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경상도

내연의 자랑 12폭포를 품은 보경사(경북 포항시)

꽃돼지. 2013. 11. 27. 20:29

내연산의 자랑 12폭포를 품은 보경사

 

 

 

2013.  11.   27.

 

 

 

 

2013.  11.   23.   딸과 함께 늦가을 주으러 보경사로 갔다....

 

 

 

 

◯  보경사 일주문

 

 

 

 

 

내연산 보경사의 일주문..중후하고도 아름다운 단청이 천년 고찰의 면모를 말해 준다

 

 

 

 

절(寺)에는 많은 문(門)들이 있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대하는 문이 바로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이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이며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직선으로 세운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이 일주문으로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실상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것이고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기둥을 일렬로 세운 일주문이 상징하는 뜻은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일심(一心)의 작용에 따라 나타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깊은 뜻을 『법화경』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 표현하고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이 각기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아니다, 모든 법은 일불승(一佛乘)의 길로 가기 위한 방편이고 필경 일불승(一佛乘)밖에 없다”고 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산과 바다,  세계와 인생,  정신과 물질,  부처와 중생,  너와 나,  사랑과 미움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일심동체이며,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이 일주문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을 들어설 때 미워할 사람도,  집착할 물건도,  갚아야 할 원수도 모두 놓아 버리고 누구와도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주문에서 반배하고 일주문을 넘어서야 한다. 모든 것의 근원은 오직 하나이며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착하고 너그러운 본연의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일주문이 주는 교훈이다.

 

일주문 밖은 사바세계이고 일주문 안은 부처님의 신성한 전당인 이상(理想) 세계, 즉 극락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주문은 사바세계로부터 수미산(須彌山)이 시작되는 첫 관문(關門)이기도 하다.   사찰 안에는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아라한들과 스님들이 계신다.   그러므로 일주문 앞에 이르면 멀리 큰 법당을 향해서 합장하고 반배를 올린 다음 일주문을 통과해야 한다.   법당 안에 계시는 부처님에게 왔다는 인사를 먼저 하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보경사 해탈문

 

 

 

 

보경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중남산을 등에 업고 좌우로 뻗어난 내연산 연봉에 둘러싸여 있으며,  12폭포로 이름난 그윽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을 껴안고 포근하게 배치되어 있다.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온 대덕지명 법사가 왕께 아뢰어 「동해안의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략을 막고 장차 삼국을 통일하리라」하자 왕이 기뻐하며 포항을 거쳐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데 오색구름이 덮힌 산을 보고 찾은 곳이 내연산이며 그 연못을 메우고 팔면보경을 묻고 절을 창건하여 보경사라 하였다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해탈문이 있고 모금함이 설치되어 있다.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의 경지를 상징하는 해탈문(解脫門)이 나타나는데 이를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하며, 이 문을 통과하면 완전한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게 되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이(不二)란 너와 나,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선(善)과 악(惡),  색(色)과 공(空)의 모든 상대적인 것들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불이(不二)란 절대적인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며,  차별이 아닌 평등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적 우주관에 의하면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 利天)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이 있어서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고 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28개의 하늘세계 중에서 욕계(欲界) 6천의 제2천에 해당하는 아래에서 두 번째 하늘세계로 사천왕천과 함께 지상에 속해 있는 지거천(地居天)이다.

 

보통의 사찰에서는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 혹은 해탈문이 나오는데 보경사는 천왕문 전에 해탈문이 있었다....

 

 

 

 

 

 

 

 

◯  보경사 공덕비,  옴마니반메훔비,  등등....

 

 

 

 

 

 

 

 

 

 

 

 

◯  보경사  설산당 장욱스님 공덕 비각

 

 

 

 

스님께서(1916~1921년) 금당의 계단과 탑을 중수, 홍수로 무너진 사찰 오른쪽 일대에 제방을 쌓다.

 

 

 

 

 

 

 

 

 

 

 

 

 

 

 

일주문을 지나 보경사로 들어서기 직전의 울창한 송림사이로 고려시대때 사찰을 중건한 원진국사가 심은 7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노란 단풍으로 단장하고 나그네를 맞는다.

 

 

 

 

 

 

 

  

보경사 전경이다...오래된 송림 사이로 보이는 보경사 전각들이 아름답다

 

 

 

 

 

 

 

◯  보경사 천왕문

 

 

 

 

천왕문은 보경사 경내를 수호하는 사천왕을 봉안한 곳이다.  보경사 천왕문은 조선 숙종 34년(1708)에 중건한 것으로 모셔진 사천왕상은 불기 2524년(1980년)에 새로 봉안한 것이다. 사천왕은 사왕천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선신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정도를 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사찰에 들어갈 때 일주문, 금강문 다음에 거쳐야 하는 문(門)으로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

 

 

 

 

 

 

 

 

 

신방목 

 

 문짝을 고정하기 위해 문짝 양옆으로 세로로 대는 기둥목이 있는데 이를 문설주라 한다.   문 위의 가로대는 문상방.  문아래 가로대는 문하방 (문지방 - 봉정사 만세루 밑에 처럼 달처럼 오목하면 월방) 이들을 통틀어 문얼굴이라 한다.   문설주 밑에는 기둥 밑에 초석을 받치듯이 앞뒤로 짧은 각목을 받치는데 이것을 신방목이라 하고 그 끝을 동그랗게 하여 삼태극을 새기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는 태극무늬가 많은데,  이곳 보경사 천왕문의 경우에는 좌우에 사자를 한마리씩 조각해 놓았다.   앞발은 잔뜩 힘을주고, 뒷다리는 포개 앉아 있다.   근엄함을 대변하는 듯 풍성한 꼬리가 무척 인상적이다.    사자라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터라 조각도 옅어지고, 힘이 없어보인다.

 

 

 

 

신방목

 

 

 

 

 

 

 

 

천왕문에 들어서면 오층석탑이 보이면서 뒤로 적광전이 우리를  맞는다.

 

 

 

 

 

사천왕상을 안치한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천왕문에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의 사천왕상이 있는데 각각 불국정토의 동ㆍ서ㆍ남ㆍ북을 지키는 신들이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손에는 보검을 쥐고 .선한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준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붉은 관을 쓰고 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잡고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는 모습으로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 한다..

 

 

 

 

 

 

 

 

 

 

 

 

 

 

 

 

 

◯  보경사 5층석탑(五層石塔)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203

 

 

 

 

 보경사 천왕문을 지나면 적광전 앞마당에 오층석탑이 서 있다.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하는 탑이다. 

천왕문과 오층석탑,적광전의 공간은 간격이 그리 넓지 않다. 오밀조밀한 여느 가정집의 마당같은 느낌이다.

 

 

 

 

 

 

 

 

여느 석탑처럼 몸돌에 자물쇠가 천왕문과 적광전을 바라는 쪽으로 새겨져 있는데,  특히 적광전 쪽에 새겨진 자물쇠는 매우 현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마치 진짜 자물쇠를 채워 놓은 듯 그 오랜 시간 동안에도 또렷하다.

 

 

 

 

보수하면서 석재를 갈아끼워 한복 저고리에 양복 바지를 입혀놓은 느낌이 든다.

 

 

 

 

보경사 경내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부르는데,『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보경사에는 적광전과 대웅전 둘이 다 있다. 왜 두 전각이 같이 있을까?

보경사의 적광전과 대웅전은 건축에서도 다르다.   적광전은 창건시 본존각으로 건립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지은 대웅전이 더 위엄 있어 보인다.

적광전은 지붕이 맞배지붕이지만,   대웅전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적광전은 평지에 세워져 있는 반면 대웅전은 기단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중생들도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나타나 증명해준 분이기 때문에 불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앙의 대상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이다.

 

 

 

 

◯  보경사 적광전 (寂光殿)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54호

 

 

 

 

 

보경사 적광전(寂光殿)은 경내에선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시대 후기의 전각이다. '보경사 금당탑비'에 1677년에 금당과 법당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금당은 적광전,  법당은 대웅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기록에 따라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되었다.

 

건물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고 기단은 아주 낮게 조성되었는데, 기단 상면에는 벽돌을 깔고 네모난 주춧돌을 놓았다. 그런데 이 주춧돌이 모두 옥돌이다. 다른 전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적광전 현판 위 포벽의 불좌상과 조선 숙종의 친필 적광전 각판

화엄경에 등장하는 주존 부처님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이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님이다. 진리의 본체라 하여 법신불(法身佛)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법신부처님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다. 그래서 전혀 설법을 하지 않는다. 다만 법신불의 미간 백호에서 광명이 비춰 나와 시방 세계의 모든 나라를 드러낸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찬란한 진리의 빛을 발한다 하여 이 법신불을 모신 큰법당을 대적광전, 적광전, 대광명전(大光明殿), 보광전(普光殿)이라고도 부른다. 비로전(毘盧殿)이라는 명칭도 있다.

 

                                  적광전 주련

 

     萬代輪王三界主 (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법왕이며 삼계주인 부처님

     雙林示滅幾千秋 (쌍림시멸기천추)     쌍림에서 열반한 지 얼마나 흘렀는가!

     眞身舍利今猶在 (진신사리금유재)     석가세존 진신사리 지금 여기 모셨나니

     普使羣生禮不休 (보사군생예불휴)     중생들로 하여금 예배 쉬지 않게 하리.

 

 

 

 

 

 

 

 

 

 

 

 

 

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보현보살과  문수보살

 

 

 

 

비로자나불은 지권인으로 결가부좌하였으며,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을 초월한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을 의미한다. 문수보살은 법신 비로자나불의 지혜를 상징하며 묘길상이라고도 하고 보현보살은 비로자나불의 덕을 상징한다.

 

 

 

 

 

적광전 내에는 등신대(본존불 1.38m, 보살입상 1.83m)의 소조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가운데에 좌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다. 이 삼존불이 언제 조성된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로자나불좌상은 이 전각의 창건시 함께 조성한 듯하고, 후불탱은 1742년(영조 18)에 조성하였다.

 

 

 

 

비로자나삼존불 뒤에는 비로자나후불탱이 걸려 있다. 이 후불탱에는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다.

후불탱에는 이 밖에도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범천, 제석천, 사천왕, 가섭, 아난, 동자, 나찰, 야차 등도 그려져 있다. 영조 18년(1742년)에 그려졌고,  화주는 뇌선이며,  화원은 의관, 뇌현, 찰기, 석봉이다

 

 

 

 

 

 

 

 

 

보경사 적광전에는 호박 비로자나불이 삼천불이나 봉안 되었다.   화려해졌다.   예전의 적광전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1981년에 조성한 신중탱

 

 

 

 

적광전 기초.

 

신라시대 양식이 뚜렸한 주춧돌과 고막이돌이 여전히 집을 떠받치고 있으니 보경사의 역사가 신라시대까지 오름을 보여주는 물증이다. 주춧돌이나 고막이돌 유심히 살피면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은곳은 모두 비취빛으로반짝이는 것을 볼수있는데 모두 옥돌로 다듬어진 것이다.

비취빛으로 사방을 떠받친금당- 신라 가람에 어울리는 멋진 모습이 아닐까?

적광전 어간문 아래쪽엔 두개의 해태가 목각으로 되어 있다.

보통 해태상은 석상으로 계단 입구 쪽에 많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 보경사엔 적광전 어간문 아래에 목각으로 되어 있는게 다른 절과 다른 특징인거 같다.

 

 

 

 

 

기단은 외벌대로 아주 낮게 조성하였는데 기단 위에 전돌을 깔고 원좌(圓座)가 있는 사각형 주초(柱礎)를 놓았다.   주초 위에는 원주(圓柱)를 세웠는데 우주(隅柱)의 안쏠림과 귀솟음이 뚜렷하다.   앞면 중앙 칸의 하방(下枋) 양쪽에는 동물 형상을 한 둔테목을 설치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이며,  주두(柱頭) 위쪽을 봉두(鳳頭)로 장식하였다.   그런데 이 적광전에서 특이한 점은 기단부 석재가 모두 옥석(玉石)이라는 점인데,   다른 전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재질이다.    연두색을 띤 이 옥석은 지금도 내연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신방목의 사자.

 

좌우로 나누어 둿다리를 쭈그린채 앞다리로 버티어 앉은 두마리사자는 마모는 심하지만 표정과 자태가 또렷하다.  왼쪽사자는 다섯개의 굵은 방울이 달린 목걸이, 불거진눈, 처진귀, 길게 다문입, 볼륨감있는 몸체와 다리가 선명한데,  사자본연의 근엄함이나 사나움은 세월에 씻기어 찾아 볼수없고 쓰다듬고 싶을만큼 순진하고 귀여운 강아지상이다.

 

 

 

 

 

 

 

 

 

 

 

 

적광전 창살문

 

 

 

 

적광전의 귀면

 

 

 

 

건축 양식을 보면,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며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꽃천장으로 꾸몄다.   다포 양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꽃천장으로 만든 점 등은 옛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보경사 종무소

 

 

 

 

 

 

 

 

 

 

 

 

 

 

 

◯  보경사 탱자나무 (경상북도기념물 제11호)

 

 

 

 

 

보경사 경내 천왕문(天王門) 우측 동편(보경사 종무소 마당)에 있는 탱자나무는 원형의 수관(樹冠)을 형성하고 있고, 수세(樹勢)는 왕성하다.

탱자나무는 높이6m, 지름0.8m로 수령이 수령이 150~200년정도로 오래된 것이 희귀하므로 노거수로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경내 2그루 탱자나무 중 태풍 ‘나비’로 고사한 동쪽 탱자나무는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하였으므로 2006.1.8 기념물에서 해제하고 서쪽의 탱자나무의 종자로써 후계목을 이어갈 예정이다.

 

 

 

 

 

 

 

 

◯  보경사 소나무

 

 

 

 

적광전 옆의 다박솔

 

 

 

 

 

 

 

300년이 넘는 소나무 앞에서 우리딸이...

 

 

 

 

 

 

 

◯  보경사 범종각

 

 

 

 

천왕문을 바라보면서 왼쪽 편에 범종루가 있다.

 

 

 

 

 

범종은 지옥중생를 제도하기 위해 친다. 새벽에는 28번(수미산을 중심으로 수직적 28천을 의미, 동양적인 사고로는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 함)의 타종을 하는데 천상계인 사천왕천에서(욕계 6천, 색계 18천과 무색계 4천)비상비비상천까지 28천의 모든 하늘나라 중생들을 깨워서,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의미에서 치는데, 한편으로는 인도의 가섭존자에서 중국의 달마대사까지 28대 조사를 위하여 친다는 설도 있다.

 

저녁에는 육신을 가진 현실의 수행자가 수미산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정상이 도리천이다. 즉 현실의 수행자들이 사는 곳이 도리천을 상징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의미로 33천(도리천을 중심으로 수평적 33천을 의미)을 상징하는 33번의 종을 친다.

 

 

 

 

 

보경사의 범종각은 2층으로 된 루각(樓閣)인데도 범종각(梵鍾閣)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하층에 범종을 안치하고 2층에는 법고와 목어, 운판을 별도로 안치 하였다.

 

 

 

 

 

 

 

◯  보경사 범종각 옆 건물

 

 

 

건물아래 통나무가 받치고 있다..

 

 

 

 

◯  보경사  일로향각

  

 

 

 

 

 

 

 

 

대웅전 옆에 일로향각이 있어 부전 스님, 노전스님의 거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  보경사  대웅전 마당의 다층석탑 

 

 

 

 

 

 

 

 

 

 

 

 

 

 

 

 

 

 

 

 

◯  보경사 대웅전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1호 )

 

 

 

 

 

 

보경사  대웅전(大雄殿)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조선시대 후기의 목조 불전(佛殿) 건물인데,  보경사 금당탑비를 보면 1677년(숙종 3)에 법당을 중창하였다고 되어 있으므로 1677년을 이 전각의 건축년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32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원진국사 이래로 계속하여 퇴락과 중창· 중수를 거듭해오다 최근의 보경사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7년 벽암화상에 의해서였다.

 

 

 

 

건물 안쪽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안에는 불단 위에 금동 삼불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삼존상은 대웅전 창건시 조성하였고 후불탱은 1778년(정조 2)에 조성하였다.

보경사 금당탑비를 보면 1677년(숙종 3)에 법당을 중창하였다고 되어 있으므로 1677년을 이 전각의 건축년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32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보현,문수보살을 협시로 하거나,  가섭과 아난.혹은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모시는데.  여기는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모셨는데 대웅전이라니 삼세불도 아니고 조금 이상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보고....

 

 

 

 

 

 

 

 

불단에는 또한 근대에 만든 원패(願牌) 두 점이 놓여 있다.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신중탱 . 삼장탱이 있고,  근대에 조성한 동종 1구가 있다.

 

 

 

 

 

 

 

 

기단위에 자연방형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운다음 기둥 윗몸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둘렀다.   평방 위에는 가운데 칸에 2구,협간(夾間)에 1구씩의 공간포(空間包)를 배열 하였다.  공포는 안팎이 모두 3출목(三出目)의포작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 외부로 튀어나온 제공(諸工)의 살미점차끝은 앙서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연꽃 봉오리를 조각하였다.   처마는 겹처마로서 서까래와 부연을 달아 지붕 틀을 구성하였고,네 귀의 추녀밑에는 활주(活柱)를 세워 처마의 처짐을 방지하였다.

 

 

 

 

 

 

 

 

 

 

 

 

 

 

 

 

 

 

 

 

 

◯  보경사 대웅전 앞 석등

 

 

 

 

 

 

 

 

 

 

 

 

 

 

 

 

 

 

 

◯  보경사 수각

 

 

 

 

 

 

 

◯  보경사 비사리구시

 

 

 

 

보경사에는 큼직막한 비사리 구시가 대웅전 뒤쪽에 있다.   비사리 구시는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구유를 말하는데, 비사리는 '벗겨놓은 싸리의 껍질'을, 구시는 '구유'를 말한다.   대체로 거찰에는 그 옛날 영화로웠던 시절을 대변하는 듯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보경사의 비사리 구시는 조선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나라의 제사때 절을 찾는 사람들이 밥을 퍼먹을 수 있도록 쓰인 도구이고, 약 4000명 분의 밥을 담았다고 한다.

 

 

 

 

 

비사리 구시는 대체로 전각 뒤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세가 컸던 시대의 산물인데,  지금 쓰이지 않는다하여 건물 뒷편에 옹색하게 놓여진 모습이 무척 안스럽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눈길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소나 말이 쓰는 구유로 전락하고 만다. 아쉬울 뿐 이다.

 

 

 

 

 

 

 

 

 

대웅전 뒤로 각전각이 기억자 형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  보경사 팔상전

 

 

 

 

보경사 팔상전(八相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전각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팔상전(八相殿)'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를 봉안한 전각을 말한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어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본존으로 삼고 있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좌우에 있다. 불상은 있으나 불단이 크지 않으며, 벽에 붙은 팔상도와 불상 뒷면의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가 주된 경배 대상이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제화갈라보살은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분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더불어 이 두 협시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상징하고 있다.

 

 

 

 

이곳에 걸려 있는 그림을 '팔상도'라 하는데, 8가지 그림 중에서도 성도(成道)가 중심이 되므로 '팔상성도'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간추리는 데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여덟가지이다.

 

팔상도(八相圖)란,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성불 후 녹야원에서 초전설법하는 장면,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팔상도는 화폭에 문자로 그림의 내용을 써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린다.   현재 법주사. 통도사. 쌍계사. 운흥사. 개심사. 선암사. 송광사. 해인사 등의 팔상도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팔상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후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으며, 법주사의 현판은 우리들 마음의 '상(相)을 깨뜨리자'는 의미에서 '깨뜰릴 팔'을 써 '팔상전(捌相殿)'이라 이름하였다.

 

 

 

 

 

 

 

 

  

 

 

 

 

◯  보경사 산령각

 

 

 

 

보경사 산령각(山靈閣)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20세기 초의 건물이다.  

 

 

 

 

 

 

 

불교사찰 내에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2가지 경우가 있다.   불교의 사찰과 관계없이 지어진 산신각은 산악숭배(山岳崇拜)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 산신각은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으로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은 보통 호랑이와 함께 있는 백발에 수염이 있는 신선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위패는 '○○산신위(山神位)' 또는 '○○산령위(山靈位)'라 해서 산의 이름을 적어놓는 경우와 산의 이름은 없이 그냥 산신위 또는 산령위라 적어두는 경우가 있다.

건물 정면에 현판이 걸려 있는데,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보통으로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산은 한 지역공간의 중심이며,  산신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지켜주는 존재로 믿어졌던 것이다.  한편 산신각에 모셔지는 산신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으로 그려지는 것을 생각해볼 때,  산신신앙이 신선사상(神仙思想)과도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졌다.  그 명칭은 산신각·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 하는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안에는 근대에 조성한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보통의 산신탱화와 달리 금색으로 화려한 산신..

 

 

 

 

 

 

 

◯  보경사 원진각

 

 

 

 

 

 

 

 

 

 

 

 

 

 

 

 

원진각(圓眞閣)은 원진 국사의 상과 존영을 중심으로 고승 16명의 존영을 봉안한 전각으로,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물이다.

 

 

 

 

 

 

 

 

봉안된 존영은 전부 1980년과 1981년 사이에 조성하였는데 주인공은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지명법사(智明法師, 6∼7세기)·청허선사(淸虛禪師, 1520∼1604)·송계선사(松溪禪師, 1630∼1694)·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환허선사(喚虛禪師)·오암선사(鰲巖禪師, 1710∼1792)·마점조사(摩岾祖師)·연파선사(淵坡禪師)·신파선사(神坡禪師)·설산선사(雪山禪師)·영월선사(影月禪師)·은처선사(隱處禪師)·동봉화상(東峰和尙)·설월선사(雪月禪師)·영호선사(暎湖禪師) 등이다.

 

 

 

 

 

 

 

원진국사는 고려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신,   호는 승형,   자는 영회이며,  원진은 시호이다.   13세 때 희양산 봉암사로 출가해 동순에게서 배웠으며,  금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다가 왕의 부름을 받아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보경사 영산전(靈山殿)

 

 

 

 

보경사 영산전(靈山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의 전각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영산전은 석가세존이 생존해 계실때 인도 영취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많이 하셨는데 약하여 영산이라고도 한다.

 

 

 

이 영산전에는 가운데 석가세존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로 16아라한을 배열하였다. 일명 십육나한전이라고도 한다.

 

 

 

 

 

 

 

 

 

 

 

 

 

 

 

 

안에는 조선 후기에 봉안한 금동 석가여래좌상과 최근에 봉안한  문수· 보현 보살,  그리고 16나한상과 사자상(使者像) 등이 있다

 

 

 

 

석가여래좌상과 최근에 봉안한  문수· 보현 보살 그 좌우로 16아라한을 배열하였다. 아라한이란 소승의 교법을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영산전은 영산회상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시던 광경을 묘사한다. 

 

 

 

 

 

 

 

 

◯  보경사 명부전

 

 

 

 

명부전(冥府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의 전각으로 1887년에 짓고 1917년에 중수하였다.

 

 

 

 

 

 

 

 

 

 

 

 

 

 

 

 

안에는 지장보살상과 후불탱,  그리고 도명존자· 무독귀왕상이 협시하고 있으며,  시왕상· 판관상이 불단 좌우로 둘러서 배치되어 있다.

 

 

 

 

 

 

 

 

 

 

 

 

온갖 죄악으로 죽어서 육도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  특히 처참한 살풍경이 벌어지는 지옥 중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 그곳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는 분이 지장보살님이다. 이 지장보살님을 모신 법당을 지장전이라도 한다.

한편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지옥의 세계인 명부세계 주존으로 모셔져 있다. 그래서 지장전은 명부전(冥府殿)이라 일컫기도 하고 명부전에는 망자를 심판하는 열명의 심판관이 들어서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  보경사 원진국사비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원진국사비 귀부부분

 

비석은 귀부(龜趺)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栗首)가 없는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신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규수형(圭首形)이라 부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을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碑文)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疊序)’로 시작되고 있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  보경사 선원. 문무관

 

 

 

 

 명부전을 안고 뒤로 돌면....굳게 잠긴 문뒤로는

 

 

 

 

 다시 나무 울타리 처진 선원. 문무관이 멀리 보인다...

 

 

 

 

 

 

 

 

◯  보경사  주지스님 거처 공간

 

 

 

 

수월당(水月堂)뒤 대웅전 가기전에 위치한다.

 

 

 

 

 

 

 

 

 

 

 

 

◯  보경사 수월당(水月堂) 요사

 

 

 

 

 

 

 

 

 

 

 

 

 

 

 

 

 

 

 

 

 

 

 

 

 

 

 

 

 

 

 

 

◯  보경사 탐플스테이 공간과 공양당

 

 

 

 

보경사는 포항지역의 유서 깊은 대표사찰로 그 도량과 포교를 수평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불자체험 힐링캠프를 통해 일반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바른 행동과 말을 사용하고 바른 생각을 통해 건전한 잠재력과 세계관을 을 품을 수 있는 불교문화체험장이 되도록 보경사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심신이 지친 자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보경사의 '도우스님'은 힐링캠프의 원(願)이 마감되면 명상센터건립을 희망했다. 이곳에서 지도자를 양성하고 삶에 지친 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치유를 완성하는 불교문화의 체험도량이 지역회복과 사회변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지탱해가는 정체성으로 남아주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  보경사 원진국사 부도 (보물 제430호)

 

 

 

 

원진국사 부도 가는 길....

 

 

 

 

 

 

 

 

200m 솔향기 맡으며 오리다 만난 원진국사 부도가 저만치에.....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원진국사 신승형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높이 4.5m이다.  

 

 

 

 

8각 원당형(圓堂形)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하대석(下臺石)은 3단인데 아래쪽 2단은 무문(無文) 8각이고 상단(上段)은 세장(細長)한 단판복련(單瓣覆蓮) 32엽(葉)을 새긴 복련석(覆蓮石)이다.

 

 

 

 

 

중대석(中臺石)은 각 우각(隅角)에 우주형(隅柱形)만 있으며, 상대석(上臺石)은 윗면에 높직한 받침이 있는 32엽의 앙련석(仰蓮石)이다. 탑신(塔身)은 8각의 석주(石柱)와 같은데, 각 우각에 우주가 표시되고, 1면에 문약형(門鑰形)만 모각(模刻)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아랫면에 우각으로 뻗은 융기선(隆起線)이 있으며 전각(轉角)에는 귀꽃이 솟아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8엽 연꽃을 새긴 앙화(仰華) 위에 복발(覆鉢)이 놓이고 다시 앙화형 1석(石)을 놓아 보주(寶珠)를 받고 있다.

 

 

 

 

 

 

 

 

이 부도는 탑신이 지나치게 장대(長大)하여 더욱 고준(高峻)한 감을 주고 기본 조형에 있어 폭이 좁아서 안정감이 없다. 1224년(고종 11)에 건립되었다.

 

 

 

 

 

 

 

 

 

 

 

 

 

 

 

 

 

 

 

 

원진국사 부도를 내려가며 바라본 보경사 모습...

 

 

 

 

 

 

 

 

다시 사찰로...

 

 

 

 

 

 

 

 

 

 

 

 

 

 

 

 

 

 

 

 

 

 

 

 

◯  보경사 미술관

 

 

 

 

 

 

 

 

 

 

 

 

 

 

 

 

◯  보경사 전경

 

 

 

 

 

 

 

 

 

 

 

 

 

 

 

 

 

 

 

 

 

 

 

 

 

 

 

 

 

 

 

 

 

 

 

 

 

 

 

 

 

대웅전 뒤로 각전각이 기억자 형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  보경사를 나서며...

 

 

 

 

보경사의 자랑 소나무 숲이 그리는 수묵화를 뒤로하고...

 

 

 

 

 

 

 

 

 

 

 

사찰 참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일주문에 이르면 멀리 본당(本堂) 쪽을 보고 “너와 내가 하나되는 법”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라고 하는 마음으로 반배를 올리고 절을 떠나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 ...........

지난 날 돌이키며 후회하기 보다는 남은 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을 걸어 보자.  행복을 찾아 내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않다.

지나간 시간에 얽메이기보다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시간이면 한다.

딸아이와 함께한 부처님 세상에서 오늘도 귀한 무언의 말씀을 주워 담으며 '행복'이라는 단어로 오늘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