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민당'과 .장기척화비' 그리고 '선정비'(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9-2번지)
근민당과 장기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 제 224호) 그리고 선정비
2015. 10. 6.
2015. 10. 2. 오늘은 포항의 남구 장기면 지역을 탐방한다...
여행은 길 위의 움직이는 학교이다.
운명과도 같은 새로운 만남과 사람과 삶을 배운다. 서로 사랑하는 법, 감동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나를 용서하는 법, 화해하는 법도 배운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술을 배우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도 배운다.
또한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며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떠난다. 삶의 중간에서..
이런 햇살 좋은날 나홀로 행복한 나만의 포항 남구 장기면 일대 문화탐방을 나선다.
탐방할 문화재와 여행지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정천리 선정비와 대곡리 김해김씨 열녀비, 학곡리 학삼서원, 장기읍성, 장기향교,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척화비, 근민당, 선정비, 금곡리 금산서원과 삼효각. 허진수 유허비, 계원2리 화재 이언적 시비, 양포리 정인품 절효각, 수성리 정유서 유록 유허비, 임중리 김사민 종효각, 장기초등학교 교정의 송시열. 정약용 사적비와 은행나무, 마현리 삼명서원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다섯번째 여행지는 장기읍성안에 있는 읍내리 202번지에 위치한 장기향교를 보고 여섯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9-2번지에 위치한 '근민당'과 .장기척화비' 그리고 '선정비'가 있는 장기면사무소로 향해 본다........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근민당(近民堂)이라는 건물을 담아 본다.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으로 보인다.
장기현 관아 동헌 건물로서 장기읍성에서 1922년 이축(移築)하여 장기면사무소로 이용하였으며, 그 후 1960년 현 위치로 이축하였으며 현재 장기면사무소 별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근민당 좌측에 있는 장기 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24호)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사암(砂巖)으로 된 척화비는 장방형 판석(長方形 板石)으로 6면을 마연(磨硏)한 다음 앞면에 각자(刻字)하였다.
이 대원군척화비(大院君斥和碑)의 원래 위치는 장기읍성 내에 있었던 것을 1951년 4월초에 장기(당시 지행면)지서 입구에서 찾아 현재 장기면사무소 정문좌측 도로변에 세워두었다가 1990.12.1 장기면사무소 정원에 이설(移設)하여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척화비의 비문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吾萬年子孫丙寅作 辛未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만년자손병인작 신미립)」「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며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이 비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룬 후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는데 임오군란 때 모두 철수되었다.
척화비의 높이는 120cm, 폭 45cm, 두께 21cm로 경북도내에 구미, 청도 척확비와 함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장기라는 지명을 되찾는 일에도 많은 사연이 있었다고 하니......
장기(長鬐)의 지명은 지답(只沓), 기립(鬐立), 장기(長鬐), 봉산(峯山), 지행(只杏)으로 불리어 오다가 지역 주민들의 지역 명칭 회복운동으로 1991년 12월 1일 다시 장기(長鬐)로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관찰사, 군수, 현감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현재 면사무소 정문 들어가며 우측에 선정비 11기가 있다.
여섯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9-2번지에 위치한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근민당'과 '장기척화비' 그리고 '선정비'를 보고 장기면에 근무하는 공무원 시절에 알던 지인을 만나 맛난 식사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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