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경상도

선석사 (경북 성주군)

꽃돼지. 2013. 11. 13. 10:57

 

조선 왕실의 태실 기도도량 성주 선석사

 

 

 

 

2013.  11.   13 .

 

 

 

 

 

2013.  11.  10. 산빛에서 함께한 가야산 만물상 산행하며 들러본 선석사다....

 

 

 

 

 

◯  선석사를 향하여 ..

 

 

 

 

 

세종대왕자 태실에서 200m 떨어진 곳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인 선석사가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노송이 운치 있다.

 

 

 

 

 

◯  선석사 이층 누각

 

 

 

 

 

 

이층 누각,  선석사 경내로 들어 가려면 이곳으로 들어 가야 한다.

 

 

 

 

 

 

루 아래 출입구 양쪽으로는 사천왕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692년(효소왕 1)에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으나, 현재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혜묵(惠默)· 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御筆閣)· 정법료(正法寮)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세종의 왕자 태실(胎室)이 있는 태봉(胎峰)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어필각이었으나 그 뒤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절의 어필각 주위에는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雙谷竹)이라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기가 다른 피리와 비길 바가 아니었으며,  이를 교방적(敎坊笛)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 러나 지금은 이 쌍곡죽이 남아 있지 않다.   성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절이다.

 

 

 

 

 

 

 

 

 

 

 누각 입구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이층 누각

 

 

 

 

 

 

 

 

 

 

◯  선석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13호)

 

 

 

 

대웅전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적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 쌓고 그 위에 장대갑석을 돌렸는데,   전체 높이가 약 90㎝ 가량 되며   자연석의 초석 위에 굵직한 원기둥을 세운형태로 되어 있다.   공포는 다포양식으로 되어 있고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삼존불과 석가여래 후불탱

 

 

 

 

화려한 목조대좌 위의 삼존불 뒤 닫집을 구성하지 않고 용을 출현하였다. 

 

 

 

 

목조 본존여래좌상의 뒷 목조 광배(두광과 신광)는 독특한 형태로 국내유일무이한 모습이다.   목조대좌는 용과  비천상, 각종 꽃으로 화려하게 조각 되었다...

        

 

대웅전 신중탱

 

 

 

 

수미단은 3단의  구획인데 가로 4.6m,  세로 1.28m,   높이 1.08m,  과공양대 높이 0.26m....

수미단 전면의 중앙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마주 보며 화염을  내뿜으며 용이 구름속을 노니는 모습을 표현한 후 그 위에 여러 모양으로 구멍을 내어 덧붙였다...

 

 

 

대웅전 삼불상 뒤의 영산회 괘불탱함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1608호)

 

1702년(숙종 28) 탁휘(卓輝)· 법해(法海)· 설잠(雪岑)· 성징(性澄) 등이 제작된 괘불탱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있고,   화면의 상단에는 아난과 가섭,  2명의 제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상반신만 표현되었다.

좌우협시는 본존불보다 한 발짝 앞서 겹쳐 표현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 석가여래의 수인은 통상의 항마촉지인이나 설법인이 아닌 오른손을 어깨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그림의 화기(畵記)에  “영산회도일부봉안(靈山會圖一部奉安)”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상은 선종의 염화시중과 조선시대에 성행한 선교합일(禪敎合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까지 알려진 불화 중에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내용을 표현한 불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은 제작시기가 비교적 빠르고 연꽃을 든 석가여래 도상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는 점,   이 그림을 모본으로 하여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1709년, 보물1445호)가 현존 한다는 점 등에서 불화도상의 계승을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색채감각이나 필선이 매우 세련되고 뛰어나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이다.

 

 

 

신라 고찰의 기운이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대웅전

 

 

 

 

 

 

 

 

1361년에 지어진 절이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참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절이다.

 

 

 

 

 

 

 

 

 

 

 

 

 

◯  선석사 범종각

 

 

 

 

서쪽으로는 범종각,   동쪽으로는 원음각이라고 했다...

 

 

 

범종각은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즉 불교에서 말하는 사물(四物)을 조성하여 둔 곳이다.

범종은 그 소리로 인하여 일체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 지혜를 증장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그 의미가 있으며,   법고는 축생의 무리에게,   목어는 수중의 생명에게,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 해탈성을 염원하는 의미가 있다.

아침과 저녁에 예불을 드릴 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서로 치게 된다.

 

 

 

 

 

 

 

 

 

 

 

 

 

 

 

 

 

 

 

 

 

 

◯  선석사 명부전

 

 

 

 

 

 

 

 

명부신앙은 임란과 호란에 이어 현종-숙종 초에 걸친 대기근과 전염병의 유행으로 수많은 인명이 죽자 무병장수·수복강녕에 대한 염원과 망자에 대한 영가천도, 조상에 대한 효사상, 신도들에 대한 권선징악적 교화를 목적으로 신봉되었다. 이를 신도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주 전각 옆에 명부전을 배치하고, 명계의 교주 지장보살과 그 권속들인 시왕 및 판관, 사자들을 상과 그림으로 조성, 봉안하였다.

 

 

 

 

 

 

 

 

 

 

 

 명부전내 지장보살상

 

 

 

 

 

 

 

 

 

 

 

 

 

명부전내 시왕상

 

 

 

 

 

 

 

 

 

 

 

 

 

 

 

 

◯  선석사 칠성각

 

 

 

 

 

 

 

 

 

 

 

 

 

 

 

 

칠성각의 칠성탱

 

 

 

 

칠성각의 독성탱

 

 

 

 

 

 

 

 

 

◯  선석사 산신각

 

 

 

 

 

 

 

 

 

 

 

 산신각의 산신탱

 

 

 

 

 

 

 

 

 

◯  선석사  미륵불

 

 

 

 

산신각 뒤쪽 산위에 조성되어 있는 미륵불

 

 

 

 

 

 

 

 

 

 

 

 

 

 

 

 

 

 

 

◯  선석사  정법요

 

 

 

 

선석사 종무소 겸 지대방 용도로 사용되는 '정법요' 건물이 맨 앞에 있다.

 

 

 

 

 

 

 

 

 

 

 

 

 

 

ㄷ 자형의 정법요

 

 

 

 

  

 

 

 

 

 

 

 

 

◯  선석사  태실법당

 

 

 

법당 2009년에 지어진 태실법당은 선석사를 찾는 불자들의 태를 봉안 기도하는 법당이라고 한다.

 

 

 

 '태실법당' 현판은 여주  목아 불교박물관 관장이신 박찬수 선생의 서각 작품이라 한다. 

 

 

 

 

 

 

 

 

 

 

 

 

 ◯  선석사 전경

 

 

 

 

미륵불에서 내려다본 선석사 전경이다...

 

 

 

 

 

 

 

 

 

 

 

 

 

 

유명세와 달리 절은 크지 않고 소박하다.

대웅전과 명부전,   칠성각이 높이를 달리하면서 가로로 나란히 배치돼 있는 모습이 운치가 있다.

 

 

 

 

 

 

 

 

 

 

 

 

몇개 되지않은 절집과 정리 덜된 주변환경에 잠겨든 선석사는 선풍이 경내에 깔려 있는 듯하여 오히려 숨결조차 조심스럽다.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200년된 선석사의 느티나무

 

 

 

 

 

 

 

 

 

 

 

 

 

 

 

 

 

 

 

 

 

 

 

 

 

 

 

 

 

 

 

 

 

 

 

 

 

 

◯  선석사를 나서며...

 

 

 

 

 2층 누각을 지나

 

 

 

 

 

 

 

 

 

 

 

누각 마당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선석사를 다시금 둘러본다...

 

 

 

 

 

 

선석사 해우소에는 이런글도 있었다.

 

 

 

 

 

 

 

 

절 입구  운치 있는 노송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다.     깊게 페인 주름살 만큼이나 삶에 연륜도 쌓여간다.

지나온 세월만큼 빛 바랜 생각도 많아진다.

중년의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오늘이었다.

지금의 나!  

나를 다시 한번 돌아 본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