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강원도

적멸보궁 정암사(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꽃돼지. 2013. 12. 23. 20:19

적멸보궁 정암사

 

 

 

 

 

2013. 12.  23.

 

 

 

 

 

2013. 12.21.  길손 테마여행과 함께한 여행길이다...

오늘 일정은 함백산 만항재,   적멸보궁 정암사,  중식 후 황지연못 이동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 관람,    철암역으로 이동 철암역에 도착후 열차탑승 (철암역15:14출발->춘양역)  열차로 달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협곡여행 후 춘양역 도착후 버스탑승 후 포항으로 귀가 예정이다...

 

 

 

◯  정암사를 향하여...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동해바다도 한눈에 들어오는 만항재를 뒤로하고

11:40  만항재를  출발해 정암사로 이동한다....

 

 

 

 

 

 

 

 

 

 

 

 

만항재를 넘어 정선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전나무숲길이 예쁜곳 아름다운 천년고찰 정암사를 만난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정암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이 만년에 창건(645년)하고 입적까지 한 절이다.

 

 

 

 

 

 

사북· 고한 등 탄광지대를 통과해야 다다르는 산골이다.   탄광이 전성기를 이뤘던 1960~80년대 정암사는 고된 노동에 지친 광원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  정암사  표지석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하여 이름 붙여진 정암사(淨岩寺)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함백산) 기슭에 1,400년을 이어온 신라 고찰이다.

 

정암사는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한 뒤 태백산 자락에 금탑·은탑·수마노탑 3기를 세우며 창건(645)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의 이야기가 전하지만 그 밖의 내력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효봉(曉峰)이 총독부의 감시를 피해 3년 이상 머물며 수행 정진하였고, 해방 후에도 지월(指月), 서옹(西翁) 등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는 등 정암사는 고승들의 수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고찰에는 수마노탑(보물 제410호)과 적멸궁,  자장율사의 지팡이(주장자) 등의 유적이 있다.

 

 

 

 

 

 

 

 

◯  정암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 적멸보궁· 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불상이 없는 절이라 누군가 아쉬움에 한두개씩 샇은 돌탑인듯...

 

 

 

 

 

 

 

정암사는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거나 일주문에서 경내가 멀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찰이다.

탄허 스님이 썼다는 ‘태백산 정암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 산기슭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그 너머로 높고 낮게 들어선 건물들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일주문  - 탄허 스님의 '태백산정암사' 편액

 

 

 

 

 

 

 

 

 

 

 

일주문을 들어서니 돌담길이 정겹게 길손을 맞는다..

 

 

 

 

 

 

 

 

수마노탑을 줌인해 본다...

 

 

◯  정암사  포대화상

 

 

 

 

 

 

일주문을 들어서서 인상좋은 포대화상 뒤쪽 산위를 보니 수마노탑이 조그만 하게 보인다

정암사 경내에서 약 100m쯤 위에 떨어진 적멸보궁 뒤편,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 위에 서 있어 일주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포대화상의 배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지나가던 아낙네가 배를 문지른다.  그래서인지 배부분의 색갈이 변해 있다.

나도 한번 만져봐?  아서라. 내려놓기 위해 왔는데 또 무얼 가지려느냐...

 

절은 골짜기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먼저 물길을 건너기 전에 만나는 것이 선불도량인 육화정사와 새로이 지은 요사채와 범종각,   관음전 등이다. 일주문을 포함해 다 최근(1970년대)에 지은 것들이다.

 

 

 

 

◯  정암사 요사

 

 

 

 

 

 

 

육화정사 우측 절 입구 초입에 새로 지은 요사채가 참으로 곱다...

 

 

 

 

 

 

 

 

 

 

 

 

 

 

 

 

 

 

◯  정암사 육화정사

 

 

 

 

 

 

 

 

 

 

육화정사의 모습. 오른쪽으로 관음전이 있어 이 사이의 공간이 마당의 전부

 

 

 

 

 

 

 

 

 

사찰의 규모는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육화정사가 있고 정면에 범종각이 보인다.

 

 

 

 

 

 

 

 

 

 

 

 

 

 

 

육화정사는 종무소겸 요사로 팔각지붕에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다.

 

 

 

 

 

 

육화정사의 처마에 달린 고드름..

 

 

 

 

 

 

 

 

 

 

 

 

 

 

 

 

 

 

 

 

 

극락교를 건너와 돌아보면 범종각과 육화정사, 관음전과 삼성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  정암사 범종각

 

 

 

 

 

범종각은 적멸보궁으로 가는 극락교 옆에 있는데 뒤쪽 반은 계곡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작은 다리인 극락교 위에서 보면 범종각의 뒷쪽 모습을 잘 볼수 있다.  다리 아래 계곡은 열목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눈으로만 봐도 1급 청정수임을 알 수 있는 맑은 물이었지만 열목어는 찾아볼수 없었다.

 

 

 

 

 

 

탐방객을 잡아 끄는 정암사의 정갈한 보석들은 물길 건너에 있다.   범종각 옆 극락교를 건너면 오래된 주목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르며 서 있고   그 뒤로 단아한 자태로 들어앉은 건물이 적멸궁이다.

 

지금의 적멸궁은 1770년 중창된 뒤,  1858년과 1919년에 중수를 거친 건물이다.

 

 

 

◯  정암사 극락교

 

 

 

 

 

 

극락교는 이름처럼 깊은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처럼 보인다.

 

 

 

 

 

 

 

 

 

 

 

 

정선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는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남쪽한계지역 중 한 곳이다.   정암사 일대는 숲이 우거져 여름에도 물의 온도가 20℃ 이하로 유지되는 맑고 깨끗한 곳으로, 열목어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단종을 위해 슬피 울다 눈이 빨개진 열목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단종(재위 1452~1455년)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그때 물속에 있던 물고기가 그 모습을 보고 슬피 울었는데,   어찌나 슬피 울었던지 눈이 빨개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본 단종이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물고기의 고마움에 맺힌 한을 풀고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열목어는 연어과에 속하며 20℃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이다.   몸의 바탕색은 황갈색이며 머리· 몸통· 등에는 자갈색의 무늬가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고 배쪽은 흰색에 가깝다.   알을 낳을 때는 온몸이 짙은 홍색으로 변하며,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부분에는 무지개 빛의 광택을 내어 아름답다.   물 속에 사는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상류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하천에서 가장 상류의 시원한 곳에서 살고,   겨울에는 중류지역까지 내려와서 월동한다.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는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남쪽지역이며,   숲이 잘 발달하여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닌 지역 가운데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  정암사 자장율사 주정자

 

 

 

 

 

 

극락교를 건너면 한그루의 주목이 눈에 띈다.  약 1300년전 자장율사가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로 남긴 나무라 한다.

 

 

 

 

 

 

스님은 증표라도 남기려는 듯 적멸보궁 옆에 평소 애용하던 주장자(지팡이)를 꽂으니 오늘날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도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지 원줄기는 마르고 그 속에서 다시 싹이 나서 자라는 이적(異蹟)을 보여 스님의 지극한 불심을 실감하게 한다.

 

 

 

 

 

 

 

 

 

 

주장자 나무 아래로 정암사의 법당인 적멸보궁이 보인다.

 

 

 

 

◯  정암사 정멸보궁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

 

 

 

 

 

 

극락교를 지나 적멸보궁에 이른다.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정암사는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기에 대웅전 대신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적멸보궁을 두었다.  이러한 성지를 보궁이라 한다.

 

 

 

 

 

 

정암사는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기도의 성지가 되고 있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10여곳의 사찰중 이곳이 갖는 의미는 여타 사찰과는 사뭇 다르다.

문수보살에게 직접 자리를 지정 받았을 뿐 아니라, 율사가 말년에 수행하다 입적한 곳이기 때문이다.

 

 

 

 

 

 

쌀쌀한 날씨에 한 가닥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산중이지만 금방이라도 풍경 소리가 들려올 듯 산사는 고즈넉하기만 하다.

 

 

 

 

 

 

적멸보궁의 문살이 고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적멸궁은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여래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참배하기 위해 건립한 법당이다. 흔히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정암사에서는「적멸궁(寂滅宮)」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이는 "번뇌가 사라져 깨달음에 이른 경계의 보배로운 궁전"을 의미한다.

 

 

 

 

 

 

흰 눈을 두껍게 받은 청기와 지붕 아래 빛바랜 단청과 세월을 말해주는  기둥들이,   자장 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자라올랐다는 주목,   주변의 아름드리 전나무들과 어우러져 천년 세월을 보듬어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단청이 바래 나뭇빛 다 드러난 처마에서 불가(佛家)의 무욕(無欲)을 느낀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해 놓지 않은 불전으로 부처님 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고 적멸보궁에는 아무런 성상도 두지 않고 불탑에만 예배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건물이다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적멸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보궁 위의 닫집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하였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1975년 11월에 도난당하였다고 하니 애석할 따름이다.

 

 

 

 

 

 

보궁 내의 신중단의 신중탱

 

 

 

 

 

 

보궁 내의 동종

 

정암사엔 주지 정광 스님과 절을 관리하는 도감 덕진 스님 등 5명이 머물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덕진 총무스님은 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귀한 법문도 함께 내려 주셨다...

 

 

 

 

지금의 건물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인데, 「정암사사적」에 따르면 1770년(영조 46)에 중수한 모습이 남아 있다. 그 뒤에도 1858년(철종 9)과 1919년에 각각 중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돌담과 전나무 숲

 

 

 

 

 

 

정암사 극락교 위에 서니..    이렇게 계곡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다시 극락교를 건너와 산중턱에 있는 수마노탑으로 향한다.

 

 

 

 

 

 

 

◯  정암사  불교용품점

 

 

 

 

 

 

기념품 판매점을 지나 다리를 하나 더 건너면 완만한 산길이 나온다.  왼편으로는 열목어 서식지가 이어지지만 겨울이라 계곡이 얼어있었다

 

 

 

 

 

 

범종각 쪽으로 돌아나와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 수마노탑으로 오른다. 오래된 돌담 흔적이 남아 있는 전나무숲에서 시작되는 이 가파른 산길은 정암사가 간직한 아름다운 유산 가운데 하나다.

 

 

 

 

◯  정암사  수마노탑(淨巖寺水瑪瑙塔) - 보물 제410호

 

 

 

 

 

 

관음전 지붕 끝자락 너머 산중턱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수마노탑이 손에 잡힐듯 서있다.

 

 

 

 

 

 

 

 

 

 

 

 

산길은 200m가 채 안되지만, 가파른 돌계단 길을  쉬어가며 오르면 탁 트인 경치를 내다보고 서 있는, 높이 9m의 7층 모전 석탑 수마노탑에 닿는다.

 

수마노탑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해 놓은 곳이며, 탑돌이를 하면 좋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 곳 갈래산까지 무사히 가져온 마노석을 쌓아 만든 탑인데 용왕의 도움으로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마노석을 옮겼다 하여 수마노탑이라 불린다.

 

본디 자장율사는 금탑, 은탑, 수마노탑의 세 탑을 쌓고부처님의 보물들을 담았다고 한다.

 

탑의 훼손을 우려하여 금, 은탑은 깊은 산속으로 숨겨두어 수마노탑만이 전설을 전한다.

 

 

 

 

 

 

 

수마노탑으로 가는길은 지그재그식 계단으로 잘 이어져 있다.

 

 

 

 

 

사찰 뒤편 높은 산비탈에 자리한  수마노탑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벽돌로 쌓은 전탑 양식을 모방한 모전석탑으로 강원도 정선 정암사에 있다. 1972년 탑의 해체 수리시 발견된 탑지석에 의하면,  조선 후기 여러 차례 중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단 모양의 6단의 기단을 놓고 그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것이므로 지붕돌(옥개석)의 위아래에 층계모양의 받침이 형성되어 있으며 받침수는 층수가 올라갈수록 줄어든다.   각 층의 추녀 끝에는 풍령(처마끝에 다는 경쇠, 풍경의 다른 말)이 달려 있고 1층 몸돌에는 문비(門扉. 문짝)가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청동제로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체감을 보이며,  매우 정제된 형태의 탑이다.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오랜 세월을 이렇게 홀로 서있었으리라...

 

수마노탑은 전체 높이가 9m에 이르는 7층모전석탑으로 회색 마노석을 벽돌처럼 재단하여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초층의 옥신 남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틀을 짜서 감형(龕形)을 설치하였다. 문비(門扉)는 1매의 판석으로 만들어 졌으나, 중앙에 종선(縱線)을 음각하여 2매의 문비임을 나타내려고 하였고, 중심에는 철제 문고리를 달았다.

 

이 탑은 거대한 편은 아니나 형태가 정제되고 수법이 정교하다. 옥개 우각 추녀 밑의 상향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잃지 않은 것이고, 청동제 상륜의 투각수법 또한 시대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화문이나 안상문 등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오래 전부터 각층의 모전석이 결실되거나 파손되어 보물로 지정할 때부터 보수 문제로 논의되어 오다가 1972년 전면 해체· 복원  되었다.

 

 

 

 

 

 

 

 

 

 

 

 

 

 

 

 

 

 

 

 

 

 

 

 

 

 

 

 

 

 

 

 

 

 

 

 

 

 

 

 

 

 

 

 

 

 

 

해체수리과정에서 3층 옥신부터 기단부까지의 사이에서 5개의 탑지석이 발견되고, 기단부 최하단석 밑의 적심부에서 청동합, 은제외합, 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탑지석에 의하면 이 탑의 현재 모습은 1653년의 중건 때 갖추어진 것이고, 탑 앞의 배례석과 기타 경내에 남아 있는 여러 유물과의 비교, 검토에서 자장율사가 조성하였다는 설화와는 달리 고려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탑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면서 세운 것이다. 창건 설화에 전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금대봉과 은대봉에 각각 금탑과 은탑을 세웠으니 모두 세 탑이 있었다. 그런데 세 탑 중 수마노탑은 돌로 세웠으므로 사람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 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하였다고 한다.

 

자장 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연못에 비친 모습을 보게 하였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그 못 옆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마노석은 보석의 하나로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를 닮았다고 하여 ‘마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노석은 수정류와 같은 석영광물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칠보 가운데 하나로 치며 이것을 지니면 재앙을 예방한다 하여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붕돌 네 귀퉁이마다 걸린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잡티 없는 맑은 소리를 들려준다.

절 마당에서 뒤로 돌아 산길을 200m도 채 안 가면 정암사의 백미 수마노탑이다.   정말 탑을 어떻게 조성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간이 좁다.   딱 탑 앞에 3명 정도가 참배를 하면 좋을 정도로..

 

수마노탑에서 소원하나 빌어 본다...   마음을 비우라 했건만...

 

 

 

 

 

 

 

 

 

 

절 뒤편의 가파른 산비탈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수마노탑  앞에 서면 정암사 주변의 협소한 골짜기와 가파른 산비탈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같다.

 

일주문과 절 마당이 아득히 내려다보이고, 갈래 마을 쪽의 눈 쌓인 산줄기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정암사 가람은 남북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자연스럽게 두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천의봉 자락에 위치한 수마노탑과 그 아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자리 잡은 법당, 곧 적멸궁이 자리한 수행공간과 일주문을 지나 계곡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금대봉 자락에 위치한 관음전,  육화정사,  범종각,  요사,  그리고 그 윗부분 산자락에 들어앉은 삼성각과 자장각이 이루는 생활공간으로 구분된다.

가람의 규모가 그렇게 커다란 것은 아니고, 각각의 전각과 당우들이 시원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넉넉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 있는 전각의 대부분은 1975년부터 1979년 사이 이루어진 중건불사로 갖추어졌다.

 

 

 

 

 

 

 

 

 

 

 

 

 

 

◯  정암사  관음전

 

 

 

 

 

관음전 뜨락엔 월동준비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고...

 

 

 

 

 

 

 

 

 

정암사가 겨울을 보내는 동안 쓰게될 장작들이..   너무 멋드러지게 쌓여 있었다...

 

 

 

 

 

 

 

 

 

 

 

 

 

 

 

 

 

 

 

 

 

 

 

 

 

관음전과 육하정사 사이를 지나 산기슭으로 오르면 자장각(慈藏閣)· 삼성각(三聖閣)을 만난다.

 

 

 

 

 

 

 

 

◯  정암사 자장각

 

 

 

 

 

 

자장율사를 모신 전각이다...

 

 

 

 

 

 

대덕 자장은 김씨로서 본래 진한의 진골 소판(蘇判`신라의 3등급의 벼슬) 무림의 아들이다.   무림은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이에 불교에 귀의하여 천수관음보살에게 자식 하나 낳기를 기원하면서 ‘만약 아들을 낳으면 희사하여 불법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다리로 삼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윽고 자장의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이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공교롭게도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었다.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고 했다.

 

정신과 뜻이 맑고도 슬기로웠으며 문장이 날로 더했으나 속세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양친이 일찍이 세상을 뜨자 마침내 처자식을 버리고 토지와 집을 버리고 원녕사(元寧寺)를 세웠다.   홀로 깊고 험한 곳에 거처하면서 이리나 호랑이도 피하지 않았다.   고골관(枯骨觀`죽은 사람의 뼈,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법)을 닦으면서 조금이라도 게을러지고 피곤한 기색이 있으면 곧바로 작은 방을 만들어 주위를 가시덤불로 둘러치고 그 속에서 벌거벗고 앉아서 움직이면 번번이 가시에 찔리도록 했으며 머리는 대들보에 매달아서 정신이 흐려짐을 막으면서 수도해서 신라의 큰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  정암사 삼성각

 

 

 

 

 

 

삼성각(三聖閣)은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다.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

 

 

 

 

 

 

 

◯  정암사 전경

 

 

 

 

 

 

 

 

 

 

 

 

 

 

 

 

 

 

 

 

 

 

 

 

 

 

 

 

 

 

 

◯  정암사를 나서며...

 

 

 

 

 

 

 

 

 

 

 

 

 

 

 

 

 

 

 

 

 

 

 

 

 

 

 

 

 

 

강원 남부지역 최고봉인 함백산(1573m) 서북쪽 자락,   남한강 최상류 지류 중의 한 물줄기가 시작되는 산골짜기에 천년고찰 정암사(淨岩寺)가 들어 앉아 있었다.

 

적멸궁도 나그네도 은빛세상에 포∼옥 안기다가 나그네만 빠져나온다...

 

정암사가 눈에 덮였다.   적멸궁도 수마노탑도,  수마노탑 오르는 돌계단도 흰 눈에 덮여 적막하다.

매운 산바람에 날리는 눈가루가 수마노탑 서른 두개의 풍경을 때려서 함백산 산골짜기는 온통 은빛이다.   1300여년전 자장 스님이 주목나무 지팡이를 짚고 서서 바라봤을 풍경이다.

 

아담하고 정갈한 이 절집의 겨울 풍경이 더욱 희고 적막한 것은,  이곳까지 굽이굽이 닿아 있는 길과 세월의 빛 때문일지도 모른다....

 

13:00 정암사를  출발 후 태백시내로  이동하다 만나는 절 부근 마을에 폐가로 남아 있는 광원들의 대규모 숙소 등이 번창했던 탄광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석탄빛 여전한데 광원들은 간데없고....

 

태백시 황지동에 도착하니  맛난  중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14:00  황지연못으로  이동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관람하러 간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