 입상, 태안 백화산 산수길, 시골밥상에서 점심 식사 후 태안 파도리의 해안경관을 둘러보고 3일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포항으로 향해보는 서산. 태안 서해안 겨울 마중 여행길 이다.
24. 2. 21. 3일 첫번째 여행지는
동학농민군의 정신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현대 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져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던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관으로 향해본다...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앞에 주차장이 있다.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있고 1층은 전시실, 2층은 야외 옥상정원이 있다.
운영시간은
3~10월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2월 :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1월 1일, 설날 & 추석 당일
건물은 둥그런 모양이고, 중앙에 동학농민운동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1층 로비의 모습, 안내 데스크 쪽에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대한 안내 책자들이 있고 포토 존도 있다.
인간 존중과 평등을 향한 울림이 전국으로 퍼지다. 동학은 민간 신앙,유교,불교의 장점을 융합하여 1860년 최제우가 창시했다.
모든 사람이 하늘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새로운 사상으로, 민중의 큰 호응을 얻었으나 조정은 동학사상이 통치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이라 판단하여, 1863년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를 처형했다. 이후 2대 교주인 최시형은 <동경대전 / 용담유사>등 경전을 간행해 교단과 교리를 체계화했다.
제 1장은 동학의 창도,핵심 사상, 전국적 전파, 태안의 동학 전파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제 二 장으로 넘어간다.
제二장 농민,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일어서다.
부패한 세상에 맞선 농민들의 첫 봉기 전주화약과 집강소를 통해 농민들이 바라던 정의로운 의침을 듣다.
전주화약은 1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에 출병한 청군과 일본군이 주둔할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이 맺은 화약이다.
동학농민군의 신변 보장과 '탐관오리를 벌주고 신분을 없애며 토지를 나눠주는'등의 내용을 담은 폐정개혁안 실시가 합의되었으나, 일본군의 침입으로 동학농민혁명이 다시 일어나면서 이 합의는 파기되었다.
집강소는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이 전주화약을 맺은 뒤,전라도 각지에 설치한 농민 통치기구이다.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설치된 집강소는 집강 아래 서기,성찰,집사,동몽 등의 임원을 두었으며,주로 무기 관리와 치안유지 및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폐정개혁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2차 동학농민혁명에서 패함으로써 집강소 체제도 무너졌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당시 농민들의 입장을 대표하면서 폐정개혁을 실시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농민군 지방 자치 기구였다.
동학의 교세확장, 태안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이유, 청일전쟁에 대한 내용도 관람 후 제 三 장으로 넘어간다.
제 三 장,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일본에 맞서다.
최초의 집결지이자 마지막 항쟁지였던 태안의 처절한 현장을 보다.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무기, 2차 동학농민혁명의 시작과 경로, 태안읍성 점령 후 일보군에 맞서 싸운 동학농민군,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태안 동학농민혁명에 얽힌 이야기도 볼 수 있디. 이야기는 웹툰 형식으로도 볼 수 있었다.
제 四 장 저마다 하늘님 되는 세상을 향하여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영령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제4장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위한 추모 공간으로, 내가 작성한 희망 메시지를 스크린에 띄울 수도 있고, 인물 검색도 할 수 있었다.
동학군과 관군 의상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여러 의상과 총도 갖췄다.
VR 체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