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사적 제 312호 운주사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19-2)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사적 제 312호 운주사
2023 . 1. 15.
2023. 1. 13. 도린결 테마여행에서 함께했던 전남 화순 여행으로 만연사와 운주사를 둘러보며 즐긴 사찰 힐링여행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눈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고향 집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 깃든 화순 만연사를 보고 바로 절집 앞의 맛집인 '뜨락'에서 식사후 오늘 두번째 천불천탑의 운주사로 이동한다.....
운주사는 2017. 2을 마지막으로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갈 때마다 만족감을 주는 몇 안 되는 사찰 중 한 곳이다.
겨울 눈 내리는 산사를 기대했지만 겨울비가 내리다가 주춤해지는 따스한 겨울은 부처님이 선물한 축복이다.
이 찬란한 연초에 전남 화순 운주사를 찾았다.
20여년 전 겨울, 운주사를 처음 찾아갔던 날이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장길산』에서 읽은 운주사에 대한 강렬한 인상에 자극받아 지도책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날 이후에는 남도여행을 하다가도 운주사가 보고 싶어서 시간나면 한번씩 들르곤 한다.
운주사 매표소
문화재 관람요금(개인기준) : 어른 3000원 중고등학생 2000원 어린이 1000원
관람시간- 하계 07:00~19:00 동계 07:00~18:00
운주사 안내도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말사이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조각수법이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80여기의 석불, 21기의 석탑, 173기의 불재 및 탑재관련 유물이 남아 있다.
조성연대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7년 3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 운주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다.
운주사의 대표적 유물은 운주사 9층 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형 석조 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제273호)을 비롯해 총 16건의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운주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이색적이고 특이한 사찰이다.
송광사의 말사로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과 사천왕이 없이 바로 석탑들과 다양한 석상들을 만날 수 있다.
천불천탑(千佛千塔)과 와불이 있는 사찰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석불과 탑이 있는 사찰인데 지금은 석불 93기와 석탑 21기가 남아 있다.
세련미, 섬세미, 화려미를 찾을 수 없는 투박하지만 아픈 역사와 이야깃거리를 남긴 도량이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는 좋아하는 절 중의 하나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다양한 높이의 석탑과 다양한 생김새의 석불. 서 있는 석불, 앉아 있는 석불, 그리고 돌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심지어 누워 있는 석불까지...
정형화되지 않은 독특하고 색다른 전경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절이다.
화순 운주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의 거북이
'영귀산 운주사' 현판 글씨는 남전 원중식(南田 元仲植) 선생의 글씨다.
일주문 들어서서 바라본 현판에는 '천불천탑 도량'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화순 운주사는 사적 제 312호 이다...
운주사 초입 좌측 산아래에 아무렇게나 서 계신 부처님들이 사찰로 들어서는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계심인지, 각양의 부처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운주사일주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에 놓여있는 수많은 탑들과 좌우 야트막한 동산에 놓여있는 수많은 돌부처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숫자가 너무 많고 생긴 모양도 다양해 다른 절에서 느끼는 엄숙함과 경건함보다는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에 들어선 경이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겨울 비 내리는 산사, 그 고즈넉한 분위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연장바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운주사가 언제 창건되었고 천불천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는 석탑 21기와 석불 93기만 남아 있지만,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석탑과 석불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 30기와 석불 213기가 남아 있었다고 하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석탑과 석불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탑, 석불이 많이 훼손되고 이후 폐사지로 남아있다가 1918년에 법당을 중건했다고 하니 건물들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이 곳의 석탑이나 석불을 가져다가 묘지 상석으로 쓰거나,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축대 등 건축자재로 사용하고, 논두렁과 밭두렁의 축석으로 사용하면서 많이 사라져 버린 것으로 보여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느 절과 달리 운주사에는 석탑과 석불의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그 형태의 다양함에서 석공들의 창의성을 보는 것 같아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절에서 흔히 보는 탑들은 사각형 모양인데, 여기서는 사각형으로 생긴 것뿐만 아니라 원판형으로 생긴 것도 있고, 주판알 모양으로 생긴 것도 있다. 사각형의 탑들도 탑신에 X◇Ⅲ같은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운주사 9층석탑 (보물 796호)
일주문을 들어서 50m쯤 가다보면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이 젤 먼저 객을 반긴다.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는데,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일 높지만 상대적으로 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석탑의 탑신에는 마름모꼴에 사각형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9층석탑을 아래서 위로 올려 보며...
드라마 '추노'에서 보았던 그 9층석탑, 9층탑 탑신에 새겨진 이중 마름모 문양의 꽃잎무늬.
탑신에는 마름모꼴 도형 위에 꽃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아주 파격적 탑형을 보이고 있다. 도선국사의 비보풍수설에 의하면 이 탑은 배의 돛대에 해당하는 탑이라 볼 수 있다.
단단한 화강석에 어찌 저토록 아름다운 조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신라시대 장인들의 솜씨가 놀랍기만하다.
탑 지붕과 서까래는 마치 목재로 만든 것 같다. 모양이 배 형국이라하고 돛대역할을 한다고 한다.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다.
9층탑 옆 우측 동편 언덕 위에 있는삐뚤빼뚤한 돌들을 막 쌓아 올린 일명 거지탑이라 불리는 5층석탑
대웅전으로 가는 길 오른편 산기슭 군데군데 암벽에 기대 선 불상들이 보인다.
이런 석불상들은 10m의 거불에서 부터 수 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운주사의 산과 들에 흩어져 있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거칠고 규칙적인 옷주름, 두툼한 돌다듬 기법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독특한 모습이라 한다.
가족인듯한 석불상은 모양새와 크기가 모두 다르며 지극히 단순화 되어 있고 투박하다. 서민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운주사 층상응회암 아래의 석불군 가, 입체감이 없는 불신에 옷주름이 유난히 강조된 듯한 다양한 불상군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불상 배치다...
불상은 더욱 제각각이어서 크기가 큰것부터 아주 작은 것 까지 종류도 다양한데 불상의 경우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은 모아서 적당한 바위 아래에 전시해 둔 듯 보였다. 불상들이 전시회를 하듯 진열되어 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야지에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고 순박하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고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게 맘속을 파고 든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앞이 유형문화재 칠층석탑과 그 뒤가 쌍교차문 칠층석탑이다.
9층석탑 뒤쪽 너른 잔디밭 위에는 7층석탑을 비롯한 여러 석탑들과 불상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운주사의 석탑 21기도 불상들처럼 산이나 들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서 있는데, 전형적인 석탑 이외에도 구형탑, 원판형탑 같이 특이한 탑도 있으며 3층, 5층, 7층, 9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입구쪽으로 뒤돌아본 모습으로 앞이 XX문양이 새겨진 쌍교차문 칠층석탑, 그 뒤가 칠층석탑이다.
칠층석탑
운주사 7층 석탑이다. 두 7층탑이 무리지어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전체적인 조형방식으로 봤을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석탑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석탑과는 사뭇 다른 석탑들, 그들의 모습은 날씬한 현대의 꽃미남 같은 분위기이다. 이제까지 보아온 석탑들의 통통한 여인네들의 귀티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점에서 놀랍다.
그리고 이 석탑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이 또 하나 있는데 각자의 탑신면에 X,Ⅲ 등의 여러 문양이 있는 것이다.
쌍교차문 칠층석탑
하나는 쌍교차문(xx) 형태의 문양들이 있다.
운주사에서 유일하게 광배를 갖춘 불상 앞에 있는 7층 석탑이다. 탑신에 ×× 교차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유례가 없는 특이한 탑이다. 불탑에는 보통 보살상이나 신장상, 연화문 등을 새기는데, ×× 교차무늬가학계에서도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짧은 소견으로는 부처님의 자비원력이 시방(十方)세계에 두루 비추인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광배석불좌상 (유형문화재 274호) 과 석불군, 또 하나의 불상군을 지난다. 하나 하나 같은 듯 다른 모습의 불상들이다.
이 석탑은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앞 칠층석탑이다. 석조불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다.
운주사 석조 불감(보물제797호)
불감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한다고 한다.
운주사 석조불감이다. 이렇듯 큰 불감은 우리나라에 유례가 없는 유일한 경우로서, 운주사의 석조불감은 절 내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야외 불당의 주존불 역할을 하고 있다. 불감 내에 두 불상이 남북으로 등을 맞대고 있는 쌍배불상은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라고 한다. 야외 불당의 중앙에 있어 주존불 역할을 하는 불감이기도 하다.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모셔신 부처님으로 이렇게 큰 석조불감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라고 한다.
앞쪽 석조불감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인 예이다.
운주사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 중 석조불감은 골짜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앞뒤로 각각 탑이 1기씩 있어 야외 불당의 주존불 구실을 하는 배치를 보이고 있다.
불감은 팔작형태의 지붕을 갖추고 그 위에 용마루 등이 조각되어 있는 목조 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감실내부는 남북으로 통하게 하여 불상 2구가 등을 맞댄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직사각형의 돌기둥을 초촘히 세워 정사각형 형태의 석실을 만들어 그 안에는 두분의 돌부처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않아 있다. 천년의 시간을 저 좁은 석실 속에서 돌부처는 어떠한 깨닳음을 얻으려고 했을까?
남쪽 감실 (앞쪽) 의 불상
석조불감의 뒤쪽 모습이다.
좌상의 형태는 고려시대의 양식처럼 보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으며, 등을 맞댄 쌍배불상 또한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목된다 한다.
북쪽 감실의 불상인데, 코가 유난히 길고 목둘레 선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탑 또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원형의 다층 탑으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탑신은 5.8m다.
원판형7층 석탑은 ‘도넛탑’ 또는 ‘호떡탑’이라는 재미난 별명도 갖고 있다.
원형다층 석탑(보물제798호)
원형다층석탑 , 일명 연화탑... 하단의 기단 부분부터 탑신부까지 모두 원형이며 하단의 기단부분의 면이 10각도인데 언뜻보면 거의 원에 가깝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는데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한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의 석탑, 원형다층석탑 뒤쪽으로 서점, 찻실로 활용하고 있는 지혜당 전각과 보제루가 살짝 보인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널려 있는 탑
서점, 찻실로 활용하고 있는 지혜당 전각이다...
보물찾기 마냥 다양한 형태와 문양의 탑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주사 보제루로 현재 종무소로 사용중이다...
대웅전 구역 앞 이다.
운주사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와불과 칠성바위가 있는 왼쪽 산을 오르는 길과 마애여래좌상과 불사바위가 있는 미륵전 뒤로 오르는 길로 갈라진다. 먼저 대웅전 보고 불사바위쪽을 가기로 한다.
千佛來會雲中住(천불래회운중주) 천불은 모이시어 구름 속에 머무시고,
千塔湧出徧滿山 (천탑용출편만산) 천탑은 샘솟아 올라 산을 두루 채우시네....
나름의 해석을 붙여 본다.
보제루 들어서서 좌측 마당의 풍경이다... 범종각 뒤로 요사들이 편안하게 앉아있다...
범종각
대웅전 영역의 마당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이다..
행해당과 법성료 요사는 대웅전 좌측으로 자리하고 있다...
해행당 요사
해행당 요사 앞의독특한 탑
스님들의 수행공간 요사 '법성료'
당옥들 사이 이곳 저곳에 있는 석탑들....
대웅전 영역의 마당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이다..
살짝 깨지고 비뚤어진 이 탑은 대웅전 앞 다층석탑이다. 탑신은 4층의 옥개석까지만 남아 있고 그 이상 부재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하고 제작시기는 고려시대라 한다.
약수샘
약수샘 앞의 용판...
고졸한 분위기의 대웅전. 법당 뒤 입수룡은 풍수 24방위 중 간룡(艮龍)으로, 법당의 좌향은 축좌미향으로 보인다. 입수룡쪽에 산신각이 있어 풍수와 토착신앙이 습합된 사찰임을 짐작케 한다.
운주사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좌우협시 보살 없이 석가여래불만 모셔졌다. 좌 우에 협시불이 모셔 있지 않음이 특별하다
법당에는 1988년에 봉안된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및 금고가 있다.
대웅전 닫집
향 불단 좌측 벽의 신중탱과 대웅전 내부 벽화
대웅전 뒤 주존불과 등을 맞대고 천수관음 벽화가 있다.
대웅전의 금고 (금속으로 만든 북의 일종)
운주사 대웅전 문살
법당 좌 선익 쪽에 지장전이 있는 독특한 전각 배치다
운주사 지장전의 목조지장천불
운주사 지장전 내부에는 3단의 불단을 'ㄷ'자 형으로 조성하여 존상을 봉안 하였다. 가운데 지장보상상, 그 좌우에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협시 하였다.
향 지장전 불단 좌측 전경
향 지장전 불단 우측 전경
지장전의 측면 전경이다...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로 오르면 산신각과 미륵전이다.
산신각과 미륵전으로 오르며 바라본 운주사 전경이다.
최근에 불사한 미륵전
미륵전 내부의 미륵불
미륵전 앞 주판알을 4개 올려놓은 것 같은 동그란 발우형 다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운주사 산신각
산신각 내부의 산신탱
마애여래좌상 오르 내리는 길에 명당탑도 만났다.....
사층석탑과 원반형 석탑
법당 뒤 입수룡 우측 당판에 있다.
운주사는 주역의 영향을 많이 받은듯 하다.. 원형과 방형의 탑들이 그런듯 하다.. 주역에 원은 천을 방은 땅을 가르킨다... 주역의 天圓地方의 사상이다..
대웅전 뒤편 구릉, 탑 두기가 있는 이곳이 해상왕 장보고가 묻혀 있다고 주장되는 곳이다
원반형 석탑
사층석탑
운주사 법당 뒤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불.
대웅전 뒤뜰 거대한 바위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이다. 운주사 석불군 가운데 유일한 마애불로서 미륵전 뒤 거대한 암반에 새겨져 있다. 광배와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5.16m
산신각 뒤뜰 거대한 바위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자세히 바라보면 바위벽에다가 불상의 모습을 새긴걸 확인할수 있다.
천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형태를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진 않지만 이 불상을 바위벽에다가 새긴 이는 어떠한 마음으로 새겼을까 ( ? ) 하는 궁금증과 숙연함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미륵전 뒷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절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애불이 있는데 나무에 가려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불에서 불사대로 올라간다...
나무 계단이 잘 되어 있어 힘들지는 않지만 오르막이다. 보통사람 걸음으로 불사대까지 5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불사바위는 생각보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기도 했다. 대웅전 뒤 불사바위 위에서 바라본 경내다. 계곡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운주사 가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불사대에서 계곡쪽 석탑군을 바라 보았다.
불사대. 일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공사를 지휘하던 사령대라는 설이 있다.
이 바위에 오르면 절 전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천불천탑의 야외정원이 발 아래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불사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석공들의 돌 다듬는 정소리와 용화세상을 꿈꾸며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민중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불사대에서 석불군 마 방향으로 내려간다...
불사바위에서 미륵전 쪽으로 내려오다 만난 석불군 마 (제5석불)군
석탑을 찾아보는 재미만은 못하지만 석불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대부분 석불들은 깨어지기 쉬운 응회암(중생대 백악기에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이면서 굳어진 암석)으로 만들어졌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화되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부처상을 하고 있어 솜씨 없는 석공들의 습작품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석불은 동편과 서편의 산등성이 자연 암반의 단애면에 6개의 군을 이루며 산재하고 있다운주사 입구 안내판에는 석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옷주름, 둔중한 기법 등은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에 지방화된 석불상 양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아마도 석인상을 제작하던 석공들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 석불상이라 하겠다.
대웅전 뒤로해서...
보제루를 나와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법당을 되돌아 나와 거북바위 탑과 와불이 있는 산을 오른다....
운주사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와불과 칠성바위가 있는 왼쪽 산 오르는 길로 향한다...
서편 언덕 거북바위 교차문 칠층석탑과 거북바위 오층석탑 (일명 남매탑)
절벽 위에 2 기의 석탑이 위태롭게 서 있다.
운주사의 주산인 거북이산(靈龜山)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에 세워진 탑이라 명당탑이라 부른다 한다. 명당처럼 보였다 ...
7층탑에도 탑신에 교차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거북바위 위에 쌓은 석탑을 보면 탑신에 새겨진 문양이 선명하다.
석불군 바군
거북바위를 이고 있는 불상과 탑이 아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7층 석탑을 받치고 있던 거북 바위 아래에는 크고 작은 석불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비를 피하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마치 우리네 인간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운주사 시위불, 서편 언덕 와불 아래에 석불 입상이 있는데, 이 석불을 와불 아래쪽 바위에서 떼어낸 흔적이 있어 와불을 지키는 부처라는 의미에서 ‘시위불’ 또는 ‘머슴부처’라 불린다.
계속 와불보러 올라 가다 중간에 아주 잘 생긴 석불이 보인다. 시위불이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운주사 석불 중 가장 잘 생긴 석불이 아닐까 싶다. 머리에 관리가 쓰는 관대를 얹었다...
운주사 와불, 누어있는 부처님의 정식 명칭은 와형석조여래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이다.
나무계단을 걸어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누운 부처님을 만났다.
와불 바로 앞으로 조그만 조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와불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운주사 와불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산의 중심 쪽에서 천년여 동안을 펀안하게 누어 있는 부처님으로 공식 명칭은 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이다.
와불 전망대에서 본 누운 부처님
드이어... 와불이다!! 와형석조여래불이다..
와불은 운주사지 계곡 정상부에 있는 석불2구로 각각 12.7m, 10.3m의 크기로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누워있다.
운주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운 후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으나 새벽닭이 울어 누워있는 형태로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석조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르면 운주사를 한눈에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은 국내 와불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석불이다.
운주사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게 바로 이 와불인 이유는 그 큰 규모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와불에 얽힌 전설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와불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고,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릴거라는 전설....
남쪽으로 머리를 낮게 두고 있어 참배객들의 마음에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 와불은 큰 쪽이 석가모니불, 작은 쪽이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불은 좌상이고, 비로자나불은 입상으로 조각되었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고통과 환란이 없는 새 세상이 열린다는 설화 때문에 많은 시대의 풍운아들이 민중봉기의 이념적 터전으로 삼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서편 언덕에 있는 거대 와불 2기이다. 이 와불은 아래쪽의 좌상 불상과 위쪽의 입상 불상2기로 이루어져 있다. 두 불상 사이와 다리쪽에 불상을 떼어내려고 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틈이 있어 두 불상을 일으켜 세우려다 만 미완성의 불상으로 여겨지면서 운주사 설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설화는 도선국사와 관련된 풍수비보설(風水裨補說)이다.
도선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의 형상으로 봤는데 배의 가운데에 해당되는 곳이 운주사이고 영남 쪽에 산이 많고 호남 쪽은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기가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여명의 석공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 만에 천불천탑을 쌓기로 약속을 하고, 도술을 부려 해를 일봉암이라는 바위에 묶어두고 석공들을 여러 날 부려먹었다. 석공들이 천불천탑을 다 쌓고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꾀를 내어 꼬끼오라고 닭울음 소리를 내는 바람에 날이 샌 줄 알고 와불을 세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비보설화 때문에 운주사를 배를 운행한다는 뜻의 運舟寺라고부르기도 한다.또 다른 설화로는 미륵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운주사 불상들의 파격적이고 민중적인 이미지에서 연상하여 이 곳을 반란을 일으킨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상을 꿈꾸며 신분해방운동을 일으켰던 해방구로 만들어서 그들의 염원을 담아 천불천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와불이 일어서는 날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와불이다.
정말 새벽닭이 울어서 일으켜 세우지 못한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석불을 암석에서 떠 내려 했던 자국만큼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으니 이 자리에 처음 부터 작정하고 와불로 새겨진 석불이 아니란것 만큼은 분명하다...
부처님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
아무튼 마음 속으로 와불께서 이제 그만 일어서셔서 이 시대의 아픔을 모두 거두어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염원해 본다.......
와불 보고 내려가는 길, 갈림길에서 칠성바위와 칠층석탑 그리고 채석장을 보고 일주문쪽으로 바로 내려 가기로 하고....
채석장을 지나면
와불 아래쪽에 위치한 칠성바위와 7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1호)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의미 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를 하늘의 별과 대입해 보면 거의 일치한다고 전해진다.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운주사 내에 석탑들의 위치가 하늘의 별자리를 옮겨온 것이라고 하며. 위치상 와불이 북극성을 뜻하고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고 하니 그 배치와 많은 과학적 지식이 적용되었음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햇다.
옛 선인들의 천체 관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개의 둥근 바위가 산 중턱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북두칠성의 위치와 밝기에 따른 크기를 표시하고 있고 다른 절에는 없고 이 절에만 있는 독특한 유적이다.
바닥의 원형판석이 칠성바위인데 바위의 크기와 각도가 북두칠성의 밝기와 별자리가 일치하고 있어 칠성신앙의 소산이 아닌가 보고 있다.
내려오면서 건너다 보니, 맞은편 산 중턱에도 탐방로가 또 있다. 석탑도 보이고.... 이곳에서 보는 조망은 거대한 석조 예술품 전시장이다.
운주사 초입 산아래에 아무렇게나 서 계신 부처님들이 우리가 운주사를 다 돌고와도 여전히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계심인지, 각양의 부처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무명 불상들 ~
비록 천불천탑은 아니더라도 이처럼 특이한 석불, 석탑이 한 사찰에 수십기씩 봉안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다.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높이 평가가 되고 있다.
또한 운주사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네 차례의 발굴조사를 하였지만,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세력, 조성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밝히지 못하여 여전히 신비로운 사찰로 남아 있다.....
천불천탑의 도량 화순 운주사 일주문을 나선다...
조용한 천년 고찰을 걸어 나온다.
겨울 비 내리는 산사, 그 고즈넉한 분위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운주사, 절이 아닌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에 온 듯한 느낌 ‘뭉게구름 내려앉은 깊은 산 속 정원에 펼쳐진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의 운주사(雲住寺)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늘 와봐도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고, 새로움을 느끼는 절로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의 기운을 받아올 수 있는 곳, 이곳을 나와 열심히 달려 포항에 오니 저녁 8시가 넘어있다.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화순 사찰 여행에서 부처님의 충만한 사랑을 듬뚝 담고 돌아온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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