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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계리 석조여래좌상 (경북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산8-4)

꽃돼지. 2015. 6. 18. 06:30

경주 안계리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92호)

 

 

    

2015.   6.   18.

 

 

2015.  6.   17.   한국불교대학 10기들과 단합 식사 후 가까운 경주 안계리 석조여래좌상을 찾아보러 간다.

 

포항에서  기계사거리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가 안계리 마을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한다.  마을 중심지를 지나 안계사쪽이 아닌 우측으로 가면 끝자락  길가에 있으며 작은 주차장이 있다

 

  

 

 

 

 

 

 

 

 

강동면 안계리 산8-4 에 위치한  옛부터 ‘절골’이라 알려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에는 잘 생긴 몸매의 좌불석상이 있다.   석불의 전체적인 면을 살펴보면 제대로 균형이 잡힌 수작임에 틀림없다.   허리가 가늘고 가슴과 어깨가 발달한 모습이 신라 후기부터 나타나는 철로 만든 불상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석불로서도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불상이다.

이 석불이 있는 자리가 안계사지이다

 

 

 

 

 

 

1999년 위덕대학교 박물관 불적조사단(단장 김무생)이 이곳에서 `安溪寺(안계사)’라고 찍힌 기와를 발굴하였다.   기와의 크기는 길이 23.5cm,   폭 13cm,   두께 2.5cm로 옅은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명문은 해서체로 양각돼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석탑의 기단을 놓았던 자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는 확인되지 않은 채, 8세기 때 창건된 것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던 안계사지가 확실한 것으로 판명이 된 것이다

따라서 안계리라는 지명(地名)도 안계사(安溪寺)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안계사는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좌상과 석탑부재의 뛰어난 조각 수법으로 볼 때 8세기 신라의 주요 사원으로 추정이 된다.

 

 

 

 

 

 

 

 

 

 

경주 석굴암을 모델로 8세기말~9세기초에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여래좌불상으로,  불상의 높이 150㎝,  어깨 폭 84㎝,  무릎 폭 120㎝이다.

안계리 불상은 우견편단을 한 대의의 표현,  항마촉지인의 수인,  결가부좌한 자세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상을 빼어 닮았다.   소위 석굴암계열이라고 하는 이런 모습의 불상은 당시 크게 유행되어서 경주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오랫동안 조성되었지만,   이 불상만큼 충실하게 형식과 양식면에서 모두 모사한 불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대좌를 살펴보면 석굴암본존불상의 경우 중대석의 바깥쪽에 8개의 별석재 5각기둥을 꽂아 장식한 것이 특징인데, 발굴 당시 출토된 안계리 불상의 하대석 윗면에서도 바로 이러한 기둥을 꽂았던 것으로 보이는 8개의 5각형 홈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형태의 석조대좌는 석굴암과 안계리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머리와 얼굴 부분에 파손이 심하나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있으며,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 구멍이 남아 있다.

얼굴은 눈· 코· 입 부분은 마모가 심하나 옆이 납작하고 통통하며 원만한 인상임을 알 수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표현하고 있으며 어깨는 당당하고,  가슴은 풍만하며,  허리는 잘룩하게 표현되어 크고 넓은 무릎과 잘 어울린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였다.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오도록 하여 다리 위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모습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이며,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오도록 하여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땅으로 내린 항마촉지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손가락 끝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왼손바닥이 약간 파여있는 것을 보아 약합이나 또는 보주를 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한다

 

신체 양감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빈약해졌고,   뒷모습의 표현도 약간 어색한 점,  대좌의 연꽃이나 안상의 문양이 9세기 이후에 주로 보이는 점 등에서 조성시기는 석굴암상 보다는 좀 늦을 것이라 생각된다. 

 

안계리석조불상은 똑같이 석굴암 본존불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는 청량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65호)에 비해 가슴의 양감이나 세부적인 표현 기법이 결코 뒤지지 않으며 마치 신라말 고려초에 만히 건립된 철불좌상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대석은 형태나 조각수법, 결구방법으로 보아 석불좌상과 같은 시기인 8세기말에서 9세기 유물로 판단된다

이 불상은 한때는 머리 부분 위에 석등(石燈)의 지붕돌이 얹혀있어 갓 쓴 부처로 불려지기도 했다.

복원 이후 옥개석은 내려져 석불 옆에 다른 석물과 함께 놓여있다.

 

불상의 대석은 배례석(또는 석탑의 1층 탑신)을 고여 대좌(臺座)로 이용하고 었었는데 2003년 중대석과 하대의 지대석이 발견됨으로 교체하고 지금은 석불 뒷편에 긴 장개석과 함께 놓여 있다.

 

 

 

 

 

 

상대석은 팔각향으로 하단에 3중의 연꽃이 앙련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대석의 안상문양

 

 

 

중대석은 팔각이며 면의 모서리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나 면석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하대석의 연화문

 

하대석은 지름 220cm, 높이 70cm의 2단 형태로 그 아래 8각의 지대석이 받치고 있으며, 하대 하석의 각면에 2구의 안상이 새겨있다.

 

 

 

 

 

 

 

 

 

 

 

 

 

 

무릎을 꿇고 마주앉은 두 사람의 공양상이 있는 석물  앞면이며   뒷면은 탑과 보살상이 있다.

 

 

 

 

 

 

 

 

 

 

석물 옆면의 사자

 

 

 

 

 

 

 

 

석불 뒷편으로 정리되어 있는 석재중 각면에 사자. 사람. 탑 등이 조각되어 있는 장방형 대석인데 용도를 알길이 없다..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석등의 옥개석

 

 

 

 

 

 

 

 

안계사지 내에 있는 석부재들

 

 

 

 

 

 

 

 

 

 

 

 

 

 

안계리에서 나와 양동 마을의 북쪽 골짜기에서 승용차가 겨우 다니는 소로를 따라 안계저수지 옆으로 나와 경주 천북면 왕룡사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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