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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월읍 영흥리 1090-1)
    여행방/강원도 2018. 11. 4. 10:08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릉 

     


      2018.     11.    4. 

      

      

    2018.   11.   2.   가을빛이 고운 날 한국불교대 大관음사 10기 도반들과의 가을 소풍으로 강원도 영월 지역의 사자산 법흥사. 요산정과 요산암. 장릉 그리고 보덕사 등을 둘러본 여행길 이었다... 

      

    요선정에서는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그 시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의미가 있었고요선암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주천강을 보게 되어서 좋았다.

     

    이제 영월 두번째 여행지 요선정과 요산암을 떠나 영월 읍내로 이동하여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장릉과 보덕사를 둘러볼 예정이다.. 

     

     




    이제 요선정과 요산암을 떠나





    영월 읍내로 이동하여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장릉과 보덕사를 둘러볼 예정이다..





    장릉 주차장 앞에 잇는 '장릉시골밥상'에서 곤드레밥이랑 도토리묵. 동동주 한잔하고...





    바로 앞의 장릉으로 향해 본다...





    영월장릉(사적 제196호)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에 죽임을 당하여, 그 주검이 동강에 버려졌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장릉에 모셨으며,   이후 숙종때인 1698년에 이르러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고 왕릉으로 정비하면서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입구 세계유산 안내문


    조선왕릉 문화재보호를 받는 영월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





    장릉 초입부터 오래된 노거수 들이 엄청 많아 오래된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장릉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단종역사관 좌측으로 제실을 지나 건물들을 따라 가운데로 가서 정자각 못 미쳐 오르는 길이 있고 단종역사관 우측으로 정여각 바로 옆을 보면 산책길을 걷듯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단종역사관 우측으로 정여각 바로 옆,  이곳을 올라가면 바로 단종의 릉이 있는 장릉으로 이어진다.  내려올때 이 길로 오기로 하고  우선 박충원 낙촌비각 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왕릉으로 오르는 오른편에 박충원 낙촌비각이 있다.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5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 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길이 없어 풍설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군리(郡吏)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온 세 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 신하가 둘러서 모시고 있었다.
    임금을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 번째 있던 이가 살려 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 후부터는 군수가 부임 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단종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단종 역사관





    잊혀지고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건립된 단종 역사관은 단종의 즉위식에서 부터 사약을 받는 모습 등 단종의 일대기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식으로 모형전시 되어 있다.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지상의 전시관 부터 보기로 한다.





    조선왕실 계보도





    단종의 탄생








    단종의 모든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 단종역사관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 수개의궤





    박충원 교지





    단종대왕어제(端宗大王御製)





    지하로 내려가며 벽면에 붙은 단종


    태백산신으로 추앙된 단종과그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추익한(秋益漢)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다진본인지 모사인지 모르지만 운보 김기창의 그림이다. 단종과 추익한의 이야기를 묘사한 내용이다.








    매년 4월 마지막 주말에 단종문화제가 성대하게 거행되며, 특히 조선시대 국장 재현행사는 1천명이 넘는 인원과 49275식의 도구가 동원되어 장엄하게 재현된다고 한다.





    조선 왕세자의 어린 시절 의복도 알 수 있도록  진열이 되어 있었다.





     왕세자 책봉











    사육신과 생육신





    유배 그리고 죽음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200년의 세월  권력을 위한 왕권 다툼 속에  어린 왕의 희생,  다시 노산 대군으로 추봉 되기까지 시대의  역사 자료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2009630일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월 장릉 단종의 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하는 향토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참 슬펐던 역사의 한 순간을 기억해 보는 시간이었다...









    단종의 모든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 단종역사관을 나와서...

     








    齊室(제실)로 이동한다...






    齊室(제실) 앞의 고운 단풍...




     

    재실






    단종릉을 지키는 참봉 한 사람과 수호군졸 아홉 사람이 기거 하였다고 하는 제실이다.
























    매년 단종 제사를 지낼 때 이곳 제실에서 제사에 쓰일 제물을 준비하고 각종 제기를 비롯한 기구들을 보관해 오던 곳이기도 한데 제사 한 공간에 지금은 한복을 대여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齊室(제실)을 지나면...






    단종릉 올라가는 입구 재실 옆에 위치한 엄흥도 정려각 (旌閭閣)을 만난다.












    정려각은 1726(영조 2)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이로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순조 33)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고종 13)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고종 16)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旌閭(정여)'는 표창을 뜻하는 말이며, 나라에 충성을 다한 분들을 위해 세우는 것이라 한다.





    엄흥도 旌閭碑(정려비)



    충의공이라 불리는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이 사약을 받고 운명하자, 세조의 명에 의해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려졌기에 죽은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영월에서 행정 업무를 보좌하는 호장 엄흥도는 아들 삼형제와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야밤을 틈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선산인 동을지산(지금의 장릉)에 몰래 매장하고 가족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다.










    엄흥도 旌閭閣(정려각)에서 바라본 장릉의 멋진 숲...






    홍살문 방향의 풍경이다..





    정여각까지 둘러보고 이곳에서  오를 계획이다.








    장릉의 멋진 숲...











    장릉의 제사단이 보인다.





    경내에는 정자각, 단종비각, 영천, 배식단, 재실, 홍살문 등이 있으며, 울창한 노송의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장릉의 제사단에서 바라본 장릉으로 오르는 여행객들 ....









     장판옥(藏版屋)









    정조 15(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





    조사위(朝士位) 198,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 놓은 곳이다.
















     장판옥 앞에 있는 '배식단(配食壇)'









    홍살문 입구에는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 년 한식 때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제례를 이곳에서 지낸다.





    홍살문이 보인다.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신이 다니는 참도는 통상 자 인데 이곳은 자형으로 꺾여 있다.   참도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되고 일직선이 일반적이지만 준비된 왕의 능이 아니라서 이런 형태가 된듯하다.





    신도 뒤로 영천과 수라간이 보인다...








    수복실이다.


    수복실은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정면 2, 측면 1간 건물로, 장릉 경내 홍살문 북쪽 5m 지점 비각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단종대왕신도비의 비각 건립 때 같이 조성 되었다.

    영조9(1733) 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丁子閣(정자각)과 함께 세웠다.









    수라간.  정자각.  수복실이 차례로 보이고 그 위로 장릉이 보인다.





    端宗碑閣(단종비각)









    1698(숙종 24) 이 비각을 세우기 전 까지는 魯山墓(노산묘)라 부르고 있었는데, 영조대 비각을 세우면서 魯山墓(노산묘)莊陵(장릉)으로 추봉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각 안에는 '朝鮮國 端宗大王 莊陵(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란 글씨가 쓰인 ()가 있고 단종의 생애를 적고 있다.





    端宗陵(단종릉)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는 丁子閣(정자각)













    영조9(1733) 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丁子閣(정자각) 건물은 한자의 천간 ()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한식날인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丁子閣(정자각) 또는 排位廳(배위청)이라 한다.





    능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은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다.





     저 뒤 산 능선 왼쪽으로 보이는 곳에 단종릉이 자리잡고 있다.





    예감은 제사를 지내고 축문을 태우던 곳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본 장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단종비각





    수라간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정자각과 단종비각









    제를 올릴 때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





    '영천'이라 불리는 우물담이  보인다.












    莊陵(장릉)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한 靈泉(영천)


    숙종 때 단종비각이 세워지고일백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정조 1791년에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이다.





    비석 밑에 사각형 돌이 우물돌이다.





    영천 우물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 때 祭井(제정)으로 장릉의 제사 때만 사용하는 우물이라 한다.

    이 우물은 평상시에는 물이 많지 않다가 한식날 장릉에 제사를 올릴 때면 물이 많이 고이는데 단종의 한이 맺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400년 가까운 수령의 느릅나무가 영천 옆에 서 있다.









    이렇게 오래된 느릎나무는 처음본다...





    느릎나무 뒤로 단종비각. 수복실. 장판옥. 배식단이 차례로 보인다.





    홍살문 뒤로 영천.  수라간. 장자각.단종비각. 수복실이 보인다..








    다시 바라보는 장릉의 제사단 풍경이다.





    홍살문에서 뒤돌아 서서 바라본 제실 방향 전경이다.















    장릉 제사단을 나와 장릉으로 향한다..   장릉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아까 지나온 단종역사관 우측으로 박충원 낙촌비각 옆으로  산책길을 걷듯 올라가는 길과 단종역사관 좌측으로 제실을 지나 건물들을 따라 가운데로 가서 정자각 못 미쳐 엄흥도 旌閭閣(정려각) 옆으로 오르는  지금의 이 길이 있다.





    엄흥도 旌閭閣(정려각) 옆의 데크길로 장릉으로 오르는 길...





    장릉으로 올라가는 능선이다. 10분이면 올라간다.





    장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장릉의 제사단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장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오르기에 좋다하지만, 그래도 역시   흙길, 작은 오솔길이 아쉽다.






    소나무 숲이 든든하게 자리한다독야 청청 푸른 소나무들의 향긋한 솔 내음이 좋다. 왕릉으로 향하는 길이 즐겁다 .






    장릉 오르 내리는 길 옆으로 쉼터가 있어 쉬어 가기에 좋다...





    내려다본 장릉의 제사단으로 장판옥. 배식단. 수복실. 홍살문.  단종비각이 차례로 보인다...






    잘 자란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간다.





    정령송(精靈松)


    단종의 장릉 앞에는 精靈松(정령송)이라는 소나무가 있다

    남양주문화원에서 199949일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의 남양주의 사(思陵)에서 옮겨온 소나무다이 정령송(精靈松)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애절하고 슬픈 사연으로 인해 두 영혼을 합치자는 뜻으로 심은 소나무이다.   사릉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 씨가 묻힌 능이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헤어진 뒤 끝내 만나지 못했다.   정순왕후 역시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동대문 밖 연미정동(현 동대문구 숭인동 청룡사)에 초옥을 지어 칩거하면서 날마다 절 뒤 석봉에 올라 비통해했다고 한다.






    152182세로 생을 마감했지만 죽어서도 함께 하지 못하고 남양주에 묻혔다.   수백 년이 지난 뒤 소나무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면서 단종비 정순왕후와도 영원히 떨어져 살게 되었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해주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 왔다. 숙종 24(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정순왕후의 무덤을 사릉(思陵)’이라 했다.







    가는 길이 길지 않은 걸음의 언덕아래로  제향의 끝 공간인 장릉 제사단의 신도와 영천. 수라간. 정자각이 이 내려다보인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하여 절을 하듯 굽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단종이 묻혀 있는 장릉...  한많은 생애를 뒤로한 채 이곳 영월 땅 이곳 장릉에 잠들어 있다.






    능의 양식은 왕명에 따라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4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망주석(望柱石) 2문석(文石) 2석수(石獸) 여러 개가 있다.






    작은 무덤 장릉이다
    봉문 좌우 망주석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가 없다고 한다.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된 택지가 아니라서 조성 왕릉과 조금 틀린 것 같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그리고 유배  17세에 사약을 받아 죽음을 당하고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일생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려져 온다 .
    영월 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거두어 장릉에 모시고 다시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 어떤 왕릉이라도 수도 한양을 기준으로 백리 안쪽에 자리 잡는 것이 통례였었다.

    그러나 장릉은 단종이 유배 중에 운명을 마쳤던 곳이므로 그 시대의 완고한 원칙을 벗어나 한양에서도 천리 밖이나 떨어진 아주 외진 지방에 봉분했던 조선왕조의 유일한 왕릉이다.













    장릉에서 바라본 제사단의  전각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영월읍 영흥리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단종릉인 장릉에서 내려간다...






    잘 자란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참 고운 가을날이다...















    내려가는 길은 박충원 낙촌비각  옆길로 내려 갈 것이다..






    왕릉에서 걸어가는 길은 소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서 호젓한 산책길이다 .





    나무사이로 제실이 내려다 보인다..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장릉에서 내려가기에 좋다.








    박충원 낙촌비각 옆으로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오다 담은 駱村碑閣(낙촌비각) 전경








    내려온 길을 뒤 돌아본다...














    고운 단풍 숲과 소나무 길이 너무 멋진 장릉을 돌아보며 가슴이 멍멍해 온다.

    17살의 꽃다운 나이...   지금 우리 아이들은 30살이 다 되어가도 어리게만 보는데...    역사의 뒤안길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3번째 와본 장릉에서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해보는 기회였다...


    장릉에서 나와 500m 거리쯤에 있는 영월에서의 오늘 4번째 마지막 여행지로 이동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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