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왕조의 제 2대 황제인 민망황제의 왕릉
응우옌 왕조의 제 2대 황제인 민망황제의 왕릉
2018. 12. 29.
딸과 함께 배트남 다낭으로 2018. 12. 17 ~ 12. 21, 3박 5일 일정 여행이다. 다낭 세렌호텔 투숙 후 세째날 일정을 시작한다. 한국과 시차는 다낭이 2시간 늦는 편이다.
오늘 세째날 일정은 아침에 일어나 미케비치 해변을 산책하고 다낭의 국립공원인 바나산, 후에로 이동 후 민망황제 왕릉 , 후에 시내 씨클로 타기와 맛사지로 피로풀기 하는 일정이다....
미케 해변의 세렌호텔에서 아침을 맞은 후 5일 일정중 3일 일정이 시작된다.........
베트남 최대 크기의 국립공원인 바나산을 보고 점심식사 후 오늘 두번째 여행지인 후에 민망왕릉으로 이동 한다...
다낭을 떠나 랑코지역을 지나 후에로 2시간 정도 이동한다....
후에로 이동하면서 바라보는 랑코는 진주가 많이 생산된다는 바다가 참 이쁜 곳이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인 듯....
이곳은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후에로 넘어와서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민망왕릉으로 왕릉 주차장이다.
안방(An Bang) 마을의 캄케(Kam Ke)언덕에 다다르게 된다. 민망왕릉은 베트남 중부의 후에 시에서 12km를 덜가서 나오는데, 후에 주변의 응웬 왕조 왕릉 중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잡고 있다.
왕릉 주차장 한쪽의 상가
출입구 자홍문이 보인다...
자홍문 앞에서 매표 후
출입문을 들어선다.
자홍문을 통과하여 민망왕릉 안으로 들어가니
왕릉을 감싸고 있는 해자가 제일 먼저 보인다..
입구부터 넓은 정원과 연못으로 둘러친 모양새가 그냥 왕릉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인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뽀송뽀송한 흙 길을 조금 걸으니
이곳 후에, 아니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민망 왕릉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일렬로 도열해 있는 석상이 보인다. 가장 바깥쪽은 코끼리, 그 보다 안쪽이는 말, 그 안쪽에는 문무백관의 석상이 있다.
능과 일직선상에 있는 능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가운데 문은 황제의 관이 들어갈 때 단 한번만 열리고 그 후에는 굳게 닫혀 있다고 한다.
민망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좌우 입구에 있는 해태상
민망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이 왕릉은 민망왕의 생전에 계획되어 다음 왕에 의하여 1841년~1843년에 건설되었다. 민망왕은 지아롱(Gia Long)왕의 넷째 아들로서 응웬 왕조의 두번째 왕이었으며 재위 기간은 1820년~1840년(20년)이었다. 그는 활달한 치적으로 백성들에게서도 칭송이 높았다고 한다.
민망황제의 공덕비는 황제 사후 민망황제의 아들인 3대 황제인 티에우찌(1841~1847)황제가 세운 것이라 한다.
민망황제의 공덕비가를 지나와서 바라본다..
호수와 연결된 수로
민망황제와 황후의 위폐를 모셔 놓은 숭은전으로 향한다..
민망황제와 황후의 위폐가 있는 사당 안은 빨강 + 황금색으로 너무 화려해서 사당보다는 왕궁내부 같은 느낌이다.
숭은전은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생활공간 처럼 보였다. 위폐를 모신 사당 내부에는 당시의 옥쇠와
생활자기등 민망왕이 살아 생전에 사용하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망황제는 1791년 출생하여 1841년 생을 마감하였고 베트남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응우옌 왕조의 2번째 왕이었다.
민망 왕은 1820년부터 1840년까지 20년간 통치를 했다고 한다.
민망왕은 수로를 많이 만들기도 하면서 국가의 기반시설 정비와 더불어 많은 업적도 남겼다고 한다. 우리로 말하면 세종대왕 같은 분이라고 한다.
민망황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시도했던 군주로 월남(越南)이라는 이름 대신 다이남(大南)으로 국호를 바꾸기도 하였는데 북쪽엔 중국이, 남쪽엔 베트남이란 뜻에서 두 나라가 서로 동등하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과거제도를 정비하고 지방을 통제, 유학 보급에도 힘을 썼던 민망황제는 고려 인삼의 애호가이기도 했다. 관료와 군인들에게 인삼을 나눠주면서 충성을 확인 받았다고 한다.
민망황제는 자신의 무덤 설계에 직접 참여했다고 하는데 민망 왕릉은 민망 왕 재임 시절에 설계가 되었고 사망 1년 전인 1841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843년에 걸쳐서 3년 만에 완공되엇으며 건설에 1만명의 병사와 노동자가 동원되었다고 하는 민망황제릉은 엄숙하고 옛스러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중국의 풍수지리 사상을 받아들여 조성되었다고 한다. 무덤보다는 고즈넉한 왕궁의 정원이나 별궁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다. 현존 왕릉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환기 창문이 참특이해서...
사당 좌우에 있는 건물은 죽은 민망황제의 내시와 시녀들이 거쳐했다는 곳이라 한다.
숭은전을 나와서...
사당을 지나면
민 라우라는 정자가 나온다. 왕이 휴식을 취했다는 곳으로 주변을 연못과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다.
연못 너머 보이는 2층 건물은 민 라루(명루)건물이다.
이 건물과 이어지는 다리는 3개로 중앙은 왕만이 다닐 수 있고 좌우로는 문관과 무관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묘를 감싸고 있는 호수
명루는 민망왕의 공헌과 재능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누각으로 1841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커다란 민 라우 안에는 침상 같은 것이 있는데 황제가 묻히기 전에 황제의 시신을 올려놓고 제사를 했을 때 사용했던 것이라 한다. 황제의 마지막 안식장소에 다다르기 이전에 거치는 임시장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민망왕은 호색가였다고 전해진다.
문헌에 나온 것만 후궁이 500명 자식이 150여명이라고 한다.
민망황제는 500명이나 되는 부인과 150명의 자식을 둔 왕으로도 유명한데 500명의 부인과 150명의 자식이라니... 이름은 커녕 얼굴이나 제대로 기억할 수 있었을까 싶다. 179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하였으니 어마어마한 여성편력과 정력이 아닐 수 없다!
민망 왕이 후궁들과 잠자리 들기 전에 꼭 마셨다는 술이 있는데 그 술이 바로 '민망주'라고 한다.
연못 주위에 꽃을 많이 심어 잘 가꾸어진 정원 느낌이다.
사색을 즐겨 했던 왕이라 그런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 하면서 조용한 분위기의 특성을 가진 건축물과 조경들!
민망왕 본인이 직접 설계해서 죽기전 1년부터 지었고 생전에도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살아서는 휴식처로, 죽어서는 영생을 위한 안식처로 삼기 위해 3년 동안에 걸쳐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과 이어지는 다리는 3개로 중앙은 왕만이 다닐 수 있고 좌우로는 문관과 무관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마음이 결백하고 말과 행동이 공정하고 웅대함'의 뜻을 담고 있는 '정대광명'... 우리나라는 '광명정대' 로 많이 쓴다.
저 곳이 민망왕이 묻힌 곳?
민망황제릉의 끝에는 연못이 놓여진 다리를 지나 왕이 묻혀 있는 곳이 나타난다. 언덕모양의 왕릉 위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면 굳게 닫힌 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민망황제의 릉이다. 해발 3m 높이로 둘러 쌓여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민망왕릉은 왕릉 중에서 가장 걸작인 곳이다. 단순한 왕릉이 아니라 하나의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불세출의 건축물이다. 규모도 놀라울 정도로 크다.
금지된 문틈으로 바라본 ...
묘를 감싸고 있는 호수 중간 왕이 지나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인공호수인 푸키엠 호수
다시 명루쪽을 바라 본다...
명루 양옆으로 2개의 비석도 보인다..
명루 앞에서...
호수를 끼고 출입구 쪽으로 나간다...
이 호수는 인공호수로 푸키엠 호수라 부른다.
입구의 민망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각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출입구 자홍문을 나선다...
자홍문과 주차장 사이의 멋진 풍경이다.
민망왕릉을 둘러 보고 주차장 상가에서 가이드가 사주는 사탕수수 주스를 한 잔씩 마신 후에 시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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