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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소박한 사찰, 대적사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 )
    사찰여행/경상도 2023. 1. 28. 17:25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소박한 사찰,  대적사

     

    2023 .   1.   28.

     

     

    2023.   1.   27.   라온제나 테마여행에서 좋은 사람들  32명과 함께했던  청도지역 여행으로 청도 와인동굴과 옆의 대적사를 보고 내려와 청도 와인동굴을 보고  그리고 프로방스로 이어지는 빛 여행  이다...... 

     

    오후 1시 30에 포항에서 출발해 휴게소 한군데 들리고  청도 와인동굴 옆 대적사로 향한 다...

    작년 11월에 다녀간 다시 와 보는 청도....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에 대적사라는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작은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라는 자랑에 비해 아주 소박한 절집이다.

    와인터널에서  와인병 조형물 옆 길이 대적사 들어가는 입구이다...

     

     

     

     

    청도 대적사는 청도의 유명관광지인 와인터널 근처에 있는 아담한 절이다.작고 아담한 대적사는 청도와인터널 옆길로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대적사 극락전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안내판에는 100m라고 적혀 있으나 약 300m의 거리이다....

     

     

     

     

    대적사 가며 내려다본  와인터널  입구

     

     

     

     

     

     

     

     

     

    오솔길에는 청량한 기운이 그득하다.   청도 와인터널 왼편으로 난 작은 산길을 지나니 하늘을 가린 울창한 느티나무 아래로 넓은 숲속 광장이 나타난다.   하늘도 가린 숲속 광장은 한적한 산사의 풍경과 어우러져 고즈넉함을 느끼게 한다.

     

     

     

     

     

     

     

     

     

    300년 넘은 도량답게 진입로 주변은 우람한 노거수들이 몇 그루나 서 있다.   몇 그루만으로 숲을 이룰 만치 크고 잘 생겼다.

    울창한 느티나무 숲 한 켠에 막 비추기 시작한 한 줌 햇살을 등지고 한 기의 부도가 서 있다.

     

     

     

     

    청도 대적사 부도 (淸道 大寂寺 浮屠)

    아담한 담장으로 둘러쳐진 입구에 다 달으면 금강문 조금 못미처 대적사로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석축 위에 조선후기 제작연대가 乾隆十七年(1752)인 석종형(石鐘型) 승탑 1기가 눈 앞에 나타난다.  형태는 석종형으로 하단에 별도의 받침석을 설치하고 있다.  석종형 부도이면서도 마치 불두 뒷모습 같은 풍암대사 부도가 길손을 맞이한다.

     

    부도 전면에는  ‘乾隆十七年 豊嚴大師 順敏 壬申二月初八日安’(건릉십칠년 풍엄대사 순민 임신이월초팔일안) =건릉17년(조선 영조28년)은 서기 1752년이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있어 이 부도가 1752 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몸둘에 풍엄대사(豊嚴大師) 순민(順敏)이라고 적혀 있는데 풍엄대사에 대하여는 알려진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1950년 6. 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대적사에는 약 10여 기의 오래된 승탑(부도)이 있었으나, 6.25 전란 때 대부분 분실되었다고 전한다.

     

    그 앞에 잠시 손을 모아 기도 드리고 느티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대적사 금강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단 입구에는 공적비 1기가 서 있다...

     

     

     

     

     

     

     

     

     

    아담한 담장으로 둘러쳐진 입구에 다달으면 다소 가파른 돌계단 둔덕을 걸어 올라가면 금강문이다.  금강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제법 가파르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학산(洞鶴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876년(헌강왕 2) 보조 체징(普照 體澄)이 창건했다.  고려 초에 보양(寶壤)이 중창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방화로 불탄 뒤, 1689년(숙종 15) 서월 성해(瑞月 性海)가 크게 중수했다.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동학산 자락에 위치한 현재의 대적사(大寂寺) 터에는 신라시대에는 큰절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인적이 끊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 자리에 초옥(草屋) 3칸의 암사(庵寺)를 짓고 대적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대적사는 숙종 15년(1689년)에 성해대사가 삼존불을 모시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계곡의 느티나무 숲길을 통과하여 금강문을 들어서면  언덕배기에 극락전ㆍ명부전ㆍ산신각 3채의 전각이 보인다.   주택으로 치면 모두 단칸방 수준이어서 애초부터 종교시설 특유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천왕문을 통해 반듯한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청도 대적사 금강문,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일주문이 따로 없고 훤칠한 금강역사가 좌우에서 반겨준다.  현판은 없지만 금강문에는 금강역사인 아금강, 흄금강이 대문에 그려져 대적사를 호위하고 서있다.

     

     

     

     

     

     

     

     

     

     

     

     

     

     

     

     

     

     

     

    금강문을 지나면 정면에 대적사의 주불전인 극락전(極樂殿)이 있고, 좌측에 명부전(冥府殿), 우측에 요사채가 자리한다.   명부전 뒷편 언덕에 산령각(山靈閣)이 자리하고 있다.

     

     

     

     

    절 마당에서 바라본 이 곳의 금강문은 특이했다.

    이 곳은 대문 양쪽에 벽화로 금강역사를 그려 놓았고, 그 옆 자리는 저렇게 방을 만들어 두었다.   예전 객승이 머물던 곳인가 싶다.   측면에는 아직도 아궁이가 남아 있고 지금도 거처하는 듯 했다.

     

     

     

     

    대적사(大寂寺)는 절 이름 만큼이나 조용하다.   아니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대적사 극락전이 보물 제836호로 지정되어 있어 나름대로 여러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 그야말로 인적 없는 산 속의 절집이다.   대적사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도 우리 일행 외엔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다.    

    대적사 경내는 여느 절집과 특별한 차이는 없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사역에 새로이 중창한 전각들...

     

     

     

     

    대적사 극락전(보물 제836호)

    대적사는 조선 숙종 15년(1689) 성해대사(性海大師)가 건물을 세우고 불상을 모시면서부터 비로소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하고 있는 법당이다.

    대적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인 876년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하였으나 오랫동안 인적이 끊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 자리에 초옥 3칸의 암자를 짓고 대적사라 불렀다.

     

    조선후기인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의 건물로 1689년(숙종 15)에 이르러 성해대사가 삼존불을 모시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에 18세기경에 중건된 건물로 추정된다.

     

     

    금강문을 들어서면서 특별나게 눈에 띄는 것은 극락전 기단부의 면석에 새겨진 다양한 돋을새김의 문양들이다.  거북과 게 그리고 연화문 그리고 물고기 등 여타의 문양들...   가만히 들여다 볼수록 매력이 있는 문양들이다.   약간은 어설프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감동이 있다.

     

     

     

     

    극락전 기둥의 주련

    佛身普徧諸大會  불신은 모든 큰 회상에 두루 하시니

                                     充滿法界無窮盡   법계에 충만하여 다함이 없네

                                     普往十方諸國土   시방의 여러 국토에 모두 가셔서

                                     爲救世間而出現   세간을 구하기 위해 출현하셨네.

     

     

     

     

    계단의 우측 소맷돌에는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구름 속을 힘차게 승천하는 모습을 표현해 놓은 용비어천도(龍飛御天圖)가 새겨져 있다.

     

     

     

     

    계단의 반대 측 측면에는 바다의 사나운 물결을 의미하는 소용돌이가 깊게 새겨져 있는데 태극무늬 같기도 하고 고사리무늬 같기도 하다.

    태극무늬가 둥글게 돌아가고 그 아래 귀퉁이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반쯤 몸을 내밀고 있다.

     

     

     

     

    극락전 기단 축대면석의 H자형 선각

    2단으로 조성된 기단은 상층기단의 정면에 연꽃무늬가 양각되어 있으며 기단부 주변에는 'H'자형의 선각이 연속적으로 새겨져 있다. 'H'자형의 선각이 연속되어 있는 것은 배의 용골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바다 생물들이 용선으로 올라가는 구원의 통로이다.

     

    여러 조각의 석재를 이어 붙어 하나의 기단을 이루고 있지만 중간에 여러 번 개.보수가 있었는지 각 돌조각 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고 이음새도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기단이 의미하는 뜻을 그대로 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 조각이 삼세하고 분명하다.

     

     

     

     

    계단 왼쪽의 기단

    극락전 기단부 계단 좌측의 면석 장엄문양으로 선과 선의 교차점이나 면석에 커다란 꽃,  단순한 원형,  혹은 꽃잎 모양의 조형을 새기자 면석은 연방 꽃밭으로 활력을 갖춘다.

    옆 면석에는 금강저가 연상되는 문양이 양쪽에 있다.

     

     

     

     

    조선시대의 기단이나 소맷돌에 무늬를 베푼 예는 더러 있다.   그들은 대부분 조선 중기 혹은 그 이전에 속하고 17세기 이후에 드는 것은 드물다.   그런 가운데 18세기 이후의 건물에 이런 기단이 생겨났으니 썩 훌륭하지 않더라도 소중한 자료라고 평가한 모양이다.

     

     

     

     

    극락전 기단부의 면석 장엄문양.

     

     

     

     

    자라.  게.  물고기.  국화 따위가 대적사 극락전 기단을 수놓은 무늬들이다.  위쪽 기단의 면석에는 전체를 가로지르는 도드라진 가로띠를 두르고 이 띠와 교차하는 세로띠를 군데군데 늘여 면을 분활 하면서 그 띠 위나 띠와 띠가 맞물리는 곳, 혹은 분활 된 면 등에 이런 무늬들을 새겼다. 

    어미와 새끼인지 두 마리 크고 작은 자라는 꼬리를 물고 네 활개를 저으며 어디론지 가느라고 바쁘고, 게 한 마리는 집게발을 벌린 채 덤덤하다.   동심원 세 개를 새기고 원마다 햇살이 퍼지듯 선을 그어 만든 연꽃에는 화심에 자라 한 마리가 들어앉았다.   연꽃 속의 자라,   동화에서나 가능한 장면이겠지만 여기서는 그게 천연덕스러울 뿐이다.   자라는 아래쪽 기단 왼쪽에 세워진 돌에도 한 마리 더 있는데, 이 역시 네 다리를 한껏 벌리고 분주하다.

     

     

     

     

    바다게의 집게발에 쫓기는 듯한 어린 거북이와 그를 보호하려 새끼발을 물고가는 어미의 등장은 동화적인 천진함과 민화풍의 익살을 고양시킨다.   기단에 동화의 판타지 세계와 익살스럽고 낭만적인 민화의 세계가 어우러져 있다.   반야용선이 가진 판타지의 무대장치가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거대한 용이 이끄는 반야용선을 형상하는 극락전

    소맷돌을 중심으로 양쪽 기단에 새겨진 모습들을 서로 맞붙여 놓으면 기단 자체가 바다이다. 

    반야용선도가 그려진 벽화를 보면 중생들이 타고 있는 반야용선이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극락전 건물에 적용해 보면 극락전 법당은 반야용선의 선실이 되고, 기단(축대)은 출렁이는 바다가 된다. 기단 면석에 새긴 거북, 게, 물고기 등의 수생동물들은 기단을 바다로 상징화하는 역활을 한다.   그리고 연꽃을 새겨 놓은 것은 반야용선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물 위에 떠있는 연꽃과 같은 것인데, 이 연꽃은 서방 극락정토의 구품연지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상징한다. 이런 문양들은 17세기 이후의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문양들이다.

     

     

     

     

     

     

     

     

     

    극락전 어간문 양쪽 평방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한쪽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고, 다른 한 쪽 용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입을 열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상을 '아상(吐像)'이라고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상을 '훔상(含像)'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처음(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즉 이 법당이 만들어진 날부터 없어지는 끝 날까지 불당을 수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에 용두가 장식되는 것은 법당을 반야용선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이 극락전은 화려한 공포의 배치와 용머리 장식 및 구름 문양의 조각 등 전각가구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우수한 건물로서 조선 건축 중의 백미(白眉)라고 한다.

     

    대적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 칸살이 넓지 않아 규모는 크지 않다.   이중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동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짜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는데, 측면에는 공포를 가설하지 않았다.   정면의 공포는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편이지만 후면의 그것은 장식 없이 처리되어 앞뒤가 서로 다른 맛을 풍긴다.   간포(間包)는 1틀씩이다.   문얼굴엔 다른 특색이 없고 문짝은 어간에 3분합, 좌우칸에 두 짝씩이다.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마감하였는데 양쪽에는 풍판을 달았다.

     

     

     

     

    공포는 전 후열에만 시설한 다포계열로 내외 2출목이며 주간포는 1구씩 두었다.   그러나 창방은 양 측면에도 돌려 두었다.   전면의 제공은 외측은 연화를 얹고 내측은 전체를 하나로 하여 연당초무늬로 초각하여 대량을 받도록 하였으나 뒤편은 초각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다르다.   상부가구는 내목도리를 두지 않은 관계로 삼분변작으로 처리하였으나 중도리 사이가 좁고 종량이 높아져 천장이 어색하나 대량의 천연스러움이 어색함을 다소 희석시키고 있다.

     

     

     

     

     

     

     

     

     

     

     

     

     

     

     

     

     

     

     

     

     

     

     

     

    극락전의 뒷 모습이다...

     

     

     

     

     

     

     

    극락전 내부에 봉안된 아미타 삼존불 좌상은 불상 양식으로 볼 때 17∼18세기 전반경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극락전 목조여래삼존불로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한 극락전이다. 

     

     

     

     

    향 불단 우측의 칠성탱

     

     

     

     

    닫집은  아주 형식화 되고 간략한 형태의 운궁형으로 겨우 구색을 맞추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께 인사 드리고 둘러본 법당은 정말 경이롭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가는 법당 장엄, 이 곳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닫집 앞에는 천장을 뚫고 내려온 용 두 마리가 조각돼 있다.   

     

     

     

     

    불단 위로는 불상을 엄숙하게 장식한 간략한 닫집을 설치하였고 또 용 바로 앞에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구름 한 조각이 천장에 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별별 꽃으로 장식된 고색창연한 닫집, 줄에 매달린 조각이 구름이다.

    닫집 바로 앞에는 줄에 매달린 기이한 모습의 나무 조각이 하나 있는데 구름문양이다.    아마 허공을 떠도는 구름이기에 어디 붙여 새기지 않고, 저렇게 허공에다 두었나 보다.

     

     

     

     

     

     

     

     

    건물 안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는데 천장은 앞뒤로 층지게 만들어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천장에는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五瓣花)인 보상화문의 단청(丹靑)을 하였는데 오랜 세월임에도 고고하고 은은한 빛깔이 신비롭기만 하다.

     

     

     

     

    천장은 층급이 있는 우물천장으로, 상단천장은 종보 하단 높이에 설치되었다.   하단 천장은 어칸과 협칸이 다르게 구성되었는데,  어칸에는 내목도리장여 높이에 설치되었고,  협칸에는 내2출목장여 상단에 사용된 가첨장여 높이에 설치되었다.   협칸 천장의 반자는 단순한 각재를 사용하여 구성되었던데 비해 어칸 상단 천장의 반자는 장식된 소란이 사용되고, 반자틀이 교차되는 곳에는 연꽃 문양의 장식재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물천정에 용두, 용신, 용꼬리, 여의주를 조각한 장식판 등을 돌출시키거나 매달아 위계에 따라 장식의 정도를 다르게 하였다.

     

     

     

     

    닫집 앞에는 천장을 뚫고 내려온 용 두 마리가 조각돼 있다.  이 곳 용은 특이하게도 천장을 뚫고 상체(?)를 내밀고 있다. 닫집 위에 있는 용도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닻집 좌우로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어 불단을 수호하고 있으며, 천장 어느 부분에선 꿈틀대는 몸의 일부가 드러나 있고, 더 재미있는 건, 그 꼬리는 대들보 건너편에 삐죽 드러나 있다.

     

     

     

     

     

     

     

     

     

    내외2 출목의 5량 가구로 고주 없이 대량과 종량을 걸고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앞뒤는 대들보와 결구되어 있고,  가운데는 종보에 결구되어 층이 지게 만든 특이한 층급천장이다.

     

     

     

     

     

     

     

     

     

     

     

     

     

     

    천장에는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五瓣花)인 보상화문의 단청(丹靑)을 하였는데 오랜 세월임에도 고고하고 은은한 빛깔이 신비롭기만 하다 .

     

     

     

     

    우물井자 칸 모서리마다 앙징맞은 연꽃이 피어 있고, 큼직한 꽃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칸칸이 붙어 있다.

     

     

     

     

    극락전의 벽화는 전각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으나 당초 벽화가 공포사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18세기 후반의 벽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적사 극락전이 반야용선으로 적극적으로 운용되었다는 사실은 법당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벽화 바로 위 나무결 따라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채도 높은 길상화를 베풀었고,  또 그 위 좁은 상벽에는 율동적인 비천벽화를 조영한 까닭이다.  그것은 상서의 장면을 상징하는 보조관념들이다.

     

     

     

     

    극락전 내부 벽화 중에서 향 좌측의 벽화는 가장 시선을 끄는 장엄은 거인이 왕생자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희귀한 벽화다.   그릇에서 다섯 명이 화생하고 있다.  거인이 도자기 대접 같은 그릇에 다섯 명의 사람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벽화 속 거인은 두 분이다.   좌청룡 우백호를 염두에 둔 듯이 각자 청색과 흰색 옷차림을 하고 그릇을 들고 있는데,  흰 옷의 거인의 그릇은 비어 있다.   아라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구름 속 하늘사람임은 분명하다.   도대체 이 거인들은 누구시며, 무슨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 벽화는 대단히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반야용선의 개념으로 보면 도상의 의문은 풀린다.   벽화를 조영한 예술가는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방식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방식을 발상해냈다.   용선(龍船)이라는 배의 수단을 빌리거나 연화화생의 일반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거인이 하늘로 단숨에 들어 올려주는 방식을 착안했다.   반야용선의 용 대신에 거인의 변화신을,  배 대신 그릇을 대체하면 된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은 변함없이 함께 동행 하신다.  반야용선이 수평적 운동의 항해라 한다면, 거인을 통한 왕생은 수직적 차원을 뛰어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선례가 없는 독창적인 벽화장엄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은 반야바라밀의 길이다.   지혜의 뗏목을 타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다.   대적사 극락전의 고졸한 뗏목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한 줄기 희망의 빛을 푸르름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향 좌측의 벽화는 여러모로 주의를 끈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셔 법당의 반야용선적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보살의 주체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다.  ‘인로왕’이라는 말 자체가 길을 인도하는 최고의 길잡이라는 뜻이다.   인로왕보살은 반야용선의 선두를 맡는다.  길의 인솔자이므로 형형색색의 천이 나부끼는 번을 들고 계신다.   지장보살, 혹은 관세음보살은 배의 선미에서 안전운행의 자비력을 발휘하신다.  벽화에서는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육환장, 보주를 든 지장보살을 신령한 구름 속에 나란히 모셨다.   두 보살의 벽화는 극락전 법당이 반야용선의 방편이기도 함을 불교의례 양식으로 보여준다.

     

     

     

     

    극락정토는 더없이 편안하며 아무 걱정이 없는 곳, 살아서 덕을 쌓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산 사람들이 죽어 가게 된다는 곳으로 줄여서 극락이라고도 한다.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간다는 상상의 배를 이른다.

     

     

     

     

    건물의 가구는 무고주 5량가로 되어 있으나 장연과 단연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통서까래로 지붕틀을 구성하고 있다.

    3제공으로 이루어진 포작 위로 대들보와 종보를 놓았다.

     

     

     

     

     

     

     

     

     

     

     

     

     

     

     

     

     

     

     

     

     

     

     

     

     

     

     

     

     

    불단 우측 상부벽 이 곳 역시 구석구석 크고 작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좌측은 달마와 혜가 단비도 

     

     

     

     

     삼고초려도

    우측은 삼고초려도로 직역하면 초가집에 세 번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후한 말, 유비가 융중에 기거하던 제갈량을 얻기 위해 몸소 제갈량의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던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으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한다는 의미....

     

     

     

     

     

     

     

     

    평면구성은 어칸은 넓게, 좌우 협칸은 좁게 한 조선후기 간잡이법을 보여주고 있다.  창호는 하부에 종방향으로 2등분하여 궁판을 넣은 띠살무늬로 어칸에 3분합, 협칸은 쌍여닫이문을 두었으며 우측면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외짝여닫이문을 달아두었다.

     

     

     

     

     

     

     

     

     

    향 극락전 좌측에는 대적사 명부전이 있다...

     

     

     

     

     

     

     

     

    근래에 지어진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목각탱을 봉안하고 있다...

     

     

     

     

     

     

     

     

     향 불단 좌측 벽면에는 영가사진을 모셔 두었다...

     

     

     

     

     

     

     

     

     

     

     

     

    명부전 앞 담장 옆에는 공덕비가 있다...

     

     

     

     

    명부전과 극락전 뒤로 산령각이 보인다...

     

     

     

     

     

     

     

     

     

    산신각 오름길의 두꺼비상

     

     

     

     

     

     

     

     

    산령각에는 산신탱을 봉안하고 있었다..

     

     

     

     

     

     

     

     

     

     

     

     

    향 극락전 우측으로는 요사채인 香閣이 자리하고 있다.

     

     

     

     

     

     

     

     

    대적사 금강문을 나서며...

     

     

     

     

     

     

     

     

     

     

     

     

    금강역사인 아금강, 흄금강이 대문에 그려져  호위하고 서있는 대적사를 나온다....

     

     

     

     

     

     

     

     

     

     

     

     

    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대적사.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이었고 정갈하게 매만져 다듬어 놓은 도량,  사람으로 북적이는 가까운 와인터널에 비해 참으로 한적했다...

     

     

     

     

    맑은 새소리가 전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청도 와인터널이 생기고 나서  대적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었지만,  여전히 대적사는 그 사명처럼 커다란 고요함, 한적함이 느껴진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사찰 앞 울창한 느티나무 숲 광장의 고즈넉함이 그대로 경내로 이어지고 있다.

    지저귀는 새소리,   숲에 이는 바람소리,  요사채 앞에서 나른한 눈빛으로 웅크린 채 낯선 방문객을 바라보는 까만 고양이,  사람의 발소리마저 들릴 듯 한적한 사찰의 일상 속에 잠시 머물며 새삼 위안을 받는다.

     

    이제 청도 대적사를 보고  다음여행지 청도 와인동굴을 만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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