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 대적사(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

꽃돼지. 2021. 8. 20. 14:28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  대적사 

 

 

 

2021.   8.   20.

 

 

2021. 8. 12. 작년 10월에 울산 슬도와 대왕암공원을 둘러 보고 무려 10개월만에 다시 딸과 모처럼 함께 해보는 경북 청도 여행이다...

 

서둘러 이른 아침 7:30 포항을 출발해 청도 대운암과 작천사를 보고  읍성 근처에서 통뼈 감자탕 화양점(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 387, 054-371-0630)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청도향교. 석빙고. 청도읍성을 돌아보고 용천사도 본 후 와인터널과 대적사를 돌아보는 바쁜 일정이다.....

 

청도 일곱번째 여행지로 내부 온도가 항상 13~15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 특히 피서지로 좋은 청도 와인터널을 보고 나와 오늘 청도의 마지막 여행지로 와인터널 바로 왼편 옆 입구 길로 오르면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 대적사로 향해본다...

 

 

 

 

 

 

와인터널에서  와인병 조형물 옆 길이 대적사 들어가는 입구이다...

 

 

 

 

안내판에는 100m라고 적혀 있으나 약 300m의 거리이다....

 

 

 

 

오솔길에는 청량한 기운이 그득하다. 청도 와인터널 왼편으로 난 작은 산길을 지나니 하늘을 가린 울창한 느티나무 아래로 넓은 숲속 광장이 나타난다.   하늘도 가린 숲속 광장은 한적한 산사의 풍경과 어우러져 고즈넉함을 느끼게 한다.

 

와인터널에서 나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에 대적사라는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작은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라는 자랑에 비해 아주 소박한 절집이다.

 

 

 

 

300년 넘은 도량답게 진입로 주변은 우람한 노거수들이 몇 그루나 서 있다.   몇 그루만으로 숲을 이룰 만치 크고 잘 생겼다.

 

 

 

 

울창한 느티나무 숲 한 켠에 막 비추기 시작한 한 줌 햇살을 등지고 한 기의 부도가 서 있다.

 

 

 

 

청도 대적사 부도 (淸道 大寂寺 浮屠)

아담한 담장으로 둘러쳐진 입구에 다 달으면 금강문 조금 못미처 대적사로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석축 위에 조선후기 제작연대가 乾隆十七年(1752)인 석종형(石鐘型) 승탑 1기가 눈 앞에 나타난다, 형태는 석종형으로 하단에 별도의 받침석을 설치하고 있다. 석종형 부도이면서도 마치 불두 뒷모습 같은 풍암대사 부도가 길손을 맞이한다.

 

부도 전면에는  ‘乾隆十七年 豊嚴大師 順敏 壬申二月初八日安’(건릉십칠년 풍엄대사 순민 임신이월초팔일안) =건릉17년(조선 영조28년)은 서기 1752년이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있어 이 부도가 1752 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몸둘에 풍엄대사(豊嚴大師) 순민(順敏)이라고 적혀 있는데 풍엄대사에 대하여는 알려진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1950년 6. 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대적사에는 약 10여 기의 오래된 승탑(부도)이 있었으나, 6.25 전란 때 대부분 분실되었다고 전한다.

 

 

 

 

그 앞에 잠시 손을 모아 기도 드리고 느티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대적사 금강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담한 담장으로 둘러쳐진 입구에 다달으면 다소 가파른 돌계단 둔덕을 걸어 올라가면 금강문이다.  금강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제법 가파르다.  

 

 

 

 

계단 입구에는 공적비 1기가 서 있다...

 

 

 

 

청도 대적사 금강문, 그러고 보니 이곳은 일주문이 따로 없고 훤칠한 금강역사가 좌우에서 반겨준다.

 

 

 

 

현판은 없지만 금강문에는 금강역사인 아금강, 흄금강이 대문에 그려져 대적사를 호위하고 서있다.

 

 

 

 

 

 

 

 

 

 

계곡의 느티나무 숲길을 통과하여 금강문을 들어서면  언덕배기에 극락전ㆍ명부전ㆍ산신각 3채의 전각이 보인다.   주택으로 치면 모두 단칸방 수준이어서 애초부터 종교시설 특유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천왕문을 통해 반듯한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 마당에서 바라본 이 곳의 금강문은 특이했다.

이 곳은 대문 양쪽에 벽화로 금강역사를 그려 놓았고, 그 옆 자리는 저렇게 방을 만들어 두었다.   예전 객승이 머물던 곳인가 싶다.   측면에는 아직도 아궁이가 남아 있고 지금도 거처하는 듯 했다.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대적사.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이다.

대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화양읍 송금리의 동학산 기슭에 자리 잡은 대적사는 신라 헌강왕2년(876년) 보조선사(804~880)가 토굴로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기 보양(寶壤)이 중창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방화로 폐허가 된 사찰을 1635년경 초옥3칸 암사를 짓고 대적사라 하였으며, 1689년(숙종15년) 서월 성해(瑞月 性海)대사가 중수하여 삼존불을 모시고 다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주요전각으로는 금강문,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 요사가 전부이다....

 

 

 

 

대적사 극락전(보물 제836호)

대적사는 조선 숙종 15년(1689) 성해대사(性海大師)가 건물을 세우고 불상을 모시면서부터 비로소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는 법당이다.

대적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인 876년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하였으나 오랫동안 인적이 끊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 자리에 초옥 3칸의 암자를 짓고 대적사라 불렀다.

 

조선후기인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의 건물로 1689년(숙종 15)에 이르러 성해대사가 삼존불을 모시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에 18세기경에 중건된 건물로 추정된다.

 

부처님께 인사 드리고 둘러본 법당은 정말 경이롭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가는 법당 장엄, 이 곳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평면구성은 어칸은 넓게, 좌우 협칸은 좁게 한 조선후기 간잡이법을 보여주고 있다. 창호는 하부에 종방향으로 2등분하여 궁판을 넣은 띠살무늬로 어칸에 3분합, 협칸은 쌍여닫이문을 두었으며 우측면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외짝여닫이문을 달아두었다.

 

 

 

 

 

 

 

 

 

 

 

극락전 어간문 양쪽 평방 위 극락전 편액 옆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용이 있는것은 법당을 반야용선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극락전 목조여래삼존불로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한 극락전이다. 

 

 

 

 

불단 좌측벽의 영가단과 신중탱

 

 

 

 

불단 우측의 칠성탱

 

 

 

 

 

 

 

 

 

 

 

 

 

 

건물 안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는데 천장은 앞뒤로 층지게 만들어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불단 위로는 불상을 엄숙하게 장식한 간략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천장은 층급이 있는 우물천장으로, 상단천장은 종보 하단 높이에 설치되었다.   하단 천장은 어칸과 협칸이 다르게 구성되었는데,  어칸에는 내목도리장여 높이에 설치되었고,  협칸에는 내2출목장여 상단에 사용된 가첨장여 높이에 설치되었다.   협칸 천장의 반자는 단순한 각재를 사용하여 구성되었던데 비해 어칸 상단 천장의 반자는 장식된 소란이 사용되고, 반자틀이 교차되는 곳에는 연꽃 문양의 장식재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물천정에 용두, 용신, 용꼬리, 여의주를 조각한 장식판 등을 돌출시키거나 매달아 위계에 따라 장식의 정도를 다르게 하였다.

 

 

 

 

 

 

 

 

 

 

내외2 출목의 5량 가구로 고주 없이 대량과 종량을 걸고 천장은 우물 형으로 앞뒤는 대량에, 가운데는 종량에 대어 층이지는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1984년부터 보물 제83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별별 꽃으로 장식된 고색창연한 닫집, 줄에 매달린 조각이 구름이다.

닫집 바로 앞에는 줄에 매달린 기이한 모습의 나무 조각이 하나 있는데 구름문양이다.  아마 허공을 떠도는 구름이기에 어디 붙여 새기지 않고, 저렇게 허공에다 두었나 보다.

 

 

 

 

극락전의 우물천정과 닫집과 극락전 공포와 서까래의 고고한 단청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앞뒤는 대들보와 결구되어 있고,  가운데는 종보에 결구되어 층이 지게 만든 특이한 층급천장이다.

 

닫집 앞에는 천장을 뚫고 내려온 용 두 마리가 조각돼 있다.   닫집 위에 있는 용도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또 용 바로 앞에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구름 한 조각이 천장에 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 곳 용은 특이하게도 천장을 뚫고 상체(?)를 내밀고 있다.

닻집 좌우로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어 불단을 수호하고 있으며, 천장 어느 부분에선 꿈틀대는 몸의 일부가 드러나 있고, 더 재미있는 건, 그 꼬리는 대들보 건너편에 삐죽 드러나 있다.

 

대들보 오른쪽 용의 상체와 하얗게 보이는 용의 몸 일부, 대들보 건너편 좌측엔 갈기 달린 용의 꼬리가 보인다.

 

 

 

 

극락전의 벽화는 전각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으나 당초 벽화가 공포사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18세기 후반의 벽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공포는 전후열에만 시설한 다포계열로 내외 2출목이며 주간포는 1구씩 두었다.   그러나 창방은 양측면에도 돌려 두었다.   전면의 제공은 외측은 연화를 얹고 내측은 전체를 하나로 하여 연당초무늬로 초각하여 대량을 받도록 하였으나 뒤편은 초각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다르다.   상부가구는 내목도리를 두지 않은 관계로 삼분변작으로 처리하였으나 중도리 사이가 좁고 종량이 높아져 천장이 어색하나 대량의 천연스러움이 어색함을 다소 희석시키고 있다.

 

천장에는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五瓣花)인 보상화문의 단청(丹靑)을 하였는데 오랜 세월임에도 고고하고 은은한 빛깔이 신비롭기만 하다 .

 

우물井자 칸 모서리마다 앙징맞은 연꽃이 피어 있고, 큼직한 꽃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칸칸이 붙어 있다.

 

 

 

 

 

불단 우측 상부벽 이 곳 역시 구석구석 크고 작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측은 삼고초려도로 직역하면 초가집에 세 번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후한 말, 유비가 융중에 기거하던 제갈량을 얻기 위해 몸소 제갈량의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던 일화에서 유래하였다.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으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한다는 의미

좌측은 달마와 혜가 단비도

 

 

 

 

이 극락전은 화려한 공포의 배치와 용머리 장식 및 구름문양의 조각 등 전각가구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우수한 건물로서 조선 건축 중의 백미라고 한다.

 

대적사 극락전이 반야용선으로 적극적으로 운용되었다는 사실은 법당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향 좌측의 벽화는 여러모로 주의를 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보살의 주체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다.  ‘인로왕’이라는 말 자체가 길을 인도하는 최고의 길잡이라는 뜻이다.   인로왕보살은 반야용선의 선두를 맡는다.  길의 인솔자이므로 형형색색의 천이 나부끼는 번을 들고 계신다.   지장보살, 혹은 관세음보살은 배의 선미에서 안전운행의 자비력을 발휘하신다.  벽화에서는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육환장, 보주를 든 지장보살을 신령한 구름 속에 나란히 모셨다.   두 보살의 벽화는 극락전 법당이 반야용선의 방편이기도 함을 불교의례 양식으로 보여준다.

 

 

 

 

 

건물의 가구는 무고주 5량가로 되어 있으나 장연과 단연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통서까래로 지붕틀을 구성하고 있다.

3제공으로 이루어진 포작 위로 대들보와 종보를 놓았다.

 

벽화 바로 위 나무결 따라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채도 높은 길상화를 베풀었고,  또 그 위 좁은 상벽에는 율동적인 비천벽화를 조영한 까닭이다. 그것은 상서의 장면을 상징하는 보조관념들이다.

 

 

 

 

 

극락전 내부 벽화 중에서 향 좌측의 벽화는 가장 시선을 끄는 장엄은 거인이 도자기 대접 같은 그릇에 다섯 명의 사람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벽화 속 거인은 두 분이다.   좌청룡 우백호를 염두에 둔 듯이 각자 청색과 흰색 옷차림을 하고 그릇을 들고 있는데,  흰 옷의 거인의 그릇은 비어 있다.   아라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구름 속 하늘사람임은 분명하다.   도대체 이 거인들은 누구시며, 무슨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 벽화는 대단히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반야용선의 개념으로 보면 도상의 의문은 풀린다.   벽화를 조영한 예술가는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방식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방식을 발상해냈다.   용선(龍船)이라는 배의 수단을 빌리거나 연화화생의 일반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거인이 하늘로 단숨에 들어 올려주는 방식을 착안했다.   반야용선의 용 대신에 거인의 변화신을,  배 대신 그릇을 대체하면 된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은 변함없이 함께 동행 하신다.  반야용선이 수평적 운동의 항해라 한다면, 거인을 통한 왕생은 수직적 차원을 뛰어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선례가 없는 독창적인 벽화장엄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은 반야바라밀의 길이다.   지혜의 뗏목을 타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다.   대적사 극락전의 고졸한 뗏목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한 줄기 희망의 빛을 푸르름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거인이 왕생자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희귀한 벽화다.   그릇에서 다섯 명이 화생하고 있다.

 

 

 

 

 

 

극락전 법당의 소종

 

 

 

 

 

 극락전의 뒷 모습이다...

 

 

 

 

 

 

 

 

 

처마는 전후면 모두 서까래와 부연을 갖춘 겹처마로 구성되었고, 양측면에는 박공과 방풍판이 설치되었다.   극락전은 5량가이면서 서까래는 장연만을 사용하여 독특한 구성을 보이는데 미황사 응진당의 경우에도 동일한 처리방식이 보인다.

 

 

 

 

 

 

 

 

 

극락전 어간문 양쪽 평방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한쪽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고, 다른 한 쪽 용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입을 열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상을 '아상(吐像)'이라고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상을 '훔상(含像)'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처음(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즉 이 법당이 만들어진 날부터 없어지는 끝 날까지 불당을 수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크지 않은 법당에 오밀조밀 새겨진 나무 조각들이 예쁘고 정감있다.

 

 

 

 

 

극락전 기둥의 주련

                                      佛身普徧諸大會  불신은 모든 큰 회상에 두루 하시니

                                      充滿法界無窮盡   법계에 충만하여 다함이 없네

     普往十方諸國土   시방의 여러 국토에 모두 가셔서

                                      爲救世間而出現   세간을 구하기 위해 출현하셨네.

 

극락전에 오르는 돌계단 조각이 일품이다. 섬세하고 멋들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투박하지만 생동감과 해학이 넘친다.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맞배지붕을 한 작은 건물이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물론 우수한 건축미에 있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 건물의 기단 때문이다.

극락전은 어느 사찰이나 극락세계를 상상해 꾸며놓은 곳이다.

이 곳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찰에서는 극락전 벽면이나 법당 내부를 빌려 극락을 형상해 해 놓았다면, 이 곳 대적사는 기단에서 부터 그런 상징을 새겨뒀다는 것이다.

 

이 법당은 화강암 기단을 여러 가지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였는데, 기단 축대면석의 H자 선각과 거북과 게, 연꽃문양들, 소맷돌의 용비어천도 등으로 장엄함으로써 기단 축대를 바다로 상징화하여 중생들을 태우고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지혜의 반야용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극락전의 기단은 큰 석탑처럼 이중으로 되어 있고, 면석(面石)에 연꽃과 거북무늬가 양각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대적사 극락전 건물의 특성은 기단에 집중된 듯하다. 월대와 같이 상하단에 높게 댓돌을 쌓고 가운데에 소맷돌을 갖춘 돌계단을 두었다. 넓은 장대석판에 종횡으로 선을 양각하고 선이 교차하는 부분에 꽃문양 등이 양각되어 있으나 부재들이 부분적으로 맞지 않고 계단 소맷돌에는 구름문양을 새겼는데 댓돌과도 접합부분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중창하면서 초창 때 사용되었던 부재들과 일부 신재가 혼용된 결과라 보인다.

 

 

 

 

 

 

계단 왼쪽의 기단

극락전 기단부 계단 좌측의 면석 장엄문양으로 선과 선의 교차점이나 면석에 커다란 꽃, 단순한 원형, 혹은 꽃잎 모양의 조형을 새기자 면석은 연방 꽃밭으로 활력을 갖춘다.

 

 

 

 

 

 

극락전 기단 축대면석의 H자형 선각

2단으로 조성된 기단은 상층기단의 정면에 연꽃무늬가 양각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H'자형의 선각이 연속되어 있다. 'H'자형의 선각이 연속되어 있는 것은 배의 용골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바다 생물들이 용선으로 올라가는 구원의 통로이다.

 

여러 조각의 석재를 이어 붙어 하나의 기단을 이루고 있지만 중간에 여러 번 개.보수가 있었는지 각 돌조각 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고 이음새도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기단이 의미하는 뜻을 그대로 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 조각이 삼세하고 분명하다.

 

 

 

 

대적사 법당 극락전 기단부가 주목된다.

극락전 건물은 반야용선이고 극락전 법당은 반야용선의 선실이고 기단(축대)는 출렁이는 바다와 맞닿은 선체의 외곽부분이다..

그래서 기단엔 연꽃무늬도 있고,  배가 뜨는 바다임을 상징하는 돋을새김의 거북, 게, 파도문양까지 새겨져 있다.

 

기단부의 면석은 막돌이나 장대석이 아니라 석탑의 기단부처럼 면석으로 조합해서 매우 독특하다. 좌우 기단부 면석의 기본문양은 두텁게 가로 지르는 수평선 하나에 일정한 간극씩 수직선을 내려 평면을 분할하고 있는 형태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가장 간결한 형태로 기본문양을 얼기설기 대충 짜두었다.  칸딘스키는 점, 선, 면에서 수평선은 차고 무한한 움직임 중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이고, 수직선은 따뜻하고 무한한 움직임 중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라고 하였는데, 이 곳의 수평선과 수직선은 체감을 유도하는 어떤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비뚤비뚤하고 들쑥날쑥한 것이 엄격함이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또 기단암석의 색상은 기존의 화강암과는 달리 암갈색과 짙은 회청색 덩어리를 규칙 없이 요리조리 배열했다.   불규칙적인 색과 선의 조합에 의한 H자 면 분할에서만도 구성의 생동감과 활력이 생기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난다.

 

 

 

 

계단 양쪽 옆면에 용을 새겨 놓은 기단 부분의 조각들은 다른 건축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 되고 있다. 축대의 계단은 소맷돌을 갖추었다.

 

향좌측의 소맷돌에는 나선형으로 돌돌 감은 넝쿨문양과 커다란 잎을 두텁게 돋을새김 했다.

바다의 사나운 물결을 의미하는 소용돌이가 깊게 새겨져 있는데 태극무늬 같기도 하고 고사리무늬 같기도 하다.

 

돌돌 말은 넝쿨은 생명력의 강한 응축으로 생명의 연속성을 담지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짙은 암갈색의 재질에서 묵직하고 두터운 힘이 우러나온다.

 

 

 

 

 

 

 

 

 

계단 앞쪽에 세워진 돌에도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한쪽의 것은 사라진듯....

 

 

 

 

대적사 극락전 돌계단에 새겨진 거북은  투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극락전으로 오르는 가운데 계단

향우측의 소맷돌에도 생명력의 기운이 넘친다.

용틀임으로 꿈틀대는 용과 나선형 문양,  연꽃 봉오리,  두 마리의 거북이 등이 마치 선사시대 암각화를 보듯 투박하고 고졸하게 새겼다.  용의 표정과 거북이의 동작에서 천진난만함이 가득하다.  아이들 그림처럼 꾸밈없이 순수하면서도 화면의 분위기는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명랑하기 그지없다.  나선형 넝쿨문,  연꽃 봉오리,  거북,  용틀임의 용 등을 통해 이 기단부의 세계가 생명력으로 충만한 화엄의 세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선의 모양이 파도 혹은 구름을 닮아 있다.

여의주를 문 용이 파도를 박차고 막 날아오르는 모습이 조각돼 있고, 주위에는 연꽃 봉오리, 턱 아래엔 거북이 한 마리 기어가고 있다.

절의 안내판에는 이 그림을 '용비어천도(龍飛御天圖)'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려는 용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용머리 앞쪽에 연꽃봉오리가 있다

하늘을 나는 용이면 어떻고,  바다를 막 벗어난 용이면 어떤가?   거북도 게도 용이 이끄는 반야선에 타는 일이 중요할 뿐....

 

 

 

 

이 기단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돌계단 오른쪽 옆에 장식된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조각이다.   용 조각 아래에는 거북이 놀고 있고 용머리의 앞쪽에는 여러 개의 연꽃 봉오리가 있다.  기단의 소맷돌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진 곳은 국내에서 이 곳이 유일하다.

 

'용비어천도'란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또는 조각을 말한다.   단측면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장식 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으로 건축 의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계단 오른쪽의 기단

극락전으로 오르는 가운데 계단 향우측의 기단 면석의 앞면 전체에는 H자형으로 굵은 기둥이 돌출되게 연속으로 새겨져 있고  그 기둥 중 하나에는 어미거북과 새끼거북으로 어미거북이 새끼를 물고 게를 피하는 모습 , 그리고 아래쪽에는 게 한마리가 새겨져 있고   그 옆으로는 3엽의 연꽃잎 속에 어미와 새끼거북이 조각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이 어미와 새끼

자세히 보면 게가 위로 기어오르며 접근을 하자 어미 거북이가 새끼 거북이의 한쪽 다리를 물고 끌면서 게를 피하여 위로 달아나는 형상이다.

이 극락전의 기단에는 절간의 문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게가 등장하는 것이다.

 

게가 기어올라오자 어미거북이 새끼거북의 다리를 물고 끌며 위로 피하고 있다.

 

 

 

 

기어오르는 거북 모양이 다소 투박하지만 생동감과 해학이 넘친다.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게다가 바다게의 집게발에 쫓기는 듯한 어린 거북이와 그를 보호하려 새끼발을 물고 가는 어미의 등장은 동화적인 천진함과 민화풍의 익살을 고양시킨다.   기단에 동화의 판타지 세계와 익살스럽고 낭만적인 민화의 세계가 어우러져 있다.  반야용선이 가진 판타지의 무대장치가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3겹의 연꽃 속에 두마리의 거북이가 보이고 연꽃 옆에는 고사리문양이 있다.

연꽃 속에 새겨진 거북은 서방 극락정토의 연지에 핀 연꽃 속의 거북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연꽃 양 옆의 물고기 곡옥 문양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기단에 연꽃을 새겨 놓은 것은, 반야용선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 위에 떠있는 연꽃과 같은 것으로, 서방 극락정토의 구품연지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상징한다.

 

 

 

 

거북은 3겹의 연꽃 속에서도 발견되고 계단 앞의 독립된 석조물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이것은 바로 이 기단이 바다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극락전 기단부의 계단 우측 면석 장엄문양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석조기단은 거친 바다를 의미하며 극락전은 바로 극락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한 척의 배, 즉 반야용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야용선도가 그려진 사찰의 벽화를 보면 대부분 중생들이 타고 있는 반야용선이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을 대적사 극락전 건물에 적용해 보면 극락전 법당은 반야용선의 선실이 되고, 기단(축대)은 출렁이는 바다가 된다.

기단 면석에 새긴 거북, 게 등의 수생동물들은 바로 기단을 바다로 상징화하여 새겨놓은 것이다.

 

 

 

 

 

 

 

 

감 와인터널 위에 소박한 절간 하나인 대적사 풍경이다...

 

 

 

 

향 극락전 좌측에는 대적사 명부전이 있다...

 

 

 

 

 

 

 

 

 

근래에 지어진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목각탱을 봉안하고 있다...

 

 

 

 

 

 

 

 

 

 

향 불단 좌측 벽면에는 영가사진을 모셔 두었다...

 

 

 

명부전 측면

 

 

 

 

명부전 후면

 

 

 

 

명부전 앞 담장 옆에는 공덕비가 있다...

 

 

 

 

극락전 뒤로 산령각이 보인다...

 

 

 

 

 

 

 

 

 

 

 

 

 

 

산령각에는 산신탱을 봉안하고 있었다...

 

 

 

 

 

 

 

 

향 극락전 우측으로는 요사채인 香閣이 자리하고 있다.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대적사.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이었고 정갈하게 매만져 다듬어 놓은 도량,  사람으로 북적이는 가까운 와인터널에 비해 참으로 한적했다...

 

 

 

 

 

 

 

 

 

 

대적사 금강문을 나서며...

 

 

 

 

금강역사인 아금강, 흄금강이 대문에 그려져  호위하고 서있는 대적사를 나온다....

 

 

 

 

 

맑은 새소리가 전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청도 와인터널이 생기고 나서 주말이면 부쩍 대적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었지만,  여전히 대적사는 그 사명처럼 커다란 고요함, 한적함이 느껴진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사찰 앞 울창한 느티나무 숲 광장의 고즈넉함이 그대로 경내로 이어지고 있다.

지저귀는 새소리,   숲에 이는 바람소리,  요사채 앞에서 나른한 눈빛으로 웅크린 채 낯선 방문객을 바라보는 까만 고양이,  사람의 발소리마저 들릴 듯 한적한 사찰의 일상 속에 잠시 머물며 새삼 위안을 받는다.

 

대운암과 작천사를 보고 점심식사하고 청도향교. 석빙고. 청도읍성을 돌아보고 용천사도 본 후 와인터널과 대적사를  이렇게  바쁘게 돌아보니...    딸과 함께한 알찬 청도여행에서  또 한 번의 목요일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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