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장군의 재실을 고쳐 사용하고 있는 고택, 월암재
김호 장군의 재실을 고쳐 사용하고 있는 고택, 월암재
2015. 6. 22.
2015. 6. 19.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살아있어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그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하다
오늘은 포석정지를 중심으로 경주 배동과 탑동을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탑동의 포석정과 지마왕릉을 보고 인근의 양산재와 월암재를 본후 남간사지 석정. 경덕사. 신라 왕릉인 일성왕릉,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삼층석탑, 김호장군 고택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신라 천년 역사의 시작인 곳인 양산재를 본 다음 네번째로 바로 인근의 월암재로 향한다...
양산재에서 남간마을쪽으로 200m만 가면 왼쪽 산자락으로 양지바른곳, 경주시 탑동 749-2번지에 월암재가 자리하고 있다.
월암재는 신라 천년의 정기가 서려있는 남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 장군의 재실을 고쳐 사용하고 있는 고택이다.
입구에 허리 굵은 큰 벚나무가 대문 양쪽으로 위치해 있다.
숲속을 뒤로하고 앞으로 넓은 들판이 들어오는 위치에 있는 곳으로 입구에서부터 고택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월암재는 조선 선조 25년에 부산첨사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장군이 살았던 고택으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건물 중 하나이다. 또한 옛 건축 기법과 독특한 구조로 인해 조선시대 건축 연구자료로서도 매주 중요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문이 닺혀 있어 담장 너머로 바라 본다..
건물 뒤로는 솔숲이 있고, 대청에서 밖을 보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신라최초 왕궁터인 창림사지와 남산이 보인다.
경주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월정교에서 삼릉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방 3칸이 장작을 때는 구들방이며, 대청마루가 있는 일자형 가옥구조로 되어있어 가족이나 단체에 알맞은 고택이다. 이런 한적한 고택에서 아침 햇살과 함께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는 도시에는 없는 색다른 체험일 것이다. 전통 고택인 관계로 화장실, 샤워실, 주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대청 양쪽으로 1칸과 2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독채로 4명기준으로 최대 10명까지 숙박할수 있다고 한다.
봄이면 꽃이 좋고 여름이면 시원한 대청이 좋은 월암재는 가을이면 황금들판이, 저녁으로 기온이 쌀쌀해지는 계절이면 아궁이에 감자 혹은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도 느낄수 있다 한다.
뒤로 있는 솔숲에서 바라본 월암재의 모습이다..
월암재 들어가며 왼쪽으로 현판이 없는 사당같아 보이는...
여기도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담장너머로만 바라 본다..
김호 장군의 비각이다..
1534년 경주에서 태어난 장군은 글 솜씨는 물론 성장하면서 용력이 남달라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고 한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봉사에 이르렀으나 평소 고상한 뜻을 가진지라 곧 물러나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임진년(1592)에 왜구가 쳐들어 왔고 장군 나이 59세 때 충의로 분연히 일어나 왜적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경주부윤 윤인함은 장군의 용맹을 알고 부산(富山)을 지키게 하였는데 장군은 그곳으로 달려가 군사를 매복시키며 ‘남면대장(南面大將)’이라 부르니, 적들이 감히 이곳을 넘보지 못했다 한다.
장군은 적의 형세를 살피며 최진립 등과 같이 진격하여 많은 왜구를 포로로 잡았고 7일간 여러 번 왜구와 맞싸워 무수한 적을 무찔렀다.
장군의 이 같은 전공이 조정에 알려지자 임금이 부산진 첨사를 제수하였는데, 이는 적의 후방을 끊으려는 의도였다. 적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언양과 울산 등에서 규합해 총공세를 펼쳤다.
장군은 계연에서 힘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적의 탄환을 맞고 순절하니, 임진년 8월 5일이며 59세 였다.
장군의 아들은 이충, 이관, 이홍 등 세 명이 있었는데 이충은 뒷날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둘째 아들 이관은 흥해 군수로서 부친을 따라 창의하였는데, 아버지가 전사하자 곽재우 진영으로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워 그 공로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막내 이홍은 수문장으로 역시 전공이 높아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934년에 남간 마을 입구에 월암재를 건립하였고, 1976년에 탑동 633번지 월암 고택은 ‘김호장군생가’라는 이름으로 중요민속자료 제34호로 선정되었다.
월암재 뒤로 있는 솔숲에 위치한 신도비
월암재는 신라의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남산자락에 자리하여 맑은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적합하고 뒤로 있는 솔숲과 들판을 보며 산책을 즐길수 있는 멋진 한옥스테이 공간이었다...
월암재를 뒤로 하고 남간마을로 가서 남간사지 석정을 보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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