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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선사 마애불상군 감상하며 경주 단석산 산행하기 (경북 경주시 건천읍)
    산이 좋아 2016. 4. 15. 20:39

    신선사 마애불상군 감상하며 경주 단석산 산행하기 

      

     

     

     

    2016.  4.   15.

     

     


     

    2016.   4.  14.   불교대학 도반인 관음회 친구들과  함께한 경북 경주시 건천읍의 단석산 이다 ........

     


    이젠 아침공기가 제법 훈훈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포항출발 (09:00) → 경주시 건천읍 (10 : 00)  도착 후  오를 수 있었던  단석산....

     

    산행일시 :  2016년  4월   14일 (목요일)   

    날     씨 :  흐리면서  맑음 (미세먼지 많아 시야가 약간 흐림)

    산 행 자 :  나 포함 4명

    산 행 지 :  단석산덕 ( 827.2m ),  경상북도 경주시  

    산행코스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 저수지 - 송선리 오덕선원 - 공원지킴터 -  신선사 -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단석산 정상 - 신선사 - 공원지킴터 (4.1km,  3:30 시간)

    산행시간 : 10:00 ~13:30  3:30 시간 ( 쉬엄 쉬엄 놀면서 산행 . 점심 시간 포함 )

    산행거리 : 4.1 km

    교 통 편 :  개인차량 이용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에 걸쳐 우뚝 솟은 단석산은 높이 827m로 경주 주변의 산중에서는 가장 높다. 경주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산이 경치가 좋아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또한 이곳은 옛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곳으로 알려져 화랑과 신선사 마애불상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꾸준히 찾아들고 있다.

     단석산은 옛 신라에서 중악이라 불리웠으며, 김유신이 15세에 화랑이된 뒤 17세에 삼국통일의 포부를 안고 입산하여 난승이라는 나이 많은 도사한테 전수받아 체득한 신술로 큰 바위를 단칼에 자른 뒤부터 단석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신선사 위 산 정상에 김유신이 단칼로 잘랐다는 단석이 남아 있다.

     김유신을 비롯한 화랑들이 수도했다는 내용의 명문이 ㄷ자형의 상인암에 불산군과 함께 새켜져 있다. 현재는 마모가 심해 새겨진 글씨의 일부 내용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신선은 곧 미륵불을 뜻하는 것으로 화랑들의 신앙 대상이었을 생각할 때 '신선사'라는 절 이름에서도 신라 시대에 이미 단석산 일대가 화랑들의 수도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건천 군데 군데에 붙어 있는 단석산 진달래 산행 축제 현수막이 우리를 반긴다.

     

     

     

     

     

     

    경주시 건천읍을 지나 건천에서 산내 방면으로 약 6.6km 가면 보이는 건천읍 송선 저수지 이다.​

     

     

     

     

     

     

     

    건천읍 송선 저수지에서  우중골에 다다른뒤 우중골 주차장 지나 신선사 탐방길의 시작을 알리는 사찰 오덕선원(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1267-1번지) 오덕선원에서 한참을 오르니 공원지킴 터가 있다. 

     

     

     

     

     

     

    지도상의 현위치는 공원지킴터 이고 여기서 부터 시작인 것 같다.

     

     

     

     

     

     

     

     

     

     

     

    경주 단석산 입구 공원지킴터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출발한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 전 진입로는 경사도 완만하여 가볍게 워밍업 하기에 딱 좋다.​

     

     

     

     

    공원지킴터에서 출발하여 단석산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 내려오는 코스로 약 3~4시간의 비교적 짧은 당일 산행이다.​

     

     

     

     

     

     

     

    ​신선사로 이어진 임도길​

     

     

     

     

     

     

     

    신선사까지 가는 길은 이렇게 경사가 좀 있는 시멘트 길로 이어진다.

     

     

     

     

    신선사 600m 지점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신선사로 오르는 길가의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돌탑

     

     

     

     

    신선사로 오르는 길가로 끈임없이 냇물소리의 자잘거림을 들으면서 산사로 오른다.

     

     

     

     

     

     

     

     

     

     

    아직도 시멘트길의 연속이다.

     

     

     

     

    육군3사관학교에서도 신선사를 다녀갔나 보다... 

     

     

     

     

    드디어 만나는 신선사 표지석이다.

     

     

     

     

    신선사 표지석 옆의 국보 제199호 마애불상군 안내판이다.

     

     

     

     

    여기서 부터 신선사까지는 길지 않는 흙길이다...

     

     

     

     

     

     

     

     

     

     

     

     

     

     

     

     

     

     

     

    멀리 신선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중골에서 1시간 정도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거대한 마애불상군이 있는 단석산 신선사다.

     

     

     

     

    신선사 우측으로 훼손의 우려가 있어 강화 아크릴 지붕의 보호각 속에 있는 마애불상군도 보인다..

     

     

     

     

    신선사로 오르는 길 신선사 입구의 수줍은 금낭화가 산객을 반긴다.

     

     

     

     

     

    신선사는 단석산의 가파른 사면을 깎아낸 터에다가 석축을 마련하고 절을 쌓아 올렸다.  그러기에 큰 사찰로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조그마한 암자로 오랜시간 운영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신선사 경내에는 법당 한 채와 산신각.  요사 정도가 전부이다.

     

     

     

     

    신선사는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2리 산89번지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계통의 사찰이다.

     

     

     

     

    신선사는 7세기 신라시대 때에 자장의 제자 잠주가 창건 했고 김유신이 이 절에서 삼국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김유신이 한노인으로 부터 신검을 받아 바위굴에서 검술을 닦으련서 바위를 칼로 내리쳤는데 그때 바위가 갈라진 곳에 있는 절이라 하여 단석사라 했고 아래에 펼쳐질 갈라진 바위의 마애불상이 바로 김유신이 칼로 자른 전설바위이다.

    나중에 바위에 새겨진 명문에 신선사라는 이름이 나옴으로 이곳을 신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선사는 대웅보전(大雄寶殿)전과 삼소암(三笑庵),  산령각(山靈閣),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돌담과 돌탑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신선사 대웅전이다.

     

     

     

     

     

     

     

     

     

     

     

     

     

     

     

    신선사 대웅보전의 삼존불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으로 좌우 협시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님을 모셨다.

     

     

     

     

    신선사 대웅보전의 삼존불 우측의 칠성탱

     

     

     

     

    법당 불단 우측 전경

     

     

     

     

    법당 불단 좌측 전경으로 신중탱이 있다.

     

     

     

     

     

     

     

     

     

    대웅전 옆으로 약수터를 볼 수 있는데 2개의 큰 돌수조 사이를 나무로 수로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마시는 이들을 배려한 신선사의 독특한 소통이 아닐까?...

     

     

     

     

     

     

     

    여기서 한숨 돌리면서 물도 맛보고...

     

     

     

     

     

     

    산령각으로 향한다.

     

     

     

     

     

     

     

    신선사 입구에 제일먼저 반기는 것은 푸근하고 편하고 복스럽게 생긴 돌담 위에 올라 앉은 목보살 나신상 (?)과 돌탑

     

     

     

     

    산령각(山靈閣)을 오르다 보면 스님 처소인 삼소암(三笑庵)이 있고..

     

     

     

     

    신선사에는 용담스님이 주지로 계시는데 스님은 1951년 신선사에서 출가하여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스님께 사미계를,  서울 보광사 정일스님께 비구계를 받아 50 여년을 이곳 신선사에서 수행정진 중이시라고 한다.

     

     

     

     

    그 위로 산령각(山靈閣) 이 있다.

     

     

     

     

     

     

     

     

     

     

     

     

     

    신선사 산령각에는 산신탱과 독성탱을 모시고 있다.

     

     

     

     

     

     

     

    산령각 측면에는  김유신 장군의 단석 설화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산령각에서 내려다본 삼미암과 요사 겸 공양당인 백상원이 보인다.

     

     

     

     

     

     

     

     

     

     

     

     

     

    대웅보전 옆 야외에 있는 석불은 몸체 부분과 좌대의 하대석만 옛것이고 나머지는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단석산 신선사 석조여래좌상

     

     

     

     

    머리와 대좌를 근세에 보완한 신라시대의 석불로 추정 된다.

     

     

     

     

    대웅보전 옆 야외에 있는 석불 옆으로 긱종 공덕비들...

     

     

     

     

     

     

     

     

     

     

     

     

     

     

     

     

    마애불상군으로 향하는 길

     

     

     

     

     

     

     

     

     

     

     

     

     

     

     

     

    마애불상군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바라본 신선사 전경이다.

     

     

     

     

    신선사에는 백목련과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신선사의 오른편에 보면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자리한 곳이다.

     

     

     

     

    신선사 마애 불상군은 동남북 3면의 바위 절벽에 조성된 불상들을 볼 수 있었고 각 면마다 달리 새겨진 부처님을 뵐 수 있었다.

     

     

     

     

     

     

    마애불 입구,  입구와 출구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다르게 나 있었다.

     

     

     

     

    마애불 입구의 이쁜 야생화

     

     

     

     

     

     

     

    신선사 마애불상군 ( 국보 제199호 )

     

    신선사 옆에 거대하게 서 있는 ㄷ 자형의 상인암은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으로 토함산 석굴 또는 제2석굴암이라는 불리는 군위삼존불보다 이삼백년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석굴사원은 길이 10m,   암벽 높이 8m,  입구 폭이 3m인 ㄷ 자형의 거대한 암벽으로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이른바 석굴법당을 만들었다.   지금은 지붕 없이 하늘로 뻥 뚫려 있으나 주변에서 지붕을 덮었던 기와조각이 발견 되었다.

     

     ㄷ 자형의 거대한 암벽 못지않게 장관을 이루는 것은 석굴의 바위면에 조각된 1구의 부처상과 9구의 보살상이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구는 고신라 불교미술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신선사 마애불상군의 불상 배치도

     

     서쪽으로 트인 곳이 입구이며 들어서면서 왼쪽,  곧 북쪽 바위중앙에 새겨진 삼존불은 왼손으로 미륵장륙상 쪽을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친절히 안내해주는 듯하다. 

     맨 왼쪽의 불상은 약 60cm이고,  오른쪽 2구는 각각 120cm와 96cm정도이다.  그 안쪽에서 반가사유사이 얕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반가사유상 아래쪽에는 버선 같은 모자를 쓰고 고양을 바치는 자세의 공양자상 두 구와 스님 한 분이 얕은 부조로 새겨졌다.  두 공양자상과 스님은 높이 약 90cm에서 120cm 정도이다.   특히 이 조각들은 신라인의 복식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여기서 바위가 단절되어 쪽문처럼 트였고 다시 바위가 솟았는데 여기에 거대한 미륵장륙상이 있다. 이 불상은 8m 정도의 크기로 비록 딱딱하고 서툰 듯한 솜씨로 조성된 면도 있지만 중후한 체구에 둥글고 동안인 얼굴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U자 모양을 이루는 법의 안에 내의를 묶은 띠 매듭 등이 보인다. 발가락 조각이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동쪽 바위 암벽에는 높이 6m 정도 되는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으나 얕은 부조에 선각인 데다 마멸이 심해 알아보기 힘들다. 

     

    남쪽 바위면에도 역시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입상이 있고 그 옆에 명문이 있는데 역시 마멸이 심하다. 일부 알아볼 수 있는 명문에는 이 절이 신선사이고 본존불은 미륵장륙상 이라 적혀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모여주는 상인암의 마애불상들은 고신라 불교미술과 신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서쪽입구에서 바라본 정면 동쪽 바위(東巖)의  관세음보살상

     

     

     

     

    동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 있다. 

     

     

     

    동쪽면  보살상이은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좌측 동북벽 쪽의 바위에 새겨진 미륵본존불상

     

     

     

     

    이 석굴의 주불(主佛)로서 거대한 장방형(長方形) 1석(石) 전면에 두껍게 조각되어 있다.

    상호는 둥글고 고식(古式)의 미소를 짓고 있으며 머리의 정상에는 특이한 2단의 육계형이 있다.   삼도는 없고 내액의(內腋衣)가 엿보이는 통견의(通肩衣)로서 좌우대칭의 조각기법을 따랐으며 법의(法衣)는 길게 아래로 늘어뜨려 발의 좌우 아래까지 이르고 있다.

    수인은 양손 모두 다섯손가락을 펴서 여원인(與願印)과 시무 외인(施無畏印)의 통인(通印)을 하고 있다.

    비록 딱딱하고 서툰 듯한 솜씨로 조성된 면도 있지만 전체높이 약 7m로서 삼국시대 초기 마애불의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작품이다.   이 불상을 미륵여래입상이라 부르고 있다.

     

     

     

     

     

    신라인의 온화한 모습과 많이 닮아 보이고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섬세한 곡선은 저절로 환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았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불국토 신앙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천년을 넘게 지탱해온 불상의 발가락이 이채롭다.  미륵여래불의 발부분은 바위를 깊게 파내고 발가락을 새겼다.

     

     

     

     

     

     

     

    우측 남쪽바위(南巖)보살입상(菩薩立像) 지장보살상

     

    나가면서 좌측에 있는 남암(지장보살)은 훼손의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이 느껴진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서 앞의 두 불상과 함께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허름한 가사를 걸치고 있는 수행승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얼굴 부분과 턱 선이 깨어진 세월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동쪽 바위면에 있는 관세음보살상과 같이 미륵여래 입상의 협시상을 이루며 명문에 보이는 두 보살 중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조각 양식은 동쪽 것과 비슷한데 두 손이 다르다.  전체 높이 약 2.1m이며 얇게 조각되어 있다.  또한 오랜 세월을 견뎌온 탓에 마멸과 손상이 심해 조각선을 찾기가 어렵다.

     

     

     

     

    조상명기

     

    이 보살상의 동쪽면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단석산 마애조상군의 석실(石室)의 남쪽면에 각자되어 있는 명문이다.

    글을 쓰기 위하여 면을 고른 후 각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명문은 세로로 20행이며, 각 행의 글자는 19자로  약 400여자의 조상명문(造像銘文)이 새겨져 있고 그 중에서 약 2백여 글자가 현재까지 판독되고 있다.  이 명문은 마애석불군의 조상기로 이 명문에 의하여 절이름(寺名)뿐 아니라 본존불의 명칭(主尊名)을 알 수 있었다.

    글자크기는 대략 2~4cm정도이며  글씨는 고예서(古隷書)와 해서(楷書)가 섞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예서(隸書)의 느낌이 강하다

     

    1969년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신라오악조사단(新羅五岳調査團)이 상인암(上人巖)에 새겨진 이 명문에 의해서 단석산의 상인암(上人巖)은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신명(神明)에게 기도하던 중악(中岳)의 석굴임이 밝혀졌고  본래의 이름이 신선사(神仙寺)임이 밝혀졌다.

     

    아마 미 명문 어딘가에 신선사라는 이름이 있었을 듯--

     

     

     

     

     

     

    북쪽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과 반가 사유상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는 반가 사유상을 제외한 삼존불 모두가 왼손으로 서쪽 바위면 본존불을 가르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한 듯한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오른쪽 여래입상(如來立像)

     

    보주형 두광이 있으나 밑의 연화좌는 분명하지 못하다. 두정에는 육계가 있고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그 아래로 치마(裳衣) 주름이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었으며 왼손은 몸밖으로 뻗어 주존불을 가리킨다.

    정면을 보는 상이며 전체 높이는 116cm이다.

    가운데 보살입상(菩薩立像)

     

     정면상으로서 머리에는 삼각보관(三角寶冠)을 얹었으며 삼도(三道)는 없다. 천의(天衣)는 양 어깨로 걸쳤으며 배 아래에서 U자형을 이루고 다시 두 팔에 걸쳐서 몸측으로 길게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오른손은 복부에, 왼손은 왼쪽 몸의 측면 밖으로 나가서 주존불를 기리킨다. 둥근 두광과 연화좌를 지니고 있는데 몸체의 높이는 102cm이다.

     

    왼쪽 여래입상(如來立像)

     

    이 곳의 세 입상중 조각이 가장 선명하다.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과 단판복련좌를 지니고 있는데 연화문에는 자엽(子葉)이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둥글고 큰 상호에 비해서 육계가 매우 적은 것도 특이하다.

    두 눈은 부어 오른 초기 석불상의 특색을 지녔으며 두 귀 또한 길고 삼도는 없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왼손에 걸쳐서 아래로 내려 뜨렸고 신체 하단에는 치마(裳衣) 주름이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위에 올려서 다섯손가락을 폈으며 왼손은 몸 밖으로 들어서 다섯 손가락을 펴고 있다. 이와 같은 왼손형식은 다른 두 상과 동일하여서 마치 이들이 동쪽 끝에 있는 반가사유상과 나아가서는 굴내의 주존인 미륵여래 입상을 지칭하고 인도하는 듯하다. 이 상은 이곳의 4상중 반가사유상과 더불어 주목할만하다.  불상의 높이는 105cm이다.

    반가사유보살상(半跏思惟菩薩像)

     

    장식이 없는 둥근 원형두광을 구비하고 있다.  머리에 삼산관 보관을 쓰고 동안을 보이며 삼도는 없다. 나신에 가까운 상체이며. 목에 목걸이 장식을 하고 있다..

    오른쪽 팔꿈치를 반가한 오른쪽 다리 위에 올리고 다시 팔을 올려 오른쪽 손가락을 빰에 살짝 대어서 사유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린 왼쪽 발의 무릎위에 얹어서 통형(通形)의 반가형식(半跏形式)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발이 연꽃 대좌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반가사유의 금석상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원위치를 지키고 광배와 대좌 등을 구비한 고신라 유일의 마애석상으로 신라 전역에서 현재 남아 있는 마애존상으로는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전체높이 109cm이며 얇게 조각되어 있으나 조각선이 분명하다. 전체의 형식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국보 반가사유상과 유사하다.

     

     

     

     

     

    북쪽 바위벽의  공양인상

     

    전실의 중단 2軀. 오실을 향하며 공양을 올리려는 모습으로  향로와 나무가지를 들고 머리에 특이한 관모를 쓰고 있다.  버선 형태의 모자를 머리에 쓴 공양상은 신라의 화랑 같기도 하고 문신과 무신을 뜻한 것 같기도 하였다.

     

    공양인물상 1

     

    동쪽 굴내부를 향하여 공양하는 입상으로서 두 손으로 병향로(柄香爐)를 잡고 있다. 머리에는 독특한 관모를 썼으며 상하의제(上下衣制)의 구별이 주목된다. 얇게 조각되어 있으나 상호의 두 눈은 뚜렷이 표시되어 있어 위장부(偉丈夫)임을 느끼게 한다. 몸의 높이는 122cm이며 남면의 금석문 중에는 "보살계제자잠주" 라는 문자가 적혀 있어 이 석굴 조성의 발원인으로 추정이 된다

     

     

    공양인물상 2

     

    공양인물상 (1)에 비해 약간 작으나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점과 자세와 의복이 동일하다.  다만 두 손으로 나무줄기를 잡고 있는 것이 앞의 상과 다를 뿐이다.  역시 공양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위의 두 공양상의 의복과 모자는 고대 신라의 복식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어서 복식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북쪽 바위벽 아랫쪽 여래입상(如來立像)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뻔 한 큰 바위 아래의 작은 불상맨 아랫쪽에 자리 잡은 있으며 불상군 중에서 가장 작은 입상으로서 우견편단을 하고 있다.

    몸의 높이는 57cm에 불과하며 다른 상에 비하여 후대에 따로 조각해 넣은 듯 하다.

     

     

     

     

    동벽의 관세음 보살상과 동북벽의 미륵불  바위사이로 바라본 신선사 전경이다. 

     

     

     

     

    신선사 마애불상군 동쪽에서 서쪽 밖을 바라본 모습이다.

     

     

     

     

     

     

     

    다시 신선사 마애불상군 앞에서 정면 동쪽을 바라본다.

     

     

     

     

    신선사 마애불상군 앞에서 기념한번 한뒤...

     

     

     

     

    마애불상군을 뒤로 한채 산행을 이어간다.

     

     

     

     

    단석산 정상이 1km 남았다.

     

     

     

     

    신선사 이후 구간은 숲길이 이어진다.

     

     

     

     

     

     

     

     

     

     

     

     

     

     

     

     

     

     

     오르막은 계속되고 500m쯤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멋진 산들이 첩첩이 이어져 있다.

     

     

     

     

    저 아래로 건천에서 산내. 청도로 이어지는 도로도 보인다.

     

     

     

     

     

     

     

     

     

     

     

     

     

    전망바위에서 정상쪽을 바라 보니 아직은 시야가 막혀 있다.

     

     

     

     

     

     

     

    여기서 단석산 정상까지는 제법 경사가 크다.

     

     

     

     

     

     

     

     

     

     

     

     

     

     

     

     

     

     

     

     

     

     

    이제 정상을 300m 앞두고 있다..

     

     

     

     

     

     

     

     

     

     

     

     

     

     

     

    정상이 보인다.

     

     

     

     

    너무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전후좌우를 살펴가면서 오르면 산행시작한지 한시간 반 정도 걸려 정상에 도착이다.  신선사와 마애불상군에서 많이 쉬어서...

     

     

     

     

    단석산 정상 827.2m

     

     

     

     

     

     

     

     

     

     

     

     

    단석산 정상에 오르면 두 동강난 바위가 있다.  대부분 이 바위를 단석바위라 한다.

     

     

     

     

    단석산은 신라 화랑의 훈련장으로 단석산 정상에는 두 동강 난 바위 하나가 자리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화랑 김유신이 산 정상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도인이 내려와 칼을 전해주었다 한다.

    그 칼을 가지고 바위를 내리쳤더니 바위가 두 동강 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사 산 이름도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한다.

     

    단석산에는 삼국통일을 염원하던 신라 화랑의 자취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단석(斷石)이라는 산 이름은 17세 화랑 시절의 김유신 장군으로 인해 생겼다. 고구려와 백제를 치기 위해 김유신이 난승이라는 도인에게서 받은 신검으로 이곳 석굴에서 검술을 연마하였다. 칼로 베인 큰돌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산 정상에는 김유신이 두 동강 낸 단석이 지금도 있다. 그리고 정상 부근의 산길에도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단석인 송곳바위(천주암 天柱岩)가 있다.

    높이 솟은 바위 표면에 칼자국들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단석산 정상에 오르면 경주 시가지를 병풍처럼 두른 송화산과 선도산, 벽도산, 그 뒤로 남산의 금오봉, 토함산 삼태봉 등 신라의 삼산오악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도산(424m) 우측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남산의 금오봉이라는데..  미세먼지로 전망이 좋지 않다.

     

     

     

    단석산은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선도산, 남쪽의 금오산, 북쪽의 소금강산과 함께 신라인이 신성시한 오악 중에서도 중악이라 하였으니 나라의 영산으로 모셔왔던 산이다.

     

     

     

     

     

     

     

    단석산의 또 다른 입구인 방내리(芳內里)라는 마을 이름은 꽃다운(芳 꽃다울 방) 화랑이 규율에 따라 무술 연마를 하던 지역 안(內 안 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길 중간의 화랑바위에서는 부모들이 와서 이곳에서 훈련받는 자식들을 면회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단석산 정상은 억세밭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중앙의 절반으로 갈라진 원형의 단석이 놓여 있다 보니 이 돌을 김유신 장군의 바위라고도 하는데 천주암이라는 단석이 있다.

     

     

     

     

     

     

     

     

     

     

     

     

     

     

     

     

     

     

     

     

     

     

    정상 부근은 온통 진달래 천지이다..

     

     

     

     

     

     

     

     

     

     

     

     

    하산하는 길을 모량의 방내리 방면으로 잡았더라면 마애불 한 구를 더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신선사쪽공원지킴이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기에 다시 원점 회귀하여 산을 내려가야 한다. 다음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방내리 마애불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산행중 흘린 땀방울을 식히기에 충분하다.

     

     

     

     

     

     

     

     

     

     

     

     

     

     

     

     

     

     

     

     

     

     

     

     

     

     

     

    이제 신선사가 가까와 온다.

     

     

     

     

     

     

     

    아까 보았던 신선사 마애불상군을 지나

     

     

     

     

    훼손의 우려가 있어 우회하여 감상하도록 되어 있는 길을 따라

     

     

     

     

    다시 신선사에 도착이다.

     

     

     

     

    신선사에서 다시금 마애불상군쪽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신선사도 아쉬운듯 되돌아 보고..

     

     

     

     

     

     

     

    이제 신선사를 내려 간다.

     

     

     

     

     

     

     

     

     

     

     

     

     

     

     

     

     

     

     

     

     

     

     

     

     

     

     

     

     

     

     

     

     

     

    굽이 굽이 시멘트 길을 돌아

     

     

     

     

     

     

     

     

     

     

     

     

     

    산벗과 연초록의 조화로움을 보고 꽃내음 맡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까지 들으며

     

     

     

     

     

     

     

     

     

     

    아주 편안히 내려오다가 보니...

     

     

     

     

    드디어 주차해둔 공원지킴터 까지 왔다.  공원지킴터 근처에서 쑥도 뜯은 다음에

     

     

     


    쉬엄 쉬엄 쉬면서 놀면서 산보겸 산행한 단석산 산행을 마무리 하고 우리는 오덕선원을 지나 우중골 주차장도 지나 송선저수지도 지난다.

     

     

     

     

     

    그리고 포항으로 길을 잡는다....

     

    내가 살아 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살아 있기에 불행도 고통도 맞볼수 있다

    내가 있기에 즐거움도 알게 되고 내가 있기에 아픔도 눈물도 흘려 본다

    내가 존재 함으로 번뇌는 찿아 오고 내가 존재 함으로 번뇌는 소멸 된다...

     

    오늘도 마음속에서 이는 작은 출렁임의 번뇌까지 충분히 비우고 가는 참으로 휠링된 하루 였다..

    이렇게 많이 행복할수 있어 너무나 고마운 날이다.

    모든것에 고마움과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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